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년째 일방통행
03
w. 연상
# 2 0 1 7, 春
" 김여주 추천합니다! 통솔력 있게 저희를 잘 이끌 것 같습니다. "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면, 시간은 이십 분 전으로 돌아간다.
과대 선출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간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어떤 사람이 과대를 했으면 좋을지 미리 생각해 두라고 하시던 교수님께서는 역시나 오늘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꺼내셨다. 하지만 정작 과대가 되고 싶어 하는 애가 없었다. 정말 하나도 없었다. 숫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마 입학 전부터 과대는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들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그랬다. 대학을 벌써 졸업한 우리 오빠가 그랬었다.
과대를 할 생각도, 하게 되리라고도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누가 손을 들진 않나, 주변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혀를 차며 자발적 신청이 없으면 추천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 우습게도 내가 추천받았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모 동기에 의해서.
여기저기서 웃는 걸 보니, 왜 추천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 과대 선출 직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저번에 동호 선배도 같은 말을 하다 끊긴 것 같은데. 과대는 학생회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학과 회식, 학과 행사를 모두 함께 기획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학생회와 함께하는 학교 생활을 보내면 된다는 건데, 그 포인트에 애들이 나를 쳐다봤다. 민현 선배와 나를 엮지 못해 안달인 애들이었다.
" ... 생각도 못한 자리지만 한 해 동안 선배님들을 도와 열심히 잘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디 나서는 자리는 딱 질색이다. 기어이 찬성표가 반을 넘긴 나는 생각치도 못한 과대가 되었고, 박지훈과 이정아를 제외한 박지훈 무리를 개구지게 박수를 친다. 저기 어디 날 추천한 애가 있던 것 같은데.
* *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익숙한 학과실에 둘러앉은 건 학생회 선배들이었다. 그 중심을 차지한 건 민현 선배였고. 민현 선배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 아주 입이 귀에 걸렸어, 황민현. "
민현 선배를 타박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14학번 주결경 선배였다. 대충 자기 소개를 끝난 후라 어느 정도 학생회 선배들의 이름과 학번을 머릿속에 저장 중이었는데, 결경 선배는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절로 외워진다. 아, 저 선배가 우리 학교에서 예쁘다고 유명한 선배구나. 대숲에 하루 간격으로 올라온다는.
결경 선배 말에도 뭐가 좋은지 실실 웃는 민현 선배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런 낯선 자리 별로 익숙하지 않은데.
" 편하게 생각해, 여주야. 친해지면 되게 재미있는 애들이거든. "
" 아, 네. "
온몸으로 어색해하는 것이 민현 선배 눈에 보였는지, 일부러 신경 써 준다. 여전히 어색하지만 이왕 된 김에 제대로나 해 보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질 땐 술이 직방이라는 15학번 김태형 선배가 눈을 반으로 똑 접어 웃으며 과대 들어온 김에 회식 한번 하자며 애교를 부린다. 덕분에 제법 풀어진 분위기에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거의 내 소개로 끝난 학생회 첫 회의는 나쁘지 않았다. 다들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안도하고 있는데, 민현 선배가 나를 부른다. 학과실을 나가려던 참에 걸음을 멈추고 뒤도는데, 다른 선배들이 눈치를 보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급하게 나가버린다. 민현 선배는 뒷머리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 혹시 그날 때문에 나 불편해? "
그날이라면 아마 신입생 환영회. 내가 술 마시고 꼬장을, 꼬장을 부렸던 날? 내가 그날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 들어가는 길에 민현 선배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아직까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불편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사실 주변에서 선배와 나를 엮는 분위기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는데, 선배의 입이 다시 열린다.
" 나 불편해하지 않아도 돼. 너 그날 실수한 거 없고, 설사 있었더라도 나도 그날 술 많이 마셔서 기억 못 했을 거야. "
" 아... "
" ... 불편한 이유가 그게 아닌가? "
내 반응에 당황한 듯 귀가 새빨개진 민현 선배가 다시 해명을 시도했다. 사실 선배가 해명할 거리는 전혀 없는데. 나와 어떻게든 풀어보려는 듯한 선배의 모습에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민하다, 웃어버렸다.
