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저 목소리 어쩔거야. 점심 음악방송이 끝나자마자 여러 입에서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물론 그 중 한 명이 나고. 책상에 엎드려 끙끙 앓고 있자 친구가 내 앞자리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쉬었다. 너도 끝나니까 아쉽지. 목소리 개꿀이지. 그런 내 생각과 다르게 친구는 한심한 것들. 이라며 혀를 쯧쯧 찼다. 이게 뒤질라고? 너부터 느그 오빠들 덕질 관두고 말해라. 됐고, 아 너무 좋아... 딱 한번만 눈 앞에서 직접!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럼 소원이 없을 것 같아. 음악방송 멘트 하는 사람(뭔가 칭하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은 작년까지만 해도 몇 명이서 돌아가면서 해왔는데 변백현이 워낙 인기가 독보적이라 그냥 아예 변백현이 한다. 그리고 인기가 독보적인 이유라 함은, 우선 변백현은 올해 전학을 왔는데 딱 봐도 훈남썰에 등장할 것 같은 훈훈한 얼굴에 성격도 좋아서 어느새 유명해졌고, 방송부에도 들었다. 말로 표현 못하는 그 방송부원에 대한 로망이 아주 딱 변백현을 위해 만들어진 거 아닌가 싶을정도 그 앤 방송부에 아주 잘 어울렸다. 그래서 내 이상형 옵션에 방송부 경력이 추가되어 버렸다. 결론은, 변백현은 지금 나 포함 여학우들의 짝남 셔틀을 하고 있다는 거. 01 반장아, 반장아, 완전 신물나 죽겠다. 그냥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길래 내신이나 올리자고 한 반장이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귀찮은 소일거리는 죄다 내 차지라고 보면 된다. 지금은 색지 서른 장을 사고 교무실로 가는 길이다. 그나마 밖에보단 복도가 시원하다. 근데 또 복도보단 교무실이 훠얼씬 시원하다. 아주 좀만 더 있다간 동태 되겠네. 우리도 에어컨 좀 빵빵하게 틀어주지. 종이를 선생님 책상에 두고 나오려는데 기술 선생님께서 날 부르셨다. 보나마나 또 심부름이겠지... 고놈의 심부름 심부름 심부름! 차라리 심부름센터 직원이면 돈이라도 받지. 우리 담임도 아니면서... 짜증이 막 발가락부터 위로 슬슬 올라오려고 했는데, 선생님의 한마디에 짜증이 한 순간에 확 가라앉았다. " 이것 좀 방송실에 갖다 놓고 와. " 와, 헐, 선생님 사랑해요. 내가 그 곳을 내 발로 들어가게 되다니. 이건 엄청난 신의 은총이다. 변백현 있다고 그 앞에서 서성거리는 애들은 많았지만 그 앤 별로 그런 거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절대 방송실 근처도 가 보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고 여자애들이랑 웃고 떠드는 모습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거는 완전 정당하고 정직한 방법이잖아. 우선 안에 누가(변백현이) 있나 문에 있는 창 사이로 들여다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아무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변백현이 맨날 저기 앉아서 방송 하는구나... 책상으로 가니 대본으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열심히 읽나봐, 완전 꾸깃꾸깃하네. 옆에 선생님이 갖다놓으라고 시킨 유에스비를 놓고 그 옆에 슬쩍 딸기맛 사탕 하나를 나란히 놓았다. 아 너무 웃었더니 광대가 아프네. " 내가 방해했나. " ...미친!!!! 미친!!!! 여기 2층이라 뛰어내려도 안 죽을 텐데! 누군지 궁금해하면서 사탕을 까먹을 변백현을 상상하며 기분좋게 뒤를 돈 순간 내 상상 속 주인공인 변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 들어왔냐. 귀신이야? 가벼워서 발소리도 안 난다 이거야? 아... 말도 안돼. 이렇게 무방비하게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그니까 이건 말이지. 