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4
" 백퍼야. 너한테 천퍼센트 만퍼센트 아니 오조오억퍼센트 관심있어. "
" ... "
" 엄청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얘기도 잘 통한다며. 확 낚아채버려. 원래 소개팅은 세번 만나면 게임 끝이야. 알지? "
" 밥이나 먹어. 밥이나. "
승완이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주니 눈을 반짝이며 무조건 사귀라고 말한다. 물론 황민현과 헤어지고 나서 옹성우에게 온 카톡을 본 후에는 옹성우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승완이는 그런 남자가 흔한게 아니라며 얼른 낚아채라며 난리지만... 지금 먹고 있는 학식 돈부리에 손을 대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면서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거다. 저거저거, 또 옹성우 생각하고 있고만. 이라고.
" 너나 먹지? 난 거의 다 먹었거든? 또 배고프다고 편의점이나 매점 갈 생각말고. "
" 네네. 알겠습니다. "
억지로 젓가락으로 돈까스를 쿡 찔렀다. 간장소스에 졸여진 돈까스를 먹는둥 마는둥하자 승완이가 그제서야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 내가 백날 천날 말하면 뭐해. 이 기집애 정신은 옹성우인가 온성우한테 가있는데. "
" ... "
" 걔가 그렇게 좋냐? "
" ... "
" 6년동안 다른 남자 눈에 안 들어올만큼? "
" ... "
" 너, 그 때 그 일 이후로 옹성우한테 이렇게까지 얽매여 있는거지. "
" ... "
전에도 말했지만 승완이는 나의 짝사랑 역사를 모두 다 알고있다. 그저 옹성우라서, 내 짝사랑의 상대가 옹성우여야 하는 이유도 승완이는 알고 있다는 얘기다. 짝사랑은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아무 이유가 없이도 그저 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옹성우에게 완벽히 빠져버린, 옹성우를 지독하게 짝사랑하게 되어버린 계기가 있다. 내 일방향의 사랑이 시작된 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 옹성우는 정말 친해서 그런 감정으로 그랬다는거 나도 알아. 걔가 너무 착해서, 천성이 착해서 그랬다는거 나도 알아. "
" ...여주야. "
" 근데 나는... 나는 아니니까. 나는 그런 옹성우를 좋아하게 된 거니까. "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나마 성우가 있기에. 그나마 옹성우가 있기에 간신히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는 기억이 있다.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중3. 열여섯살 때,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겼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다른 학교 동갑 남자애였는데, 학원에서 친해져서 꾸준히 연락을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썸을 타고 사귀게 되었다. 학원에서 밖에 만날 수가 없으니 가끔 그 애는 학교를 마치면 버스를 타고 우리 학교 앞에 찾아오기도 했었는데 그게 참 고맙고, 행복했었다. 버스를 타고 30분이 넘는 거리를 나를 위해서 그렇게 달려와주니 그럴 수 밖에.
" 나 보러 오는거 안 힘들어? "
" 응. 괜찮아. 내가 좋아서 오는건데 뭘! 별로 멀지도 않고. "
그 애는 그 때마다 내 손을 꼭 잡고는 그 많은 까만 우리 학교 교복 틈에서 혼자 튀는 남색의 교복을 자랑하며 걸어갔었다. 좋았다. 그 때까지는 모든게 다 좋았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두번, 학원 가는 날 외에도 그 애가 점점 우리 학교 앞으로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렇게 그 애는 매일매일 우리 학교 앞을 찾아왔다. 내가 부담스러워질만큼.
" 저기 있잖아... "
그 날도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가 슬그머니 손을 놓고 눈치를 보며 저기, 하고 말을 잇자 그 애가 싱글벙글 웃다가 정색을 하며 날 내려다봤다. 내가 당황해 다시 손을 잡고 억지로 웃자 그 애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생글 웃었다.
