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고 말해 줘
"야, 뭘 야리냐?"
"어?"
"왜 계속 쳐다보고 있냐고"
"너 또 왜 그러냐."
"쟤가 자꾸 야리잖아. 쟤 때문에 임영민 뚫리겠다."
봐, 임영민 맞잖아.
"임영민, 너 쟤 알아?"
"..."
"아니."
"그럼 왜 저렇게 쳐다봐. 너 할 말 있어?"
"ㅇㅇㅇ, 그냥 가자."
"그래, 임영민 쳐다보는 여자애들이 한둘이냐. 잘생겨서 쳐다봤겠지. 지랄 부리지 말고 가자."
"재수 없게..."
영민은 저에게 쏘아붙이는 여학생을 말렸고, 옆에 있는 남학생은 익숙한 일인지 영민의 말에 동의했다.
아, 나 존나 이상해 보였겠지.
'임영민, 너 쟤 알아?', '아니.'
머릿속에 영민의 대답이 계속 맴돌았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뭣도 모르고 들어선 골목길에서 고등학생 무리를 마주쳤다.
얼마 전 구매한 (곧) 우리 학교 교복과 같아서 눈길이 갔는데, 그 사이에서 키가 큰 빨간 머리 남학생이 내 시선을 더 오래 끌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임영민이 흔한 이름도 아니고, 동명이인인데 닮기까지 했단 말야? 그런 우연은 있기가 힘들 것이다. 그럼 임영민이 나 모른 척한 건가? 아니면 진짜 기억을 못하는 건가.
그래, 임영민은 나 싫어하니까 모르는 척했을 수도 있다.
아님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못 알아볼 수도 있지. 둘 다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파마로도 모자라서 새빨간 머리, 무리에 있는 여자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보였다.
무엇보다 교복 입은 채로 담배까지...
내가 알던 임영민은 늘 단정한 검정 머리에, 나 말고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숙맥이었는데.
영민이 변한 만큼 나도 변했을까, 못 알아볼 만큼.
-
"부산에서 전학 온 김여주라고 해. 잘 부탁할게."
전학이라고 별거 없다. 주변에 앉은 아이들이랑 어색한 자기소개나 몇 번, 짐작했던 사투리 한 번만 들려 달라는 질문 몇 번.
반에는 어제 골목에서 마주친 무리 중 한 사람이었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알아봤는지 어, 너? 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쪽팔려서 못 알아보길 바랐는데.
근데 나 진짜 임영민이랑 같은 학교인가 보네.
수업에는 별 흥미 없는 듯 휴대폰을 만지는 아이를 보고 있다 드는 영민의 생각에 고개를 젓고 칠판을 바라봤다.
1교시 수업이 끝난 뒤 쉬는 시간,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와 얘기하던 중 임영민이 들어왔다. 이제 막 등교하는 건지 가방을 메고. 우리 같은 반이었구나.
눈이 마주쳐 순간적으로 누가 봐도 티 나게 눈을 피해버렸다. 나 왜 임영민한테 쫄아. 작게 눈으로만 영민을 좇았다. 친구로 보이는 듯한 그 남자아이의 뒷자리로 가 앉았다.
"너 오늘 안 온다며."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해서."
"웬일. 근데 전학생 봤냐? 구라 아니라니까. 나 존나 놀랐잖아. 반가워서 인사도 했다니까."
"그러게. 신기하다."
또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먼저 눈을 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영 속마음을 읽을 수 없는 눈빛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 방금은 자연스러웠겠지.
-
같은 반이라고 해 봤자 딱히 영민과의 접점은 없었다. 영민은 거의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서 잤고, 그 광경이 익숙한 듯 선생님들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앞자리의 친구와 놀았고 점심 때에는 어제 본 무리의 친구들과 밥을 먹는 듯했다. 그리곤 정규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비웠고.
무엇보다 임영민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 보였기에 말 한 번 못 붙여 봤고, 말은커녕 쳐다보기도 고민이 됐다. 어제처럼 괜한 오해를 받을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예전과는 다른 위압감 따위 때문에 쉽게 다가갈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영민이 자신을 먼저 알아봐 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전학 온 첫날부터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꽤 동네가 멀다 보니 버스를 혼자 오래 타고 있었다.
