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로맨스
크리스 × 레이
눈이 내리는 겨울 날 자그마한 박스 안에 담요 하나 두르고 커다란 귀를 축 늘어트린 토끼 한 마리. 그리고 박스 한 쪽에 매직으로 써 있는 [아무나 주워가세요.] 그 문구를 쳐다보던 크리스가 커다란 손을 뻗어 눈만큼이나 하얀 토끼를 품에 안았다.
*
붉은 눈동자가 크리스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훑었다. 그러다 짧게 한 걸음. 목도리를 푸르던 크리스가 토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안녕, 아가야?”
실내에 들어와도 차가운 크리스의 손 위에서 짧게 떨던 토끼가 귀를 움찔거렸다. 툭 튀어나온 이빨은 크리스의 손바닥을 두 번 콕콕 찌른다. 간지럽다는 듯 짧게 미소 지은 크리스는 토끼를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박스 한 쪽에 쓰인 토끼의 이름은 레이였다.
“레이”
크리스의 목소리에 큰 귀를 움찔하던 레이가 그대로 뒤를 돌아 가볍게 깡충 뛰었다. 레이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가볍게 친 크리스가 붉은 피가 담긴 팩을 이로 뜯어 쪽 빨아먹었다. 레이의 눈만큼이나 크리스의 두 눈도 붉게 올랐다.
01. 이상한 주인, 이상한 토끼
커다란 창에는 검은 블라인드 온 햇살을 머금은 채 쳐졌다. 레이는 침대 위에 엎어져서는 하얀 앞발로 크리스의 머리를 통통 내려쳤다. 배고파. 사일이나 굶은 레이는 아무런 미동도 없는 크리스의 얼굴을 구경했다. 잘생기긴 했네. 근데 언제까지 자는 거야. 두 귀를 축 늘어트린 레이가 침대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이리저리 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갈색 톤의 집안은 온 창에 검은 블라인드를 내려놔서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보니 침대가 있던 크리스의 방도 조금은 어두운 느낌이 강했다. 간간히 하얀색이 섞여 있는 가구 덕에 그나마 음침한 느낌은 조금 피했지만. 레이는 그 짧은 다리로 총총 이 방, 저 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침실과 화장실을 포함해서 방은 네 개. 하나는 드레스 룸. 또 하나는 빨간 액체를 가득 담은 병이 진열 된 방. 화장실은 모노톤. 깔끔하니 보기엔 좋은 집이였다.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서 그렇지. 레이는 자신의 털색과 비슷한 하얀 러그 위에 벌러덩 배를 들어내고 누웠다. 갈색의 시계는 벌써 10시를 향해 가는데 주인은 뭐 하는 거야. 이번에도 잘 못 걸린 건 가. 저번 주인은 레이가 태어나서 무리를 떠나 처음으로 만난 주인이었다. 분홍색을 좋아하던 깍쟁이 아가씨. 온통 단 향이 나던 그 집에서 레이는 꼼짝없이 토끼인 척 하고 있어야 했다. 사실은 제가 사람과 토끼 사이인데요. 곧 있으면 사람으로 변할 수 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그 더운 여름 날 쫓겨나갈 것 아닌가. 레이와 그의 동족들은 더위에 약했다. 오죽하면 더운 여름날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모두가 겨울잠을 자듯 여름잠을 잤다. 물론 변이하는 동물 중에선 레이의 동족들만 그랬다.
“레이…?”
낮게 깔린 목소리에 레이가 깜짝 놀라 크리스를 쳐다봤다. 깼다! 레이는 깡충 뛰어가 크리스의 발등에 앞발을 가져다 올렸다. 자. 주인 이제 먹을 걸 내놔! 동물일 땐 말을 하지 못하는 레이가 배고픔에 낑낑 거렸다. 그런 레이를 한 손에 잡아챈 크리스가 입맛을 다시다가 레이를 거실 옆 주방의 식탁 위에 올려놨다. 냉장고를 뒤적거리던 크리스가 딸기를 발견하곤 대충 씻어 레이에게 쥐어줬다. 하품을 길게 뱉던 크리스는 어제처럼 팩을 뜯어 붉은 액체를 한 모금 마셨다.
어쩌면 레이는 이번에도 주인을 잘 못 선택한 게 틀림없다. 크리스는 뱀파이어였으니까. 그것도 300년 조금 못 산 뱀파이어. 늙다리 뱀파이어 하나 잘 만나서 룰루랄라 놀고먹는 그런 뱀파이어. 할 줄 아는 건 쥐뿔도 없이 늙고 돈 많고 외로움에 허덕이던 뱀파이어 꼬셔서 그 뱀파이어 유산을 잘 빼돌려 먹고 놀기 바쁜 뱀파이어. 송곳니를 혀로 한 번 핥은 크리스가 빈껍데기만 남은 팩을 휙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변이?”
열심히 딸기를 갉아먹던 레이는 온 털이 쭈뼛 서는 걸 느끼며 딸기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레이는 아직 발정기가 오지 않아서 사람으로 변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웬만해선 토끼로 레이를 인식했다. 벌벌 떠는 레이를 한 손에 잡은 크리스가 그 잘생긴 얼굴로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안녕. 난 크리스”
크리스의 송곳니를 바라본 레이는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속으로 열심히 엄마를 찾았던 레이는 두 귀를 축 늘어트리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잡아먹지 말아주세요. 이젠 눈물까지 흘릴 기세인 레이를 바라보던 크리스가 커다란 손을 들어 레이를 쓰다듬었다.
“나 동물 안 잡아먹어. 특히 변이는 더 안 잡아먹고. 맛없잖아.”
진심인거 같은 크리스의 말에 레이의 두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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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크리스와 변이족인 레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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