치킨이 먼저 올까, 황민현이 먼저 올까.
배가 고프니까 치킨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아 진짜 배고파 죽겠네.
아니지, 그래도 황민현이 뭔가 더 궁금하기는 하다.
황민현, 네가 먼저 와라. 먼저 와줘.
오늘은 뭔가 네가 먼저 와 줬으면 좋겠다 그냥.
딩동. 그리고 진동. 동시에 울렸다.
전화를 받으면서 현관문으로 향했다.
“이영채 내가 진짜 미안해. 화 풀자, 응?”
전화도, 현관벨도 모두 황민현이었다. 바라던대로 황민현이었다. 힛, 기분이 좋네.
남사친과 이상형의 경계_05
“자, 이건 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내가 베라 뛰어갔다 왔어. 파인트도 아님. 패밀리입니다 영채님. 얘는 흉 안지는 연고 얘는 그냥 마데카솔. 그리고 이건, 짠! 캐릭터 밴드다. 이건 키티랑, 얘 이름은 뭐지? 무튼 다 네 거야.”
황민현은 먼저 분홍색 베라 봉지에 담겨 있는 아이스크림을 내 손에 쥐어주고서는 열심히 품 안에 있던 연고들과 밴드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는 이름 뭐지? 야 얘 이름은 뭐야?를 반복하면서 제 품에 있던 것들을 내 품에 하나하나씩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거듭 사과했다.
“야 이제 화 좀 풀어라. 내가 말을 좀 이상하게 한 거 인정! 아니 너 엄살도 심한 애가 아예 안 다치는 게 좋으니까 그렇지. 네 탓이라는 게 아니라. 알지?”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황민현이 원래 나를 많이 걱정하는 것도 알고, 내가 화내는 거에 약하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황민현이 원래 나 화 풀어주는 데는 도가 텄다는 것도 알고. 그래 다 아는데, 얼떨결에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연고랑 밴드를 품에 안은 지금 내 기분을 모르겠다.
지금 이 기분이, 내가 잘못한 일인데도 이렇게 굽혀오는 황민현 때문에 머쓱한 건지. 그냥 아이스크림까지 사올 줄은 몰라서 뜻밖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잠이 덜 깬 건지.
매번 내 화를 풀어주던 게 늘 황민현이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크게 다가왔다. 아 얘는 늘 내 옆에서 이렇게 해주고 있었구나.
내가 화낼 일도 아닌 것에 화냈음에도 사과는 네가 하고 있네. 저번에도 그랬던 것 같고, 저저번에도 그랬던 것 같아. 너는 맨날 왜 나한테 져주는 거야? 문득 물어보고 싶어졌다.
민현아, 너는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그리고 나는 왜 이제야 이걸 알았는지.
5.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이유가 뭘까
머쓱한 기분에 아무 말도 않고 황민현만 보고 있었다. 황민현은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집 안 쪽으로 돌리더니 그대로 문을 닫고 같이 들어왔다.
왜 그렇게 멍해, 감동받았어? 그랬어여? 멍한 내 표정을 보더니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황민현인데. 그냥 친구인데.
딩동. 또 다시 현관벨이 울렸다. 뭐야, 뭐 시켰어? 아 치킨. 미리 준비해두었던 돈을 가지고 치킨을 받으러 나갔다.
“809호죠? 여기 치킨이요.”
“아 네, 현금이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오던 황민현은 자기가 치킨을 받더니 거실의 탁자에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너 저녁 안 먹었어? 야 그럼 우리 집 오지. 화났다고 굶기까지 하냐.”
“나 쭉 자고 있었어. 오늘 피곤했나봐. 너도 먹고 가.”
헤헤 안 그래도 그럴려고 했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접시도 챙겨오고, 콜라를 따를 컵도 가지고 왔다. 이럴 때보면 나보다 우리 집을 더 잘 아는 것 같다.
잘 먹겠습니다. 오오- 이영채 역시. 치킨은 순살이지. 배가 너무 고팠던 나는 대꾸도 안 하고 먹기 시작했다. 뭐야, 쟤는 왜 저렇게 잘 먹어. 내꺼 다 먹겠네.
“너 저녁 안 먹었어? 나보다 잘 먹어 무슨.”
“응. 나도 안 먹었는데?”
“뭐? 왜?”
“그냥 귀찮아서.”
시답지 않은 대답을 하더니 얼른 먹으라고 재촉만 했다.
“근데 아줌마 아저씨 왜 이렇게 안 오셔?”
“요즘 야근인가봐. 맨날 늦으시네. 한 30분 쯤 지나면 오실 걸?”
그렇게 배부르게 치킨을 먹고 정리를 한 뒤에, 나란히 쇼파에 앉아서 티비 채널만 하릴 없이 돌려댔다.
