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와 헤어진 후로 걱정하던 옥탑방문제는 내게 문제되지않았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김형태와 마주칠까봐 조마조마해 하며 벌벌 떨었지만 계속 김형태는 집에 들어오지않기때문이다. 나는 생각 이상으로 아무렇지않게 행동하고 있었다. 강의를 꼬박꼬박 들었고, 야우리에서 기타를 들고 홀로 공연했다. 가끔 길거리공연으로 돈이 꽤 모이면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재기하는 습관도 달라지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면 함께 밥을 먹던 김형태, 베이스를 들고 내 옆에서 함께 연주하는 김형태, 계산대위에 은근슬쩍 말보로하나를 얹어놓는 김형태가 사라졌다는것 빼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화구를 챙겨 어깨에 맸다. 친구녀석이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한 터였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약속장소까지 20분정도 걸렸는데, 사실 남은시간은 15분 정도였다.
교수님이 강의를 질질 끄는 탓에 열심히 뛰어야지 간신히 제 시간에 도착할 터였다. 박광선이란 놈이 참 치사하고도 얍삽한지라 내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밥값은 내가 계산하게 될것이란게 물보듯 뻔했다. 두세칸씩 계단을 날듯이 뛰어 대학교 후문을 재빠르게 통과하려했다. 그래, 하려했다.
…됐어요. 저 강의들으러 가야 되요.
밥이라도 먹어, 그럼. 너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됐다고요. 놔주세요, 저 진짜 들어가야되요.
나는 빠르게 움직이던 몸을 멈췄다. 후문에서 옥신각신하는 두사람은 김형태와 그의 애인일 남자였다. 고급외제차 옆에서 손잡고 말다툼하는 남자둘이라면 시선이 집중될만 한데, 후문쪽인데다 점심시간이라 지나가는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김형태는 얼른 남자와 갈라서고 싶은 모양이였다. 날카로운 생김새의 남자는 30대 중반준수한 외모의 남자였다. 김형태의 짐은 옥탑방에 있으니 김형태가 입고있는 흰 티셔츠와 청바지는 남자가 사준것일터였다. 내가 사준 몇천원짜리 싸구려티셔츠와는 달랐다.
나는 그저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다. 김형태와 나는 마주쳐봤자 어색한상황만 만들어질것 같았고, 솔직히 좀 자존심상하기도 했다.
너 아직도 장범준인가 뭔가하는 새끼한테 마음있어?
나는 재빠르게 놀리던 발걸음을 멈춰섰다. 남자의 말이 이해가 되지않았다. 김형태는 나와 헤어지고싶어 하지 않았던가?
…쓸데없는 말 하지마세요. 저 그만 들어가볼게요.
김형태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김형태가 내 쪽으로 걸어들어오는것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왠지 모르지만 들킨다면 내가 엿들은것 같은 상황처럼 보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였다. 김형태가 지나가고 잠시후 외제차가 부드러운소음을 내며 사라졌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않았다. 지금와서 김형태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봤자 달라지는게 있을까?
결국 나는 박광선과 만날수 없었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