내린 후에 혼자 걷는데도 계속 임영민 생각이 났다. 새 학교에 대한 설렘은 무슨. 어제부터 하루 종일 임영민 생각 중이었다.
생각보다 길이 어둡다. 아무래도 밤길을 혼자 걷다 보니 문득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는 느낌이다.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걸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진 않아 그대로 계속 걸었으나 뒤쪽에서 발소리 하나가 들렸다.
아냐, 가는 길 가는 선량한 시민일 거야... 뛸 자신은 없어서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아, 따라오는 거 같아. 큰 길로 갈걸.
어느새 영민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의미 없는 자책을 해대는 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코너 돌면 다른 사람이 보이기를 바라면서.
죽으란 법은 없는지 코너를 돌자마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야, 임영민!"
"?"
"너 여기서 나 기다렸냐, 내가 괜찮다고 했..."
"김여주?"
생각나는 남자 이름이 하나라 불렀는데. 진짜 임영민이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영민의 손목을 쥐고 뒤를 돌아 내가 빠져나온 골목을 한 번 확인했다.
내 뒤에 있었던 걸로 보이는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던 길을 갔고, 그 모습을 본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아?"
"어, 어. 고마워."
임영민은 내가 주저 앉자 당황한 듯 그 큰 눈을 몇 번 굴리다 몸을 숙여 괜찮냐고 물었다. 건네오는 말에 고개를 드니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주었다.
"집이 어딘데. 데려다줄게."
"괜찮은데..."
"안 괜찮아 보여서. 너 지금 혼자 못 갈 거 같아서 그래."
임영민은 여전히 예쁜 얼굴만큼 여전히 다정했다.
"전학은 왜 온 거야?"
"아빠 회사 일 때문에. 부산 토박이어서 이사하기 싫었는데."
"그렇구나."
"근데 오길 잘한 거 같다."
"...학교는 어땠어."
"그냥, 뭐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아. 넌 야자 안 해?"
"어, 예체능이라. 운동하거든."
"아, 나 집 여기야."
"여기?"
"응. 데려다줘서 고마워, 도와줘서도 고맙고. 진짜 너 때문에 살았어."
"고맙긴 뭘."
영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감사 인사에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살살 올라간다.
그걸 보는 내 얼굴도 아마 웃고 있을 것이다.
"진짜 고마웠어. 너도 집에 조심히 들어가. 내일 학교에서 보자."
"잘 가, 안녕."
씻고 침대에 누워 좀 전의 일과, 영민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애매한 대화였다. 딱 반에 전학 온 전학생과, 그냥 반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화였다.
날 싫어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랬으면 나를 도와줬어도 집까지 데려다주진 않았을 거니까.
이름도 같고, 고향도 부산인데. 임영민은 날 기억 못하는구나. 괜히 서러워 눈물이 찔끔, 아주 찔끔 고였다.
-
임영민과 나는 부산에 살 때, 자그마치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였다. 우리 둘은 2 학년 때부터 5 학년 때까지 쭉 같은 반이었고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주야..."
"뭐고, 니 또 왜 우는데. 눈탱이는 밤탱이가 돼가지고."
"내 너무 아프다..."
"또 누구한테 맞고 왔는데. 빨리 앞장 서라, 빨리."
초등학교 남녀 친한 친구 사이라면 흔히 있던 관계 정도였다.
부스러기 시절 임영민은 똘망한 눈을 비롯해 오목조목 크고 예쁜 얼굴을 가졌었고, 키는 나보다 작았다. 물론 5 학년쯤이 돼서는 비슷해졌었지만.
아무튼 덩치도 작고 성격도 순했던 영민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교 친구, 같은 학원 형, 심지어는 동네 동생한테까지 만만하단 이유로 한두 대씩 맞고 다녔다.
5 학년이 되어 영민은 내가 아닌 남자아이들과 유독 더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고 나도 물론 여자아이들과 따로 잘 지냈다.
