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개연애의 시작
한가롭게 임영민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감흥이 없는 음악방송을 무의미하게 쳐다봤다. 부드럽게 허밍을 하며 귤을 까던 임영민이 내 입에 귤을 넣어줬다. 아 심심해. 모처럼 휴가받아서 쏜살같이 임영민의 집으로 들어왔는데 애석하게도 오늘은 음악방송을 하는 주말이었다. 영민아, 영민아.
"왜?"
"나 좀 봐주면 안돼? 음악방송이 그렇게 재밌어?"
"아니. 재밌지는 않아."
"근데 왜 봐?"
"누구한테 내 노래를 줄까 탐색하고 있지."
"..그래."
음악방송을 하는 날이면 임영민은 반드시 챙겨봤다. 물론 나도 임영민이 음악방송을 왜 보는지 잘 알고있다. 그래도 나 좀 봐달라고 물어본건데 역시나 임영민은 똑같이 대답한다. 우리나라에서 작곡을 제일 잘 하고, 작사까지 잘 하는 임영민은 아무래도 일 중독인 것 같다. 물론 자신이 만든 노래를 최고의 선택으로 최고의 가수에게 주어 최대의 역량을 끌어내는게 목표인 줄은 안다마는, 여자친구인 나는 섭섭한걸 어떡해. 어떡하긴 어떡해, 남자친구 돈 버는 거 보고 있을 수 밖에.
"영민아, 영민아."
"응."
"쟤네가 예뻐 내가 예뻐?"
"당연한 걸 물어."
"뭐가 당연해?"
"쟤네는 내 미적기준에 1도 다가서지 않는다니까. 내 미적기준은 김서연이라서 김서연아니면 안 예뻐."
"..흐흥."
"아. 우리 엄마랑 장모님 빼고."
"임영민 너무 좋아. 어떡하지?"
내가 섭섭한 걸 느낀 임영민은 뻔한 질문에도 뻔하지 않은 대답을 해온다. 그런 임영민이 너무 사랑스러워 벌떡 일어나 꼭 끌어안았다. 물론 덩치가 나보다 훨씬 큰 임영민 덕에 곧장 내가 안긴꼴이 되었지만. 임영민은 여전히 시선은 음악방송으로 고정한채 내 등을 쓸어내렸다. 어쩜 임영민은 피부도 좋지? 여배우인 나랑 별 차이가 없다. 좋은 임영민 피부에 뽀뽀나 해줘야겠다. 물론 임영민 피부보다 임영민 자체가 더 좋다.
"서연아."
"응?"
"전화와. 매니져 형아니야?"
"헐! 맞네. 무슨 일이지?"
임영민이 전화왔다고 알려주기에 전화를 받았더니 매니저오빠가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다. 너 어디야! 어디긴요, 나 영미니 집인데.너, 지금 바로 인터넷 확인해. 20분내로 데리러 갈테니까 준비하고. 왜요? 뭔데? 인터넷확인이나 해.
급하게 임영민의 노트북을 끌고와 켰다. 내 옆에서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임영민 뭔일인가 싶어 내 옆에 더 바싹 붙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포털사이트에 도배된 나와 임영민의 이름이였다. 아, 스캔들 터졌구나.
"영민아! 우리 스캔들 터졌어!"
"그러네. 근데 너 민낯도 예쁘네."
"그래? 근데 영민아 너 이 기사에 있는 사진 잘 나오긴 했는데, 실물이 더 나아. 카메라가 네 실물을 못 담아."
"나 잘생겼어?"
"응! 그러니까 카메라가 못 담는 너를 내눈에만 담지!"
"남자친구가 작사한다고 라임하는 것 봐. 예뻐 죽어."
인터넷 기사에 뜬 임영민과 내 기사를 보는데 계속 휴대폰이 터질듯이 윙 윙 거렸다. 아 거슬려. 그냥 폰 새로 한 개 만들까. 그러면면 임영민 전화번호만 저장해야지. [단독 취재] 배우 김서연, 작곡·작사가 임영민과 연애…. 배우 김서연(27)과 작곡·작사가 임영민(28)은 25일 12시경 만나 차 안, 카페, 음식점을 드나들며 데이트를 즐겼으며….
"아휴. 나 대표님한테 혼나겠다. 잘갔다 올게. 나 갔다올 동안 집 지키고 있어."
"그래. 혼났다고 울지말고. 다녀와."
