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바람개비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듯한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전 나에게 마지막으로 만들어주셨던 그 바람개비 하나에 마치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듯
어딜가든 품안에 안고 다녔던것같다 동네 사람들에겐 동정의 대상,친구들에겐 그저 바보같은 아이 지금 생각해보면 고남순 인생에서
가장 흑역사이면서 어린 나이에 스스로 슬픔을 달랠 유일한 방법이 아니였나 싶다
얼마전 우연히 창고를 정리하다가 쾌쾌묵은 상자들 속에서 그 바람개비를 발견했다 어릴땐 그렇게도 품고 다녔던건데
나도 사람인지라 커가면서 점점 관심이 줄더니 이내 아버지의 빈자리가 줄어들듯 바람개비 역시 내 기억에서
그저 어릴때 가지고 놀던 종이 장난감으로 남아버렸다 바람개비에 붙어있는 먼지를 후후 불다가 뒤쪽에서 나는 인기척에
몸을 돌리자 언제 온건지 오늘도 어김없이 한쪽손에 축구공을 든체 서있는 녀석이 보인다
이 녀석으로 말할것같으면 이름은 박흥수,바람개비가 내 유년시절의 유일한 친구였다면 이 녀석은 그 후반 그러니까 내 청소년시절을 함께한 친구다
축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통에 학교에서도 축구에 미친놈으로 유명하더니 이제는 곧 국가대표 선발전인가 뭔가에도 도전한단다
.
밖으로 나오자 더럽게도 추운통에 옷을 여며도 안으로 한기가 파고든다 이런날에 무슨 축구냐는듯 흥수 녀석을 한번 쓱 쳐다보자
[ 월래 이런날에 드리블이 좀 잘되거든]라며 빨개진 코를 비비고선 실없이 웃는다
[뭐래 미친새끼]
코웃음을 쳐주고 서있다가 이왕 나온김에 공이나 차볼까하는 생각에 녀석에게 다가가자 약올리듯 멀리 공을 차며 가버린다 고남순한테서
승부욕을 빼면 말이 되나 .질수 없다는 생각에 어느세 추운지도 모르고 한바탕 공터를 뛰어다니다가 기어코 숨이 턱까치 차오르고 나서야
지친듯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버렸다 저 자식은 이 힘든걸 뭐가 좋다고 맨날 하는건지
[어때,속이 좀 풀리냐?]
내 옆에 털썩 앉은 녀석이 어깨를 툭툭 쳐오며 물었고 귀찮다는듯 허공에서 손을 몆번 젓다가 고개를 돌려 녀석을 쳐다봤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녀석이니까 아마도 아까 창고 정리하던게 옛 생각이 나서 그랬다는걸 눈치챘나보다
[그래 풀린다 새끼야]
[하여간 새끼,내일 모레 알지? 꼭 와라?]
[뭔데]
[ 무심한 새끼,내일 모레 이 박흥수 인생의 새로운 획을 그을 날도 모르냐?]
[허세는]
녀석의 손에 들려있던 공을 뺏어 던져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또 질수없다는듯 헤드락을 걸어온다 하여튼 새끼
녀석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세 어둑 어둑 해진 하늘을 무심코 올려다보다가 주머니 안쪽에서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미친놈]
무슨 여자친구도 아니고 얼굴 안본지 몆분 됐다고 문자질인지 문자고 뭐고 집에 가서 보자는 생각에 흥수 녀석에서 온 문자를 씹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그리고 나서 아마도 난 문자 생각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체 그대로 잠들었던것같다 마치 내가 창고에 쌓아두고
단 한번도 꺼내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 쓴체로 나를 기다렸을 바람개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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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아 미안하다]
[갔다와서 보자]
시간이 한참 흐른뒤에 그러니까 모든일이 이미 벌어진 뒤에야 나는 문자함에서 녀석이 남긴 문자들을 보았다
그 순간에 바람개비처럼 내 기억에서 희미해져버린 녀석의 축구공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거리다 못해 아프게도 아려온다
내 인생에도 기어이 뭔가를 버려야 녀석과 공평해질수있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버릴껀
.
[고작 학교냐? 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게?]
[내가 지금 버린게..학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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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건 학교가 아니라 너다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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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수가 다리를 다치기전에 상황을 쓰고싶었어요
드라마 보시면 아시겠지만 흥수가 축구를 위해 싸움을 그만두려하다가
남순이한테 다리를 콱.
마지막 흥수의 문자속 미안하다는게 그뜻이예요 너도 소중하지만 축구가 더 소중해서 미안해.
바람개비는 흥수예요,남순이의 기억에서 잊혀져 먼지속에 홀로 남겨진 바람개비
남순이에게 흥수도 결국 상처입고 홀로 남겨진 존재였으니까요.독자분들 제 망글 사랑해줘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