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배경이 눈이 아프시겠지만 힘 내세요!
쓰는 저도 이렇게 눈이 아픈데 읽으시는 분들은 어떨까... 죄송합니다 (꾸벅)
그런데요 사실 제가 막 찬백을 좋아하긴 하지만
백도나 루민 클첸 세디 면총처럼 막 ㅁ넝류ㅠㅠㅠㅠ어미ㅏ런애;므ㅓㅔ태 ㅑㅓㅁ제;ㅐㅑㅠㅠㅠㅠㅠㅠㅠㅠㅁ너;ㅁ
이렇게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필력이... 받쳐줄지 모르겠네여...
그리고 경수 생일 기념 변백현이 나쁜 픽은 텍파 없을 예정이에요! 제가 봐도 너무 못 써서!
제 기준에서 제가 괜찮다 싶으면 텍파 뿌려요!
눈이 내렸다. 근 이 주 반만에 보는 눈이었다. 후, 한숨을 쉬자 몽글몽글 하얀 입김이 올라왔다. 아래까지 내려 쓴 도수 없는 뿔테 안경에 김이 서렸다. 백현이 옷 소매로 대충 안경알을 닦았다. 저 멀리서 경수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백현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손을 꺼내 크게 흔들었다. 품이 크고 두꺼운 야상이 백현의 팔이 움직이는 대로 펄럭였다. 잠깐 손을 꺼냈을 뿐인데도 손이 금세 벌개졌다. 백현이 배시시 웃으며 다시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백현의 옆에 선 경수가 백현에게 핫팩을 건넸다. 일부러 너 주려고 하나 더 샀어. 백현이 고개를 저으며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경수의 손에 들린 핫팩이 무안하게 다시 경수의 주머니 안으로 떨어졌다.
"오늘은 좀 어때?"
"글쎄, 아직인 것 같기도 하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많이 나아졌나 보네."
"그런 척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당치도 않은 말을 하며 백현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경수가 백현을 가만히 쳐다보다 백현의 뒤에서 달랑거리는 모자를 씌워 주었다. 한참이나 큰 모자가 백현의 얼굴을 다 덮을 기세로 툭 떨어졌다. 후. 다시금 백현의 입에서 뱉어진 한숨이 뿌옇게 흩어졌다. 많이 추워지긴 했나 보다. 가자, 백현아. 경수가 백현의 팔을 잡아 끌었다. 가기 싫어도 가야만 했다. 백현이 경수의 손에 질질 끌리다시피 발걸음을 옮겼다.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한 눈 위로 경수와 백현의 발자국이 찍혔다.
* * *
오, 변백현. 찬열이 낄낄 웃으며 백현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두꺼운 패딩 소매에서 겨우 빼꼼 삐져나온 작은 손으로 펜을 잡고 공부를 하는 모습에 찬열이 신기하다는 듯 백현을 바라봤다. 그 뜨거운 시선에도 백현은 일부러 모른 척을 했다. 신경은 쓰였으나 그렇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담배 있냐? 아니. 새끼, 지가 언제부터 모범생이었다고. 찬열의 손이 백현의 작은 머리통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결국 짜증이 올라온 백현이 펜을 놓고 찬열의 등짝을 때렸다. 아!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았다. 찬열이 맞은 부위에 손이 닿지 않아 끙끙때며 발버둥을 쳤다. 방해돼, 새끼야. 찬열이 백현을 노려봤다.
"쓰읍. 아, 존나 아프네. 어? 야, 이게 뭐냐?"
여즉 후끈거리는 등을 어찌할 줄 모르고 안절부절대던 찬열이 백현의 문제집 아래로 살짝 얼굴을 비춘 하늘색의 종이를 보더니, 백현이 말리기도 전에 그것을 뺏어들었다. 곱게 삼 등분으로 접힌 종이가 정갈한 백현의 글씨로 물들어 있었다. 백현이 당황하며 찬열의 손에 들린 종이를 도로 뺏으려 하자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를 높게 쳐들었다. 몸집이 작은 백현은 손에 닿지도 않는 높이에 절망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최대한 높이 뛴 것 같은데도 손끝에 걸리지도 않았다.
