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세계관입니다. 원작을 모르셔도 상관 없으나 읽으신 분이 아마 더 이해하기 쉬우실 거에요.
단편 글로 가볍게 즐겨주세요.
그리핀도르의 미학 上
by. 달콤한 망개
나는 처음부터 많은 관심과 애정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넓고 얕은 대인 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대인 관계를 추구했으며 내가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누군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속히 말해 붙임성이 없는 그런 유형이었다. 워낙 말 수가 적다 보니 자연스레 첫인상만 보고 다가오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줄어들었고 오히려 나는 그 덕에 좀 더 편한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뭐, 그런 의미에서 슬리데린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기숙사였다. 필요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신경 쓰지 않지만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는 곳. '너와 나' 그리고 '타인과 우리'의 차이가 확고하다고나 할까. 7학년을 앞둔 이 시점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누구에게도 엮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순탄하게만 학교생활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 딱 그거 하나였다.
***
아침부터 연회장은 왠지 모르게 북적거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그런가. 어째 다들 붕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슬리데린 테이블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상한 척, 품위 있는 척 있어 보이는 척들은 온갖 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니까. 오늘따라 그리핀도르 못지않게 말이 많아진 아이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자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앞에 앉아있던 지은이가 미리 썰어둔 스테이크를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내밀었다.
"자, 먹어. 너 또 그냥 스프만 먹고 대충 떼울려 했지?"
눈치 빠른 기집애. 입술을 비죽 내밀고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접시를 바라보았다.
"나 원래 아침은 간단하게 먹는 거 알면서."
"어이구, 그러는 애가 어제 점심 저녁도 샐러드만 먹었냐?"
"……. "
"진짜 너 이러다 쓰러져.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단백질 부족하다 나오면 어떡하려 그래. 너 아프면 괜히 나만 우리 부모님한테 혼난다니까?"
그러니까 빨리 먹어- 툴툴거리는 말투에 스며들어있는 걱정에 결국 못 이기는 척 접시를 받아들였다. 딱히 고기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막 먹을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이지은한테 구박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깨작깨작 먹어대니까 니가 살이 안 찌는 거라고. 연한 육즙이 배어 나오는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곧 다가오는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별 시덥잖은 고민에 잠시간 빠졌다. 이제 슬슬 약혼자를 물색해야 하지 않느냐는 부모님의 걱정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 방학은 오랜만에 본가에서 보낼까 하는 생각이었다. 남은 고기를 꿀꺽 삼키고 다른 한 점을 집어 들려는데 그 순간, 우리와 마주 보고 있는 정반대 테이블에서 우레와 같은 큰 함성이 한차례 터져 나왔다. 얼마나 우렁차던지 잘 내려가던 고기가 다시 역류할 정도였다. 내가 쿨럭거리며 가슴을 연달아 두어 번 치자 쯧쯧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컵이 손에 쥐어졌다. 너는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냐 대체-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는 이지은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으며 멋쩍은 웃음만 실없이 흘러 보였다. 뭐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괜히 민망해서 후끈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나저나 쟤네 또 시작이다."
"응? 뭐가?"
"뭐긴 뭐야. 연회장에서 저럴 애들이 박지민네 무리 말고 더 있냐?"
이지은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인물에 씹던 것도 멈추고 다시 그리핀도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들을 다 집합시켜 놓아야만 날 수 있을 법한 온갖 소리들이 그 중앙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음과 그 이상의 무언가에 딱 걸쳐져 있는 기분이랄까.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이지은을 흘낏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박지민? 왜 무슨 일 있었어?"
근래에 슬리데린 테이블에 장난도 안 치고 얌전해졌다 싶더니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작당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꼴도 뵈기 싫다는 듯 한껏 미간을 구긴 지은이 짜증 서린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별것도 아닌 일이긴 한데."
"……. "
"글쎄, 천하의 박지민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기셨단다."
