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다 해두었으니 씻고 나오너라"
그 말을 끝으로 여러명의 시녀들이 내 교복을 벗기고 깨끗이 단장을 해 주었다.
공주들이 머무를 법한 궁에서 한옥마을 주변에서 구경만 해왔던 비단 한복을 입은 내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으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은 이러한 나의 모든 생각들을 삼켜버렸다.
이 곳은 궁이다. 한 나라의 왕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수천명의 신하들이 나라의 정사를 돌보는 그런 장소. 그리고 나를 이 곳으로 데려온 자는 박지훈 이 나라의 왕자 중 한사람이며 무사처럼 보이던 자는 그 누구도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박지훈이라는 자가 마지막 가는 길에 이 것이라도 알고가라는 듯 무심하게 던져준 그 정보가 오히려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네가 왕족들만 오갈 수 있는 사냥터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는 처형 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궁에서 살게되겠지. 선택은 나와 형제들이 함께 할것이나 죽음만큼은 네가 선택할 수 있으니 죽고싶다면 지금이라도 말하거라."
아니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직도 뭐가뭔지 모르는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죽고싶냐고 물어보면 세상 어느 사람이 네~ 죽여주십시오~ 라고 하겠냔 말이다.
일단 박지훈과 키 큰 사내를 보내고 난 후 죽음의 심문 만을 앞두고 있는 나는 지금 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머리를 빗어주는 시녀들의 바쁜 손놀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죽음만큼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박지훈과 함께 다니던 그 무사인데... 처음에는 날 그렇게 죽일듯 노려보더니 살려달라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애원한 이후로는 뭐랄까 생각에 잠긴듯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보는 것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기도 하고 만약 내가 살게된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서 이 호기심을 풀어야겠다 다짐을 하였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나오너라."
문 밖에서 박지훈의 목소리가 들렸고 ....
나는 생과사 그 갈림길 앞으로 스스로 걸어가게 되었다.
"모든 질문에는 그저 꾸밈없이 아는대로 대답하고 또 눈물은 흘리지 말고 절대 괴상한 단어는 입밖으로 내지 말아라 나는 네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내 눈높이에 맞춰 선 박지훈의 진심어린 눈빛에 긴장이 풀리려던 찰나 생사의 문이 열렸다.
"그래 너구나 이름은 들었다. 앉아라"
열린 문 안에는 11명의 남자가 앉아있었고 내 직감이 말해주었다. 무사를 제외한 저 10명의 남자가 박지훈의 형제 이 나라의 왕자들이라고
"어? 생각보다 예쁜데? 너 근데 어떻게 그 숲 속에 들어간거야? 나보러 왔어? 아님 뭐 하늘에서 떨어졌나? 너 선녀니?"
"조용히...하거라... 그래 우선 어떻게 그 숲에 들어가게 되었느냐"
꽃단장을 받으며 시녀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덕분에 누가 누군지 대충 구분할 수 있었다.
근엄하게 형제들을 대표해서 나에게 질문을 하고있는 남자 시녀들 말대로 차갑지만 또 따뜻한 외모를 가진 저 자가 황민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왕을 대신해 왕위를 계승하게 될 자라고 들었다.
또 왕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활발하다는 그 말이 사실임을 방금 본인이 증명해버린 자가 김재환.
"빨리 대답하는 것이 네 생명의 끈을 이어갈 방도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찰나 황민현은 차갑게 나를 재촉했다.
"사실 제가요... 진짜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고 그냥 죽은 줄 알았는데 눈떠보니까 그 숲이었고 저는 거기가 어떤 숲인지도 몰랐어요...진짜로..."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말을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그저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인척 하기로 했다
"그럼 본가와 식구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냐"
"그냥 제 이름은 성이름이고요... 네...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근데 저 죽을만큼 잘못한건 없고요 그냥 ..."
말을 이어가다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벅차서 눈물이 왈칵 나오려던 찰나
'눈물은 흘리지 말고...나는 네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라고 무심히 말하던 박지훈이 생각나 피가날 정도로 입술을 깨불고 주먹을 꽉 움켜잡고 눈물을 참았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저 살려만 주시면 여기서 뭐든지 다 배워서 하다못해 청소부라도 할테니까요... 저 한번만 살려주세요... "
"그것은 네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잠시 나가있거라"
그렇게 문 밖으로 쫓겨나듯 나왔고 그들은 마치 도살장의 소처럼 나를 살릴지 말지에 대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자를 어떻게 믿고 살려줍니까 저 자가 거짓을 말하는지 알게 뭡니까'
그들이 하는말은 잔인하게도 문 밖의 나에게 고스란히 들려왔다.