“야 근데 뭘 저렇게 많이 사 왔어? 솔직히 나도 잘한 거 없는데 뭐. 그냥 화낼 일도 아닌데 나도 소리 질러서 미안.”
“알긴 아네-? 어차피 서로 사과할 거, 내가 먼저 하면 좋지.”
“그리고 또 차단한 것도 미안. 아니 진짜 안 그러려고 하는데, 내가 막 화가 나면 또 그래... 미안. 네가 자꾸 나 다 받아줘서 그래. 이제 다 받아주지 마. 사과도 내가 먼저 하고 그래야겠어.”
“얼씨구? 뭐야 왜 그러냐. 야 됐어. 나 말고 네가 짜증내는 사람이 또 어디있다고 그래. 어차피 너도 맨날 나한테 이렇게 미안하다고 하는데 뭐. 됐습니다, 됐어요.”
괜스레 소심해져서 건네는 내 사과가 우스웠는지 녀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또 내 머리를 꾹꾹 눌러댔다. 맨날 이러네, 나 작아진대도.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뻘쭘해져서 냉동실에 넣어 놓은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갔다. 숟가락도 챙겨오고. 티비 보면서 먹어야지 하고 딱 열었는데. 하 진짜 황민현 센스.
너무 대견해서 티비만 보고 있는 황민현 고개를 한 손으로 잡아 돌렸다.
“야 진짜 너 없으면 나 어떻게 사냐? 나 방금 울뻔 했어.”
갑작스러운 내 행동이 당황스러웠는지 말을 더듬었다. 아 얘 표정 봐. 웃기다.
“뭐, 뭐야. 왜 이래.”
얼빠진 표정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얗 흐흫. 너 표정 웃기다. 아니 아이스크림 봐. 센스 진짜 내가 칭찬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사왔어. 뉴욕치즈케이크랑 바람과함께사라지다랑 초코나무숲. 진짜 내가 이러니까 화를 안 풀고 배겨?”
그제야 내 말 뜻을 알아들었는지, 아 뭐야. 하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뭐 먹을 거만 사주면 풀리는데. 세상에서 제일 쉬움.”
칭찬을 해줘도 난리야. 그래도 힛. 아이스크림 먹으니까 오늘 나쁜 일이 다 사라지는 것 같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맛만 있으니까.
맛있으니까 막 인류애가 생기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이 무척 달았다.
“어! 영채야 안녕!”
급식실에서 나오는데 김종현을 만났다. 자다 깨서 받은 그 쪽팔린 전화 통화가 있고 나서 이틀 뒤였다.
또 해사하게 웃으면서 뛰어오는데 아무리 봐도 저 웃는 입꼬리가 사람 기분까지 좋게 만드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다가오는데 쪽팔림보다는 반가움이 먼저였다.
“아 오빠 안녕하세요.”
“그 때 잠도 깨워서 미안. 이제 다친 데는 괜찮아?”
“네 그럼요. 곧 다 나을 것 같아요.”
“하핳. 다행이다 그럼.”
뒤 이어 식판을 정리하고 나온 수정이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김종현이다. 오빠 뭐야, 영채 번호 받아가더니 친해졌나봐?”
“아니 막 아직 친한 거 아니고 그냥 그 때...”
“앞으로 친해지려고. 그래도 되지 영채야? 나는 친구들이랑 있던 거라서 먼저 가볼게에. 움, 나중에 연락하께. 하핳, 그럼 안뇽.”
둘이 연락하는 사이냐? 아니야, 그냥 예의상이지. 뭐야 너한테 진심 관심 있어 보이는데?
하, 정수정은 김칫국을 나대신 너무 급하게, 누구보다 빠르게 마시는 것 같다.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제게 관심 있는 거 같다고 해주는 제 친구, 이거 제가 고마워해야 되나요?
“영채야 안뇽.”
힉! 뭐야. 수업이 끝나고 멍 때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별안간 내 볼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서 누군가 하고 봤더니 김종현. 사람 놀라게 하는 데 뭐 있는 거 같다, 이 오빠는.
“놀랐써? 하하핳. 미안. 근데 놀라는 거 토끼같따. 아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려나? 헙. 나 그만 웃을게 그럼. ”
“아녜요, 괜찮아요. 어! 비타 오백이다. 이거 저 주시는 거예요?”
“웅! 당연하지. 너 주는 거야. 요즘 덥자나, 그래서 너 줄라구.”
비어있는 내 옆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더니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그리고 저번에 보건쌤한테는 내가 잘 말씀 드렸서. 걱정 안 해두 돼.”
