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하성운
안녕하세요 '홍차화원'입니다.
태풍이 지난 뒤 남은 자리는 고요했다. 마치 우리같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내가 저를 보자마자 울어버리지를 않나, 실컷 안겨 울더니 고개를 들고 한다는 말이 저를 좋아한다는 것.
하성운의 표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충격적인 표정이었다. 그러고서는 내 이마에 자신의 손을 짚고 자신의 이마에도 손을 짚어 열을 재기 시작했다.
“ …뭐하는데 ”
갑자기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내려 내 볼을 꼬집어 보는 하성운이다.
“ 아!!! 뭐하냐고!!! ”
아프다더니 정말 많이 아픈건가 왜 이러는거야..
“ 아픈 것도 아니고, 이거 꿈도 아닌 것 같고… ”
“ 미쳤다..진짜… ”
내 고백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벙쪄 있는 하성운을 옆으로 살짝 밀고 집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집 안에는 엄마의 말처럼 아무도 없었고, 혼자 있으면서 불도 안 키고 있는건 무슨 청승인지 집 안은 온통 새카만 어둠만 내려앉아있었다.
나는 엄마가 싸준 죽을 꺼내 익숙한듯 전자레인지 앞으로 갔다. 죽을 데우는 동안 하성운은 아까의 표정 그대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 그만 따라다니고 좀 앉지 그래. 너 열 많이 나. 안어지러워? ”
“ 심지어 다정하기까지해… ”
“ 하 진짜…손발 다 떨려 ”
하성운의 계속되는 감탄을 뒤로하고 죽이 다 데워졌다는 전자레인지 소리에 죽을 꺼내 들고 식탁에 내려 놓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물 한 컵을 뜨는 동안 하성운의 시선은 그대로 나를 향해 있었다.
하성운은 자리에 앉지 않고 계속 내 옆에서 상을 차리는 나를 지켜 보았고 나는 보다 못해 하성운의 등을 떠밀어 자리에 앉혔다.
하성운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고 나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 이거 여주 너가 만든거야 설마..? ”
“ …엄마가 만든거야. 안심하고 먹어… ”
쳇. 하성운은 엄마가 만들어 준거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죽을 먹기 시작했다. 내 요리 실력을 아는 하성운은 잠시나마 떨린 동공을 보았다. 겨우 이틀 못 봤는데 그새 많이 얼굴이 야위었다. 하성운이 죽을 먹는 동안 턱을 괴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잘생겼다. 한번 인정 하고 나면 이렇게 모든 것들이 달라지는 것인가. 십 몇년을 붙어 지내며 하성운이 잘생겼다고 느낀적이 있었는가. 이렇게 잘생겼는데 왜 옆에 두고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짙은 쌍꺼풀 하며 매끈하게 내려오는 콧날, 도톰한 입술 뽀얀 피부. 여자인 나보다도 예쁘고 그렇다고 마냥 예쁜게 아니라 야위어서 그런지 얼굴의 선들은 더 선명해져 남자다워 보였다. 한참을 멍하게 쳐다보던 나의 시선을 거두게 한건 하성운이었다.
“ 어…저게…그니까… ”
“ … ”
“ 저… 나 그렇게 쳐다보면…. ”
“ 어…? ”
“ 여주 너가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너무 떨려… ”
-
죽을 다 먹은 뒤 뒷정리를 하려는 하성운을 그대로 자리에 앉히고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끝냈다.
“ 집에 감기약이 많길래 다 챙겨 오긴 했는데… ”
집에서 가져 온 여러개의 감기약을 꺼내 보이니 하성운은 그저 웃어보였다.
“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모르겠어서… ”
“ 이거 내가 이렇게 먹게 될 줄 몰랐는데 ”
“ 어? ”
“ 이거, 여주 너 아플 때 마다 내가 하나씩 사다 모아둔거잖아 너희 집에 ”
내가 조금이라도 열이나고, 기침을 한다던가 어디가 아프면 하성운은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사오곤 했다.
한번 아프면 제대로 앓아버리는 나때문에 가방에 늘 약을 넣고 다니라며 살뜰하게 나를 챙겼던 하성운이다.
하나 두개 모이고 쌓여있던 약들은 다 하성운의 작품이었다. 멋쩍게 나는 하성운에게 금도끼 은도끼 마냥 여러 약들을 건냈다.
하성운은 그저 나를 향해 웃어 보이며 해열제 한 알과 타이레놀 한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 여주야 ”
고개를 들어 하성운을 바라 보니 하성운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아프다더니 뭐가 좋다고 자꾸 웃는건지. 웃는게 예쁘다.
아까의 부끄러워 하던 하성운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남자같은 하성운만이 여기에 있다. 남자라고 느낀 뒤 부터 괜한 떨림에 나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
“ 내가 더 ”
“ 어..? ”
“ 내가 여주 너보다 더 좋아한다고~ ”
내가 먼저 선수 친 고백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성운의 얼굴을 쳐다 볼 수 없었다. 심장이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것 같고 손에도 얼굴에도 심장이 있는듯 두근두근 거린다.