덩치가 조금이라도 크며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되었고, 영민은 어디 가서 맞고 오지도 않았다.
당연히 영민을 지켜 줄 일도 줄었고, 그런 영민을 보며 아들 키워낸 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었다.
"야, 김여주."
"왜, 인마. 또 시비 걸면 뒤진다."
"그게 아이고... 미안."
"뭐가 미안한데."
"니한테 소리 안 지를게, 욕도 안 할게."
"니 내 싫어하제. 요즘 진짜 왜 그러노."
"안 싫어한다."
"싫어하잖아. 졸라 시비만 걸고, 좀만 짜증 나면 막 욕하고 옛날처럼 내랑 둘이 놀지도 않고..."
"좋아한다."
"어?"
"내 니 좋아한다고. 좋아해서 그렇다고."
그 이후로 나는 영민을 피했다. 영민은 내가 좋다고만 말했지 사귀자고 말한 것도 아니고, 자기 마음을 받아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여자로서 좋다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냥 피했다. 피해야 할 것만 같았다.
몇 년 내내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영민의 입에서 나온 '좋아한다.' 라는 말에 마주하고픈 자신이 없었다.
어린 마음에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영민은 이제 정말 나를 싫어하는 듯 아예 나를 생까기 시작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지 6 학년 때는 다른 반이 되었고, 영민은 나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촐업과 동시에 서울로 이사를 가버렸다.
중학교 1 학년 때까지는 간간이 친구들 덕에 영민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나 먼저 물어보진 않았다.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말도 안 하고 가버리냐. 영민을 생각하면 서운한 감정이 들었고, 화가 났다. 먼저 피한 건 나였는데.
생각해 보면 나도 임영민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의 내린 것은, 임영민이 내 첫사랑이었다는 것이다.
-
다음날 영민은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기운이 빠졌다. 어제 하루 종일 임영민 생각한 것도 모자라, 자기 전엔 눈물도 짜냈는데 정작 당사자는 보이지도 않는다.
임영민이 나랑 같은 반이 된 게 맞나? 혹시 내가 꿈이라도 꾸나?
그래도 오늘도 임영민 때문에 새 학교생활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학교 적응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그때 걔 맞네."
"야, 좀 조용히 말해라. 다 듣겠다."
"들으면 어때. 학교에서 또 보니까 더 재수 없다."
골목에서 시비를 걸던 여자아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 무리를 빤히 쳐다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사람 무안하게 해야 하나.
급식실 가까운 자리에서 앉은 무리의 대화 소리는 나에게까지 다 들렸고 아닌 척, 못 들은 척 고개를 푹 숙이고 밥만 먹고 있었다.
짧은 교복 치마에 누가 봐도 화려하고 예쁜 얼굴을 한 여자아이의 따가운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기가 죽었다.
정규 수업은 물론, 당연 야자가 끝날 때까지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영민을 어제와 비슷한 시각 하굣길에서 볼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 봤던 곳이 아니라 내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다.
"어?"
"나도 이 시간쯤 집 들어가거든, 근데 너 여기 내릴 거 같더라고. 같이 가자."
"너 오늘은 왜 학교 안 왔어?"
"왜. 기다렸어?"
"아니, 안 보이길래."
"기다렸으면 갈걸 싶었는데."
"뭐래."
정확히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더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금 만났으면 됐으니까. 집까지 가는 내내 길게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같이 걷는 게 몇 년 만이더라.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
'임영민이 나 기억 못하면 어때. 이렇게 다시 친해지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으나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그렇다니까. 존나 짜증 나."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임영민이랑 친해지지도 못할 건데."
"왠지 재수 없더라니까. 걔가 임영민 보는 표정이 딱, 무슨 얼빠진 것처럼."
"임영민 좋아하는 여자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그건 그래도. 아, 아무튼. 같은 반이라는데 걔가 존나 눈치 없이 꼬리 치고 그러진 않겠지?"
