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안녕해. 너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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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나신이 보였다. 그것은 에메랄드 빛의 보존액으로 가득찬 실험관 속에서 한껏 너울거렸다. 온 몸 곳곳에 연결된 수많은 전선들. 전설들은 한데 모아져 밖으로 통했고 역시 웅장하게 버티고 선 기계들로 이어졌다. 종인은 그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J, 당신은 누구죠?
어쩌다 한 번씩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아름다운거죠? 하얀 나신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아름답게 흔들렸다. 복잡한 기계들이 반짝거리며 잔뜩 화면을 띄웠다.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은 기계음들이 규칙적으로 흘러나왔다. 기계음에 맞춰서 발을 까딱거리며 종인은 생각했다.
J, 당신은 천사인가요?
곱게 감긴 눈은 뜨일 줄을 몰랐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종인은 틈만 나면 그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신성한 곳이야, 위험한 곳이야. 매번 관리자 세훈이 귀찮은 듯 손을 내저으며 종인을 다그쳤다. 그래도 종인은 굴하지 않았다.
J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J에게 걸음했다. 아무리 내쫓고 꾸짖어도 그것은 일종의 '귀화본능'과 같이 작용했다. 몸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백현에게 혼이 난 다음이면 종인은 늘 이곳으로 향했다. 그의 새하얀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어지러운 감정들이 잔잔히 가라앉았다. 신기했다. 그리고 매번 종인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J, 나는 당신이 궁금해요.
*
찬열이 굵은 주삿바늘을 종인의 팔에 내리꽂았다. 근육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성 물질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종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태어날때부터 겪은 일인데도 그랬다. 찬열은 종인의 팔에서 꽤 많은 양의 혈액을 체취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의 양이었다. 종인은 혈액을 분리하며 이리저리 분주한 찬열을 바라보았다.
좋은 사람일까.
종인은 그럴꺼라고 지레 짐작했다. 여지껏 찬열은 화 한 번 낸 적 없이 기꺼이 종인의 뒤치닥거리를 맡아왔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신체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매일 아침 손수 도시락까지 만들어 쥐어보내는 것은 꽤나 고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찬열은 늘 웃는 모습이었다.
찬열은 좋은 사람이야, 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종인의 머리 한 구석을 비집고 검은 생각이 껴들었다. 어쩌면 찬열은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사실 의도치 않게 찬열의 손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나이였다. 어떤 합성 약물을 0.5% 증가시켜서 3호에게 재투입. 3호가 죽으면 0.3% 다시 증가시켜서 이번에는 6호한테.
그래, 다들 그렇게 죽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29호는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개조형 인간이라는 타이틀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 보너스로 영양주사 한 방 놔줄게, 임마. 공부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냐? 애가 시들시들하네. "
종인은 실험 내내 멍하게 있었다. 워낙 자신의 신체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묻고 따지기를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거 맞으면 뭐가 좋은데요? 으레 들려오던 당찬 물음이 없었다. 찬열이 종인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종인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찬열은 종인의 눈 앞에 손을 휘휘 저어보였다.
" 어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종인이 찬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찬열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종인은 여전히 멍했다. 오늘 상태는 어떤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은 어떤지. 다음 실험까지 유의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채 종인은 실험으로 인해 벗어두었던 제 옷가지들을 챙겨들었다. 찬열이 의뭉스러움에 제 턱 끝을 문질렀다.
" 형. "
" 어, 왜? "
종인이 남색 맨투맨을 꿰어입으려다 멈칫했다.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한 제 팔뚝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물어야할지 모르겠다. 종인은 찬열을 부른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찬열은 종인의 질문을 기다리며 종인의 차트를 눈으로 훑었다. 오늘 진행한 검사의 결과 역시 이 차트 안에 있었다. 종인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찬열은 여전히 차트에 시선을 주었다. 종인의 신체 변화가 급격한 상승 그래프를 띄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찬열이 버릇처럼 손가락 끝으로 차트를 톡톡 두드렸다.