임영민의 볼을 잡고 찌인하게 뽀뽀를 쪽쪽 해주고 나왔다.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돈 많이 버는 임영민은 연예인들이 사는 아파트에 살았다. 그리고 그의 아랫집은 우리집이고. 어쨌든, 그래서 기자들이 올 수가 없었다. 지하주차장으로 가니 이미 대기되어있는 차량이 보였다. 차에 타자마자 매니저오빠가 잔소리를 해온다. 공개 데이트는 자제하라 하지 않았느냐, 제발 대낮에 데이트는 자제해달라 하지 않았냐는 등. 물론 임영민은 밤에 봐야 더 섹시하긴 한데, 낮에도 잘생긴 걸 어떡해. 나만 보기 아까워서 그랬는데.
"조심 좀 하자. 서연아. 어?"
"넹."
"그나저나 너 대중들 반응은 봤어?"
"아뇨? 영민이랑 제 사진만 봤죠. 실물보다 못생기게 나와서 울뻔."
"지금 장난이 나와?!"
"아뇨..지금 반응 보러 갈게요.."
대충 네네. 하면서 휴대폰을 들어 포털 사이트에 임영민과 내 이름을 검색했다. 일단 기레기들이 쓴 기사들은 패스. 한참 글을 뒤지다가 다른 포털 사이트로 연계된 게시글에 들어갔다. 제목이 임영민 작곡 작사할 때 김서연 노렸네. 하는 글이어서 궁금한 걸!
[임영민 작곡 작사할 때 김서연 노렸네]
댓글 514개 추천 18745개 조회수 472164
임영민이 작곡 작사한 노래 가사임
너는 연예인이야
나는 연 애인이지.
임영민 작곡가 데뷔하고 초창기에 만든 노래임. 처음에 이거 들었을 때
그냥 연이라는 사람 말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김서연에서 연 말하는거네;
익명1 헐; 미쳤다. 소름 임영민 사랑꾼이네
익명2 임영민 천재..
.
.
익명56 임영민 실물 진심 잘생겼던데; 연예인이나 모델 뺨침. 키도 큼;
ㄴ 익명58 사기캐인듯ㅇ..
ㄴ 익명61 나 실물보고 감탄했음..
[임영민 다른 노래도 있음]
댓글 492개 추천수 16812개 조회수 513240
이노래도 임영민이 작곡 작사한건데 예전에 들었을 때 한자가 뭔지 몰랐는데
기사뜨고나니까 알겠네
좋아해서 연애(愛)해
↑가사는 이런데
좋아해 서연 사랑(애愛)해
↑박자는 이럼
이거 아님;? 빼박인거 같은데;
익명1 개소름
익명2 와....내가 김서연이면 임영민한테 반함
.
.
.
익명261 나 얘네랑 대학교 같이 다녔는데 김서연 데뷔 전 부터 둘이 알고있었음. 둘이 과는 다른데 친한 선후배였음 학교 인증함
ㄴ 익명262 헐 둘이 언제부터 사귄거야?
ㄴ 익명267 ㄹㅇ? 대박이네
"오빠. 임영민이랑 나 반응 좋은데요? 공개연애 합시다!"
"조용히 해. 대표님이 안그래도 그 얘기 하셨어"
"나이스!"
대부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비주얼 적으로는 어디 안꿀린다느니, 나는 처음 알게 된 대학 동문이라는 사람이 학교 인증까지 해주며 나와 임영민의 러브스토리를 풀어주니 대중들의 반응은 핫 할 수 밖에. 더군다나 임영민이 작사할 때 가끔씩 저렇게 내 이름을 사용해서 노래에 넣곤 하니 빼박인게 들통났다. 근데 나는 저 가사들 한 번에 못 찾았는데. 나는 임영민이 친절하게 알려줘서 알았는데,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잘 알아. 나도 이제 임영민 가사 해석해야겠다.
"..대표님..하하..?"
"후..김서연."
"..네.."
"내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네 성격에 헤어지라고 하면 안 헤어질 거 알아. 그리고 이미 다 들통 난 걸 어떡하냐. 그냥 공개연애 해."
"헐!"
"또 좋다고 실실 웃는 거 봐. 임영민은 상관없대?"
"네! 물론이죠!"