종인이에게. 찬열이 가장 위에 쓰인 문장을 읽었다. 종인아, 안녕? 나는 6반의 변백현이야. 얼마 전부터 네가 눈에 많이 띄더라. 백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에 서 있던 경수가 그런 백현을 놀리기라도 하듯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난 네가 점심 시간에 농구를 하는 모습도 봤고, 평소에 복도에서 지나칠 때도 봤지만 넌 참 언제 봐도 멋있더라. 하얗고 키가 작은 나는 구릿빛에 키가 큰 네가 너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묘한 감정이 들었어. 소리 내어 읽던 찬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와 함께 즐거워 보이던 표정도 점차 굳어 갔다. 그런데, 조금 지나 보니까 알겠더라. 나는 네가 좋아, 종인아. 거기까지 읽은 찬열이 입을 다물었다.
"미친놈. 쪼끄만 유딩 애들도 이딴 건 안 쓰겠다. 기지배도 아니고."
"개새끼야! 그래서 내가 내놓으랬잖아!"
백현이 바락바락 악을 썼다. 정말로 백현의 눈에는 촉촉히 눈물이 맺혀오고 있었다. 찬열이 그런 백현을 가만히 내려다 보다 손에 들린 편지를 찢었다. 백현이 놀란 눈으로 찬열과 찢긴 편지를 번갈아 보다 발을 들어 찬열의 정강이를 찼다. 아, 씨발! 찬열이 편지를 찢던 손을 멈추고 맞은 부위를 매만졌다. 으, 씨발, 야, 나 뼈 부러진 것 같아. 오버하는 찬열을 흘겨보며 백현이 찢어진 편지를 찬열의 손에서 뺏어 들었다. 복구할 수도 없게 잘게 찢긴 편지를 쓰레기통에 탈탈 털어 넣었다. 주말 동안 정말 정성을 들여 쓴 편지였는데. 백현이 다시 한 번 찬열의 정강이를 찼다. 이번에는 반대쪽이었다.
"그러니까, 어우, 씨. 그딴 거 쓰지 마, 새끼야. 사내 새끼가. 존나 보기 싫어, 그런 거. 안 오글거리냐?"
"몰라, 씨발놈아."
백현이 제 자리에 도로 앉으려 뒤를 돌았다. 종인이 앉아 있었다. 백현의 자리에 앉아 턱을 괸 채로 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열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왠지 이긴 기분이었다. 그와 반대로 백현의 머릿속은 하얗게 흐려져갔다. 멍하니 몇 초 간을 그렇게 서 있다 겨우 가라앉은 얼굴을 다시 붉히며 찬열을 밀치고 교실을 나가 버렸다. 찬열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분명히 이긴 것 같기는 한데, 금세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넌, 어때."
"뭐가?"
"변백현."
"글쎄. 귀엽던데?"
"미친. 좆 까, 호모 새끼야."
종인이 헛웃음을 쳤다. 그 얼굴에 찬열이 종인을 한껏 노려보며 백현을 따라 나섰다. 저렇게 꺼멓기만 한 놈이 뭐가 좋다고. 교복이 불편하다며 학교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던 백현이 패딩 안에 후드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던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밖에 많이 추운데,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찬열이 제 옷을 백현에게 입혀 줄 심산으로 몸을 갑갑하게 둘러싸고 있던 야상을 벗었다. 두꺼운 야상을 벗자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 * *
"야, 우리 오늘 어디 갈래? 변백현 집? 도경수 집? 오세훈 집? 아니면 우리 집?"
"조용히 좀 해, 새끼야. 존나 시끄러워."
"시험이 끝났으면 즐길 줄을 알아야지. 우리 백현이가 왜 이렇게 고상해졌을까."
종인이한테 잘 보이기 위한 공부였는데. 2학년 마지막 시험이었는데. 백현이 한층 우울해진 기분으로 찬열의 뒤를 쫄래쫄래 쫓았다. 백현과 다르게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찬열에 백현의 옆에 서 있던 경수 역시 찬열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찬열과 걸음을 맞출 수 있는 건 찬열의 옆에 선 오세훈 뿐이었다. 좋겠다, 키 커서. 경수의 비꼼에 세훈과 찬열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경수가 덧붙였다. 키 말고는 볼 것도 없는 놈들이. 그 말에 찬열이 발끈했다. 그 타이밍이었다.
"야, 백현아. 저기, 김종인."
세훈의 말에 찬열도, 백현도, 경수도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종인이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현의 눈이 반짝였다. 훤칠한 큰 키의 종인은 누구를 기다릴 걸까. 백현의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종인만을 뚫어져라 보던 백현이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종인이 씩 웃으며 백현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백현이 소녀가 된 것처럼 수줍게 웃으며 그 손짓에 대한 답인사를 보냈다.
