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야 목줄, 목줄! 산책가야지!!" 아직 사람인 제 모습이 어색한 주인에, 일상의 대부분은 강아지인 상태로 지내고 있어요. "낮인데 왜 이렇게 어둡지? 우리 한 바퀴만 돌고 얼른 들어가자!" 날이 흐린 게, 곧 비가 올 것 같네요. 그렇다고 산책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죠. 최소한의 운동량만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저기 저편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요.
(눈치눈치) "...?" 전에 주인을 한 번 울린 이후로, 마주칠 때마다 지나치게 눈치를 보며 피하는 남자예요. 연기를 할 거면 티가 안 나게 하든가, 하필 외출 시간이 항상 겹쳐서 양쪽 다 불편하기 일쑤예요. 톡, "어? 비온다." 끈을 잡고 있던 주인의 손등에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빗소리가 점점 잦아지더니, 이내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어요. 임시방편으로 슈퍼 밖 파라솔 아래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기로 했지만, 도무지 그칠 기색이 안 보이네요. "어떡하지.." 간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초조한 듯 손톱을 입에 갖다 대는 주인이에요. 습관처럼 그 손을 저지했지만, 불안한 건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혹시나 비를 맞고 가게 되면 주인이나 저나 감기에 걸릴 게 뻔하니까요. 특히 주인은 더 안되죠. 좋은 수가 없을까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눈치눈치) "...?" 이럴 줄 알고 우산을 미리 챙겨 나왔는지, 어느새 사람으로 변한 대니, 아니 다니엘과 우산을 쓰고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네요. 그러니까 저 눈빛의 의미는, '봐봐. 우산 딱 두우개. 나랑 대니, 너랑 주인. 두명씩. 같이 쓸래?" 창피하지도 않은지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열심히 도움의 손길을 뻗는 남자에, 저는 주인의 발등을 두 번 두드렸어요. 이게 뭐 하는 거냐고요? '그럼 앞으로 사람으로 변할 때는 미리 신호를 줘. 발등을 두드린다거나.. 뭐 그런 거 있잖아.' 제가 반인반수인 걸 고백한 날, 주인과 맞춘 신호예요. (뿌듯)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저는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주인, 저쪽 보여요? 저어쪽.." "저어쪽..? ..아.. 보여.."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데 안 보일리가요. "..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도움 받을까요?" ..알겠어. 주인은 잠깐 망설이는 듯 하더니, 물 불 가릴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는지 조그맣게 대답했어요. "이제 됐으니까 가까이 와도 돼요!!!" 저는 빗소리에 묻힐 걸 감안해 크게 소리쳤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남자는 찰팍찰팍 뛰어왔어요. "야. 너네나 써라. 우리 비 맞는 거 좋아해. 그치 다니엘?"
"아닝데. 대니는 안 맞고 싶ㄷ."
"맞다고? 역시 우린 잘 맞는다니까. 짜식. 가자 대니! 뛰어!" 차마 말리기도 전에 이상한 주인과 그의 충견은 우산을 내던지고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어요. "괜히 우리때문에 비 맞는 거 아냐? 미안해서 어떡하지.." ".. 내가 못 산다.. 일단 가요 주인." * 덕분에 무사히 집에 돌아왔지만, 비를 쫄딱 맞았을 두 남자를 생각하니 주인도 맘이 편치만은 않아 보였어요. "..좀 이상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저도 동감이에요. "아랫집에 산다 그랬지?" * "멋있는 척 좀 하려다 물에 빠진 생쥐 꼴 됐네." 띵동 "저.. 윗집인데요.." "..네에?????"
"저도 같이 왔으니까 괜한 생각 말고 문 열어주세요." 벌컥 "괜한 생각은 무슨, 넌 나를 뭘로 보고!" "..." "아.. 아까 감사했다고.. 인사 드릴 겸 왔어요." " 진짜 괜찮은데. 전 비 맞는 거 좋아하거든요.. 무튼 일단 앉으세요!"
(대니앉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에도 자기가 앉더니 여전하네요." "전에도..? 전에도 온 적 있어?" "..." "어 모르셨어요? 요 근래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어요. 와서 주인이 어쨌고 얼마나 자랑을.." "..."
"알겠어 알겠어, 그만 하라고? 부끄러워하기는. 무튼, 주인 사랑이 아주 대단합니다. 얼마나 기특한지ㅎㅎ" "왜 그쪽이 저를 기특해해요. 우리 주인이 잘 키워준건데." "이 배은망덕한 자식.. 내가 다 폭로해버린다?" * "그리고 또 오늘은 우리 주인님이.." "저 허스키야.. 이제 그만 해라. 이름도 모르는 네 주인 얘기만 벌써 2시간 째야. 너 나 싫어하니...?"
"이제 시작인데.. 뭐, 주인 깰 시간 다 돼가니까 이만 올라가야겠네요. 내일 또 올게요 민현씨^-^" (한숨) 주인에게 반인반수라는 사실을 밝힌 후부터 부쩍 말이 많아진 윗집 허스키. * "이름이라도 알려주든지.." "아! 인사가 너무 늦었죠. 저는 성이름, 우리 강아지는 성우. 옹성우요!" "..네? 홍성우요?" "아뇨 옹성우요." "공..성우..?" "아뇨, '옹'성우요." * 그렇게 첫방문치고는 나름 평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오늘 일 덕에 경계가 많이 풀렸는지, 가끔씩 편안하게 웃어보이는 주인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게!"