" 왜 웃어? "
" 그냥요. 저 선배 안 불편해요. 아, 사실 조금 불편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
" ... 진짜? "
" 네, 진짜. 그날 저 실수 안 했다고도 말씀해 주셨고. 좀 걱정됐거든요. 제가 그날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
" 진짜 하나도 없어. 너 되게 얌전했어. 죽은 애처럼. "
" 죽은 애처럼? "
" 아, 아니, 단어 선택이 좀 그렇지? 그러니까 그냥, 그냥, 어, 얌전했어... "
허둥지둥, 머릿속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 듯, 마구잡이로 뱉어대는 말에 웃음이 다시 터져나왔다. 진짜 안 불편해요. 쐐기를 박는 듯한 내 말에 선배가 허둥대던 것을 일순간 멈추며 한숨을 쉬었다. 또 귀가 새빨개졌다.
" 다행이다. "
# 2 0 1 5, 春
박지훈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 관계는.
박지훈은 그날 나에게 폰번호를 물었고, 우리는 자기 직전까지 문자를 하다 잠들었다. 마지막 문자는 네가 보냈고, 난 자고 일어나서 확인한 휴대폰에 떠 있는 네 이름 석자에, 그리고 그 뒤에 남몰래 붙인 하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 이후 등교길은 너와 함께였고, 늘 단어를 외우며 혼자 등교하던 너는 단어장을 가방 속에 집어넣고 나와 대화를 했다. 등교를 함께 하는 우리 둘의 모습은 학교의 큰 화제거리였고, 박지훈만 모르던 박지훈 공식 여친이었던 내가 곧 박지훈이 알 수도 있는 박지훈 공식 여친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야, 너네 썸이냐? "
" 잉? "
" 엉? "
" 아, 아니. 뭔 썸이야. 오바한다, 또. "
김재환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더라. 사실 내가 봐도 이게 썸이 아니면 뭔가 싶었다. 등교 같이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수줍게 인사하고, 간간히 점심시간엔 날 찾아와 사탕을 주는데, 이게 썸이 아니면 뭐지?
다른 애들도 그랬다. 박지훈은 항상 공부에 목을 매는 앤 줄 알았는데, 나랑 그러는 걸 보니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다고. 사실 그렇잖아. 나는 박지훈을 좋아해서 박지훈을 만나는 건데, 박지훈은 나를 그냥 만나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물어볼 자신은 없었다. 차라리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랑 등교를 함께 하고, 간간히 인사한다고 해서 박지훈이 공부에 목을 매지 않는 건 아니었고, 내가 그런 질문을 했다가 훅 떠나버릴까 봐, 그게 가장 무서웠다.
오늘도 박지훈은 나를 찾아왔다. 주머니에는 내가 좋아한다던 사탕이 가득했다. 하나씩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꺼내 주는데, 그 모습이 꼭 숨겨두었던 도토리를 주는 다람쥐 같아 웃음이 터졌다.
" 너 다람쥐 같아, 지금. 되게 귀여워. "
" 귀엽단 소리는 좀 들었어. "
" 아, 재수없어. "
귀여운 행동을 하는 듯 허리에 손을 야무지게 올리는 박지훈의 모습에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지? 속으로 애써 숨을 고르게 쉬며 박지훈이 주는 사탕을 내 주머니에 넣었다.
" 나 이거 김재환한테 몇 개 줘도 돼? "
" 김재환? "
" 저기, 내 친구. "
김재환은 박지훈이 찾아올 때마다 우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자기 말로는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겠다며, 그렇게 보는 거라던데, 부담스러워 죽겠다. 박지훈이 내가 가리킨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쟤한테 이걸 왜 줘? "
" 나랑 제일 친해. "
" 쟤랑 제일 친해? "
" 응, 불알 친... "
" 어? "
" 완전 친한 소꿉 친구! "
들었을까? 방정맞은 입이 문제지. 박지훈이 돌아가면 입부터 꿰맬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지훈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입을 연다.