" 나는, 인간이에요? "
찬열이 두어장 넘겨보던 차트를 천천히 덮었다. 한 쪽 눈썹을 치켜든 찬열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종인은 그런 찬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종인은 답답해졌다. 그리고 조급해졌다. 자신이 J만큼 대단한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인이 대답없이 눈만 굴리고 선 찬열에게 재차 물었다. 나는, 뭐에요?
" 개조형 인간. "
찬열이 입을 열었다. 종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종인의 말에 찬열은 대답을 망설였다. 갑자기 종인이 왜 이런 것을 묻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찬열의 대답을 기다리며 긴장감에 파르르 떨리는 종인의 손끝을 본 찬열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백현이 예상한대로인가. 드디어 종인이 '불안정' 상태에 도달한건가?
" 특수 변형된 DNA로 너도 모르는 사이에 지속적인 신체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무기형 개조인간. "
" 아. "
종인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찬열은 자신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인간을 배양하고 살아있는 내내 관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본인에게 그것을 자각시키다니. 찬열에 쓰게 웃으며 코 끝에 걸쳐진 불테안경을 치켜올렸다. 의외로 종인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종인이 찬열을 직시했다. 지속적인 발전. 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종인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렇다면 J는? 긴장했는지 종인의 손에서 땀이 베어나왔다. 폐부 깊숙히 들어찬 공기가 답답해졌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 J에 대해 알고 있어요? "
" 뭐? "
예상치 못한 질문에 찬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종인의 눈에 진지함에 서려있었다. J.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었다. 찬열이 마른 세수를 했다. 거칠게 부르튼 입술이 느껴졌다. 종인이 J에 대해 물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무엇부터 이야기해줘야 할까. J가 J이기 이전의 이야기들부터?
" 형..? "
찬열이 고심하며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종인의 손등에 난 작은 생채기가 보였다. 아깐 없었는데. 찬열이 종인의 손을 낚아채 올렸다. 마치 오래된 흉터같았다.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가 아니라, 몸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듯한. 찬열은 숨이 턱 막혔다.
종인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완벽해야할 종인의 신체리듬이 흐트러졌다. 종인이 간혈적으로 내뱉는 호흡이 느껴졌다. 이건 뭐, 발뺌할 수도 없이 딱 들어맞네. 찬열이 한숨을 내쉬었다. 종인은 완벽하게 불안정 상태에 도달했다. 지금 종인에게는 J가 아니라 백현이 필요했다.
" 그건 변백현한테 물어보는게 빠를텐데. "
곧바로 찬열은 백현에게 연락을 취했다. 콜Call을 받자마자 백현은 실험실Lab-12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평소에 자부심을 가지던 하얀 가운에 두 팔을 다 꾀지도 못한 채였다. 백현이 실험실 문을 열어제꼈다.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종인이 보였다. 찬열은 난감한 표정으로 백현을 맞이했다.
