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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정원







  며칠 내내 갈잎을 때리던 늦은 가을장마가 끝이 났다. 채도가 낮은 하늘에는 구름이 퍼져있어 볕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서늘한 습기 덕에, 겉옷을 단단히 챙겨 입어야 했다. 을씨년스러운 가을바람이, 정을 그리워하듯,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앙상하게 마른 은행나무를 지나며, 드러난 목덜미를 코트의 깃을 세워 가렸다. 입김으로 작은 안개를 만들며, 차에 올라타자, 한기가 매섭게 올라왔다. 날이 추웠다. 그의 검은 시선만큼이나, 차고, 진득했다.

    경수는 많은 수감자들을 만나봤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남자다운 턱과 잘생긴 외모하며, 검은 못처럼 깊고, 음울한 눈동자를, 결코 본 일이 없었다. 더욱이, 스물 셋의 젊은 남자에게서. 그는, 그런 눈으로 제 아비를 내려다보며, 그를 죽인 것일까. 종인은 그 날에 대해 결코 얘기하지 않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니, 하고 물으면, 또래 청년들 같은 얼굴로, 오늘은 무엇을 했다느니, 밥은 어땠고, 어떤 게 힘들었다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경수는 알고 있었다. 종인은 그런 것에, 하등 관심이 없었다.

    교도소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차가 몇 대 없는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종인이 기다리고 있을 만남의 방으로 걸었다. 찬바람이 불어와서, 경수는 앞섶을 여몄다.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으레 그렇듯, 종인이 수갑을 찬 손을 맞잡고서, 작은 창을 등진 채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는 기척에 종인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며, 시선을 경수에게 옮겼다. 깊은 바다처럼, 그것은 어둡고, 외로웠다. 눈동자는 깨진 유리구슬 같이 불안해보였다. 경수는 입술 끝만 올려 웃고는 안녕, 했다. 종인은 검은 생머리가 흘러내리도록,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맞은편에 경수가 앉아 작은 방 안을 한 번 살피고, 종인의 얼굴을 마주했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까.”





    이렇게 물으면, 종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톱을 퉁기며 오늘은 어땠어요, 하며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가라앉은 눈이, 무겁게 경수를 응시할 뿐이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있던 종인은,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서,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경수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죠.”





    내게는 형이 한 명 있어요. 사실 피는 섞이지 않았어요. 어머니와 이혼하고 난 후에, 아버지가 어느 날 아주 갑자기 데려왔거든요. 그 때 난 중학생이었는데, 고등학생이었던 형은, 나보다도 작았죠. 비쩍 마르고. 그 작고 마른 걸 데려와서는, 갑자기 내게 형이라고 소개했죠. 그러자,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던 형이, 내게 제 몸집처럼 작은 손을 흔들면서, 종인아 안녕, 했죠. 난 그가 몇 살인지도 몰랐어요. 겨우 한 살 차이가 난다는 걸, 한참 후에 알았죠. 이름은 김종대에요. 내 아버지 성을 따른 것 같더군요. 나는 그가 좋았어요. 나는 외동이어서, 형제가 생긴 게 마냥 좋았거든요. 그는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눈을 작게 뜨면서 웃는 모습이 천사 같았죠.

    우리는 잘 지냈어요. 친형제만큼이나 친해져서, 서로 비밀도 없었죠. 형이 뭘 좋아하는지, 내가 누굴 만나는지. 우린 서로 다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였지……. 내가 고2가 됐던 해에, 꼭 이런 날씨였죠. 서늘하고, 춥고, 매서웠죠. 그 날 저녁에 식사를 하는데, 형이 떨고 있었어요. 나는 그날, 백지장처럼 창백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절실하게 이해했어요. 정말, 백짓장 같았거든요.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 할 정도였죠.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형은, 웃으면서, 아무 것도 아니야, 하더군요. 웃으면서 말이에요. 그리고는 그냥 몸이 안 좋데요. 그뿐이래요…….

    우리 집은 서울에 있는데, 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집을 나오게 됐어요. 형은 대학을 안 갔어요. 아버지가 보내지 않았죠.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알아요. 이제는……. 어쨌든, 전 한 달에 한 번 쯤 집에 들렸어요. 한 달에 한 번도 못 갈 때도 있었죠. 그런데 집에 갈 때마다, 형은 점점 말라갔어요. 원래 살이 찌는 몸이 아니긴 했지만, 눈에 보이도록 말랐어요. 뺨이 수척했고, 발목은 제 손목 같았어요. 옷을 벗으면 갈비뼈가 다 도드라져 보일 정도였어요. 말수도 적어지고. 꼭 우울증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저를 보면 웃어주는 건 여전했어요. 형은 학교를 가지 않아서, 언제나 집에 있었는데, 제가 집에 갈 때마다 문을 열어주면서, 햇발같이 웃으면서, 종인아, 하며 저를 안아줬어요. 전 그때를 참 좋아했죠.

    작년에, 주말과 공휴일이 겹쳐서, 쉬는 날이 길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땐 집에 조금 더 있을 수 있었죠. 느지막이 일어나서, 집안을 살피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아버지야 회사에 갔겠지만, 형이 없는 일은 드물었어요. 걱정이 됐죠. 마당에 나가봤더니, 장미 정원 쪽에 형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게 보였죠. 아차, 우리 집에는 꽤 큰 마당이 있었어요. 한 켠에는 장미 정원이 있었죠. 난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형은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냥 장미를 보고 있는 줄 알았죠. 가까이 가서 놀래주려고 조용히 다가갔는데, 형은, 다듬어지지도 않은 장미 줄기를 손으로 잡고 있었어요. 가시가 잔뜩 돋은 줄기를 말이에요. 형의 작고 하얀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죠. 장미꽃잎처럼……. 깜짝 놀라서, 뭐하는 거냐고 소리를 지르니까, 저를 올려다보더군요.

