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박우진이 나 좋아한대
여느 때와 같이 모든 수업이 끝나고 석식시간이 왔다. 석식을 먹기 위해 친구들이 우리 교실에 오기로 한 상태여서 기다리고 있는데 박우진의 친구들이 박우진을 찾아왔다.
"야 솔직히 오늘은 좀 놀자. 피시방 갔다가 콜?"
"아 싫다고."
"아니 공부도 안하는 새끼가 왜 매일 야자를 쳐하고 지랄이야."
"그거는, 아 됐다. 꺼져라."
"진짜 너 새끼 오늘 안오면 절교할 줄 알아."
박우진의 친구들이 장난으로 박우진을 한 대씩 툭툭 때리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박우진은 별안간 내 눈치를 봤다. 나도 알고 있었다. 공부 안하는 박우진이 야자를 하는 이유는 적어도 나는 모르면 바보일 것이다. 사실 봤다. 친구들이 박우진에게 놀자고 했을 때 박우진의 동공이 흔들린 모습을. 오랜만에 놀고 싶어서 였겠지.
"나 괜찮으니까 오늘 친구들이랑 놀아."
"어?"
"혼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너 친구들이랑 놀러가."
"..그면 마치고 전화해라. 데리러 갈게."
"그래. 알겠어."
친구들이랑 놀러가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박우진은 데리러 오겠다며 가방을 챙겨 나갔다. 그렇게 놀고 싶어 하면서 그 동안은 어떻게 참았을까. 나중에 물어나 봐야겠다.
오늘도 잠이 쏟아지는 야자시간을 겨우 버텼다. 어쩌면 야자시간을 마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박우진에게 전화를 거는 이 순간이 너무 기다려져서 일 수도 있겠다. 휴대폰으로 박우진에게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 -'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굵직한 박우진의 목소리가 아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폰이 꺼져있을 수도 있는데 왜 심장이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박우진이 없는 오랜만의 하굣길을 걸어갔다. 늘 근처에 박우진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박우진이 없이 걸으니 꽤 무서운 길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에 112를 입력해 놓고 걸어갔다. 한 10분 쯤 걸었을까. 아파트 단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앞에는 박우진 처럼 생긴 학생이 서 있었다. 설마 박우진일까 싶었는데 정말 박우진이었다.
"박우진..?"
박우진을 부르자 흠칫 놀라던 박우진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두운 거리에서 밝게 비추는, 112에게 전화 걸 준비가 되어있는 내 휴대폰을 잠시 보더니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바람이 불었는데 문득 박우진에게서 술 냄새가 조금 났다.
"진짜 미안. 애들이랑 놀다가 폰을 봤는데 꺼져있어서..니가 전화하기로 했는데 미안. 혼자오게 해서 미안."
"괜찮아."
"내가 안괜찮다. 니 무서워서 112 켜고 온 거 아이가."
"..."
"애들 폰으로 전화 걸려고 해도 내가 니 번호를 못 외워서.."
"..."
"학교 앞에 갈까 했는데 그러다 엇갈릴 거 같아서 그냥 여기서 기다렸다."
구구절절 말하는 박우진의 모습은 걱정 많은 강아지의 모습 같았다. 솔직히 올 때 무서웠지만 딱히 박우진을 원망하고 그랬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던 박우진의 모습을 보니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도 안난다. 여전히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있는 박우진에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놀라고 박우진도 놀랐다. 손을 빨리 거두었다.
"진짜 괜찮다니까."
"그래도.."
"..근데 너 술 마셨어?"
"술 냄새 나나? 아 미친, 나 진짜 안 마셨다. 옆에 있던 애들이 마신기다."
"..."
"아니..미안. 나는 딱 한 잔만 마셨다. 안마시면 애들이 죽일 거 같았다."
"..."
"한 잔 마신 거라서 냄새 안날 줄 알았는데, 옆에 애새끼들 아니 애들이 많이 마셔가지고.."
변명을 막 늘어놓는 박우진이 귀엽게 느껴졌다. 박우진에게서 나는 술 냄새가 나쁘진 않았다. 어쩌면 그것도 박우진이었기에 좋은 냄새라고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알아. 나 너 믿어."
"..진짜?"