"설마. 나같음 너네 무서워서 임영민한테 말도 못 걸 거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화장실에서 들은 대화에 칸을 박차고 나가서 말하고 싶었다.
그런 걱정 안 해도 되거든, 임영민은 어차피 나 기억도 못해. 라든가... 어차피 아는 척도 안 해 줘. 라든가.
오늘 임영민은 학교에 나왔다. 하지만 나랑 인사는커녕 눈 한 번 마주쳐 주지도 않았다.
무슨 단기기억상실이라도 있나? 금붕어냐? 어제 버스 정류장에서까지 기다려 가면서 나 데려다줬으면서.
영민이 학교에 나와서 반가운 마음은 어디다 갖다 버리고 괜한 오기가 생겨 더 이상 한 번도 영민이 앉아 있는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임영민은 오늘도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렸다.
화가 나진 않았다. 조금 어이가 없었는데, 영민에게 학교에선 왜 인사도 한 번 해 주지 않냐고 물어보진 못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영민이 반가워 대답해 주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 학교에서 굳이 일 있는 거 아니면 서로 친구들도 있고, 꼭 얘기 나눠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
벌써 임영민이 집에 가는 길을 함께 해 준 지 어느새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영민이 학교를 나오지 않는 날도 꼭 버스 정류장에서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별다른 불만도 없다. 영민은 내 생각보다 더 학교에서 영향력이 큰 아이였고, 영민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은 수도 없이 많아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민의 옆에 딱 붙어 다니던 ㅇㅇㅇ은 조금이라도 영민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여자아이들을 내치고 괴롭히고, 뒤에서 욕하기 바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냥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같이 걸을 때면 이렇게까지 다정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무슨 생각하는데 그렇게 멍을 때려."
"아."
저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이는 영민이었다.
"다 왔잖아. 들어가."
가까운 임영민의 얼굴에 심장이 뛰어댔다.
"어... 잘 가. 내일은, 아니다."
"뭐?"
"아냐, 조심해서 가."
내일은 학교에 나오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학교에선 임영민에게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처지라 앞에서 학교 얘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학교만 빼면 이렇게나... 꽤 좋은 사이 같은데.
사실 학교 얘기를 꺼내려면 왜 학교에서는 인사도 한 번 하지 않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라도 있는지 물음을 먼저 던졌어야 했다. 자존심 상하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임영민은 다음날 학교에 나왔다. 아는 척 안 해도, 거의 자는 모습만 봐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잖아.
완전히 임영민을 짝사랑하는 중이다. 완벽한 을. 어릴 때 임영민의 여린 마음을 애써 무시한 벌이라도 받는 것 같다.
임영민을 다시 마주친 뒤로 매일이 거의 조울증처럼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오늘도 그렇다.
영민의 모습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가도 곧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여자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웃고 떠드는 걸 보고 있자니 땅 끝까지 우울해졌었다.
그래서 우울해진 상태로 영민과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원래도 같이 걸으면서 쉴 새 없이 떠들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에 더 조용하고 어색했다.
빨리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다 왔네. 나 들어가 볼게."
"어? 어. 잠시만."
그렇게 생각하다 집에 도착해 빨리 들어가려 했는데, 임영민이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웠다.
"왜?"
"그게..."
영민은 자신의 두 입술을 물고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주야."
"응."
"나 너 좋아해."
조심스레 저의 두 손으로 내 두 손을 꼭 잡아 오는 임영민이다.
수명이 다 했는지 집 앞 가로등이 깜빡였다.
-
영민의 고백에 어버버거리다 어, 저기, 어... 만 반복하던 나는 '왜?' 라고 물었고, 그 물음에 '그냥.', 예쁜 얼굴로 웃어 보이며 손을 놓는 영민이었다.
좋아서 날아가야 했을 상황이었으나 사실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임영민이 나를 좋아한다고 하기엔 난 임영민 번호도 모르고, 따로 연락한 적도 없다. 썸 탄다고 하기도 이상했다.