절대로 내 사심으로 들어온 게 아냐. " 선생님이 심부름 시키셔서! 모, 몰래 들어온 거 아냐. 하! 하! 하... " " 그래? " " 으응... " " 사탕도? " " ...응! 어! 사탕도! 그럼 난 이만! " 나 무슨 짓 했니. 사탕은 왜 놓은 거야...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횡설수설 늘어놓고는 빨개져버린 내 얼굴을 본 변백현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사탕도? 하고 물어봤다. 이 와중에 잘생겼어... 귀여워...! 아 이게 아닌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그 사탕도 선생님이 준 거라고 세 번 확인시킨 뒤에야 도망치듯 방송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고대하고 고대하던 변백현과의 첫 만남은 아주, 매우! 호구같았다. 물론 나만. 이건 엄청난 자살감이다. ******* 친구와 편의점에서 한창 수다를 떨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져 방금 헤어졌다. 다행이도 정류장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뭔가 변백현과의 일을 겪고 나니 모든 사람이 날 비웃는 듯한 기분이야... 또 생각이 나 버렸다. 아아아! 어떡해 나... 속으로 이불 하이킥을 얼마나 했나, 금방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이네. 빨리 집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또 무슨 일이 생길 지 몰라. " 잔액이 부족합니다. " 내 생각이 끝나자마자 무슨 일이 생겨버렸다. 아 오늘 진짜 왜이래. 조용한 버스에 울려퍼진 잔액이 없다는 말은 날 엄청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말도 안 돼. 급하게 주머니를 뒤지자 나오는건 오백원밖에 없었다. 항상 어느정도 여유돈을 갖고 다녔는데 왜 하필 딱! 오늘 안 갖고 온 거냐구... 얼마나 앞으로 좋은 일이 올 거길래 자꾸 안 좋은 일만 겪는지 모르겠다. 민망한 마음에 버스에서 내리려 뒤를 돌려고 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는 학생 두명이요. 했다. 헐, 남잔데. 계속 어깨를 잡은 채로 쭉쭉 들어가 날 앉혀놓고 내 옆에 앉은 애는 3반 박찬열이었다. 좀 논다던 것 같은데. 그건 둘째치고 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는데. 너 진짜 잘생겼구나. " 왜 그렇게 쳐다봐. " 내 눈빛이 그렇게 부담스러웠나!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이니 옆에서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비웃음이야 저건... 그래 난 비웃음 당해도 싸지. 얼굴이 화끈화끈 불고구마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아, 나에게 또 이런 시련을... 나 얼굴 빨개지면 진짜 웃기단 말야. " 이자 왕창 떼서 너 등쳐먹으려고 일부러 내 줬어. " " 어? " " 왜. 불만 있어? " " 당연...히 아니지... " " 한방에 해결 할 방법 알려줄까. " 뭐야 이건. 난 너한테 버스비 내달라고 한 적 없거든. 그래놓고 불만 있냐고 묻는건 무슨 심리야? 당연히 불만 있지! 하지만 넌 좀 무서우니까 그냥 조용히 있을게. 역시 노는 애들은 등쳐먹는 수법부터가 다른가보다. 그 때 박찬열이 한방에 해결 할 방법을 알려준단다. 그럼 처음부터 그걸 말 하던가... 막 셔틀같은거 시키는건 아니겠지? 알바 대타 하루 정도는 뛰어줄 수 있어. 불안하게 끌지 말고... " 핸드폰 줘 봐. " " 해, 핸드폰은 왜? " " 안 뺐어. 일단 줘 봐. ' 뺏을 게 없어서 핸드폰을! 내 생각을 읽었는지 뺏지는 않는단다. 설마 외장메모리 같은거 털어가는건 아니겠지? 아님 소액결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내밀자 이것 저것 누르던 박찬열은 이내 자기 핸드폰으로 전화을 걸고 끊은 뒤 나한테 다시 건넸다. 