“맞다, 다행이네요. 비타 오백은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나 너한테 비타 오백도 줬으니까 이제 카톡 할래.”
“에?”
이게 무슨 논리람. 비타 오백 주면서 카톡 하겠다는 거는.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종 잡을 수 없는 오빠다.
“뭐야 이 새끼는. 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찌?”
“에?”
“흐흫. 아니야. 너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 놀리구 싶넹. 미안해. 이건 그냥 매점 갔는데 너 생각나서 산거고, 카톡은 원래 하려고 했거든. 나 너랑 친해지고 싶거든.”
“저랑요? 그래요, 그럼.”
“웅, 너랑. 내 공을 그렇게. 멋지게. 이마로 받은 여자는 네가 처음이거든.”
“네?”
“하하핳. 방금 눈 똥그랗게 뜬 거 봐. 이러니까 내가 자꾸 이상한 말만 하게 되지. 아, 토끼 가탱.”
“방금 건 진짜 이상했어요. 일본 만화 주인공이 하는 말 같았어요.”
“오 진짜? 나 만화보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이건 진짜에요?”
“웅. 진짜야. 하하핳. 이제 내 말 못 믿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함께 있으면 주변 공기까지 즐거워지는 사람이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분명 짜증이 엄청 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저 대화를 몇 번 나누기만 했는데도 기분이 막 좋아졌다.
여러모로 신기해 무튼.
그 이후로 김종현은 며칠 동안 계속 우리 반을 찾아왔다. 비타 오백을 또 사 오기도 하고, 그냥 오기도 했다. 쉬는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은 매점을 같이 가기도 했다. 카톡도 시작했다. 카톡에서의 말투도 자기 말투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귀여운 이모티콘을 많이 쓰기도 했다. 점점 일상을 공유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남을 어색하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갔다. 시험기간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날씨는 점점 더워졌고, 날짜는 6월 중반이었다가 어느새 후반을 바라봤다.
황민현과는 여전히 등하교를 함께 했고, 종현 오빠와는 조금 더 친해졌다.
시험 기간이 되어서 모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우연히 카톡으로 물어봤는데, 오빠는 내가 모르는 걸 자세히도, 아주 잘 설명해줬다. 그래서 자꾸만 물어봤다.
-영채야 우리 프듀카페 가쟈! 너 단 거 좋아한다며ㅎㅎ
-프듀카페요? 거기가 어딘데요?
-후문 앞 사거리 쪽에 있는 데인데 거기 초코 빙수 완전 맛있대!!
-아 거기 저도 들어봤어요.
-거기서 내가 너 모르는 거 다 알려줄게~ 시험도 거의 다가왔는데 모르는 거 많을 거 아니야, 그치?
-오 그래요 그럼. 언제 갈까요, 그럼?
-내일 모레 시간 돼? 나 내일은 학생회거등.
-그럼 그 때 학교 끝나고 가요. 저도 그 날 시간 돼요.
-오 그래? 아싸! 그럼 그 때 보자 하핳. 얼릉 자~~
-네, 오빠도 굿밤!
-웅웅 너도 굿잠!
굿잠이라니, 김종현다웠다. 카톡을 하는데도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말투도, 하는 행동도 나보다 오빠인게 분명한데 뭔가 동생같이 귀여웠다. 그러니까 애기 같았다는 거다.
흠흠. 무튼 나랑 이렇게 빨리 친해진 것도 신기하고, 사실 처음부터 생각해봐도 신기한 인연이었다.
굿밤에 굿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밤이었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오보이입니다! 5편도 빠르게 가지고 왔어요ㅎㅎ 거의 하루에 한 편씩 올리고 있는데 제가 요즘 너무나도 한가해서.. 오늘까지가 제가 너무 한가한 날이에요! 앞으로는 연재 주기 텀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ㅠ,ㅠ 작명에 소질이 없어서 프듀 카페..ㅎ 그리고 친구로 나오는 수정이는 제가 많이 좋아해서,, 수정이의 친구로 나오는 옹성옹성도 제가 좋아해서,, 하핳 혹시 이번 편 말고 다음 글이나 단편에서 만나고 싶은 주인공이 있으신가여~~~?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그럼 이만 총총.. |
암호닉 |
오레오 뿜뿜이 짱요 돼지바 센터 황제펭귄 시릿 포카리 다녜리 아몬드 마이쮸 0713 뿍뿍 1004 0215 과자 해솔 뉴동인생배팅 묵 멍귤 샤랑 저번에 과자님 암호닉을 제가 빠뜨렸어요..흑 죄송해요ㅠㅠㅠ 혹시 암호닉 신청하셨는데 안 들어가 있으면 댓글 남겨주세용.. 제가 놓쳤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