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필 무렵 02
第 1장 ; 낙화(落花)
도망갈래? 어렸을 적 자주 보았던 그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도련님에 그냥 맥이 빠져 버렸다. 이럴 분이 아니라 더 그랬다. 도저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도련님이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나가 봐야 할 것 같았다. 도련님, 일어나 봐야 합니다. 정말 나가실 생각 없으십니까. 물었지만 고개를 가로로 젓는 도련님이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도련님은 예외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나오실 겁니까. 결국 문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도대체 언제쯤 나오신답니까? 국정을 너무 우습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잖습니까."
"......."
신하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여전히 굳게 닫힌 문은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도저히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신하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별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밖엔 눈이 제법 굵게 내리고 있었다. 사나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풍경에 날씨가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잔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봄을 본 적 있어? 예전부터 뜬금없이 도련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었다. 봄, 여긴 온통 겨울 뿐이니까요.
이 나라에선 봄은 금(禁)의 영역이었다. 설국과는 상극인 탓일까. 일 년에 한 두번 오가는 사신들 중에서도 화국(花國)의 사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랏문을 걸어잠근 채 그들과의 교역, 화친을 거부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그 곳은 점점 세력을 늘려가고 있다고 했다. 점점 설국만 고립되고 있었으나, 폐하의 관심은 외교에까지 미치지 못하셨다. 그리고 왕실 내 신하들 역시도 아무도 그에 반발을 하지 않았다. 그게 아마 도련님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거절하는 까닭일지도 몰랐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아악! 깜짝.... 놀랐잖아요."
"많이 놀라셨습니까?"
"예."
하마터면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놀랐잖아요. 날선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능글맞게 웃는 모습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의 시선이 나로 향해 있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돌려 계속 창 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많이 오죠. 그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불편했다. 자리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눈치를 살피며 발걸음을 옮기자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용건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러면 왜. 요즘 바쁘시다고 들었는데요."
"잘 아시네요."
"모르는 사람이 궁에 있겠습니까."
"왜 이렇게 쌀쌀맞으십니까. 정 없게."
정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이런 식의 대화는 곤란했다. 도저히 눈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 계속 땅만 보았다. 그러기엔 너무 비굴할까, 싶어 이리 저리 눈을 굴려 보았지만 결국엔 시선이 하나로 맞아 떨어지고 말았다. 정 없게, 능글거리는 그 말투에 퍽 질려 버렸다. 어느새 차게 식은 잔을 손으로 매만지며 그의 얼굴을 눈으로 훑었다. 예전의 모습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특히 눈망울이, 많이 달라졌다.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을 도련님이 생각났다. 도련님. 안 나오시고 뭐 하시는 겁니까.
"요즘 도련님께서 통 밖에 안 나오신다던데."
"이미 알고 계시면서 굳이 물으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냥, 확인 차."
"......허."
"별관 쪽에 제가 갈 수는 없으니까요."
"나오실 겁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진작에 이렇게 나오지.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고개를 젓는 그 움직임에 그냥 혀를 내둘렀다. 변할 대로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더 이상의 대화는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권력은 생각보다, 무섭다. 네, 나오실 겁니다. 이를 악물고 꿋꿋이 답했다. 눈보라가 쳤다. 눈보라가 왜인지 푸른빛으로 보였다. 옛말에, 푸른빛 눈보라가 보이면 망조가 보이는 거라는 말이 있었다. 망조가 보였다. 이 곳에 희망은 점점 사라지는 듯 했다.
"그렇게 탐나십니까?"
"뭐가요."
"말 안해도 아시지 않습니까."
"탐이 나는 게 아니라."
"......."
"자리에 걸맞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는 게 섭리라고 배웠습니다만."
자리에 걸맞는 사람이라. 우스웠다. 네가 자리 운운을 하다니. 적어도 나는 절대로 인정 못 합니다. 자꾸 방에 틀어박혀 있는 도련님 생각이 강하게 났다. 답답했다. 도대체 왜, 이런 사람이 군림할 지경까지 사단을 이렇게 만드신 겁니까. 마른 세수를 하며 그를 슬쩍 바라보았다. 나를 향하는 시선이 완고했다. 또 무슨 할 말이 남았는지. 이 곳에 온 걸 후회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건 불쾌한 일이었다.
"왜 자꾸 피하십니까."
"무얼요."
"안 보고 있잖아요."
"보고 싶을 리가 없지요."
"난 보고 싶던데."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이었다. 도련님을 허수아비로 보는 게 느껴졌다. 왠지 모를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이 자리가 너무 싫어, 쌩 하고 몸을 틀어 도서관 쪽으로 향했다.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들려 왔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폐하와 도련님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궁엔 넓디 넓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고, 도련님의 방에는 도서관과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 분명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칸 쪽에서 책을 읽고 계실 게 분명했다.
"도련..."
"도련님 계속 여기 계셔도 괜찮으신 거에요?"
"아니."
"그러면 빨리 밖에 나가셔야죠!"
"나도 알아."
무안한 듯, 책을 덮으며 웃는 도련님이었다. 차마 도련님을 크게 부를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도련님과 소년을 지켜보았다. 도련님 옆엔 늘 그렇듯 그 소년이 있었다. 천진난만한 목소리 하며, 맑은 눈망울 하며. 도련님이 참 아끼는 소년이었다. 오늘도 화국에 관련된 몇 안 남은 책들을 읽고 있었는지, 소년이 옆에서 쫑알대는 내용이 다 그것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아무도 없는 듯 했지만, 도련님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알려져 봐야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긴장이 되었다.
"......저 화국에 가 본 적 있어요."
"그런 거 크게 말하면 안 돼."
"아차차...."
"들키면 안 돼."
여러분 너무 늦게 왔어요 따흑
내일 모레 개학이라니 ...
수능 디데이가 100일도 안 남았다니 ... 8ㅁ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