고개를 살짝 숙인 내 눈높이에 하성운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마주 보려 했고 나는 그를 피하기 위해 눈을 옆으로 돌렸다.
드르륵 -
하성운은 나에게로 언제 다가온건지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본인 쪽으로 돌렸고,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 보며 눈을 마주해왔다.
“ 얼굴 좀 보여줘 여주야~ ”
도리도리
“ 아까 박력넘치던 김여주는 어디갔는데~ ”
“ 그거 나 아니야.. ”
“ 그럼 그 말 취소야? ”
나는 하성운의 물음에 고개를 들고 강하게 고개짓을 했다.
" 그런게 아니고..나는.. "
쪽 -
“ 입술에 하고 싶은데, 그러면 너 감기 옮으니까. ”
“ 우리 이제 동네친구 그만 하자 여주야 ”
“ 이제 동네 오빠 동생 말고 남자친구 여자친구 하자 ”
우리는 돌고 돌아 드디어 서로를 제대로 바라 볼 수 있었다. 늘 등만 보이던 내가 너를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피하면 내 눈높이에 맞춰 주었고, 등을 보이면 내 뒤를 지켜 주었다. 그런 너를 이제 나는 마주 보려 했고, 언제나 그랬듯 너는 따뜻했다.
-
비가 갠 하늘은 쨍쨍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 조차 피하지 않으면 살이 탈 것만 같았다.
한가한 주말 낮 아침, 같이 아침을 먹고 나는 밀린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있었고 하성운은 구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놀아 주는 중이었다.
그 날 하성운의 집에서 폭풍같은 고백이 있은 후 우리는 더이상 동네오빠 동생이 아닌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된 것이다. 오랜시간을 가족같이 지낸 우리는 서로에게 애인이 되었다고 해서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저 땀이 나도록 손을 잡고 있다는 것 말고는. 땀이 차서 손을 빼면 나를 슬쩍 보고는 개의치 않아하며 다시 손을 잡아온다.
“ … 땀난다고 ”
“ 괜찮아 ”
“ 아니 내가 덥다니까? ”
“ 더 더워지게 만들어버리기 전에 손만 잡고 있게 해줘 ”
아까 한 말 취소. 바뀐게 하나 더 있었다. 늘 나에게 하찮기만 했던 하성운은 시도때도 없이 오빠미를 내뿜는다.
덕분에 내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점. 가자미 눈을 하고 살짝 흘겨보니 배 위에 올려 놓았던 구름이를 내려 놓고서는 나에게 안겨오는 하성운이다.
하성운이 안겼지만 현실은 내가 안긴 꼴이다.
“ 뭐..뭐해! 덥다니까! ”
“ 난 추워~ ”
“ 그럼 에어컨을 꺼! ”
“ 여주 너 덥다며~ ”
" 손만 잡고 있겠다며! "
" 아쉬워? "
말 하기가 무섭게 더 꽉 안아오는 하성운에 나는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 덥다고 꿍시렁 거릴 뿐…
여느 연인들 처럼 우리는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띠 - 띠 - 띠 - 띠 - 띠리릭 -
“ 아 역시 여름엔 김여주네 집이 히트다 히트 "
“ 옹성우 드립 진심으로 대노잼. 언제적 히트다 히트… ”
“ 뭐야 성운이형 전화 안받더니 여기에 있었네! ”
" 성운이형 배신이다. "
갑작스런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놀라 나는 하성운을 밀쳐버리고는 후다닥 자리를 떨어져 앉았다.
“ 성운이형 바닥에서 그러고 뭐해? ”
“ 왔어? ”
“ 김여주는 얼굴이 왜그렇게 벌겋고? ”
“ 내..내가 뭐! 오늘 날이 참 덥네! ”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아주 평온한 얼굴로 애들을 맞이 하는 하성운이다.
아까의 나 처럼 가자미 눈을 하고는 내 옆으로 와서 몰래 속삭이는 하성운. 어떻게 남자친구를 그렇게 매몰차게 밀어버릴 수가 있어. 매몰차긴 개뿔!
김재환의 말처럼 빨개진 얼굴을 식힐 겸 냉장고 앞으로 갔다. 먹다 남은 베라가 있을텐데…
-
“ 너네들은 왜 맨날 말도 없이 남의집에 오는거냐고 ”
“ 여주야 나 방금 좀 서운했다. 우리가 남이야..? ”
어느 새 식탁위에 하나둘 모여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들 마냥 숟가락을 들고 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바보들에게 내가 봐도 새삼스러운 말을 던지니 권현빈은 정말 새삼스럽다는 듯 반격을 했다. 하긴 언제는 말을 하고 왔는가.