종인아! 하이톤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여자 아이 한 명이 종인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종인이 백현에게 인사를 하던 때보다 더 밝게 웃으며 여자 아이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경수가 다급히 백현의 팔을 잡아 끌어 자리를 뜨려했다. 그러나 백현의 시선은 여학생에게 박혀 있었다. 눈이 크고, 피부가 뽀얗고,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에, 늘씬하면서도 볼륨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바라는 미인상의 여학생이었다. 교복으로 봐서는 같은 학교는 아닌 것 같았다. 찬열이 백현의 표정을 살폈다. 시험 점수를 매겨보던 조금 전보다 더욱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경수의 힘에도 끌려가지 않던 백현이 찬열이 손을 잡자 고분고분 그의 뒤를 쫓았다. 고개는 바닥을 향해 푹 숙인 채였다. 종인이도,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백현의 혼잣말에 찬열의 한숨이 하얗게 흩어졌다.
* * *
지독한 추위가 계속 되었다. 갈 곳을 잃은 백현의 손도 시렸다. 그 이후로 백현은 종인을 찾지 않았다. 가끔 교내에서 마주칠 때면 조금 당황하는 기색만 보일 뿐, 이내 뒤돌아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곤 했다. 그렇게 백현은 문드러진 속에 다시 새 살을 채워 넣으며 종인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백현은 유독 찬열의 보살핌 비슷한 챙김과 간섭을 많이 받았다. 물론 그것을 백현이 눈치 챌 리는 없었다. 옆에서 보는 경수와 세훈이 답답함에 찬열을 비난했지만 찬열에게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오늘도 찬열이 백현의 손에 빵을 다섯 개나 쥐어 주었다. 아침은 늦어서 못 먹은 데다가, 점심에는 그래놓고도 피곤한지 밥도 안 먹고 잠만 자던 백현이 굶은 게 걱정이 되어서였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얼른 먹어. 그 와중에 종류는 다 다른 것이었다. 백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찬열을 바라봤다. 야, 이걸 어떻게 혼자 다 먹어. 백현의 앞 자리를 꿰차고 앉은 찬열이 책상 위에 팔을 얹어 턱을 괴었다. 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있어 가깝게 닿아오는 백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옆으로 누워 자서 발갛게 자국이 남은 볼도, 조금 부은 눈도, 흐트러진 머리도 귀여웠다. 찬열이 손을 들어 백현의 머리칼을 정돈해 주며 말했다.
"못생긴 게."
"빵만 먹으면 목 막혀, 음료수 안 사왔어?"
"물이나 마셔, 뭘 바라."
그러면서도 찬열은 주머니 안에서 한 손 크기의 캔 사이다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자신도 머쓱한지 괜히 웃는 찬열에 백현이 따라 웃었다. 찬열에게는 한 손에 가득 들어찼는데, 백현이 작은 손으로 캔을 쥐니 크기가 훨씬 커 보였다. 찬열이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푸스스 웃어 버렸다.
오물오물 빵을 먹는 백현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져 왔다. 오전에 종인과 말다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던 요상한 상황을 떠올렸다. 애를 받아주지는 못할 망정 울리지는 말아야 할 것 아냐, 새끼야. 투덜대며 종인의 뒷통수를 때렸었다. 옆자리의 의자를 빼어 앉은 찬열을, 종인은 턱을 괴고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며칠이 지난 일이었지만 어쨌든 찬열에게는 백현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찾아온 건데, 종인은 저를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있었다. 그 날 나 걔 달래느라 혼자 고생했어, 시험도 끝났는데 놀지도 못했다고, 까마쿤 같은 놈아. 그 말에 종인이 큭큭대며 낮게 웃었다. 난 애 귀엽다고만 했지, 내가 호모라고는 안 했다. 핸드폰만 만져대며 꿈지럭 대던 찬열이 괴상한 눈빛으로 종인을 쳐다봤다. 미친놈을 쳐다보는 눈빛이기도 했고, 상당히 불쾌해 보이는 눈빛이기도 했다. 결국 찬열이 종인의 의자를 툭툭, 발로 찼다. 발길질에 밀리던 종인이 책상 끄트머리를 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턱을 괴고 찬열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네 공주는 네가 챙기세요, 등신아. 그렇게 좋아 죽으면서 왜 말도 못 꺼내냐.
