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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blue, blue

 

 

 

 

 

 

  나 결혼 해.

 

  그러니까, 네가 그 말을 내게 했었을 때. 너는 의자에 앉고, 나는 책상에 엉덩이를 데고 걸터앉아 긴 속눈썹 아래로 지는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때. 우리는 연애 중이었다. 항상 보석 같다고 말하곤 했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느지막이 올려다봤다. 적어도, 내게는 아주 길고, 느린 시간이었다. 그 새까만 것은, 보통의 궤도로 굴러서, 우주처럼 나를 집어 삼켰다. 슬픈 영화를 봐도 울고, 언성을 높이며 싸울 때도, 작은 눈덩이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눈물이 많은 너는, 아프고 모질은 말을 하면서도, 하나 일렁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네가 이럴 때면 곧잘 엄한 얼굴을 하고, 단호한 투로 말하곤 했던 것을 생각해내고서, 응, 하고 대답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다시, 응, 하고 읊조렸다. 아주 추운 겨울, 우리는 연애 중이었는데.

 

  그냥 매일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듯, 나는 그렇게 너의 집을 나왔다. 항상 나를 집 앞까지 배웅해주던 네가, 오늘따라 따라 나오지 않아서, 나는 그것만이 서러웠다. 아파트를 나와, 차에 올라타는데, 유독, 내가 앉은 자동차 시트가 차가워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눈동자는 도록도록 구르는데, 무엇을 보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실은 아무 것도 보지 않으면서, 움츠러든 눈동자는 기어코 바삐 움직였다. 핸들에 손을 걸치고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손으로 얼굴을 몇 번 쓸어내리고, 아파트의 단지를 빠져나갔다. 내게 말하던 너의 목소리가, 장맛날의 먹구름처럼 물기가 눅지근했던 것도 같고, 마른 땅처럼 갈라진 것도 같았다. 단지 선명하기만한 꿈같아서,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따뜻한 물을 맞는 것이었다. 신발도,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다각다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욕실로 걸어가서 따스한 물을 몸으로 맞는 것이었다. 정수리부터 떨어지는 물줄기가, 머리를 전부 적시고, 얼굴로 흘러 속눈썹 밑으로, 턱끝 밑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욕실은 금방 수증기로 가득 해서, 샤워 부스나 거울에 모두 뿌옇게 김이 서렸다. 욕실 안에는 온기가 이렇게나 가득한데, 나는 차가운 몸뚱이를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따사로움이 빠져나간, 커다란 허무를, 나는 이깟 물줄기로는 달랠 수 없었다. 내 외로운 몸뚱어리에 얽힌 햇발의 줄기를 모두 씻어내야지. 보통의 온도로 나를 적셔야지. 나를 처음 만났던 너도, 성그레 웃는 모습이 참 예쁘던 너도, 곧잘 아랫입술을 툭 내밀었던 사랑스러운 너도, 목소리가 예뻐 노래를 잘 불렀던 너도. 가슴이 아프게도 떨리는 나로부터.

 

  욕실에서 나왔지만 젖은 옷은 무거웠고, 몸에 달라붙어 거북스러웠다. 옷깃 끝에서 뚝뚝 흐르는 물이 바닥을 전부 흥건하게 적셔서, 나는 그냥 그곳에 누웠다. 정말이지 문득, 입을 열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음 음음 음. 으음. 으으흠. 음 음음 음. 으흐음. 으흠. You'll be doing all right, with your Christmas of white, But I'll have a blue, blue……. 노래를 끝내기 전에, 네가 좋아했던 노래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소리 내어서 웃었다.

 

 

 

 

 *               *               *



 

 

  찬열이에게 전화가 온 것은, 며칠 쯤 뒤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대뜸, 너 어디야, 하고 골이 난 목소리가 들렸다.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나는, 입에 물었던 것을 마음 깊이 빨아들이고는, 입술을 벌려 뱉은 후에 말했다. 회사지.

 

 

  “너 김종대 결혼하는 거 알아?”

 

 

  가슴께를 망치로 내리는 것 같이, 딱 그 만큼 아파서, 나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침을 한 번 꿀떡 삼켰다.

 

 

  “알지.”

  “씨발, 알아? 아는데 네가 그래?”

