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 선배는 교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며 조곤조곤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흔히 말하는 '씹덕상' 답게 말랑거리는 볼살과 매력넘치는 눈웃음과 대비되게 가끔 보이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까지, 넘어가지 못할 사람이 없을 부분이었다. 지나가기만 해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기념일(발렌타인데이라거나, 화이트데이라거나, 빼빼로데이라거나 아무튼 우리나라에는 쓸데없는 날들이 참 많다)에는 그에게 주기 위해 한아름 무언갈 먹을걸 잔뜩 사와 건네는 아이들로 강의실은 북적였다. 적어도 저 사람은 학식 먹을 때 누구랑 같이 먹어야 할까 고민할 필요 없겠지. 손만 뻗어도 밥 사줄 사람이 있는데.
아, 또 하나 왜 (여자)사람들이 그와 관계를 맺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이냐, 바로 박지민 선배는 인기와 반비례하여 연애를 쉽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교 와서 연애를 해본 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데 얼마나 구미를 당기는 남자인가. 나만 바라봐주는 세상 완벽한 남자. 내가 고등학생 때 유사연애를 위하여 죽어라 읽던 인소와 타 아이돌 빙의글에 제법 나왔던 소재였는데 소찢남이라고 정말 그 인터넷 창을 뚫고 나온 남자가 바로 박지민이었다. 나같은 평범한 애 따위는 이렇게 뒤에서 그의 찬양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병맛이 철철 넘쳐서 선배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뛰어난 미모를 가져서 입방아에 오르는 수준도 아니니깐. 그냥 고만고만한 20살 평범한 여대생이라 술자리에서 박지민 선배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장면을 보며 속으로 흐뭇해하는 것이 내가 최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제도 실컷 술을 먹으며 테이블 정중앙 자리에 앉아 여자 후배들에게 질문구애를 받는 선배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선배는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이,'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요?'
'없어'
'와 선배 진짜 사기캐다.'
'ㅎ, 아니거든'
술만 먹으면 귀여워진다면서 술만 먹이던 동기들의 눈동자들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도 다가가고 싶다, 다가가고 싶어 젠장!! 속으로 요란하게 외치며 박지민 선배 주위를 둘러싼 우리과 3대 미녀들을 바라보았다. 아이유 닮은꼴로 얼굴책에서도 한 번 언급이 되었던 박채아, 뛰어난 외모와 입방아에 선배들의 밥조공에 남은 학기 동안 밥값 걱정따위 하지 않는 서영, 인스타 얼짱이었던 해진까지. 아니 저 얼굴로 들이대면 솔직히 누가 넘어가지 않겠냐고. 아 술맛이 참 쓰네. 저 미녀들을 가히 이겨낼 수 없는 나같은 쭈구리들은 그저 주위에서 술만 홀짝이며 아쉬운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그날따라 좀 잘 들어가는 술에 나 또한 거침없이 내 친구와 달렸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말 달리자 수준이었다.
그래, 그랬는데 분명..
"헐.."
내가 왜 그 선배의 집에서 떡이 된 채 누워있냐, 그 말씀이었다.
PEACH SODA
(부제 : 책임져)
W. Handmaiden
블랙아웃. 암전.
그렇게 쪽팔렸던 기억은 기억해내지 말라고 해도 잘만 기억해내던 이 뇌는 하필이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검은 장막만 바라보게 해주어 나의 속을 애타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 뭐했지? 무슨 짓을 했길래 여기까지 온거야.? 머리를 쥐어뜯으며 태연하게 내 앞에서 라면을 후루룩 먹는 선배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선배의 보금자리에 와서 라면도 먹고 좋긴 한데 선배는 날 여기에 왜 데려온거지? 생각할수록 의문점이 사라지지가 않아 그저 젓가락만 든 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을 깨작거렸다. 매콤하니 짭쪼롬한게 내가 3그릇도 먹을 수 있는 라면의 비주얼이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장본인 덕에 혀는 그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내가 어떤 추한 행패를 보였을지 생각해내지 않아도 뻔히 상기되어 입맛이 저절로 뚝 떨어졌다.
"어제 기억나?"
"...그,"
"기억날 리가 없지"
술을 그렇게 먹었는데, 반 한숨 반 밝은 목소리를 낸 선배의 이상한 말을 듣자니 저절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 진짜 무슨 미친년처럼 선배한테 소리지르고 스누피의 해피댄스 춘 거 아니겠지..? 스누피의 해피댄스를 추는 것이 나의 술주정 중 하나였기 때문에 슬슬 불안감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선배 표정도 그렇게까지 좋아보이지는 않고.. 미소천사 답게 항상 무슨 곤욕스러운 일이 생겨도 차가운 미소를 일관하며 여러 여자들을 죽였던 선배였기 때문에 지금 내 앞에서 입꼬리를 추욱 내린 채 나를 불쌍한 강아지처럼 바라보는 선배는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다 싶어 그대로 대구리를 박을 기세로 허리를 최대한 숙였다.