" 갑자기 손 놔서 놀랐잖아. "
왜인지 모르게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손을 놓으니 정색을 하다가도 다시 덥썩 잡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는 그 애가 왠지 모르게 무섭고 두려웠다. 날이 갈수록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이상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나를 찾아왔었다. 그렇게 매일을 우리 학교 앞에서 기다리던 그 애는, 같은 반 남자애와 가끔 같이 교문을 나올 때 정색하거나 욕을 하기도 했었다.
" 씨발. 저 새낀 뭔데? "
그냥 반친구라고 말을 하면 그 애는 내 친구를 죽일듯이 노려봤다. 그러면 늘 사과를 하는건 나였고.
" 넌 저런 애를 왜 사귀냐? 다짜고짜 욕부터 하고. 내가 뭐 너 좋다고 했어? "
이유 없이 욕을 먹은 친구는 불쾌해하며 그런 애를 왜 사귀냐고 내게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사실 친구 말이 맞다. 내 감정도 더이상 커지지 않는 마당에 그 애와 사귀는 일수만 세고 있는건 의미가 없는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쉽게 헤어지자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늘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손을 잡으며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으니까. 내가 헤어지자고 말할 틈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점점 무서워졌다. 게속해서 좋은 감정보다 무서운 감정이 커지고 있었고, 이건 사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 있잖아... "
" 응? 왜? 배고파? 뭐 먹고 들어갈래? "
" 아니, 저기... 있잖아. "
" 왜? "
" ...우리... "
" ... "
" 헤어지자. "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백일이 얼마 안 남은 날이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움츠러들어선 손을 덜덜 떨었다. 공포심이 커지고, 두려움이 커지니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조차 너무 버거워서 나도 모르게 덜덜 떨었던 것 같다. 그 애가 아무 말도 없다가 다시 내 손을 덥썩 잡았다. 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그 애를 보자 그 애가 씩 웃으며 내 손을 잡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걷기 시작했다.
" 배고프지? 뭐 먹으러 갈까? 내가 살게. 햄버거 먹으러갈까? 아님 닭강정? "
" ...혀...현우야. 내가 아까... "
" 니가 아까 뭐라 그랬는데? "
다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애는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맥도날드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가는 길 내내 손을 놓고 싶었는데 온 몸이 덜덜 떨려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니 놓지 못하게 평소보다 더 꽉 잡고 있었다. ' 넌 절대로 나한테서 못 벗어나 '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애는 맥도날드에 들어가서는 자기 혼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서는 날 앉혀 놓고, 햄버거를 건넸다. 내가 현우야. 하고 그 애 이름을 부르자 그 애는 아무렇지 않게 햄버거를 입에 물며 응? 하고 물었다. 공포감이 느껴졌다. 내가 알던 그 애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 나 배 안 고파... "
" 배 안 고프다고? 근데 왜 아까 그런 헛소리를 해? "
" 헛소리라고...? "
" 응. 헛소리. 헤어지자며. 무슨 말도 안되는 개소리야. "
정색을 하며 햄버거를 먹는 그 애를 보고 오싹해졌다. 화장실을 간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후다닥 매장을 빠져나왔다. 몸이 덜덜 떨렸다. 저런 싸이코가 다있나 싶어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아까처럼 내 손을 꽉 잡고 어디론가로 데려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려 무작정 집으로 뛰었다. 그리고 휴대폰이 울렸다. 하트가 잔뜩 붙어 있는 저장된 수신자명에 다시 오싹해져 전화를 무시하고 뛰다가 결국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뒤를 돌아보며 계속 확인했다. 혹시나 따라올까 싶어서. 혹시나 또 내 손을 꽉 잡고 가진 않을까해서. 눈물이 났다. 무서웠다. 조금 커서 생각해보니 그건 집착이었다. 아니, 집착의 전조였다. 내가 계속해서 참고, 무서워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 애는 더 심하게 나에게 집착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그날 나에게 전화만 10통을 해댔고, 문자를 20통이나 보냈다.
[ 햄버거 왜 안 먹고 그냥 갔어... ]
[ 화장실 간다며 ]
[ 배 안 고파도 그렇지 나한테 인사도 없이 가면 내가 뭐가 돼 ㅠㅠ ]
[ 내일도 학교로 데리러 갈게 ^^ ]
...