'저는 죽이는거 반대요 형님들 솔직히 우리끼리 재미있는 일도 없고 궁도 칙칙하고 말동무라도 하게 살려줍시다~ 저 쟤랑 친구하고 싶어요'
'죽여요.'
'저도 처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숲에서 나온 이상 처벌할 명목은 분명히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여인 때문에 이런 회의를 연다는 것 조차 이해가 안갑니다 저는'
'처음 입고 온 옷과 소지품을 살펴봐도 그렇고 머리 모양도 그렇고 이 나라 사람이랑은 매우 다르다는 것 쯤은 다들 눈치 채셨잖습니까 저는 저 여인이 궁금합니다. 일단은 살려 보는게 어떨까요?'
'죽여야하는 이유는 많지만 살려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죽여야지요'
"말씀 중에 송구하오나 제가 책임지고 저 여인의 기억 돌려놓고, 왕자님들에게 고하겠습니다. 우선 저 여인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왕자들의 열띤 토론을 문툼으로 들으며 얼굴이 붉어졌다 창백해졌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익숙한 목소리에 집중해보니 나를 죽이려던 그 무사가 나를 살려달라고 왕자들에게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소란스럽던 건물이 잠잠해져 내 심장이 뛰는 소리만이 일관되게 들려왔다.
내 기억을 돌려 놓겠다고? 내가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일관하면 저 자까지 위험에 빠질 것이 뻔한데 무슨 속셈인거지?
"그래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가 어찌 거절하겠나. 저 백지같은 여인을 일단 그대에게 맡길 터이니 말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 묻겠소"
"들어오너라"
사실 들어가나 마나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살 떨리게한 그들을 다시 보고싶지 않았다. 한가지 의문점은 그 무사라는 자가 한말에 왕자들이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동의하여 어쩌면 그는 그저 내가 생각하는 단순한 호위무사가 아닌가 하는 것인데 어찌됐던 이제 궁에 당분간 머물 것 같으니 물어 볼 것도 있고 그 자에 대한 내 호기심을 풀 기회가 생긴 것에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밖에서 다 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너를 더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너는 당분간 궁에서 지내며 저기 서 있는 저자와 모든 일과를 같이 하게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왕자들이 방문을 나갔고 그 방엔 나와 무사만이 남겨졌다. 사실 처음엔 왕자들의 외모가 모두 출중해서 놀라웠고 또 그런 그들이 날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에 속상하기도 했다. 이런 뒤숭숭한 내 마음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박지훈은 끝날 때 까지 내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방문을 박차고 나갔으며 다음 왕자들은 모두 내가 신기하다는 듯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빛이 보였으나 왕자들 체면 때문에 시크한척 도도한척 박지훈 뒤를 따라 나가는 것이 보였다.
"강다니엘"
"네?"
"강다니엘이라고 내이름"
궁에 들어와서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에 놀라기 이전에 그의 이름을 듣고 한참을 멍해있었다 강다니엘? 이 시대에 그런 이름이 존재한다고?
"이름이 강다니엘이요?"
"응. 다니엘이야 이상하지?"
"아니 이상한건 아닌데.... 좀 이상해요"
이름이 이상한건 아닌데 이 시대에 그런 이름은 이상하다는 말을 하려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말이 막 나왔다. 그의 말투가 갑작스레 부드러워 진 것도 한몫했으며 또 처음보는 다니엘의 웃는 모습에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할 새도 없이 말이 나와버렸다.
"나도 너랑 똑같아"
"네? 뭐가요?"
"트럭. 네가 그 말 했을 때 알았어 너도 나랑 똑같이 다른데서 온 애구나하고.."
찾았다... 내가 이 곳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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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ㅎㅎㅎ 우선 부족한 제 글이지만 찾아서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조금이라도 달린 댓글들 너무 힘이 되네요. 아직 1화라 분량도 적고 글 분위기도 어둡지만 갈수록 분량도 분위기도 함께 펴질테니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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