쿨럭- 잘 내려가던 고기가 다시 한번 식도 중간에 턱하고 걸린다. 지금... 누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고? 경악에 찬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여전히 난리 법석인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박지민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고?
그 말은 가히 충격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도 그럴게 항상 애 같은 얼굴로 얄밉게 웃어대며 짓궂은 장난을 일삼던 박지민은 소위 말해 안 그럴 것처럼 생겨서는 그러는 이 시대의 진정한 철벽남이었다. 뭐, 그렇다고 여자애들 앞에서 말 한마디도 못 한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바람기 다분한 모습으로 천진난만하게 여자애들을 홀려놓고서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철벽을 치는 종류와 가깝다고나 할까. 가끔 복도를 지날 때나 호그스미드 주변을 돌아다닐 때 그에게 고백을 하는 여자애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한 표정, 그리고 단호한 거절이었다. 한 마디로 좋아한다는 소리만 주구장창 들었지 한 번도 좋아한다 직접 말한 적은 없는 부류다, 이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관심도 없었을 이 스캔들에 마치 연예부 기자라도 된 것 처럼 괜히 소근소근 목소리를 줄였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하나였다.
"그래서, 오늘 고백한대?"
내 물음에 이지은은 그렇게 당연한 질문을 뭣 하려 하냐는 듯이 고개를 성의 없이 두어 번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쟤네가 지금 저 난리지- 딱 봐도 박지민이 고백한다 선포한 것 같구만. 어후 진짜 난 저런 애들이 가장 싫어, 진지한 면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잖아? 마치 자기가 그 고백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부르르 몸서리를 치는 이지은을 가만히 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이 아닌 이 시끌벅적한 사건의 주인공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환호성을 질러대는 아이들 사이로 말간 얼굴 하나가 중심에서 잔뜩 벌게진 얼굴을 숨기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다. 별다른 감정은 없었지만 나름 6년 동안 많이 부딪혔던 박지민의 색다른 모습을 직접 보고 있자니 기분이 알게 모르게 묘했다. 살갑게 말을 주고 받는 사이는 아니였지만 같은 6학년이랍시고 가끔 시선이 맞닿은 적도 있긴 있었고. 지금은 서로 모르는 척 작년의 일을 누구 하나 언급하지 않지만... 아마 이 맘 때쯤이었나. 그래, 그때도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었던 것 같다. 연결고리가 없던 그와 나 사이에 둘만 아는 비밀이 하나 생긴 것은.
잊고 있었던 기억이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처음이었던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지만 처음이 아니었던 너는 아마 잊지 않았을까 싶다. 해맑은 웃음을 입꼬리에 매달고 친구와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 따라 설핏 미소 지었다. 특유의 친화력을 발산해내는 너를 인정한 건 그때 그날이었다. 협소한 인간관계만을 고집하던 내가 태어나 난생처음으로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남자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또 스스럼없이 나 자신에 대해 알려주기까지 했으니까.
별다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심 궁금해졌다. 너의 사랑을 받는 여자아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일려나. 밝은 너만큼이나 그 아이도 밝을까. 해사한 웃음을 멍하니 바라보던 와중, 갑자기 고개를 드는 박지민에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두 눈이 공중에 마주치고 말았다.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면 될 일을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하지 않았고, 그건 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네 웃음은 자취를 감췄다.
+) 요즘 애들로 글 쓰는 재미를 소소하게 느끼는 바람에 밤만 되면 짧게라도 한 편씩 들고 오고 싶네요. 오늘 하루도 다들 잘 지내셨나요? 혹시라도 제 글을 읽으실 우리 탄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이건 제가 예전에 써두었던 글인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들고오게 됐어요. 상, 하편 혹은 상, 중, 하편으로 구성되지 않을까 싶은데 원하신다면 하편 올라오고 바로 텍파를 만들어서 드릴 예정이에요. 물론... 아무도 원하시지 않는다면... (하핳... 민망...ㅠㅅㅠ) 무튼 제 글 읽어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내일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우리 이쁜 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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