....
....
다정한 말투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문자를 하는 그 애가 너무 소름이 끼쳤다. 나는 그 즉시 학원을 끊었고, 학교를 마친 날에는 꼭 친구들 여러명과 한참을 기다려서 후문으로 가거나 쪽문으로 하교를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두 달을 버티니 그 애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오지 않았고 학교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건너 건너 들리는 소식에는 나와 헤어지고나서 얼마 안 있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문득 걔네 아버지가 출장이 잦은 직장에 다닌다고 했던 얘기가 떠오르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졸업을 하고,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애가 이사를 갔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공포감과 두려움에 휩싸여 살았었다. 밤에 혼자 집으로 가는 길목에 혹시 그 애가 서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친구나 아빠를 불러 집으로 가기도 했고, 혹시라도 그 애 학교 교복을 보면 혼자 잔뜩 긴장해 그 자리에서 굳곤 했었다.
그래서 내 성격도 차차 변해갔었다. 남자들을 보면 날을 세우고 경계를 하고. 그 애는 그 후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애를 닮은 사람이라도 보면 혼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가고, 내게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그렇게 애를 썼었다. 가끔 꽉 잡힌 손의 감촉이 생각날 때마다 혼자 소름이 끼쳤을 때도 몇 번 있어 여자든 남자든 손을 잡는 일조차도 꺼렸었다.
그러다가 옹성우를 만났다. 버스에서. 무슨 정신으로 그런 호의를 베푼건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옹성우의 곤란해보이는 모습때문에? 옹성우의 순해보이는 그 모습때문에? 나는 모르겠다.
확실한건 옹성우를 만난건 내 인생에서 큰 행복 중 하나이자 아픈 짝사랑의 시작이라는거다.
" 와. 그 새끼 진짜 몹쓸 새끼네. 어디 학교 갔는지는 몰라? "
" 응... 걔 전학갔다고 들었어. 걔네 아빠가 출장을 자주 다니신대... "
" 허... 야. 차라리 그거면 다행이다. 너 무서워서 어떻게 살았냐? 어우. 내가 들어도 소름이 쫙 돋는다. "
옹성우를 만나고, 경계심 많던 내 성격이 바뀌면서 차츰 나도 예전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건 백퍼센트 옹성우의 도움이 컸다. 옹성우가 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굳어 있거나 긴장해 있는 나를 달래주려 이상한 개그도 많이 쳤으니. 내가 옹성우와 조금 친해진 뒤에 어렵사리 중학생 때 사겼던 남자아이의 얘기를 하자 옹성우는 자기 일인 마냥 들어주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 혹시라도 그 새끼 나타나면 바로 콜 때려라. 알지? 내가 확! 가서 그냥 진짜 너 근처 얼씬도 못하게 해줄게. "
" 말이라도 고맙네. "
" 나 이래보여도 엄청 쎄다? 무시하지마. "
옹성우가 얄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난 그 모습에 다시 웃음이 터져버렸다. 옹성우가 내 모습을 보고 만족한다는 듯 웃었다. 아, 오늘도 열일했다~ 옹성우가 혼자 짝 소리가 나게 박수를 치고는 카메라를 주섬주섬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에 가자. 오늘은 이런 얘기도 들었으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 뭘 데려다줘. 안하던 짓 하지마. 옹성우. "
" 왜. 멋진 친구인척 좀 해보자. "
그 때까지는 옹성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건 맞지만 미칠듯이 좋다거나 지독한 짝사랑이라거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성우를 보면 설레고 떨리고... 그런 정도? 아마 학교에 누구 하나 쯤은 나처럼 이런 감정으로 옹성우를 보고 있었을거다. 소중하지만 그만큼 흔했던, 어쩌면 지금은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딱 그 정도. 옹성우에게 애매한 설렘을 느끼던 그 때. 옹성우가 카메라집을 어깨에 걸고선 가자. 진짜 데려다 줄게. 하곤 씩 웃었다. 그래. 그런 모습에 나는 옹성우에게 조금씩 반했던게 맞다.
