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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나는 삐걱이는 자전거를 끌며 차게 내려앉은 밤공기를 마셨다. 운동장에서부터 정문을 향해 걸어나오니 자습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하교하고 있었다. 운동장 흙이 발에 채이고, 나는 걸음을 더욱 늦추며 콧노래를 작게 흥얼거렸다. 분명 집에 도착하면 오늘따라 왜 이리 늦었냐는 엄마의 성난 잔소리를 들어야 할테지만 그렇다고 느린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하고 싶진 않았다.
 

 

완벽하게 가라앉은 해의 빈자리는 어느새 달이 대신하고 있었다. 수많은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텅 빈 하늘을 보자니 공허함이 물밀 듯 밀려왔다. 나는 정문을 빠져나와 담벼락을 따라 길게 난 길을 걸었다. 그 길가로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은 겨우내 잎을 떨구고 추위에 떨던 앙상한 모습에서 서서히 제 본연의 푸른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모처럼 감상에 젖어 천천히 걸어가던 중, 급작스레 자전거가 덜컹이며 흔들렸다. 놀란 나는 주위를 살피며 둘러보았지만 눈에 들어온 건  자전거 바퀴 밑으로 난 작은 돌부리였다. 별 것 아닌 일에 나는 금세 김이 빠졌지만 언제 잠에서 깨어나 여기까지 온건지 하교하는 변백현의 모습이 언뜻 시야로 보이자 나는 당혹감에 선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자습이 끝나고서 부리나케 교실을 튀어나온 것은 순전히 변백현 때문이었는데 왜 괜한 변덕으로 늑장을 부려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둔건지는 모호했다.

 
 
 
 


 

내가 바보같이 자전거를 붙잡고 뒤돌아 멍하니 서있는동안 퍽 거리가 떨어져있던 변백현과 놀랄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그대로 자전거에 올라타 줄행랑을 칠까도 생각해 봤지만 생각만큼 발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우스운 모양새로 나란히 걷게 된 나와 변백현은 누구하나 쉽게 먼저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지 못했다. 자전거 바퀴가 탈탈탈 굴러가고 뻑뻑한 체인이 작게 흔들리며 마치 대화라도 나누듯 소리를 냈다.

그러고보니 변백현은 말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항상 제 자리에 앉아 하는 것 없이 멀뚱히 있을 때가 많았다. 딱히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을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보나마나 별 의미 없는 곳일게 분명했다. 변백현은 교내에서 나름 유명인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벙어리가 아니냐는 농담조의 소문이 돌 정도로 말이 없는, 조용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누구와도 섞이지 않았다. 그냥 내가 생각에 그는 조금 특별한 존재같았다. 또래와는 다른, 그렇다고 어른이라기엔 아직 어린, 조금은 미숙하고 또 조금은 성숙한. 그런 존재.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의 눈이 저절로 따라간 곳은 덤덤하게 걷고 있는 변백현의 옆모습이었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저 무심한 표정은 차라리 가면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정도였다. 하지만 굳이 변백현에게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변백현과 있을 때에는 그런 생각마저 잊게 됐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에 대해선 변백현도 나와 마찬가지인 듯 했다.
 

 

하기사 굳이 서로 말을 나누지 않는게 이런 어정쩡하고 미묘한 관계엔 더 좋을지도 몰랐다.

 
 
 

 

 


 

상황은 영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로 변백현이 나를 집요하게 주시하는 쪽이었다면 이젠 내가 눈에 보일 정도로 그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순간 그 순한 인상의 얼굴 위로 고집스레 다물린 입이 얄밉게 느껴졌다.

그것도 참 이상했다.

그러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털며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치워냈다.
 

 

정처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좌우로 갈리는 횡단보도 앞까지 오게 되었다. 등교시간엔 하염없이 길다고 느껴지는 담벼락 길이 더욱 더 길게 느껴질만큼 숨막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요란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과 거리의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을 보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저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이상하고 바보같은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묘한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왼쪽, 변백현은 오른쪽. 곧 파란 불이 켜지고 나면 우리는 그렇게 갈라질 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세워진 자전거 핸들을 꽈악 쥐었다. 그리곤
 

 

셋, 둘, 하나.
 
 
 
 
 
 
 
 

"ㅡ 잘 가."
 

속으로 숫자를 외며 한발 먼저 내딛으려던 나는 얼음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나는 길을 건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숨이 턱까지 찬 것처럼 호흡이 가빠졌다. 그것의 원인제공자는 태연히 길을 건너 저멀리 멀어지고 있었고, 그 아무런 동요도 없어보이는 뒷모습은 야속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진중한 음성이 이명처럼 귓가를 울렸다. 마치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낄 때처럼 옆얼굴이 따갑기도 했다. 나는 의식없이 얼른 자전거에 올라타 차디찬 밤공기를 가로질렀다. 그럴수록 숨이 더 차올랐지만 찬 공기 속 달아오른 몸은 식을 줄을 몰랐다. 숨이 차 벌어진 입가로는 덥고 밭은 숨이 흘러 나왔고, 어느새 이마 위로는 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계절에 착오가 있는 모양이었다. 봄도 완연하지 않은 마당에 이렇게 더울 리가 없었다. 마치 여름의 중간에 서 있는 것 같이 몸을 덮은 열기에 나는 이 모든 것이 자고나면 사라질 한 여름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

안녕하세요, 나그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될랑 말랑 아슬아슬허네유

마니 싸랑해쥬쎄요 흐헿헤 (윙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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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우와....글을 정말 잘쓰시네요 글잡에서 얼마만의 고퀄글인지 감격스럽기까지하네요ㅜㅜㅜ잔잔한 느낌의 문체가 너무 인상적이에요...신알신하고 갈께요! 정말 기대되는 백도에요 사랑해요 작가님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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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a g
감사합니다!! 이쁘게 봐주세요 !!ㅎ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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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와... 저도 경수따라서 심장이 빨라지는느낌이에요
뭔가 숨차는기분? 변백현이 막 밝은캐릭터일줄알았는데 아니였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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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a g
ㅋㅋㅋㅋㅋ 숨이 차시다니 진정하세욬ㅋㅋ 백현이는 음...저도 딱히 정의내릴 수 없는 모호한 캐릭터져 어려워여ㅠㅠ 댓글감사함미당~*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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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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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a g
댓글 감사합미당! 독자분이 말씀해주신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햇눈뎅 알아봐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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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잘가라니...ㅠ 별말 아닌데 정말 일상적인 말인데
쿵 다가오네요ㅠ 순간 엄청 감정이입해서 뚜쉬뚜쉬 했어요ㅠ 잘읽고 갑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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