적당히 서로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예쁘게 연애하라는 대표님의 말에 네!! 하고 대답하고 대표실에서 나왔다. 예전에 임영민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영민아, 만약에 우리가 스캔들나면 어떻게 할까? 하고 물었더니 공개연애 하는 거지 뭐. 공개적으로 연이 너를 愛한다고 말하는 거야. 헤어질 생각만 하지마.
-"응. 서연아."
"영민아! 나 대표님 만나고 왔어. 나 지금 너네 집 간다?"
-"응. 대표님이 뭐라고 안하셨어?"
"응. 예쁘게 사귀래! 보고싶으니까 빨리 갈게 영민아."
-"얼른와. 보고 싶어 서연아."
빨리 가자며 재촉하는 나의 칭얼거림에 매니저오빠는 한숨을 쉬며 알겠다고 했다. 헝헝. 오늘 하루종일 임영민 얼굴 보고있으려고 했는데 의도치 않게 1시간이나 못 봐버렸어. 엉엉. 집에 가자마자 임영민 품에 얼굴을 묻어야겠다. 물론 우리집이 아닌 임영민 집에서.
2. 그들의 연애방식
임영민과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다. 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학교에서 잘생긴 3학년 남자와 예쁜 2학년 여자로 서로의 안면만 알았던 사이였다. 나도 모르게 임영민이 내 옆에 지나갈 때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괜히 옆에 있던 내 친구에게 눈웃음을 쳐봤는데 임영민은 그런 나를 1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오기였는데 임영민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임영민을 좋아해서 끼부린 것을.
결국 안되겠다 싶어 임영민의 대학교에 입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나는 연극영화과가 아니면 대학을 가기가 힘들었는데 임영민이 입학한 대학교는 연극영화과가 유명하기도 하고 실기 100% 로 뽑는 것 이어서 매우 자신감이 충만했다. 마침내 나는 임영민의 예대 후배로 입학했다. 입학하고 두 달 쯤 계속 괜히 임영민에게 말도 걸어보고 은근슬쩍 눈웃음도 쳤는데 넘어오지 않았다. 강철 철벽이었다. 철벽이 너무 두꺼워서 나는, 철벽을 부수는 방법 보다 철벽을 넘는 방법을 생각했다.
한 달쯤 임영민에게 관심이 없게 행동했더니 도리어 임영민이 나에게 슬금슬금 접근했다. 그리고 우리는 남모르게 캠퍼스 커플이 되었고 아무도 몰래 사귀었다. 내가 배우가 될 걸 아는 임영민은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비밀연애를 권유했고 임영민의 말이라면 끔뻑 죽는 나는 무조건 알겠다고 했다. 20살 때 처음 그와 사귀고 모든 것을 그와 처음 했다. 사귀며 그의 군대도 기다려보고 잠깐 헤어지기도 했지. 재작년 여름에 3개월 쯤 헤어졌었다.
"뭔 생각해?"
"영민이 생각.."
"내가 앞에 있는데 내 생각을 해?"
"응. 나는 1분이라도 영민이 생각을 안 하면 안 되는 병에 걸렸어."
"나도 1초라도 김서연 생각을 안 하면 안 되는 병에 걸렸어."
"진짜? 어떻게 하면 그거 낫지? 나을 수는 있대?"
"아니. 잠시 완화해줄 수는 있대."
"방법이 뭔데?"
"이리와"
임영민이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집안의 작업실에서 곡 작업을 하는 임영민에게 다가가 그의 무릎에 앉았다. 임영민은 내가 안기 편하게 자세를 잡더니 내 허리를 꼬옥 껴안고는 내 어깨에 턱을 묻었다. 내가 안아줬는데 또 안긴꼴이 됐네.
"영민아. 근데 왜 사랑노래밖에 안써?"
"어?"
"아니 막, 요새 작사가들은 되게 현대사회에 불만있는 내용도 쓰고, 누구 저격하는 내용도 쓰잖아. 근데 너는 맨날 사랑이야기야."
"그런가."
"응. 아, 근데 이별 노래 적은 적 있다! 재작년에 나온 노래였나?"
"아. 그거."
"너 사랑노래밖에 못 쓰는 병에 걸린거야?"
"..음. 그럴지도?"
"응?"
"내 뮤즈는 너잖아. 너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그럼 달달한 노래밖에 안 써져. 가사는 너한테 하고 싶은 말 적으니까 사랑이야기고."
"..그럼 이별은?..아."