"응!" (싱글벙글) "..진짜 주인 바보긴 한가 봐?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보네." "주인 옆에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나니까 웃는 거예요. 히히." "..그래. 네 맘대로 해라. " * "화장실이 어느 방이지.." 막상 화장실을 가려니 괜한 방을 열어 실례가 될까, 미리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었어요. 내 정신 좀 봐. 남의 집에 방문하는 건 거의 처음이라, 편안한 와중에도 사뭇 긴장했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 하나 못 찾아서 절절매는 꼴이 우습긴 하네요. 넓지 않은 복도에 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한 방에서 아까 본 남자가 나왔어요.
"화장시. 쓰세요 주잉. 대니는 끝나써." 감사합니다, 하고 화장실에 들어와 가만 생각해보니 "대님니다. 대니." 전에 산책 중에 만난 어눌한 남자와 꼭 닮았네요. 이름까지도요. '그때 5개월이라고 했었지..' 어눌한 이유가 있었네, 강아지일 때나 사람일 때나 어린 건 마찬가지구나. 겉모습은 완전 다 컸는데. 우리 성우는 5개월 때 어땠으려나. 그 어린 아이가 저를 배려한답시고 꽁꽁 숨겨왔을 것을 생각하니 새삼 기특하고, 안쓰러워지는 순간이에요. *
"너 요리는 좀 하냐?" "조금요. 미역국 끓여봤어요. 근데 요리는 우리 주인님이 훨씬 잘해요." "아주 그냥, 주인 칭찬은 세트지? 말끝마다 우리 주인, 우리 주인. 귀여운 놈." "그래도 사실인데요." "네 주인, 대니 엄청 귀여워하더라. 아직 애기라 그런가." "..귀여우니까요, 아무래도." "넌 애교같은 거 없어?" "딱히 모르겠어요." "주인은 다 큰 네 모습밖에 못 본 거지? 야, 나라면 궁금하겠다. 애기 성우말이야." "네...?" "막 살갑게 굴어봐. 주인이라고 너무 깍듯이 하지 말고. 가족같은 사인데, 활력소같은 게 필요하지 않겠어?" "..그런가요." 생각해보니까 주인을 지켜준답시고 저 스스로 여기까지, 하고 선을 그어놓고 지낸 것 같아요. 그런 저를 주인은 불편하게 생각했을까요? * "오늘 고마웠습니다. 다음엔 제가 초대할게요!" 꽤 좋은 만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까 민현씨한테 들은 얘기 때문에 그 뒤로 대화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지만요. 주인이 좋아한다면야, 뭔들 못하겠어요? 저는 큰 맘 먹고 작전을 개시했어요. 저기 주방에서 주인이 저녁을 하고 있네요. *
"지금쯤 어떻게 됐으려나"
"주잉. 밥. 대니 꼬르륵.." "알겠어 알겠어. 우리 대니는 언제 허스키 형아만큼 크려나, 그땐 진짜 섭섭하겠다. 대니 커서도 주잉, 주잉 할 거지?"
"(자기가 주인을 어떻게 부르는지에 대한 자각 없음)" "그래.. 밥 먹자." * "성우야 밥 다 됐어 앉아!" "주인 잠시만요. 저 보여줄 게 있어요" "응? 일단 먹고 하자! 밥 다 식겠다." "아.. 그래요!!" * "맛있어?" "주인이 해주는 건 항상 맛있어요." "잘 먹어주니까 좋다." "근데요 주인님,
아 아니에요......." 불러놓고 갑자기 뜸을 들이는 성우예요. 뭐 비밀이라도 있나? "뭔데 말해봐! 궁금하게."
"아니 그냥, 대니가 참 귀엽더라구요." 칭찬을 뭐 이렇게 시무룩하게 하지. "너도 그렇지? ㅋㅋㅋㅋㅋㅋ애기라 그런가, 귀엽긴 하더라." ".....주인님!" "응?" "대니랑 살면.. 엄청 재밌겠죠? 보고만 있어도 좋고.. 그렇겠죠?"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자체가 귀여우니까." (쿠크바사삭) 자꾸 의도 모를 질문을 하는 성우에, 가장 무난하게 한 대답인데. 세상 무너지는 표정 짓네요. 대체 무슨 일이지. 1분정도 지났을까요, 멍하니 수저를 드는데
"..주인!" 이걸로 세 번째예요. "성우야." "네??" "아까부터 자꾸 할 말 빗겨서 얘기하지." "..." "뭐야, 말해봐." "그럼.." "응."
"이..렇게 하면 저도 좀 귀여워요?" "???"
"막, 재밌어요?" 사뭇 긴장한 모습이에요.ㅋㅋㅋㅋㅋㅋ "..어. 엄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꾸 대니 물어본 게 다 이거 걱정하느라 그런 거였어?"
"저는 대니랑 다르게 크고 애교도 없으니까요.." "엥? 네가 애교가 얼마나 많은데!" "제가요??" "응! 항상 주인님 주인님, 엄청 잘 따르고. 모자랄 게 뭐 있다고!" "..그쵸?
헤헿" ..강아지가 반이나 차지한 몸이라 그런지, 어쩔 때 보면 참 단순한 성우예요.
암호닉 |
페이버 / 푸딩 / 정수기 / 뀨뀨 / 사랑아 성우해 / 제니 / 체셔 / 1232 / 아가베시럽 / 여름안녕 / 옹기종기 / 옹스키 / 별이 / 강낭 / 사용불가 / 0846 / 쁘오뇨오 / 치자꽃길 / 대니 / 그랬군 / 0226 / 애정 / 민트초코 / 공들이 / 깡다 / 레드 / 콜국 / 꼬맹맹 / 나의라임채채 / 솜구름 / 복숭아 / 공백 / 하람 / 숮어 / 성우는 나의 빛 / @불가사리 / 봐린 / 빙슈 / 상큼쓰 / 수토끼 / 강아지는 멍멍 / 빵빰 / 베네치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