" 박찬열, 김종인 상태가 어떤데. "
찬열이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없이 종인이 앉은 방향으로 고개짓을 했다. 백현이 종인에게로 향했다. 가장 완벽에 가깝게 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인이 불안정 상태라니. 백현은 찬열의 손에 든 차트를 뺏어들었다. 놀라움으로 인해 백현의 두 눈이 커졌다. 정작 당사자인 종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개조형 인간이 불안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그것은 곧바로 폐기처분됨을 의미했다. 애초에 개조형 인간이라는 목적 자체가 그랬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인간들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더 강한 것을 원했다. 그래서 소수의 지식인들은 극빈부층으로부터 신생아를 사들이고 곧바로 DNA변형 실험을 착수했다. 실패하면 가차없이 버려졌다. 물론, 실패시 살아남는다는 가정하에서였다. 그리고 백현과 찬열은 그들에 의해 강제 고용된 국가 소속 연구원이었다. 인체실험을 한사코 거부하던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불안정 상태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신체적인 성장이 급격하게 이루어져 조직이 어긋나는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나친 신체적 성장으로 인해 근육이 서서히 파열되는 경우. 그리고 지금의 종인은 후자에 해당했다. 사실 후자라면 어느정도 생존의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지금 속도로 봤을때 약물을 투여하지 않는다면 종인이 살 수 있는 기간은 3달 정도였다. 그러나 파열을 늦추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한다면 2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로 몇 년을 더 버티느냐 하는 것은 종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의 파괴 직전의 신체가 독한 약물 작용을 얼마나 잘 견뎌내는지. 그러니까.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 김종인. 내일부터 매일 실험실로 나와. "
종인이 말 없는 찬열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부루퉁한 시선에 찬열은 웃음이 나왔다. J에 대해 어서 물어봐라, 뭐 그런건가. 찬열이 한숨을 쉬며 나가려는 백현을 불러세웠다. 할 일이 태산 같은 백현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뒤돌아봤다. 백현아. 아무래도 '프로젝트 I'는 김종인이 해야될 것 같다. 찬열의 입에서 낮은 웃음이 흘렀다.
" 박찬열, 그거 기밀사항이야. 더이상 발설하지마. "
차갑게 내뱉은 백현의 말에 찬열의 얼굴도 살짝 굳었다. 백현은 단호했다. 모질게 찬열을 막아냈으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종인을 위해서도, 찬열을 위해서도 그랬다. 종인은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찬열이 할 말이 있는 듯 백현을 계속 바라보았다. 백현이 초조함에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엄지손톱은 이미 너덜거렸다. 백현은 이미 지쳐있었다. 그 '프로젝트 I' 때문에 고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 더이상 숨겨서 뭘 어쩔껀데. "
" 그래도 종인이는! "
" 나라고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래도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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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나신이 보였다. 그것은 에메랄드 빛의 보존액으로 가득찬 실험관 속에서 한껏 너울거렸다. 온 몸 곳곳에 연결된 수많은 전선들. 전설들은 한데 모아져 밖으로 통했고 역시 웅장하게 버티고 선 기계들로 이어졌다. 종인은 그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J, 당신은 누구죠?
어쩌다 한 번씩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아름다운거죠? 하얀 나신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아름답게 흔들렸다. 복잡한 기계들이 반짝거리며 잔뜩 화면을 띄웠다.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은 기계음들이 규칙적으로 흘러나왔다. 기계음에 맞춰서 발을 까딱거리며 종인은 생각했다.
J, 당신은 천사인가요?
곱게 감긴 눈은 뜨일 줄을 몰랐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종인은 틈만 나면 그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신성한 곳이야, 위험한 곳이야. 매번 관리자 세훈이 귀찮은 듯 손을 내저으며 종인을 다그쳤다. 그래도 종인은 굴하지 않았다.
J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J에게 걸음했다. 아무리 내쫓고 꾸짖어도 그것은 일종의 '귀화본능'과 같이 작용했다. 몸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백현에게 혼이 난 다음이면 종인은 늘 이곳으로 향했다. 그의 새하얀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어지러운 감정들이 잔잔히 가라앉았다. 신기했다. 그리고 매번 종인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J, 나는 당신이 궁금해요.
*
찬열이 굵은 주삿바늘을 종인의 팔에 내리꽂았다. 근육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성 물질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종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태어날때부터 겪은 일인데도 그랬다. 찬열은 종인의 팔에서 꽤 많은 양의 혈액을 체취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의 양이었다. 종인은 혈액을 분리하며 이리저리 분주한 찬열을 바라보았다.
좋은 사람일까.
종인은 그럴꺼라고 지레 짐작했다. 여지껏 찬열은 화 한 번 낸 적 없이 기꺼이 종인의 뒤치닥거리를 맡아왔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신체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매일 아침 손수 도시락까지 만들어 쥐어보내는 것은 꽤나 고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찬열은 늘 웃는 모습이었다.