" 진짜 데려다 주려고? "
" 엉? 엉. 어차피 너네 집 데려다주고 바로 버스타고 집 가면 되니깐. "
" ...고맙네. "
버스에 나란히 앉아 가면서도 옹성우는 쉴새없이 입을 놀렸다. 옹성우는 남이 웃는게 좋다고 했다. 그것도 자기의 말이나 행동에. 그래서 옹성우 주위에 사람이 많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옹성우의 말을 들으며 킥킥거릴 때면 옹성우는 뿌듯하게 미소를 짓곤 했다. 아, 뿌듯하다. 라고 꼭 이 말을 하면서.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달려 우리 집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와 성우가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 김여주? "
나를 소름돋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 몸에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무시하고 갔으면 됐는데 그게 안 됐다. 그 애를 무시하지 못하고 그만 돌이 된 듯 몸이 굳어버렸다. 옹성우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보고. 난 차마 뒤를 돌 수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덜덜 떨었다. 그 애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옹성우의 말이 웅웅 울렸다. 왜 그래, 야. 야야. 김여주. 옹성우가 날 부르고 내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옹성우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 ...걔... "
" ...어? 야. 너 왜 이래. 야. 여주야. "
옹성우가 당황했는지 다른 한 쪽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옹성우가 내 어깨를 잡자 내 몸이 더 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걔야..아까 말했던... 걔... 하고 작게 중얼거리자 옹성우가 그제서야 알아차린 듯 갑자기 나를 자신의 등 뒤로 보냈다. 내가 옹성우 등 뒤에서 파르르 떨다가 옹성우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옹성우의 목소리가 등을 타고 웅웅 울렸다.
" 야. 여주야. 너 보지마. 여기 있어. 내가 알아서 해. 그 새끼라 했지? 아까 얘기한 그 집착남 새끼. 떨지마. 야. 아냐. 떨어도 되니까 너 보지마. "
옹성우가 중얼거리고 나는 옹성우의 교복을 꼭 잡고는 계속해서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아마도 옹성우는 내가 그 때까지 떠는 걸 느끼고 있었을거다. 온 몸이 덜덜 떨렸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멀리 이사를 간 줄 알았는데... 내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옹성우의 등이 내 눈물자국으로 번져가고, 성우의 말이 들렸다.
" 야. 이 미친새끼야. 저리 꺼져! 여기가 어디라고 와? "
" ...하... 넌 뭐냐? "
" 그럼 넌 뭐냐? "
" 나 쟤 전남친. "
" 미친놈. "
옹성우가 전남친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내 손을 꼭 잡고는 내게 말했다. 덜덜 떠는 손을 옹성우가 꽉 잡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단 한번도 꽉 잡아본 적이 없는 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옹성우가 손을 잡자마자 조금은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옹성우의 말이 등을 타고 울렸다. 여주야. 내가 알아서 해. 너 꼭 붙어있어. 옹성우가 나를 달래듯 더 손을 꽉 잡았다. 무서웠다. 옹성우에게 더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옹성우가 잡은 손을 더 꽉 잡을 수 밖에 없었다.
