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효야. "
" 응...? "
날 부르는 너의 다정한 목소리와 너의 무릎 위 살포시 누워 있는 나. 창밖으로 보이는 청청한 하늘과 흐드러지게 핀 햇빛 속의 우리. 나의 머리를 쓸어내리는 너의 손길이, 날 쳐다보는 너의 눈길이 따스하다. 노곤해진 몸을 너의 품에 파묻는다. 이 평화가 끝이 나질 않길 너를 더 붙잡는다. 애석하게도 또다시 넌 하얀 자취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날 두고서.. 가여운 날 두고서.. 넌 또 그렇게 가 버린다.
·
청청한 하늘은 제 힘을 내지 못하는 별들의 어두운 묘지로, 우리를 비추던 햇빛은 슬픔을 담은 달빛으로. 주변은 너의 하얀 자취로 새하얗게 물든다. 하얀 기억 속 따뜻한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너무나도 그리워서, 눈물이 났다. 숨이 막히도록 아파 오는 가슴을 붙잡고 오열했다. 나를 둘러싼 공허함은 나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로 메워졌다.
담아 두고 싶은 추억은 점점 사라져 버리고, 부정하고 싶은 현실은 점점 나의 목을 조여 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화와 따스함의 감정을 잊게 된다. 죽음만을 생각하게 되고, 죽음만을 기다리게 된다. 모든 게 부질없어 보이고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하늘은 나를 별들의 묘지로 데려가려고 한다.
한참 동안 슬픔을 토해 냈더니 우는 것마저 힘이 들었다. 차가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몸둥아리는 힘없이 떨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건전지가 다 분리된 리모컨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젯밤 우지호가 건네준 리모컨이었다. 그 리모컨으로 TV를 틀고 우지호와 나에 대해서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울다가... 이민혁.. 이라는 이름을 듣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두통에 정신을 잃었다. 그러고 거의 하루 동안 땅바닥에서 잠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축축히 젖은 눈가를 소매로 닦았다. 온몸에 한기가 도는 것과 달리 이마가 후끈한 걸로 보아 몸살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이불이라도 덮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침대로 향했다. 말 안 듣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겨우겨우 도착했다.
" ..하으..... "
침대에 눕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서 덮었다. 몸살 때문에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온몸이 떨리고 입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몽롱해지는 정신에 눈을 감았다. 사방이 하얀 시야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그때 불덩이 같은 이마에 차가운 손이 얹히는 게 느껴졌다. 살짝 눈을 떴다.
" 흐으... "
" 아파요? "
" ............. "
증오스런 우지호다. 말로는 걱정하면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연신 내 얼굴에 연기를 뱉어 냈다. 코끝을 찌르는 담배 냄새에 기침을 해 댔다.
" ..크읍... "
" 하... 냄새 좋죠? "
담배 연기를 피하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려고 하자 우지호가 한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선 다른 한 손에 들려진 담배 한 개비를 내 입에 물렸다. 내가 바로 뱉어 버리자 우지호는 날 노려보더니 잡고 있는 손목을 저번처럼 침대 난간에 수갑으로 고정시켰다.
" 허.. 내 성의를 무시했어...? "
무섭게 노려보며 다가오는 우지호를 막아 보려 했지만 나머지 한 손도 우지호에게 잡혀 버리고 말았다. 우지호는 내 옆에 버려진 담배를 다시 내 입에 물렸다. 내가 뱉어 내지 못하도록 한 손으로 얼굴을 잡았다. 한 손은 수갑에, 다른 한 손은 우지호 손에 잡혀 저항할 수 없었다. 발버둥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나의 앙상한 다리는 힘을 내지 못했다.
" 빨아. "
" ...흐....흐읍....... "
" ...........안...빨아..? "
몸살에 두통에 온몸이 아파 죽겠는데 우지호의 정신 나간 행동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몸을 부르르 떨며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머리가 금방이라도 깨질 거 같았다. 새하얀 담배 연기를 다 내뿜었을 땐 정신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그때 희미하게 들리는 우지호의 나긋한 목소리.
" 착하지, 우리 재효. "
·
" 형, 담배 펴 봤어요? "
" 음... 한 번..? 호기심에 펴 봤어.. "
" 어땠어요? 좋았어? "
" 아니... 좋았으면 그 후로 계속 폈겠지.. "
" 오..... 안재효... 바르게 살았네. "
" 우지호.. 너 은근히 자꾸 반말로 넘어간다..? "
" 별로 나이 차 안 나잖아. 착하지, 우리 재효~ "
" 씨... 내가 너보다 2살이나 형이거드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