"너 나한테 거짓말 안 하잖아."
"..."
사실이었다. 박우진은 나에게 숨기는 것이 있을지언정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그랬다. 거짓말을 하거나, 아님 무언갈 숨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만 박우진에게 들어가보겠다고 했다. 박우진은 조심히 들어가라며 내일 학교에서 보자고 했다. 집에 돌아 왔을 때 박우진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며 묻고 싶어졌다. 우리는 지금, 무슨 사이야?
매애앰- 매애앰-
교실 안은 한창 수업 중이었다. 무료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프로펠러, 꺼졌다 켜졌다 반복하는 에어컨, 밖에서는 매미소리가 삼중 합창을 이루는 듯했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바깥날씨와 다르게 교실안은 춥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코를 킁, 하고 먹으니 박우진이 나를 쳐다보더니 자신의 의자에 걸쳐있던 옷을 나에게 주었다.
"추우면 입어라."
"..고마워."
박우진이 건네는 옷을 딱히 거절하지는 않았다. 후드집업을 입고 어쩌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사탕이 잔득 잡혔다. 설마 싶어 후드집업의 손목 부근에 냄새를 맡으니 섬유유연제 냄새만 나고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담배를 끊었나 궁금해질 무렵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났다.
"너 담배 끊었어?"
"어. 끊으래서 끊었는데."
"..진짜?"
"어. 니한테 거짓말 안한다니까."
박우진은 나름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조금은 기특하기도 했다. 박우진과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우리의 책상 앞으로 어떤 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너 김여주 맞지?"
"맞는데."
"경시대회 같은 조던데. 얘기 할 게 있는데 잠시만 나갈래?"
"..그래."
이번에 나가게 된 경시대회가 조별 과제라는 말을 들었는데 같은 조원인 학생이 찾아왔다. 박우진의 후드집업을 여전히 입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우진의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나 갔다올게, 하며 자리에서 떴다.
더운 복도에서 나를 포함해 4명인 조원들끼리 경시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교실로 들어왔다. 에어컨이 안틀려져 있는 복도가 후끈후끈했지만 후드 집업을 벗지는 않았다. 사실 경시대회 이야기를 하면서도 박우진의 생각을 중간중간에 했다. 아니,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박우진이.
"점마가 니 좋아하나?"
"응? 그냥 경시대회 이야기 한 건데..?"
"..아이다. 내가 봤을 땐 눈빛이 좀..글타."
"눈빛이 왜..?"
"딱 그거다이가. 내가 니 볼 때랑 똑같드만."
"..."
"내, 내. 화장실 좀."
박우진은 본인이 말해놓고서는 부끄러웠는지 쿠당탕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분명 교실안은 추운데 왜 우리 자리만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다. 화끈 거리는 얼굴을 책상바닥에 붙여 식혔다.
며칠 전과 같은 석식시간이었다. 급식실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는데 웬일로 박우진이 자신의 친구들과 석식을 먹으러 왔다. 원래 박우진은 석식을 잘 먹지 않았다. 이렇게 가끔 가다가 한 번씩 먹거나, 나가서 사 먹고 오거나, 굶거나 였다. 나도 모르게 박우진에게 신경이 쏠려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야 박우진 오늘도 콜?"
"미쳤나 진짜. 니네랑 이제 안놀기다."
"왜 이래 이새끼 진짜?"
"한 번만 더 술 마실 때 불러봐라 죽여버린다 진짜."
"야 너 설마 김여,"
"미친새끼야 주둥이 닫아라. 대가리 깨삔다."
나와 대화할 때와는 다른 험한 말에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친구들이 왜 웃냐며 나에게 물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하며 얼버무렸다.
꿀 같은 주말을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이 보내고 있었다. 독서실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 보긴 하는데 도저히 읽히지가 않았다. 같은 문장만 여러번 반복하고 있다가 휴대폰을 들었는데 10분 전 쯤 박우진에게서 카톡이 하나 와 있었다.
- 뭐해?
나 독서실이야 -
- 나올래?