찬열은 좋은 사람이야, 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종인의 머리 한 구석을 비집고 검은 생각이 껴들었다. 어쩌면 찬열은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사실 의도치 않게 찬열의 손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나이였다. 어떤 합성 약물을 0.5% 증가시켜서 3호에게 재투입. 3호가 죽으면 0.3% 다시 증가시켜서 이번에는 6호한테.
그래, 다들 그렇게 죽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29호는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개조형 인간이라는 타이틀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 보너스로 영양주사 한 방 놔줄게, 임마. 공부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냐? 애가 시들시들하네. "
종인은 실험 내내 멍하게 있었다. 워낙 자신의 신체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묻고 따지기를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거 맞으면 뭐가 좋은데요? 으레 들려오던 당찬 물음이 없었다. 찬열이 종인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종인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찬열은 종인의 눈 앞에 손을 휘휘 저어보였다.
" 어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종인이 찬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찬열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종인은 여전히 멍했다. 오늘 상태는 어떤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은 어떤지. 다음 실험까지 유의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채 종인은 실험으로 인해 벗어두었던 제 옷가지들을 챙겨들었다. 찬열이 의뭉스러움에 제 턱 끝을 문질렀다.
" 형. "
" 어, 왜? "
종인이 남색 맨투맨을 꿰어입으려다 멈칫했다.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한 제 팔뚝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물어야할지 모르겠다. 종인은 찬열을 부른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찬열은 종인의 질문을 기다리며 종인의 차트를 눈으로 훑었다. 오늘 진행한 검사의 결과 역시 이 차트 안에 있었다. 종인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찬열은 여전히 차트에 시선을 주었다. 종인의 신체 변화가 급격한 상승 그래프를 띄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찬열이 버릇처럼 손가락 끝으로 차트를 톡톡 두드렸다.
" 나는, 인간이에요? "
찬열이 두어장 넘겨보던 차트를 천천히 덮었다. 한 쪽 눈썹을 치켜든 찬열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종인은 그런 찬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종인은 답답해졌다. 그리고 조급해졌다. 자신이 J만큼 대단한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인이 대답없이 눈만 굴리고 선 찬열에게 재차 물었다. 나는, 뭐에요?
" 개조형 인간. "
찬열이 입을 열었다. 종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종인의 말에 찬열은 대답을 망설였다. 갑자기 종인이 왜 이런 것을 묻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찬열의 대답을 기다리며 긴장감에 파르르 떨리는 종인의 손끝을 본 찬열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백현이 예상한대로인가. 드디어 종인이 '불안정' 상태에 도달한건가?
" 특수 변형된 DNA로 너도 모르는 사이에 지속적인 신체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무기형 개조인간. "
" 아. "
종인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찬열은 자신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인간을 배양하고 살아있는 내내 관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본인에게 그것을 자각시키다니. 찬열에 쓰게 웃으며 코 끝에 걸쳐진 불테안경을 치켜올렸다. 의외로 종인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종인이 찬열을 직시했다. 지속적인 발전. 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종인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렇다면 J는? 긴장했는지 종인의 손에서 땀이 베어나왔다. 폐부 깊숙히 들어찬 공기가 답답해졌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 J에 대해 알고 있어요? "
" 뭐? "
예상치 못한 질문에 찬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종인의 눈에 진지함에 서려있었다. J.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었다. 찬열이 마른 세수를 했다. 거칠게 부르튼 입술이 느껴졌다. 종인이 J에 대해 물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무엇부터 이야기해줘야 할까. J가 J이기 이전의 이야기들부터?
" 형..? "
찬열이 고심하며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종인의 손등에 난 작은 생채기가 보였다. 아깐 없었는데. 찬열이 종인의 손을 낚아채 올렸다. 마치 오래된 흉터같았다.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가 아니라, 몸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듯한. 찬열은 숨이 턱 막혔다.
