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밥을 먹을수 있을거 같진않았다. 함께 먹는 동료들을 먼저 보내곤 자리로 돌아왔다.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자꾸 우지호의 다문 입술이 생각났다. 더 피곤해지는 것만 같았다. 일이나 해야지, 일. 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텅빈 사무실 안에 울렸다. 보고서에 몇 줄을 채 써내려가지도 못한 채로 드르륵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발신인.
[ 우지호
퇴근후에, 얘기 좀 해. 오전 11:30]
-
무슨 생각으로 우지호가 그런 문자를 보냈는지는 몰라도, 나는 도저히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다른 할 얘기도 없었고, 더이상 그와 엮인다는 것이 껄그러웠다. 그래서 그 몰래 여섯시가 되자마자 바리바리 챙겨서 나온거였는데.
"뭐 먹을래."
내 옆에는 우지호가 있다.
웅웅 내려가는 숫자만 쳐다봤다. 6 … 5 … 4 더디게만 내려가는 숫자만 바라보고있으니 불쑥 눈 앞으로 우지호가 뛰어든다. 그래봤자 내 눈에는 그의 얼굴보다는 대충 감긴 빨간 목도리덕에 보이는 하얀 목덜미만이 보일 뿐이지만.
"비켜줄래.."
"싫은데."
웃는 모습이 아니꼽다.
-
결국 저녁 대신 근처 카페로 들어왔다. 엘레베이터에서부터 회사를 나설때까지 저녁을 먹여야겠다며 오기를 부리는 우지호의 정강이를 한 대 차주고 나서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주문을 하고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카페라떼와 밀크티. 둘 사이 테이블 가운데엔 진동기.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뭐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뗐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던 것 같다. 우지호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을 피해도 집요하게 쫓아오는 눈길에 신경질이 났다.
"할 얘기 없으면 일어날게."
"넌 내가 그렇게 싫냐?"
".....응"
다행이도 우지호의 표정은 담담했다.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확히 맞는 말도 아니었다. 내 마음이 대체 어떤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도 없게 평온한 표정이었다. 화가 나는지 아니면 쪽이라도 팔린지 내려온 눈꺼풀이 고요했다.
"그래도 난 너 좋아. 좋아해 너."
그의 눈꺼풀을 보느라 얼마나 지났는지 그가 마침내 입을 뗀 순간이었다. 그의 뒤로 잠시동안 회사 후배를 본 것만 같았는데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모습이 사라져있었다. 잘 못봤나.
"좋아한다고."
"...난 아니야"
"알아"
"왜?"
"좋은데 이유가 어딨어."
계속 그를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후로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
조금 늦은감이 있게 출근을 했다. 기획1팀. 부서에 들어서자 마자 여럿이 뭉쳐 수근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를 보더니 놀란 모습을 하며 금새 흩어져버린다. 왠지 조금 불안해졌다.
"선배 부장님이 부르세요"
나에게 말을 전하는건 어제 본듯 한 그 후배였다. 그때 복사실 앞의 우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좋지 않아보였다. 아,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불안해
"..부르셨어요 부장님."
"__씨 이번 기획서 __씨 꺼였지? "
"..네 그런데요."
"그거 기획2팀한테 넘어갔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
"__씨 요즘 연애하나봐?"
"..네..?"
"요 근래 내가 들은 얘기가 있어서 그래. 아무튼 그렇게 알고 나가봐."
대충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자마자 왈칵 눈물이 났다. 알수없는 감정들이 뭉쳐져 뚝뚝 떨어졌다. 문 앞에 있던 우지호를 지나쳐 복도로 나왔다. 아무곳이나 필요했다. 뚝뚝 눈물이 떨어져서 검은 블라우스에 점점이 무늬를 남겼다. 비상구에 들어서자 무너져내렸다.
엉엉 울었다. 그 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와장창 깨져서 흘러나오는 것 같이 엉엉 울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게 안겨있음을 깨달았다. 궂이 보지 않아도 알 수있었다. 토닥토닥 토닥여줄 때 마다 우지호의 향기가 났다.
"울지마 내가 미안해 응? 울지마 제발"
-
4편을 올리는데 오래 걸렸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신알신 해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려요!
비회원분ㅠㅠ 감사드려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