"선배 정말 죄송해요"
"..."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하라는 거 다 할게요 그러니깐 제발 용.."
"책임져야지"
"..네?"
"기억날 때까지 나 책임져"
..이게 무슨 말인지. 기억날 때까지 책임을 지라뇨? 나 진짜 무슨 짓 했나봐 어떡해... 어안이 벙벙해져 바보같이 입만 벌린 채 나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을 마주바라보았다. 대답을 강요하는 듯 손가락을 책상에 가지런히 치는 박지민 선배의 행동에 멍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처음보는 살짝 날카로웠던 모습의 선배가 곧 다시 사르르 웃음을 지으며 다 먹은 듯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사실 책임지지 않는다고 대답했으면"
"..."
"나 정말 너한테 실망했을 지도 몰라"
그러니깐 저 어제 무슨 미친짓 했냐고요. 이 말이 목구멍 안에서 머무른 채 차마 나오지는 못했다. 그저 선배가 젓가락으로 쥐어줬던 깍두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하얀 면티에 검은 슬랙스를 입은 선배의 미친 핏을 멍하니 바라볼 뿐. 아 그나저나 나 방금 일어나서 정말 추한 모습일텐데. 가지가지하는구나 김탄소. 지금 당장이라도 유체이탈을 하고 싶다는 욕구에 휘말린 채 머뭇거리며 일어선 내가 그릇을 들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물을 튼 선배의 옆으로 우물쭈물 다가갔다. 제가 설거지 할게요,라고 말을 했건만 손님이니깐 가만히 있으라며 제지한 선배의 착한 말을 들은 나는 돌아서려는 순간 나의 발목을 붙잡는 선배의 상태에 하마터면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진귀한 경험을 할 뻔했다.
"...?"
난 볼 수 있었다.
보란듯이 흘러내린 선배의 큰 티셔츠에 빼꼼히 보인 하얀 목에 새겨진 빨간 자국을.
오 맙소사
오 시발
오 미친
지금 이건 내가 돈을 줘야 '책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지민 선배의 그 낯간지스러운 이름의 자국이라니 게다가 어제 술자리에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어제 박지민 선배는 목이 훤히 다 드러나는 얇은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와서 우리 동기들 다 죽여버렸었거든. 그 상태에 빨간 자국까지 들고 오셨다면 아마 어제 술집은 뒤엎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단 하나였다. 내가 남겼던가 내가 실수로 남겼던가 미친년인 내가 남겼던가. 그대로 생각회로가 막혀 멍하니 그 자국을 바라보자 그런 나의 시선을 느낀 선배가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와 나 이러다가 한 대 맞는거 아니야. 나같은 오랑우탄이 목을 물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소름이 돋았다. 콩팥이 두 개라고 했던데 하나라도 팔면 수입이 좀 괜찮으려나..이딴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눈앞에 손을 휘휘 내저은 선배가 그 특유의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봤어?"
".."
"어제 얼마나 세게 물던지 연고 발라도 이러더라"
그럼 정말 내가 만든거야???!!!! 거품 물고 기절해야할 타이밍 아닌가.. 무릎이라도 꿇어야겠다 싶어 다리를 굽히는데 그런 나를 제지하는 선배의 손길이 있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살짝 품에 안긴 꼴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나의 초점에는 박지민 선배의 목에 새겨진 그, 그 망할 빨간 자국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설마 이것만 했다고 내가 책임지라고 했겠어?"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죠?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여진건 내가 수능장에서 국어 비문학 지문을 본 후 처음이었다. 설마 드라마 클리셰에서처럼 나온 것처럼 내가 선배를 덮쳤던가 깔았던가 때렸던가 토를 했던가 하지는 않았겠지.. 지금 이 순간 당장 과거로 돌아가 술을 먹는 나의 양쪽 뺨을 세게 갈구며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역정을 내고 싶었다. 생글생글, 그런 나의 마음도 모른건지 재미있다는 듯 아기처럼 순한 웃음을 지은 선배가 나의 볼을 꾹 눌렀다.
"천천히 생각해봐"
"..."
"아, 그리고 키스도 못하면서 그렇게 달려들면"
".."
"너 입술만 터지는거 몰라?"
k.o. 넉다운. 유체이탈 간접경험을 하는 나의 입술을 툭 치고 지나가는 선배에 저절로 몸에 힘이 풀렸다. 무슨 말일까 곱씹기도 전 입술에 느껴지는 알싸한 통증에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오 아버지
날 보고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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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제에 달달물을 쓰려고 하면 이렇게 망글이 나타납니다
설렘, 캠퍼스물이 제 주제인데
다음편이 그럴검니다...(소심)
왜냐하면 전 그딴거 모르기 때문에 홍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