종인의 말이 웅웅 맴돌았다. 여러 종류의 빵을 훑어보기도 하다가, 두 손으로 다소곳하게 빵을 쥐고 먹기도 하다가, 목이 막히는지 사이다를 들이키기도 하는 백현을 축 처진 눈으로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찬열이 생긋 웃었다. 왜 말도 못 꺼내냐. 그 말에 당황한 찬열은 몰라, 새끼야, 하며 종인의 교실을 도망이라도 치듯 다급하게 나와버렸었다. 귀끝까지 붉어지기 전에 교실을 빠져나와 다행이었다. 그것을 종인이 봤더라면 분명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을 게 뻔했다. 복잡해진 머리가 정리되지 못했다. 눈은 마음의 창이랬던가, 혼란스러워하는 찬열을 눈치라도 챈 건지 백현이 찬열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뭘 봐."
"찬열아."
찬열아. 찬열아. 이명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책상 아래로 두고 있던 손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갑자기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오늘따라 주체되지 않는 감정이 원망스러웠다. 들켜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마음에 애써 표정을 감추며 쿵쿵거리는 속을 덮었다.
"왜 내가 좋아하는 것만 쏙 빼 놓고 사 왔어."
짐짓 토라진 척을 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하는 꼴이 퍽 귀여웠다. 뾰로통하게 나온 입술에 뽀뽀라도 하고 싶어졌다. 진지하게 부르길래 들킨 건가 싶어 괜히 긴장했더니, 하는 말이 고작 이런 거였다. 허탈해진 찬열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도 찬열의 속을 맴도는 복잡함을 백현이 알지 못해 다행이었다. 내가 맨날 먹는 거, 알잖아. 왜 안 사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현은 입가에 빵가루까지 묻혀가며 오물오물 잘도 먹어댔다. 차녀리, 나빠. 입안 가득 들어찬 빵에 발음이 뭉개졌다. 이대로 같이 있다간 정말 들끓는 속을 저도 모르게 뱉어버릴 것 같았다. 찬열이 강아지를 대하듯 우쭈쭈, 하며 백현의 턱 아래를 손으로 간질였다. 입가에 여전히 붙어있는 빵가루도 조심스레 털어 주었다. 백현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멍멍아, 잠깐만 혼자 있어. 화장실 좀 다녀 올게."
그리고 찬열은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왔다던 경수도 찬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수업 종이 쳤는데도, 찬열의 자리는 텅 빈 채로 차가운 공기를 겨우 데우는 나른한 햇빛만을 담아내고 있었다.
* * *
아, 내 놔, 씨발아! 백현이 파닥파닥 팔을 휘젓거나 폴짝폴짝 뒤며 찬열의 손에 들린 것을 낚아채려 애썼다. 키가 작은 백현이 푸드덕대는 게 우스운지 세훈과 찬열의 합동 공격이 시작되었다. 백현과 마찬가지로 키가 작은 경수는 그 놀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찬열과 세훈이 저렇게 높게 손을 뻗으면 백현이 낑낑대는데, 경수가 저 사이에 끼면 손을 아무리 높게 뻗어도 백현이 수월하게 낚아챌 게 뻔했다. 경수의 역할은 옆에서 웃는 것 뿐이었다.
백현이 경수를 노려보며 화풀이를 했다. 뭐! 뭘 웃어, 난쟁이 똥자루 새끼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가 할 말은 아니었음을 깨닫는지 백현의 귀가 붉어졌다. 터덜터덜, 백현의 발걸음이 축 처졌다. 아무리 덤벼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수 년이 지난 이제야 알았는지, 한층 무거워진 어깨가 털썩, 책상 위로 엎어졌다.
"야, 야."
"뭐! 뭐, 씨발!"
잔뜩 약이 오른 백현을 찬열이 툭툭 쳤다. 아, 진짜 귀여워 미치겠다. 찬열이 손에 들린 담뱃갑을 백현에게 건넸다. 아니, 건네는 척을 했다. 눈 앞에 가까워진 찬열의 손에 고개를 번쩍 든 백현이 담뱃갑을 낚아채려 들자, 찬열이 다시 손을 높이 쳐들었다. 방실방실 웃어대는 저 얼굴을 한 대 쳐 주고 싶었다.