너 뭐 한거냐? 멀뚱멀뚱 쳐다보자 안 받고 뭐 하냔다. 막 부르면 나오라며 제 때 안 나오면 맞는다던지 그런... " 뭔 상상 하냐. " " 응? " " 버스비 대신 네 번호 받은 거야. " " 아. " " 나 이사해서 앞으로 계속 이 버스 탈 건데. " " ... " " 같이 타자. 너 나 알지. " " 응. " " 나도 너 알아. " 아 그렇구나. 반장을 하면 이런 잘생긴 애들한테도 내 얼굴이 알려지는구나. 마냥 나쁘지만은 않네. 아... 하며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보던 박찬열은 다시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하교 친구로 든든한 빽을 얻은 건가. 버스비 이상으로 가치 있는 거겠지. 뭐, 버스에서 갈굼당할 일은 없겠네. 생기지도 않을 일이지만 예방했으니까 좋은거라며 자기 암시를 걸었다. ******* " 와, 굴러들어온 박찬열. " " 재미 없어. " " 걔는 어디서 내려? " " 나보다 두 정거장 앞. " " 대박이다. 이 참에 가망성 없는 변백현 버리고 걔 좋아해. " " 그게 되냐... 그리고 그냥 버스 같이 탈 사람 없어서 심심했나보지. " " 너같은 멍청함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호구년아. " 됐고. 난 오늘 기분이 매우 안 좋다. 시험 이주 남았다고 음악방송이 없어! 이제 점심시간에 뭐 하지. 뭘로 버티지.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사람 왜이렇게 많아. 쪄죽겠다! 짜증나! 짜증나! 앞에 엄청나게 많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드디어 식판을 들었다. 와, 오늘 불고기 있네. 근데 어째 이쪽 줄만 겁나게 느리게 줄어들은 것 같다? 처음에 내 옆 줄에 서 있었던 애는 이미 저~기서 밥을 먹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조짐이 안 좋냐. 그냥 빨리 먹고 싶은 생각에 식판만 보며 급식을 받다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든 순간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벼, 변백현이 급당이었어? 아, 좀 꾸미고 올 걸!! 근데 어째 너는 흰 앞치마랑 이상한 위생 모자도 잘 어울리니... 나 잠시만 울고 올게. " 야. " " 어, 어? " " 사탕 잘 먹었어. " " 응? " " 다음에 또 오면 너가 듣고싶은 노래 틀어줄게. " 내가 지금 들은 게 또 오라는 말 맞나요?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오늘 내가 뼈를 묻을 자리는 여긴가 보다. 미쳤네... 심장이 완전 쿵쿵쿵쿵,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거기서 멈춰 서 있을 뻔 했는데, 다행히 친구가 옆으로 슬쩍 밀어줘서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나 어떡해... 사탕 놓고 오길 완전 잘 한 것 같아. 좀 쪽팔리긴 하지만. " 굴러들어온 박찬열이 박힌 변백현 빼나 했는데. " " ... " " 박힌 변백현이 생각보다 세구나. " " ...야 나 너무 떨려. " " 드럽게 많이도 줬네. 이걸 언제 다 처먹으라고. " 은근슬쩍 변백현이 준 고기를 덜어가는 친구를 말릴 수가 없었다. 왠지 저기서 변백현이 날 볼 것 같아서. 그래서 몸이 쩍쩍 굳어버렸다. 나 멍청하게 되묻기밖에 못 했어... 그래도 오늘은 정말 아름다운 날이다. 완전 행복해!! 오늘은 좀 안 좋은 일 일어나도 괜찮아! ---*****--- 백현이와 찬열이 삼각관계입니다(단도직입적) 바람직하지 않나여ㅠㅠㅠ후후 오늘은 두 인연의 시작입니다! 뭐 대충 글 보시면 누가 주인공인지 딱 각이 잡히시겠지만 긴장감 떨어진다고 안 보시면 아니됩니다ㅠㅠㅠ 많이 설레게 해드릴게요... 설탕 촵촵 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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