“ 너네는 남이지~ ”
“ 저 형 오늘 진짜 낯설다 ”
“ 누가보면 김여주 남자친구인줄 ”
“ 맞는데?그치 여주야? ”
"..."
"..."
"..."
"..."
폭염주의보라는 긴급재난문자가 울렸던 오늘.
바깥 날씨는 정말 살인적인 더위다. 때마침 찬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끼얹은 하성운의 말에 모두 얼음장 같이 얼어붙었다.
“ 그니까 여주 너는 비밀번호 바꾸고, 너네는 이제 내 허락 받고 와라. 좋은시간 방해하지말고 이 놈들아~ ”
뜻밖의 고백에 나를 포함한 아이들 모두가 아무말도 잇지 못했다. 윤지성의 눈은 지금 당장 뒷통수를 살짝만 쳐도 튀어 나올 것 같았고,
옹성우는 입을 벌리고는 한참을 아무말을 못했다. 마치 출생의 비밀이라도 알아버린듯한 표정의 권현빈, 김재환은 착잡하다는 듯 마른 세수를 했다. 가만, 왜 지가 착잡해?
“ 오바야… ”
“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일이람… 진짜 와… ”
“ 나는 이 결혼 반대야 ”
“ 가족끼리 그러는거 아니랬어… ”
한참의 정적 끝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스크림을 식탁에 올려 놓았다. 나대로 충격적인 하성운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 크게 퍼서는 입에 넣고 녹이고 있었다. 하성운은 그런 나에게 맛있냐는 질문을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대신하였다. 나를 시작으로 하나 둘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역시 충격적인 말도 소용이 없구나.
“ 대체 엉제 부텅..핳..차가어.. ”
“ 아이스크림이 차갑지 뜨겁냐 멍청한 새끼야 ”
“ 지긋지긋한 치정멜로가 이렇게 완결 날 줄 몰랐는데 ”
“ 켁- ”
“ 너 빼고 다 알았는데 성운이형이 너 좋아하는거 ”
“ 켁- ”
“ 그래서 누가 고백한건데~ ”
사래가 들려 기침을 하는 나에게 하성운은 아무렇지 않게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 주었고, 하성운은 아이들에게 그냥 웃어보이기만 했다.
나빼고 다 알았다니. 그 정도로 티를 많이 냈던가 하성운이… 하긴 둔하기 짝이 없는 나까지 눈치 채고 모른척 할 정도 였으니.
“ 아 알아서 뭐할건데 너네가~ ”
“ 형 몇년을 이 드라마 챙겨본 애청자로서 당연한거아니야? ”
" 뭐 보나마나 성운이형이지 뭘 물어 "
“ 내가 했다 됐냐! 닥치고 먹어라 좀. ”
“ 봤지? 우리 여주 박력 쩔어~ ”
기침이 멈추고 하성운에게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보다 못해 내가 소리를 빽 하고 지르고 말았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라는 말을 남겼다. 코를 박고 아이스크림만 먹는건 정작 나지만.
-
충격에 휩싸여 방해하지 말고 나가자는 김재환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조용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 동네방네 티를 얼마나 내고 다닌거야? ”
“ 그냥 날 아는 사람들은 다들 너를 알 정도? ”
“ 내가 언제부터 좋았는데? ”
“ 여주 궁금한게 오늘따라 참 많아 ”
“ 아 언제냐고! ”
“ 나도 모르는데? 너무 오래된 일이야. ”
“ 근데 왜 고백 안했어? ”
“ 너가 도망가니까. 겁쟁이잖아 김여주 ”
“ 누가 나 채갔으면 어쩌려고 ”
“ 누가 채가 너를~ ”
“ 내가 너랑 붙어다녀서 모르나본데, 나 고등학교때 인기 많았어! ”
“ 알아 ”
“ 그치?!…어? ”
“ 너 예쁘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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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용! 홍차화원입니다~.<
제가 너무 오랜만에 왔죱..(아닌가..?)
하핫....티켓팅은 다들 잘 하셨는지요..?ㅎ....
저는 대환멸을 느꼈습니다 꺼이꺼이....
근데 여러분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여러분...흑흑 저 이렇게 감동 시키기 있어요?
초록글이라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하여,
원래대로라면 오늘이 완결인데, 그새 정주행 하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더 써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는 핑계 독자님들이랑 더 놀고싶음)
완결을 몇편 미룰까 해요 헤헿....팔랑귀..ㅎㅎ
초록글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 더 열심히 글 쓸게요!!!!ㅠㅠㅠㅠㅠ엉엉
암호닉은 마감을 했는데, 댓글로 달아주신 분들이 또 계셔서...
정말. 레알. 이번편을 끝으로 마감할거에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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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번편이 마지막 마감이니까, 다음편이 올라가는 그 시간 이후로 달린 댓글은 받지 않을게요!
이번편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다들 정말 사랑합니다 핫트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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