 

 

  찬열이는 제 동생처럼 귀여워하던 너를, 처음으로 미친놈, 씨발놈이라 부르며 욕을 했다. 미친놈이 결혼을 한다고? 씨발, 너를 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이해 안 되는 내가 병신이야? 김종대고, 너고, 뭐가 그렇게, 씨발, 뭘 그렇게, 이해하는 척 하고 지랄인데. 전화 받는 목소리마다 툭 건들면 애새끼처럼 질질 짤 것 같은 것들이. 내가, 너희들 죽고 못 사는 걸 몇 년이나 지켜봤는데.

 

  나는 무거워지는 눈가를 엄지와 검지로 지그시 눌렀다. 다시 눈을 뜨니 세상이 울렁거렸다. 몸을 돌려 팔꿈치를 난간에 괴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동그랗게 보이는 세상이, 계속 흔들려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니, 찬열아.”

 

 

  이게, 맞는 거야. 우리는, 그리운 풋내를 사랑하던 그 때부터, 아주 먼 길을 돌아온 거야.

 

  죽고 못 사는 거. 맞다. 우리는 정말 그랬다. 친구였을 때, 서로를 물고 뜯을 때도 우리는 없으면 안 될 것처럼 굴었고, 사귀기 시작하고,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때도. 나와 네가 서로를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그랬다. 비록 그것이, 이제는 죽어버린, 그런 낭만이었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잊지 못하고, 기꺼이 행복으로 받아들일 테지. 돌아서는 행복의 괴리가 주는 쓰라림까지도, 나는 가슴에 품겠지.

 

  옥상의 난간에 대충 담배를 비벼 껐다. 빠알간 불꽃이 잘게 튀며, 곧 시꺼멓게 죽어버린 것에서는 매운 연기만, 꼴딱꼴딱 새어나오고 있었다.

 

 

  “종대, 뭐라고 하지 마.”

 

 

  찬열이는 병신들,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놓고서는 다시 뒤를 돌아 네모난 건물들이 작게 보이는 서울을 내려다봤다. 검은 머리통들이 가로수 심어진 거리를 이곳저곳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참, 수많았다. 이렇게나 많은 생명들 중, 네가 하나 없다고, 까무룩 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우스웠다. 네가 내가 말하던 네 음절의 무게와, 까만 눈동자가 품었던 짙음까지, 저기 겨울의 마른 풀처럼, 시들어 거꾸러지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슬퍼서, 나는 까마득한 빌딩 절벽 밑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날 찬열이는,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퇴근하는 나를 잡아채어 곧장, 셋이 함께 자주 들렀던 포장마차로 향했다. 걷는 동안, 찬열이는 아무런 말이 없어서, 나도 딱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정리도 하지 않고, 입으로는 또 노래를 흥얼거렸다. 음 음음 음. 으음. 으으흠. 음 음음 음. 찬열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툭, 밀칠 뿐이어서, 나는 걸음을 조금 빨리 했어야 했다.

 

  포장마차로 들어서자, 낯이 익은 주인 아줌마가, 대장부 같이 걸걸한 목소리로, 나와 찬열이를 반겨서, 웃는 얼굴로 답하고는 곧잘 앉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여분의 의자에 서류 가방을 올려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네가 좋아했던 노래만 가득해서, 그것 말고는 내가 소리 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찬열이는 손을 들어 아줌마를 부르고는, 소주 몇 병과 오뎅탕을 하나 주문했다. 오뎅탕은, 네 얼굴 보다도 큰 그릇에 가지런히 담겨서, 금방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우리들이 이곳에 올 때면 항상, 테이블 위를 달궜던 뜨끈한 오뎅탕. 나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예쁜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서, 푹한 국물을 호호 불어 먹던 네가 좋았던 것이다. 내게는, 그 어떤 것 보다, 네가 많이 다사로웠다.

 

  소주잔에 괄괄하게 소주를 들이부은 찬열이 대뜸 잔을 내밀며, 짠, 하고 강한 소리를 냈다. 나는 잔의 주둥이를 손으로 잡아 올려, 잔을 달각 맞대었다. 안에 들었던 술이 방울이 져서 떨어질 때 까지, 나는 술을 털어 넣고, 테이블 위에 작은 소리가 나도록 잔을 올려놨다.

 

 

  “안 잡을 거야?”

