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 루한의 반 아이들과 축구경기를 하기로 해서 체육복을 얼른 갈아입고 나가고자 교실로 다급하게 뛰어들어 온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제가 들었어도 꽤나 요란했던 소리였었는데 행여 자신 때문에 민석이 깨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오범은 가지런히 감긴 민석의 눈 앞에 손을 휘휘 저어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 민석이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정말인지 곤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다행이었다.
오범이 민석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 손을 뻗어 얼굴 근처로 가져다 댔다. 햇살이 투명한 창문을 여과없이 가로지르다 오범의 손에 턱, 막혔다. 짙은 그림자가 민석의 얼굴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살짝 찌푸려져 있던 민석의 미간이 거짓말처럼 펴졌다. 초여름이라도, 여름은 여름인지 쉼 없이 내리쬐는 열기가 불편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오범이 작게 웃었다. 그런 주제에 더운 창가 자리에서 잘도 잔단 말이지. 가만히 민석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 …예쁘네. "
가만히 있어도 붉은 빛의 입술이라던가. 답지 않게 긴 속눈썹이라던가. 올망졸망 귀여운 코라던가. 자꾸 시선을 끄는 생김새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 같은 건… 나만 봤으면 좋겠는데. 지금도 충분히 마음 졸여 죽겠는데, 경쟁자까지 생기는 건 아무래도 곤란하다.
햇빛이 그새 왼쪽으로 움직였는지 민석의 턱 끝이 빛을 받아 그렇지 않아도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오범이 양손을 조금 더 밑으로 내렸다. 부채질을 하면 깰까봐서 햇빛을 막아주는 걸로라도 만족해야했다. 마음 같아서는 땀에 흐트러진 민석의 앞머리를 쓸어넘기고 잡티 없는 이마에다 찐하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데…. 오범이 대신 민석을 보며 양껏 웃어보였다. 아직 혼자 연애중인거니까 나중에 천천히 해도 괜찮겠지, 뭐.
선선히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취한건지 오범은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다른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냥 바보처럼 계속 햇빛에 따라 손만 움직였다. 다음 시간은 체육시간이라 운동장에 나가서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거나. 한참이나 올리고 있던 팔이 아프다는 그런 생각같은 건, 정말이지 하나도.
* * *
오범이 1층 중앙현관 계단 밑에서 신발을 갈아신으며 우산을 만지작거렸다. 아침부터 공기가 눅눅하다 했더니 학교가 끝날때쯤 기어코 비가 내렸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아침부터 우산 가져가라고 닦달하던 엄마가 고마워지려던 찰나에 우산이 없는지 자신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다급하게 종종거리고 있는 민석이 보였다. 잔뜩 울상을 짓는 것이 비를 맞는게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봤으나 대답이 영 신통치 않았는지 한숨을 포옥, 내쉬는 것이 여간 귀여운게 아니었다. 오범이 얼굴에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다시 굳혔다. 옆에서 이상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예흥을 먼저 보내버렸다. 손 끝에 걸린 우산이 어색했다. 애꿎은 바닥만 실내화 코 끝으로 계속 걷어찼다.
자신의 우산을 민석에게 주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민석에게 우산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직후였으나 그것을 주기까지는 장장 10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였다. 나오는 애들도 점점 뜸해지다보니 차라리 비를 맞고 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지 민석이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가방을 머리에 이는 것을 보자마자 덩달아 '어어?'하며 학교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려는 민석을 붙잡았다.
" 어? …오범? " " 아, 응. 안녕. " '나 왜 잡았어?' 라고 직접 묻지는 않았으나 저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쑥쓰럽기도 하고 민망한 마음에 손에 들린 우산을 덜컥, 민석에게 내밀었다. 어색한 적막이 빗소리 사이로 파고 들었다. 민석이 오범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여전히 우산은 받지 않은 채였다. 오범이 결국은 민석의 한 쪽 손을 잡아 그 위에 우산을 올려놓고 쥐어주었다. 바다처럼 푸른 빛의 우산이 민석의 손에서 넘실거렸다. 민석이 자신의 손에 들린 우산을 쳐다봤다. 아무런 말도 없었다.
" 나보고 이거… 쓰고 가라고? "
" 어. …너 써라. "
민석이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오범이 슬쩍 슬쩍 민석의 눈치를 살폈다. 아예 남남도 아니고 반에서는 나름 친하다 싶을 정도로 얘기도 많이 하는데 이상하게 교실 밖에서는 말이 뚝 끊겼다. 오범이 답답함에 뒷머리를 잔뜩 헝클였다.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비가 오니까 감성적으로 사람이 바뀌는 것 마냥 민석에게 금방이라도 좋아한다고 말할 것 같아 입술을 힘주어 깨물었다.
" 그러니까, 이걸 왜…. 왜 나한테 줘? "
" 어? "
" 비가 이렇게 오는데… 너는 어쩌고, 이걸… 이걸 나한테 주는데? "
아. 결국 입술이 터졌는지 입 안에 비릿한 피맛이 가득찼다. 넘쳐 흐를듯 요동치던 가슴께가 잔잔했다. 오히려 구름이 낀듯 먹먹해졌다. 네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도무지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 너는 표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같은 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오범이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들어올렸다. 내가, 내가 너한테.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좋아한다는 말 같은 건, 도무지.
" 너 감기 걸릴까봐.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뭐냐면! "
" …알았어. "
" 응? 뭐를? "
" … 나 걱정되서 그런거 아니야? "
아, 응! 오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변명만 주절주절 내뱉으며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나 스스로 틈을 벌이는 일을 할때마다 조금 속상했다. 갑자기 명치 부근이 꽉 막힌 듯, 숨이 턱턱 차올랐다. 꾸역꾸역 새어나오는 설움을 한가득 삼키고서 겨우 민석에게 웃어보였다. 그 사이에 더욱 거세진 빗소리 덕분에 귓가가 얼얼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입 밖으로 튀어나갈 낯간지러운 고백 멘트들이 혀 끝에서 달랑거렸다.
" 바보. "
민석이 우산을 펼쳐들고는 현관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우산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오범이 세찬 빗속을 달려나갈 준비를 하려고 가방을 고쳐메는데 민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맞닿았다. 민석이 쓰고 있는 우산을 흔들어보였다. 오범이 그런 민석을 멍한 표정을 했다. 조금은 떨려보이는 것도 같고. 민석이 빗속에서 옅게 웃었다.
" 우산. …같이 쓰고 가자고. "
* * * * *
사실 엑소판 소나기를 쓰고싶었는데ㅋㅋㅋㅋㅋㅋ
이런 똥글이라니... 클민 학원물에 기대하고 온 징어들 미안해요☆★
큰 덩치로 짝사랑하는 구희수는 제가 루팡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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