"..그때 우리 헤어졌었잖아. 내 뮤즈가 사라졌는데 무슨 노래를 만들어도 슬프지 뭐."
"영민아."
"응? 왜?"
"나 너한테 또 반해버렸어. 큰일이야.."
부끄러워서 눈을 내렸더니 낮게 웃은 임영민이 고개를 숙여 내 눈을 맞춰왔다. 눈알을 굴리는대로 굴리는데 임영민은 계속해서 내 눈을 좇았다. 눈알이 계속 좇기고 좇기다 결국 임영민에게 얼굴이 덥석 잡혀버렸다. 그리곤 내 얼굴 이곳저곳에 뽀뽀를 퍼붓는 임영민에게 간지럽다고 하니 이번엔 깊게 입을 맞춰온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한참을 입을 맞추다 서서히 떨어졌다.
"영민아. 이런 신성한 작업실에서 우리가 이렇게 붙어있어도 되는 거야?"
"응. 내 작업실은 너한테 작업 걸려고 만든 거야."
"..우리 방에 들어갈까?"
"그래."
나를 들어올린 임영민은 뚜벅뚜벅 방으로 걸어갔다. 근데, 영민아 지금 만들고 있는 노래는 무슨 노래야? 누구한테 주는건데? 음. 그건 비밀. 나중에 다 만들어지면 너부터 들려줄게. 그래, 근데 영민아 나 부끄러우니까 불 꺼줘. 알았어.
3. 연애(姸愛)
녹음작업 아니면 집 작업실에서 곡 작업을 하던 임영민이 이번엔 자신의 회사에 있는 작업실로 갔다. 임영민이 나에게 1시간 뒤에 오라길래 알겠다고 하고 예쁘게 준비했다. 물론 임영민은 내가 화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간단하게 피부화장만 했다. 내가 이렇게 해도 임영민은 나보고 예쁘다고 할 테니까. 내가 누구한테 예쁘게 보여야해. 임영민한테만 예쁘면 됐지. 뭐.
임영민의 회사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입구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를 알아봤다. 임영민의 소속사 가수의 팬이거나, 임영민의 팬 둘 중에 하나일 거다. 임영민과 내가 공개연애를 한지도 1년이나 넘어가는데 여전히 임영민의 곡은 인기가 많았고, 날이 갈수록 음원판매 매출이 상승해 음원계의 부동항이라 불렸다. 회사로 들어가니 데스크언니가 나를 반겨줬다. 영민씨 지하 작업실에 있어요. 나도 아는데, 그냥 아 감사해요! 하며 웃어줬다. 내가 여기서 틱틱거리면 이 언니는 나를 씹기에 모자라 임영민을 씹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욕먹어도 내새끼는 욕먹으면 안 되지.
"영민아! 나왔어."
"왔어? 뭐야. 오늘은 또 뭔데 예뻐?"
"내가 예쁜게 원데이 투데이야? 나 떨리게 맨날 그 소리야."
내가 떨린다고 하니 임영민은 나는 너가 걸어오는 소리만 들어도 떨려. 하며 받아친다. 이러다가 당장 작업실에서 나와 임영민의 집으로 향할 것 같아서 임영민에게 노래나 들려달라고 했다. 임영민은 아! 하며 자신의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임영민은 노래를 틀고 내 옆에 와서 앉아 내 손을 잡았다. 흐음. 멜로디는 일단 완벽해. 곧장 가이드 녹음을 한 임영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에 지금까지 나온 노래들을 임영민이 불렀으면 여자팬들은 더 많이 생겼겠지. 다행이다.
'내안에 너 있으니까
내 아내가 되어줘'
'너에게 손에 물을 안묻히겠다는 말은 못 해.
대신에 내 심장에 너를 묻을게.'
'좋아해 서연 애해.'
가사를 음미하다 놀라서 임영민을 쳐다봤다. 임영민은 내 눈을 보며 나와 깍지를 낀 자신의 손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우리 둘의 손에는 똑같이 생긴 반지가 정확히 4번째 손가락에 입주해있었다. 무작정 임영민에게 와락 안기니 임영민은 그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너 이제 아무대도 못 가 서연아. 안 갈거야, 내가 갈 곳은 임영민인데 어딜가 내가.
아무래도 임영민을 신고해야겠다. 혼인신고.
연애(예쁠 연硏 사랑 애愛)
예쁜 연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