 

 

  찬열이는 그렇게 대뜸 물어왔다. 그렇게나 괜하고 맹랑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나는 너를 잡을 수 없다. 너는 나를 떠난 것이 아니니까. 너는, 모두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뿐이었다. 이 고단하고 적막한 손짓으로, 너의 옷깃 하나 잡을 수 없음을, 나는 알아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네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 시켜주었던 자리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던 내가 문 뒤에서 들은 것은, 네 어머니의 울음 소리와, 네 아버지의 성난 호흡, 그리고 죄송하다던 너의 우울한 사과였다. 그 후로, 너는 가족들과 통화를 하고 나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기어코 참아내었던 것을, 방에서 나와 내 얼굴을 보고나서, 다섯 살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며 내게 안겨 내 어깨를 적시던 너의 설움까지, 나는 술과 함께 털어 넘겼다. 이제 너는, 가족들과 통화를 해도, 누군가에게 안겨 울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그걸로 됐다는 생각에, 스스러운 행복이 몰려들어 가슴께가 빠근해졌다.

 

  찬열이와 헤어지고 난 후에,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취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먹어서 차를 몰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발이 바닥에 맞닿는 속도가 느려서, 작은 조명이 장식된 나무와 바람도 나를 더디게 지났다. 반짝거리는 거리에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커플들이 많았다. 어깨를 넘어 굽이치는 탐스러운 여자들의 머리와,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높은 힐이 이곳저곳에 있었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그것들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버리었다. 열이 오르는 눈덩이를, 다시 손으로 눌러 식혔다. 죄 없는 누군가를 원망하게 되는 것은, 이렇게나 비참한 일인 것을, 나는 오늘 알았다.

 

  이 주 후, E 호텔. 찬열이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굳이 너의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네가 예쁜 신부의 손을 맞잡고, 사람들 앞에서 입을 맞추고, 축가가 울려 퍼지는 날이라는 것을, 네가 보통의 사람이 되는 날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너는 목덜미에 칼이라도 대어진 것 같았다. 추위도 많이 타는 네가, 한 겨울에 턱시도 하나만 입고 어깨를 떨며 발을 동동 구를 생각에, 나는 저절로 마음이 답답해졌다.

 

  현관의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 후에, 무거운 철문을 닫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센서등은 곧 열없이 꺼져버리고, 캄캄한 집 안에는 야경 불빛만 새어 들어와서, 불빛이 어렴풋했다. 주머니에 넣어놨던 핸드폰이 소리를 내며 진동했지만, 나는 구두도 벗지 않은 채로 한참을 그대로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검은 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머릿속이 어수선하고 먹먹했다. 그곳에 갇힌 것처럼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에 대한 그리움도, 슬픔도. 단지 귓전에 울리는 네 목소리와, 집안 가득한 네가 좋아하는 향이, 가슴을 아프게 할 뿐이었다.

 

  분침이 한뺨 정도 움직이고 나서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김종인. 찬열이나 종인이는, 성격이 불같아서, 네가 가엾은 걸을 알면서도 험한 말을 했을까봐 걱정이 됐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대는데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도 않고 종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왜 종대 형 안 잡아요?”

 

 

  종대 형도 이러고 싶지 않은 거 알잖아요.

 

  종인이와 나 사이에는 짧은 정적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하늘이 보이기라도 할 것처럼, 고개를 들었는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불빛이 죽은 센서등 달린 천장뿐이었다.

 

 

  “종대 잘 챙겨줘. 걔는 눈치가 없어서, 여자 마음 잘 모를 거야. 가끔 울면서 전화해도, 화내지 말고 잘 들어주고.”

 

 

  내 얘기 하지 말고. 종인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친구들은 모르겠지. 내가 처음 너에게 연애 감정을 느꼈을 때, 얼마나 참담한 기분이 들었는지.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세상이 아름다운 두려움으로 가득 찼는지. 혹여나 사람들이 볼까, 길거리에서 손도 잡지 못한 네 손과 나 사이의 거리를. 팔짱을 낀 남자와 여자를 보는 우리들이 느낀 고질적인 피로를,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너도, 그들이 환상의 잣대로 너를 아프게 때려도, 그들을 이해하고, 너만은 고달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상냥하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                *



 

 

 

  이 주를 어떻게 살았는지, 잘은 모르겠다. 문득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떠서, 네가 내게 말을 했던 그 때부터,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을 떠올리는 순간 저릿한 괴로움이 선명해서, 현실이라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실제면서 현실감이 없는 모순 속에서, 나는 눈을 뜨면 일어났고, 차를 타면 회사로 갔고, 일을 주면 일을 했다. 신입사원이 커피를 내주면 마시고, 상사가 미운 소리를 하면 들었다. 간혹 사람들이 내게 아프냐고 물으면, 그저 말갛게 웃으며 아니요, 하고 대답했다. 네가 돌아가고 난 후에 달라진 것이라고는, 담배를 피러 옥상에 올라가는 횟수가 잦아진 것뿐이었다. 너는 내 옷에 배인 담배 냄새를 싫어했으니까.