종인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완벽해야할 종인의 신체리듬이 흐트러졌다. 종인이 간혈적으로 내뱉는 호흡이 느껴졌다. 이건 뭐, 발뺌할 수도 없이 딱 들어맞네. 찬열이 한숨을 내쉬었다. 종인은 완벽하게 불안정 상태에 도달했다. 지금 종인에게는 J가 아니라 백현이 필요했다.
" 그건 변백현한테 물어보는게 빠를텐데. "
곧바로 찬열은 백현에게 연락을 취했다. 콜Call을 받자마자 백현은 실험실Lab-12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평소에 자부심을 가지던 하얀 가운에 두 팔을 다 꾀지도 못한 채였다. 백현이 실험실 문을 열어제꼈다.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종인이 보였다. 찬열은 난감한 표정으로 백현을 맞이했다.
" 박찬열, 김종인 상태가 어떤데. "
찬열이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없이 종인이 앉은 방향으로 고개짓을 했다. 백현이 종인에게로 향했다. 가장 완벽에 가깝게 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인이 불안정 상태라니. 백현은 찬열의 손에 든 차트를 뺏어들었다. 놀라움으로 인해 백현의 두 눈이 커졌다. 정작 당사자인 종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개조형 인간이 불안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그것은 곧바로 폐기처분됨을 의미했다. 애초에 개조형 인간이라는 목적 자체가 그랬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인간들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더 강한 것을 원했다. 그래서 소수의 지식인들은 극빈부층으로부터 신생아를 사들이고 곧바로 DNA변형 실험을 착수했다. 실패하면 가차없이 버려졌다. 물론, 실패시 살아남는다는 가정하에서였다. 그리고 백현과 찬열은 그들에 의해 강제 고용된 국가 소속 연구원이었다. 인체실험을 한사코 거부하던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불안정 상태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신체적인 성장이 급격하게 이루어져 조직이 어긋나는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나친 신체적 성장으로 인해 근육이 서서히 파열되는 경우. 그리고 지금의 종인은 후자에 해당했다. 사실 후자라면 어느정도 생존의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지금 속도로 봤을때 약물을 투여하지 않는다면 종인이 살 수 있는 기간은 3달 정도였다. 그러나 파열을 늦추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한다면 2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로 몇 년을 더 버티느냐 하는 것은 종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의 파괴 직전의 신체가 독한 약물 작용을 얼마나 잘 견뎌내는지. 그러니까.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 김종인. 내일부터 매일 실험실로 나와. "
종인이 말 없는 찬열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부루퉁한 시선에 찬열은 웃음이 나왔다. J에 대해 어서 물어봐라, 뭐 그런건가. 찬열이 한숨을 쉬며 나가려는 백현을 불러세웠다. 할 일이 태산 같은 백현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뒤돌아봤다. 백현아. 아무래도 '프로젝트 I'는 김종인이 해야될 것 같다. 찬열의 입에서 낮은 웃음이 흘렀다.
" 박찬열, 그거 기밀사항이야. 더이상 발설하지마. "
차갑게 내뱉은 백현의 말에 찬열의 얼굴도 살짝 굳었다. 백현은 단호했다. 모질게 찬열을 막아냈으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종인을 위해서도, 찬열을 위해서도 그랬다. 종인은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찬열이 할 말이 있는 듯 백현을 계속 바라보았다. 백현이 초조함에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엄지손톱은 이미 너덜거렸다. 백현은 이미 지쳐있었다. 그 '프로젝트 I' 때문에 고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 더이상 숨겨서 뭘 어쩔껀데. "
" 그래도 종인이는! "
" 나라고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래도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
백현이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에 의자를 하나 빼어내 앉았다. 다리가 풀려서 후들거리기 직전이었다. 프로젝트 I는 무엇인지, 지금 상황이 어떻길래 자신의 이름이 자꾸 거론되는지. 종인은 궁금했다.
*
안녕하세요 셜록입니다!
제 최애컾인 카준이에요...♥,♥ 눈치채셨겠지만 SF물입니다~
그리고 찬백라인 없어요ㅠㅠ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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