    아…….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전 사람이 그런 얼굴을 할 수 있는 것을 몰랐어요. 아주, 몹시, 천천히 저를 올려다보는데, 정말, 정말로, 죽은 사람 같았어요. 소름이 돋아서 말도 안 나왔죠. 그 손을 풀어내고 그를 꽉 껴안았어요. 품 안에서 바스라질 것 같아서, 세게 안지도 못하겠더군요. 정말 작았거든요. 키, 몸, 손. 모든 게요. 손에서는 여전히, 피가 떨어지고 있었어요. 형이 제 귓전에 속삭였죠. 종인아, 나 살아있어.

    형을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병원에 데려가지 말래요. 단순히 우울증이라고. 집에만 있어서 그럴 거라고. 저는 납득했죠. 병신처럼. 하지만, 형은 제가 집에 갈 때마다 심해졌어요. 손에는 내내 붕대를 감고 있었고, 몸은 더 말라갔죠. 날이 갈수록, 그가 장미 정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장미 줄기를 잡고 있지 않아도, 정원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죠. 눈 먼 사람처럼. 그러다가, 또 가시 돋은 줄기를 세게 쥐어 잡고서는, 피를 뚝뚝 흘리기를 반복했죠. 전 그를 말리지 못했어요. 시뻘건 피 떨어지는 제 손을 내려다보며 살아있다고 말하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거든요. 정말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은 것처럼 떨리고 있었어요. 그것이 그의 우울로부터 도망치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저, 장미 정원에 있는 그를 지켜볼 뿐이었죠.

    그러다가 겨울 방학이 됐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종강을 해서, 가족들에게 말한 날보다 일찍 집으로 올라갔죠. 형을 놀래주자는 생각으로 연락도 없이 갔어요. 집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어요. 테이블 위에, 산책을 다녀올게요, 하는 비뚤비뚤한 형의 쪽지가 있었어요. 아마 아버지께 남긴 거겠죠. 그날은 토요일이라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었거든요. 집에 아무도 없어서, 저는 그냥 조금 잠을 자려고 했어요. 전날 잠을 못 잤거든요. 가져온 짐을 모두 방으로 가지고 올라가서, 문을 닫고 잠이 들었죠.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아주 크고, 까랑까랑했는데, 여자 목소리는 아니었어요. 깜짝 놀라서 허겁지겁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가니, 형의 방이더군요. 문을, 벌컥, 열었는데. 형이……, 형이, 서 있었어요. 입고 있던, 셔츠는, 거의 찢어져있었고, 바지는, 앞섶이 벌어져있었죠. 그 작은 손……, 장미 줄기를 꼭 쥐던 손에는, 장미 대신, 작은, 칼이, 들려있었죠. 아버지는, 목덜미에서, 시뻘건, 피를 굼틀대며, 쓰러져있었고.

    형은 숨을 헉헉 대면서 저를 봤어요. 저는 그때서야, 알았죠. 모든 걸 말이에요. 형의, 표정, 헤쳐진 옷가지, 아버지의, 죽음. 장미 정원. 가시 줄기. 피. 형은, 그 오랫동안이나. 아주, 많은 시간 동안, 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있던 거죠. 교복을 벗기도 전에 말이에요. 그 상황에서, 저는 놀랍도록 침착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우선 형의 손에서 칼을 뺏어들었죠. 그리고서 바닥에 흥건한 피를, 손으로 짚어서 제 옷에 묻혔어요. 칼의 손잡이도 옷으로 한 번 닦은 후에 다시 잡았죠. 형의 지문을 남기면 안됐으니까. 그 다음, 형에게 말했죠. 내가 죽였다고 해. 지금 경찰에 신고해서, 아버지가 죽었다고, 내가 죽였다고 해. 당장. 형은 울고 있었어요. 사실, 그는 누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형은, 울면서, 계속, 종인아, 종인아, 했어요. 형을 노려보면서, 어서,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형이 아버지 핸드폰으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어요. 형이 다시 말하기 까지, 잠시 정적이 돌았는데, 그 때 제 심장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어요. 쿵, 쿵, 쿵, 하면서. 형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계속 죽었어요, 죽었어요, 만 반복했어요. 죽었어요, 빨리 와주세요. 죽었어요.

    저는 집에서 곧바로 체포되고, 변명할 여지도 없이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죠. 그 순간, 형이 먼저 떠올랐어요. 형은, 혼자서는 못 살텐데. 어떡하지. 면회를 오면, 이것저것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 유산을 어떻게 쓰고, 대학도 가야하고, 친구도 사귀고……. 그런데, 형은 오지 않았어요. 여태껏, 한 번도. 대신, 며칠 전 친구 녀석이 왔다 갔죠.

    형이 죽었데요. 손목을 긋고서. 그렇게나, 좋아하던 장미 정원에서.



    종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경수가, 느릿하게 눈을 껌뻑였다.





    “후회 안하니?”



    “무얼요.”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둔 것.”





    쌍커풀이 짙은 종인의 눈이 마주 잡고 있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경수의 시선을 마주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후회해요.”





    아버지는 평온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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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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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카첸!!!ㅠㅠ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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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 진짜 너무 아련하네요ㅠㅠㅠㅠ우리 종인이ㅜㅜㅜㅜㅜ마지막에 후회하는 이유도 소름이에요!!작가님 짱짱이에요!!ㅎ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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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헐대박ㅜㅜㅜㅜㅜㅜㅜㅜㅜ카첸ㅜㅜㅜㅜㅜㅜㅜ둘은행쇼못하는가바여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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