 

  오늘은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지 꼬박 오 년이 되던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너의 결혼식이기도 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내 차를 타지 않고, 택시를 잡아탔다. E 호텔이요. 나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착한 너는 나를 용서해 주겠지.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터덜대는 택시에 몸을 기댔다. 차창 밖으로는 평범한 거리가 이어졌다. 여자와 남자는 손을 잡고, 어떤 아이는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남자들은 서로의 옷깃 하나 스치지 않는 그런 거리. 나는 그곳을 내다보는 게 조금 힘에 부쳤다. 내게 보통은 아직은 모질은 것이었다.

 

  호텔은 생각보다 가까워서 금방 도착했다. 지갑에 들은 현금을 기사에게 내밀고 잔돈은 받지 않은 채로, 그냥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가르고 높은 호텔을 올려다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웨딩홀이 있는 32층으로 올라갔다. 철문이 열리고, 곧바로 북적대는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겁이 나서, 발걸음을 내딛는데 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홀에는 부드럽게, 작은 악단이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너답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어서, 매끈한 금속 벽에 비친 웃지 않는 내 얼굴이 추레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아주 문득 고개를 돌렸다. 너는 말쑥한 턱시도를 입고서, 손질한 머리칼이 찰랑이도록 앞에 선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너는 참, 여전했다. 눈 밑으로 그늘이 생기는 긴 속눈썹이나, 커다란 검은 눈동자, 끝이 곱게 말린 도톰한 입술이 그랬다. 너는 내 옆이 아니라도,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해사한 빛이 났다. 너는, 어디에 있으나 예뻤다. 그런데 조금 마른 것 같아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날 동안, 나는 그곳에 우뚝 서서 계속 너를 바라볼 뿐이었다. 너의 부모 옆에서 사람들의 악수를 받으며 웃는 너를, 가슴 깊은 곳에 새겨 담을 뿐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내 안의 너는 선연했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너의 아내가 될 여자도, 나만큼이나 너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너는 대학을 다니던 때나, 회사를 다니는 지금이나, 야무지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많이 챙겨주어야 할 텐데. 넌 비위가 약해서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것은, 조그만 아이처럼 곧잘 단 음식은 찾고는 했던 것은 알까. 곧잘 삐진 척 아랫입술을 툭 내밀지만, 그건 다 사랑받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까. 작은 우주 같은 너의 눈이 얼마나 예쁜지는, 네가 눈이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눈이 작아지도록 눈꺼풀을 접으며 꽃처럼 웃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너에게,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자주 해줘야 할 텐데. 네가 슬플 때면 꼭 안아주어 어깨를 내주어야 할 텐데.

 

  너는 발을 떼어서 식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까만 머리칼이 너의 사뿐한 걸음에 맞춰 팔랑팔랑 흔들렸다. 나도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 중, 나만이 알고 있겠지. 이것이 너와 나의 마지막이었음을. 오랜 시간 동안 출렁거렸던 감정들도, 이제는 죽은 바다처럼 고요할 것이고, 서로의 기억들은 오래된 사진처럼 바래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내야지. 봄바람에 민들레 홀씨 날리듯, 무지근한 것 하나 없이, 그렇게 너를 보내야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노을을 보내고, 하늘 구석으로 올라오는 쪽빛의 밤을 맞이하듯, 너를 보내고, 나는 살아야지. 수많은 연정의 회초리가 나를 때렸지만, 그것이 너라서 나는 아프지 않음을, 감사하며 살아야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구로 향했다. 32층에서부터,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비상계단에는, 내 구둣발 소리만 섧게 울렸다. 나는 입술을 작게 벌려, 노래하기 시작했다.

 

 

 

I'll have a blue Christmas without you

I'll be so blue thinking about you

Decorations of reds on a green Christmas tree

Won't mean a thing, if you're not here with me

 

I'll have a blue Christmas that's certain

And when that blue heartache starts hurting

You'll be doing all right, with your Christmas of white,

But I'll have a blue, blue Christmas

 

You'll be doing all right, with your Christmas of white,

But I'll have a blue, blue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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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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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때문에 슬프지 너무술푼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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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련해 ㅠㅠㅠㅠㅠ 슬퍼요 ㅠㅠㅠㅠ 엉엉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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