" 너 여주 맞지? 오랜만이다, 여주야. 이 동네 쪽에 볼 일 있어서 왔는데 여기서 다 만나네. "
" 닥치고 꺼져, 이 미친놈아. "
" 너 언제 봤다고 욕을 쳐하냐, 나한테? "
그 애는 예전에 우리 반 남자애들에게 했던 것처럼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옹성우를 대하고 있었다. 그 애가 옹성우의 앞으로 다가오는게 느껴지고 옹성우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 야 미친 새끼야! 내 여자친구 전남친이 아는척하는데 욕 안 나올 사람이 있냐?! "
" ...뭐? 야. 나 지나가다가 반가워서 그냥 이름만 부른건데 혼자 오버하지 말지? 지금 남자친구면 다냐? 어이없는 새끼를 다 보겠네. "
서늘한 그 목소리. 1년 전처럼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정색으로 한 채로 옹성우에게 차가운 말투로 내뱉고 있는 거겠지. 옹성우를 만나면서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옹성우가 그 애보다 더 날이 잔뜩 섰지만 무겁고도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닥쳐. 이 미친새끼야. 내 여자친구한테 한 번만 더 아는 척하면 그 땐 진짜 죽여버린다. "
" ...아.. 씹... "
" 꺼져. 씨발놈아. "
옹성우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욕이었다. 아이 씹, 이런... 그 애의 욕이 들리고 그 애가 돌아가는 소리가 느껴졌다. 쿵.쿵.쿵.쿵. 내 심장이 점점 큰 북소리를 내고 있었고 나는 계속해서 눈물만 주륵주륵 흘렸다. 그 애가 완전히 옹성우 시야에서 사라져서야 옹성우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 나를 확인했다. 내가 긴장이 풀려 풀썩 주저 앉으려 하자 옹성우가 날 잡아주었다. 내가 옹성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버렸다. 그 와중에도 옹성우가 잡은 한 손을 나는 놓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더 꽉 쥐고 있었다.
" 옹성우... "
" 야야. 괜찮아. 갔어. 진짜로 그냥 길 가다가 우연히 봐서 너 불렀나봐. 내가 저 미친놈보다 더 미친놈처럼 욕하고 그랬으니까 이제 올 일 없을거야. 응? "
" 성우야... "
옹성우가 나를 어르고 달랬다. 그러다 결국은 내 등에 손을 올려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진짜 어떻게 했으려고. 내가 오늘 같이 안 가줬으면. 내가 그 말에 더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정말로 옹성우가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을까. 그 애가 그정도로 미친놈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벌벌 떨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악몽이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 ...김여주... "
" 고마워... 고마워. 옹성우... "
나도 모르게 옹성우의 품에 기대어버렸다. 옹성우가 당황한듯 했지만 여전히 한 손으로 내 등을 토닥거리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괜찮다는 듯이. 옆에 내가 있으니 괜찮다는 듯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그 손길이 정말로 고마워서, 정말로 옆에 있어줘서 다행이라 심장의 울림이 잦아들었어야 했는데... 아니었다. 바보같은 가슴은 제멋대로 쿵쾅대고 있었다. 그 순간에 완벽히 옹성우에게 반해버린거다. 이미 내가 옹성우가 잡은 손에 진정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유는 충분했다.
옹성우가 잘생기고,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공포의 순간에서 날 꺼내줘서, 날 지켜줘서. 내 트라우마를 이겨내게 해줘서. 옹성우의 잘생긴 얼굴이 나 때문에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멍청하게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멀끔한 모습으로 말을 걸던, 매점에서 능글 맞게 인사를 건네던, 동아리실에서 헤실헤실 웃던 옹성우의 잘생긴 모습이 아닌 날 걱정하는 그 모습에 나는 가슴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정말로 나는 완벽하게 그 순간에 옹성우에게 반해버린게 틀림없다.
"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
평소와 다르게 나를 잔뜩 걱정하며 여전히 나의 어깨를 감싼채로. 내 손을 놓치 않은 채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선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옹성우를 올려다보며 나는, 6년간의 지독한 짝사랑을 시작하게 되어버렸다.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 예쁘게, 무!조!건 예쁘게 입고가. 알겠어? '
결국 또 씁쓸하게 옹성우 얘기를 꺼내는 날 보며 승완이가 못 참겠다는 듯 한 말이었다. 이제 옹성우고 뭐고 다 끝이야. 황민현같이 괜찮은 애를 두고 넌... 승완이가 내 앞에서 눈을 흘겼었다. 그러다가도 칙칙하게 처져 있는 날 보고는 날 어르듯이 그래도 너 황민현 보러 가는거잖아. 옹성우가 아니고. 황민현이랑 데이트 하는거니까 예의는 차려야 될 거 아니야. 하고 말했지만. 그 말에 결국 입을까말까 하던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그래. 민현이도 늘 신경 써서 왔는데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4번 출구 앞에 도착했을 때, 역시나 한 눈에 봐도 잘생긴 황민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랙스에 셔츠. 그리고 원피스를 입은 나. 그래도 나름대로 꾸민다고 꾸며서 귀걸이에 목걸이까지 하고 온 내 스스로가 대견했다. 이정도는 돼야 황민현이랑 어울리는 한 쌍이 되어보여서.