"담배는 몸에 나빠요, 아가. 이런 건, 윽,"
찬열은 결국 백현에게 또 정강이를 차이고 말았다. 몸집이 작은 백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이었다. 네 아들래미 안 깐 걸 고맙게 여겨라. 백현이 씩씩대며 찬열의 손에서 담뱃갑을 뺏어 들어 가방 구석으로 꾸깃꾸깃 밀어 넣더니 찬열을 노려 봤다. 찬열은 표정이 일그러진 채로 맞은 다리를 부여잡고 끙끙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백현의 옆자리에 앉는 것은 잊지 않았다.
"어우. 쪼끄만 게 진짜."
"뭐, 개 같은 새끼야."
"내 좆 깠으면 넌 진짜, 너 후회해."
"내가 왜."
"그런 게 있어. 쪼끄만 애들은 몰라도 돼."
그 말에 세훈이 웃었다. 경수도 뭔가 아는 눈치다. 뭐지. 저만 왕따 비스무리 한 것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나 따먹을 생각 하고 다니냐?"
억, 으, 야! 때리지 좀 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찬열을 퍽퍽 내리치는 손을 세훈이 막았다. 그런 거 아니니까, 애 좀 그만 때려. 그렇게 말을 하는 세훈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아니라고 하니까, 믿긴 믿어야겠는데. 사실 경수나 종인이 아닌 이상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백현은 고분고분 손을 내렸다.
여전히 저를 노려보는 백현의 손을 찬열이 덥석 잡았다. 자기야. 찬열이 히죽히죽 웃었다. 표정으로는 웃고 있는데, 속은 떨려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뽀얀 백현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발그레한 입술이. 백현이 나름 무서운 표정을 짓는 건지 찬열에게 눈을 흘겼다. 찬열은 그저 백현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에 애가 타는 건 되려 백현이었다. 뭘 하려는 건지 불안해졌다. 백현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벌개지기 시작했다. 괜히 속이 간질거렸다. 누가 봐도 잘생긴 새끼가 눈 앞에서 이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세훈과 경수가 눈치껏 자리를 피하려는데, 찬열이 백현의 손을 놓고 그 둘을 따라 나섰다.
* * *
눈이 펑펑 내렸다. 방학식을 축복하기라도 하는 듯 아침부터 내린 눈은 점심 때가 다 되어서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백현이 옷을 더 여몄다. 끝나자 마자 교문 앞에서 보자던 아이들은 할 게 있다며 백현을 먼저 보내고 십 분째 나오지 않는 중이었다. 백현의 입이 뾰로통해졌다. 얼어 뒤지겠는데, 뭐하는 거야, 이 새끼들은. 백현이 오들오들 떨며 주머니 속의 손을 더 꼭 말아 쥐었다.
"와, 씨발, 졸라 춥다!"
백현의 귀로 부들부들한 귀마개가 씌워졌다. 백현이 옆을 돌아봤다. 키가 큰 찬열이 백현을 보며 방긋 웃고 있었다. 하여튼, 잘생기긴 존나 잘생겼다.
"야, 가져. 오다 주웠음."
풉. 백현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핫팩 하나와 백현이 좋아하는 빵 하나. 고맙다는 말을 할 힘조차도 없이 벌벌 떨고 있는 백현은 그저 찬열을 보며 찡긋, 어린 애처럼 웃어 보였다. 찬열이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휴, 이 쪼그만 것. 언제 클래. 파닥파닥, 손에 핫팩을 쥐고 열심히 흔들어대던 백현이 찬열을 노려봤다. 넌 언제까지 나 놀려 먹을래, 개새끼야. 또 정강이를 맞기라도 할까봐, 찬열은 자신을 노려보는 백현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저기 경수 온다."
"오세훈도 사이 좋게 오네."
"사이 좋게가 아니라 도경수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 같은데. 안쓰러워라."
"너도 도경수 못지 않게 작아."
"좆 까."
운동장을 사이에 둔 건물 현관에서 이제 막 경수와 세훈이 나오던 중이었다. 세훈은 경수의 작은 키를 이용해 장난을 걸고 있었고, 경수는 조그만 몸집으로 그것을 요리조리 피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찬열이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백현의 어깨에 제 팔을 얹었다. 마치 팔걸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백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옆으로 물러섰다. 그 바람에 찬열이 넘어질 뻔한 걸 겨우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 좆만아, 넘어질 뻔했잖아. 이렇게 큰 좆 봤냐, 개놈아.