지금? -
- 응 지금
- 나랑 놀자
이모티콘 하나 없는 딱딱한 말투지만 박우진이 이러니까 뭔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게 콩깍지인가. 박우진의 카톡을 보자마자 가방을 챙겼다. 오늘 하루 쯤 공부 안한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심지어 학교다닐 때 말고는 박우진을 밖에서 처음 보는 거라서 그런지 조금 떨렸다. 아니, 많이.
나 독서실에서 나왔어 -
너 어디야? -
"니 뒤에."
"악!"
독서실에서 나와 박우진에게 카톡을 하는데 갑자기 내 뒤편에서 박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뒤 돌아보니 해맑게 웃고 있는 박우진이 보였다. 사실 학교에서도 늘 셔츠안에 반팔티를 입어서 사복 입어도 느낌은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르다.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니한테 카톡했을 때 와있었다."
"나 안나오면 어쩌려고?"
"그럼 올라가서 잡아오려고 했지."
"..."
"뻥이다. 그럼 니 나올 때까지 기다렸겠지."
문득 박우진의 옷을 보다가 내 옷을 보는데, 둘다 검은 색 티에 청바지여서 그런지 옷 차림새가 비슷했다. 맞춰서 입고 나온 것도 아닌데 비슷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그, 커플룩 같기도 하고.
"저녁 먹었나?"
"아니. 넌 먹었어?"
"아직. 니랑 먹을라고 그랬는데."
"..가자. 뭐 먹을래?"
"고기."
뜬금없이 고기 타령이다. 간단하게 먹으러 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고기를 먹겠다니 나쁘지는 않았다. 고기인데 누가 싫어하리. 묵묵히 박우진이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왜 갑자기 고기야?"
"니 손목 봐라. 얇아서 샤프도 못 들게 생겼다이가."
"..."
"니 살 좀 찌라고."
끝까지 나를 배려한 말이다. 내 손목을 잡은 박우진이 자신의 손목과 비교했다. 손목이 딱히 얇은 편은 아닌 것 같았는데 박우진의 손목 옆에 있으니까 얇아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박우진의 손목 크기와 비슷하면 좀 이상하지 않나. 어쨌든 좋은게 좋은 거고, 설레는게 좋은 거다.
"박우진."
"어?"
"너 언제 전학왔어?"
"나 중3 때. 사투리 때문에?"
"응."
"내는 서울말은 못 쓰겠다. 표준어 쓰면 막 간지럽다이가."
내가 본 박우진은 처음부터 서울말은 못썻다. 처음부터 사투리였고, 양아치였다. 그런 박우진이 지금 내 앞에서 고기를 굽는 것도 신기하고 안믿길 정도로 어색했는데.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가까워져서 고기를 먹으러 왔을까.
그동안 박우진과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싹 지나갔다. 불판 위에 있는 열이 고기에게만 전달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분명 열이 나에게도 전달이 되고 있다. 아니면 이렇게 얼굴이 화끈거릴 수가 없다.
"박우진."
"어? 왜."
"너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어?"
내 목소리를 들은 박우진은 눈을 크게 떴다. 내 말이 너무 뻔뻔했나. 여전히 고백을 하지 않는 박우진을 대신에 내가 해보려고 한다. 고백을.
"너 왜 나한테 고백 안해?"
"그, 그게 무슨 고기 먹다가 하는 얘기고."
"왜 고백 안하냐고."
"고기 먹다가 하는 건..좀 아이다이가."
"그럼 내가 해도 돼?"
"어? 아니, 잠만. 여기는 좀 이상한 거 같다."
"나 너 좋아해."
쨍그랑-
박우진은 들고 있던 가위와 집게를 떨구었다. 한 없이 소심하고 평범한 내가, 특별한 박우진의 앞에서는 특별한 용기를 가지게 된다. 어쩌면 네가 나를 좋아한 순간부터, 내가 너를 좋아했을 지도 모르겠다 우진아.
*안녕하세요! 밤구름입니당*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다음편을..달라고..하셔서...급하게..왔어용...
사실 양아치미 낭낭한 모습 더 보고싶어서
근데 왜 양아치스럽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공...ㅎ....
아 그리고 우진이랑 여주 나이 추천 좀 해주세용...18살이 나을까요 19살이 나을까요ㅠ
아무 생각없이 적은 단편이라서 구체적인 설정을 못했어요ㅠ0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