" 안녕. "
" 아. "
손목에 낀 시계를 보고 있던 황민현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살며시 팔을 건드리며 인사를 건넸다. 황민현이 움찔하며 내 쪽을 쳐다보고는 밝게 웃었다. 황민현의 저 웃음이 데이트 신청한 날 이후로 내 표정과 조금 겹쳐보여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상했다.
" 오래 기다렸어? "
" 아니. 너 딱 맞춰서 왔잖아. "
황민현이 웃으며 나와 걸음을 맞췄다. 원래 나는 5분 정도 일찍 와서 기다리거든. 황민현이 말을 덧붙였다. 예쁘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그 미소에 또 괜히 마음이 이상해서 앞만 보고 걷지만.
" ...음. 근데 여주야. "
" 응? "
아무 말 없이 영화관 쪽으로 걷고 있던 황민현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서며 정적을 깼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건 아니었다. 난 그냥 나대로 내 생각에 잠겨있었던거고, 황민현도 흘금흘금 쳐다봤을 때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세번째 만남이어서 그런가, 확실히 어색함은 덜했다. 내가 친하게 느낄정도였으니까.
" 오늘 되게 예쁘다. "
" 아... "
" 아, 좀 말하고 나니까 쑥쓰럽긴 한데... 말해주고 싶었어. "
황민현의 귀가 또 빨개졌다. 하핫, 머쓱한 웃음을 지은 황민현이 때마침 바뀐 신호등을 보고 건너자. 하고 다급하게 말했다. 계속 저 말을 하려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건가? 멍하니 있던 내가 황민현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야 말았다.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싫어할 사람이 어딨어. 황민현도 내 표정을 보고 눈치 챘는지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 마음대로 예매 했어, 진짜. 너도 좋아해야할텐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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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부터는 업로드 텀이 쵸큼 길어질 수도 있어요!!!!
4편ㄲㅏ지는 열심히 burn it up 했답니다... ^^
(참고로 분량조절 실패ㅎㅎ)
암호닉은 3편에서만 받는다고 말씀드려서!!!!!
일단 암호닉은 당분간 안 받도록 할게용
암호닉 분들 함께 열심히 달려보아용 <3
호두 / 옹옹 / 요뎡 / 옵티머스 / 민트초코 / 콜국 / 푸름 / 빈럽 / 쩨아리 / 헬로키티카
님들!!!!!!!! 무려 열분@!!!!!!!
저 좋아죽어용 ㅎㅎㅎㅎ 앞으로 자주자주 뵙도록 해용 하트뿅
궁금한게 있으시면 언제든 물어봐주세요 ㅎㅎㅎㅎㅎ
하.. 그리고.. 드디어 여주가 성우를 짝사랑하게 된 계기가 나왔습니다 롬곡줄줄...
점점 어(차피)남(주는)옹(성우) vs 어(차피)남(주는)황(민현) 으로 나뉘고 있는데 저 독자님들 반응 볼 때마다 짜릿한거 아세요?
후훗... 전 이미 다 정했답니다 키키
저 정말 여러분 놀리는데 맛 들린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남작이랍니다.. 어차피 남주는 작가맘 ㅎㅎㅎ
일단 지금은 둘다 메인이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여러분께 해드릴 수 있는게 좋은 글과 애정 듬뿍 담긴 답글 밖에 없어서 좀 많이... 슬퍼요 흑흑
포인트 내고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 신알신 해주시는 독자님들, 추천 눌러 주시는 독자님들 모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