눈은 여전히 펑펑 내렸다. 결국 세훈은 경수에게 몇 대를 맞은 뒤에야 장난을 그만 뒀고, 찬열은 저를 경계하며 걷는 백현을 사랑스럽게 쳐다봤고, 백현은 그저 묵묵히 찬열이 준 핫팩만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것도, 졸업하고 나면 다 추억이겠지. 문득 든 생각에 앞장서서 걷던 백현이 찬열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한참 핫팩을 쥐고 있어 따뜻해진 손으로 찬열의 손을 잡았다.
"뭐하냐, 남자끼리."
"따뜻하지?"
아무것도 모른 채 맑게 웃기만 하는 백현에, 찬열의 속이 간질거렸다.
* * *
백현아, 빨리 와. 얼른.
다급한 경수의 전화에 백현이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택시를 탔다. 이게, 씨발, 지금 이게, 무슨 일인 거지. 백현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인 컴컴한 새벽에, 백현의 잠을 깨우며 걸려온 경수의 전화는 평소처럼 실없는 전화가 아니었다.
박찬열, 사고 났대.
쿵. 뭔가 거대한 것으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단숨에 잠이 깼다. 떨리는 목소리로 어느 병원이냐고 묻던 백현의 말은 백현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경수의 말에 먹혀들었다. 눈물이 왈칵 차오르는 것 같았다.
병원이었으면, 나도 좋겠는데, 장례식장이야.
웅웅, 경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친구가, 잠깐도 아닌 중학생 때부터 제 곁에 자리 잡았던, 가장 친한 친구가. 숨이 턱턱 막혀왔다. 도착한 택시의 문을 여는 백현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하던 백현을, 찬열은 늘 불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었다. 그랬던 찬열의 앞에서, 울 수가 없었다. 종인과 경수가 자다 깬 얼굴로 달려 온 백현을 가만히 바라봤다. 추운 날씨에 귀도, 코도, 볼도 붉어져 있었다.
"오세훈도 곧 올 거야."
"…언제, 아니, 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다. 울컥, 괜한 서러움과 서글픔이 울렁였다. 울지는 않았다. 울 수 없었다. 내가 울면, 찬열이가 싫어해. 울지 말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난데, 아마 그쯤에 사고 난 것 같아. 식장으로 옮긴지는 너 오기 한 삼십 분 전이었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백현에게 전화를 건 종인이 그렇게 말을 했었다. 11시 쯤이었는데, 카톡에서도 되게 신난 거 보이더라. 너한테 고백하러 간다고, 오늘은 호구처럼 안 있고 꼭 하겠다고. 백현이 아직도 모르니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말하면 뒤진다고.
정신 없이 녹초가 된 몸으로 집 문을 연 백현이 침대에 툭, 쓰러졌다. 몇 시간만에 초췌해진 것 같았다. 백현이 도록도록 시선을 굴리다 제 책상 의자에 아무렇게나 대충 걸쳐져 있는 야상을 보았다. 찬열의 것이었다. 춥게 입고 다니던 백현이 신경 쓰였는지 제 옷을 벗어주며 내일 가져다 달라고 했던 옷이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도록 새까맣게 잊은 채 의자에 걸어두고 있었다. 백현이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두껍고, 제 몸에 비해 한참이나 크던. 찬열에게는 딱 맞아 보였는데, 제가 입으니 아들이 아빠 옷을 입은 것마냥 옷이 펑퍼짐했었다. 속이 갑갑하고 울렁였다.
"날 좋아했었구나, 네가."
널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난 또 어떻게 널 보낼 수 있을까. 우린 무슨 인연일까. 네가 다시 내게로 향해 오긴 할까.
* * *
함박눈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져 내렸다. 경수의 차를 타고 가던 내내 멍하니 창밖만을 바라보던 백현이 찬열을 보며 생긋 웃었다. 그렇게 키가 크던 놈이. 작은 항아리와 그 앞에 놓인 작은 사진이 그들이 볼 수 있는 찬열의 모습 전부였다. 하아. 백현이 답답한 속을 뱉어내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 경수는 백현의 두 발자국 뒤에서 그를 묵묵히 지켜봤다. 백현의 온몸을 다 덮은 찬열의 야상은 여전히 따뜻했다. 이제야 하는 말인데,
"찬열아."
나는, 나도, 너를,
"좋, 아해."
좋아했나 보다. 그 어리던 교복의 너를.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