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박우진이 나 좋아한대
"니 꺼야?"
"어. 추우면 덮고 있어라."
"..그래."
나는 추우니까 박우진의 후드집업을 좀 덮고 있어야 겠다. 세계지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필기를 하며 수업에 집중하는 동안 박우진은 어느새 자고 있었다. 항상 고개는 내 쪽을 향해있다. 가끔 박우진을 관찰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어보이곤 했다.
"여주 옆에 누구야?"
"박우진이요."
"..그래. 계속 수업하자."
박우진은 그랬다. 아무리 수업시간에 자고 있어도 선생님이 굳이 깨우지 않는, 소위 말하는 노는 애. 양아치였다. 내가 본 박우진은 그닥 양아치는 맞긴 한데, 질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한테는 오히려 착하게 굴기도 했다. 박우진이 나를 좋아할까?
"..야. 박우진."
"어.."
"점심시간이야. 밥 먹으러 가."
"..아. 고맙다."
왜냐면 사소한 말 한마디 거는 것 조차 용기가 필요한 내가 박우진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인 내가, 박우진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교실로 올라왔을 땐 박우진은 없었다. 선생님의 부름에 교무실로 갔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쓰레기 통을 좀 비워줄 수 있겠냐는 말에 알겠다고 해서 쓰레기 봉투를 챙겨들고 쓰레기 장으로 걸어갔다. 건물 뒷편에 있는 쓰레기장은 이 시간대에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어. 야 불 꺼."
"뭐? 뭔 불을 꺼 갑자기."
"아 빨리 불 끄라고 새끼들아."
"미쳤나봐 진짜. 이 새끼 왜이래."
"..애 오잖아."
느릿하게 걸어간 쓰레기장에는 담배 피우는 박우진이 있었다. 가장 먼저 박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박우진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기는 또 처음이다. 당황한 박우진이 서둘러 자신의 담배를 버리고 자신의 친구들에게도 담배 불을 끄라고 했다. 애써 덤덤하게 쓰레기 봉투를 버리고 뒤 돌아 걸어갔다.
"잠시만, 김여주."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 나에게 뛰어온 박우진에게서는 담배향이 났다. 평소 옆자리에 앉아있을 땐 냄새가 이정도 까지는 안났는데, 그때는 밖에서 좀 털고오는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풍겨오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니 아까와 같이 당황한 얼굴로 박우진이 한걸음 물러난다.
"아 미안. 냄새 많이 나나."
"..너 담배피워?"
"..어."
담배 피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물어봤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몸에 안 좋아. 끊어."
"알겠다."
"어?"
"끊으라매. 끊을게."
깜짝 놀랐다. 끊으라는 내 한마디에 박우진이 바로 끊겠다고 할 줄은. 어색하게 어, 그..나 가볼게. 라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화끈 거리는 얼굴을 재울 수가 없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어둡다. 그래도 무섭진 않다. 늘 박우진이 뒤에서 날 따라온다. 이렇게 야자를 마치고 같이 가는 것도 거의 3개월 째다. 우연히 집 방향이 같아서 걸어간다고 쳐도, 야자를 싫어하던 박우진이 굳이 야자를 하고 간다는 건 이유가 있어서겠지. 늘 이렇게 같이 가는데 모르면 바보인 거겠지 하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박우진."
"어?"
"같이 걸어 가. 뒤에서 걷지 말고."
"..그래."
약 세걸음 정도 차이나던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새 같아 졌다. 같이 걸어가는 지금, 오후 10시 32분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달 대신 가로등이 우릴 비추는 게 예뻤다. 머리 하나 정도가 차이나는 그림자도 예뻤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사소한 용기를 냈다.
"너 야자시간에 매일 자면서 왜 야자해?"
"..그거야."
"..."
"야자 마치면 니 혼자 걸어가니까 그러지."
"..."
"니 데려다 주려고."
걷다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박우진이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시 얼굴에 불이 나는 듯 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오늘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후다닥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착각과 오해, 호감을 구분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는다. 우리는 선 하나만 건너면 연애에 도착한다. 아직 그 선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별 일 없던 점심시간이 끝났다. 5교시가 시작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박우진이 교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겠지 싶었다. 선생님도 딱히 박우진을 찾지 않는 걸 보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 잠시 박우진의 책상을 내려다 보다 교복 주머니에서 진동이 작게 징-, 하고 울렸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박우진과 친하게 지내던 박지훈이었다.
[박우진이 말하지 말랬는데]
[내가 말한게 아니라 학교 고양이가 말하는 거야]
[박우진 다쳐서 지금 양호실이니까 ㄱㄱ]
연달아 오는 박지훈의 카톡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배가 아프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흔쾌히 보내주셨다. 교실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 가는 척을 하다가 방향을 틀어 양호실로 향했다. 어쩐지 발걸음이 조금 빠른 듯했다.
"..어."
"..."
박우진은 나를 보면 어. 밖에 안하나 보다. 양호실로 들어가자 양호 선생님은 수업중이라는 푯말만 남겨둔채 없었고 혼자서 끙끙 거리며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치료하고 있는 박우진이 보였다. 내가 들어온 게 의외였는지 박우진은 깜짝 놀라 하던 걸 멈추었다.
"어디 아파서 온 거가..?"
"아니."
"그럼 왜.."
"너 다쳤대서."
박우진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박우진이 들고 있던 연고를 빼앗아 내가 대신 발랐다. 상당히 따가워 보이는데 아프지도 않은지 얘는 눈 깜짝 안하고 내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있다. 아무래도 얼굴이 옆에 있는 빨간약보다 더 빨개져 있을 것 같다.
"싸웠어?"
"..."
"싸웠구나."
"..금마가 먼저 잘못했다."
"누가 뭐래."
"..."
"이겼어?"
"..어."
"그럼 됐어."
그럼 됐다는 내 말에 박우진은 피식 웃으며 그게 뭐고. 한다. 이렇게 다쳤는데 지는 것보단 낫지. 면봉을 하나 더 꺼내 박우진의 입가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연고를 바르는데 박우진의 투박한 손이 내 한쪽 얼굴을 감쌋다. 생각보다 가까워진 거리에 숨을 헉 하고 멈췄다. 박우진이랑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손을 뗐다.
"그, 어쩌다 싸웠는지 물어도 돼?"
"말 못한다."
"그래 그럼."
"..."
"..너 징계 먹어?"
"아니. 금마가 너무 크게 잘못해서 덮기로 했다."
말하고 싶지 않아하기에 그냥 넘겼다. 때가 되면 알겠지 싶었다. 박우진에게 치료를 다 했다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우진은 멀뚱 멀뚱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넌 교실 안 가?"
"어. 다음 수업 때 들어갈게."
"그래. 나 먼저 갈게."
"손."
"..."
"한 번만 잡아봐도 되나."
교실로 가려고 박우진에게서 등을 돌리자 박우진이 내 손목을 잡아왔다. 간절하게 말하기에 내가 먼저 박우진의 손을 잡았다. 나는 양아치인 박우진이 좋다. 양아치인 박우진은 나를 좋아한다.
* 안녕하세요! 밤구름입니당 *
갑자기 양아치 우진이가 보고싶어서 쓴 글..입니당 하하
해투 출근길이랑 예고편 보다가,,껄껄,,,,
우진아,,누나가,,애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