임영민은 나를 기억도 못하고, 학교에서도 썸은커녕... 눈물이 날 것 같아 바보처럼 '고, 고마워. 내일 봐!' 하고는 급하게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제 그렇게 집에 들어간 탓인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임영민은 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아니, 아무리 여태 학교에서 모르는 척을 했다지만 너 나 좋다며.
엎드린 임영민을 뚫어져라 봤다. 종일 처자기만 하고... 나한테 장난친 거야? 어장 친 건가? 임영민 너 나 가지고 놀아?
"여주야, 영민이가 그렇게 잘생겼냐. 선생님이 영민이보다 못생겼어도 수업 중인데 앞 좀 봐 주지."
아, 쪽팔려.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영민이 나를 쳐다본다. 뭘 봐, 인마. 오늘은 너가 진짜 너무한 거잖아.
"김여주, 너 진짜 임영민 봤냐?"
"진짜라니까. 아까 수업 때 쌤이 공개 처형 했다고. 우리 반 애들 다 알아. 임영민도 알 걸?"
"너 뭐야? 임영민 좋아해?"
급식실에 가지 않았다. 쪽팔리기도 하고, 밥이 넘어갈 리가 없다.
엎드려서 자는 척이나 하고 있었는데 ㅇㅇㅇ이 우리 반 아이와 친구 몇을 데리고 반으로 찾아왔다.
어깨를 툭툭 쳐 부르더니 하는 말이 아까 수업 때 얘기다.
"대답을 해, 멍청한 얼굴 하지 말고. 너 임영민 좋아하냐고."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왜 그렇게 자꾸 임영민 쳐다보는데. 아님 뭐 싫어하냐?"
"아니라니까 그러네."
"혼자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존나 불쌍하니까 그렇게 티 좀 내지 마. 임영민이 너같은 거 이름이나 알겠어?"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나같은 게 뭔데, 임영민이 뭔데. 임영민이 뭔데 내 이름을 몰라. 재밌는지 낄낄거리는 목소리에 대답했다.
"알아."
"뭐?"
"임영민 내 이름 안다고. 나 임영민이랑 친해."
웃음소리가 가신 ㅇㅇ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친하다고? 네가?"
예상하지 못한 나의 말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야, 저기 임영민 온다."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 너 분명히 임영민이랑 친하다고 했다."
개같은 타이밍. 고개를 돌리니 영민이 혼자 매점에 다녀오는 길인지 한 손엔 초코우유, 한 손엔 빵을 들고 있었다.
분명 나보고 좋다고 한 건 임영민인데 왜 내가 이딴 상황에 처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임영민은 왜 하필 이딴 타이밍에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영민아, 영민아. 너 좀 와 봐."
임영민은 ㅇㅇㅇ의 부름에 가까이로 왔고 곧 나와 마주쳤다. 상황 파악을 하는 건지 자신의 친구들과 나를 번갈아 보던 영민은 곧 표정이 굳었다.
"뭐 하는 건데."
"야, 너 얘 알아?"
"..."
고개를 숙였다. 지금 내가 왜 작아져야 하는 건지.
"너 얘 이름 알아? 얘가 너랑 친하대. 진짜야?"
"반에서 둘이 인사도 한 적 없어. 쟤 망상 있는 거 같다, 소름."
"임영민 혹시 숨겨둔 여친 그런 거냐?"
제발, 임영민. 모르는 척하지 마, 제발. 제발.
"얘가 어떻게 내 여자 친구냐."
아까처럼 낄낄대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나 망했네.
"그렇지? 야, 여주야. 너 어제 임영민 꿈이라도 꿨나 보다."
"그냥 내가 혼자 김여주 좋아해."
담담하게 말하는 임영민이다.
그러곤 매점에서 사 온 것들을 내 책상에 올려 놓는다.
좋다고 말해 줘
-
네... 뭘 썼는지...
노래 가사에 충실한... 글이었습니다...
그냥 이 노래가 늘 어떤 내용인지 상상하면서 들었는데,
갑자기 영민이가 떠오르길래 단편으로 딱 적어 봤어요.
영민이가 여주를 기억하는지 아닌지는 영민이만 아는 비밀입니다. ㅎㅎ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