" 너만 먹어. "
" 응? "
" 내가 너한테 준 거잖아. "
" 아... "
" 그러니까 너만 먹어. 알았지? "
귀엽다. 원래 잘 붉어지는 두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붉다. 그럼 박지훈은 지금 얼굴 중에서 볼이 제일 뜨거운가? 괜히 만져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게 질투였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대는 접어두는 게 나한테 이롭다. 박지훈은 내 대답을 듣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내 앞에 새끼 손가락을 내민다.
" 약속. "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헤실헤실 나온다. 박지훈의 새끼 손가락에 내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꽁꽁 묶인 손이 따뜻하다. 박지훈은 도장까지 꾹 찍고 나서야 빙긋 웃었다.
# 2 0 1 7, 春
민현 선배는 내게 지시를 하나 내려주었다. 바로 17학번들 과잠 사이즈를 표 형식으로 작성해오라는 건데, 그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닌 듯 했다. 단톡에 덜렁 올려놓으면 확인하지 않는 애들도 많았고, 하더라도 귀찮아서 무시하는 애들이 대다수라고 하더라. 그래서 직접 애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받아야 하는데, 애들이 과잠 사이즈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해 맞춰놓고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내 품엔 총 다섯 종류의 과잠 샘플이 들려있다. 에스, 엠, 라지, 엑스라지, 투엑스라지.
딱 봐도 우리 학번에 투엑스라지 입을 덩치가 없는 것 같은데. 한숨을 푹푹 쉬며 강의실에 들어섰다. 강의 시작 10분 전이라 사람이 듬성듬성하다. 우선 있는 애들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에 공지를 하는데, 애들이 신난 듯 앞으로 달려나와 과잠을 입어 본다.
" 고생한다, 네가. "
" 완전. "
슬기가 내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에스 사이즈를 입어 본다. 에스가 딱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에 놓여진 표에 본인 이름을 찾아 사이즈를 작성한다. 다시 자리에 돌아가는 슬기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 엘 사이즈를 입고 있는 배진영에게 고개를 저었다.
" 넌 엠 입어도 될 것 같은데. "
" 아니거든. 나 어깨 때문에 엘 입어야 하거든. "
" 응, 아닌 것 같아. "
" 닥쳐라. "
배진영은 기어이 본인 사이즈를 엘로 선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가 아빠 옷 입은 것처럼 널널한데. 앞으로 쑥쑥 클 고등학생도 아닌데 뭐 하러 큰 사이즈를 선택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금세 지나가버린 10분에 과잠과 종이를 챙겼다. 이제 겨우 일곱 명에게 사이즈를 받았다. 앞으로 남은 애들이 누군지 명단을 살펴보는데, 박지훈 이름이 눈에 띈다.
얜 어깨 때문에 엘이면 될 텐데.
아, 머릿속이 또 복잡해졌다. 박지훈 생각은 하지 말자, 하지 말자, 마음속으로는 백 번도 더 다짐했던 것 같은데, 그나마 꾹 참고 있던 수능 이후로는 시도때도 없이 퐁퐁 솟아난다. 대학 들어오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같은 학교에 같은 학과. 끔찍하다, 진짜.
강의가 끝나고 잠시 자리에 앉아 달라고 부탁했다. 곧 학생회에서 과잠을 주문하는데, 신청할 애들만 나와서 사이즈를 작성해 달라고 했더니, 역시나 신나게 달려와서는 과잠 샘플을 입어 본다. 각자 원하는 사이즈에 줄을 서 있는데, 박지훈이 엠 사이즈에 줄을 서 있다. 말할까, 말까. 줄이 꽤 긴데, 저러다 허탕 치고 엘 사이즈 줄에 다시 설 것 같은데. 괜히 말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다가 박지훈에게 다가갔다.
" 넌 엘 입어도 될걸. "
" 어? "
" 원래 엘 입잖아. "
이건 관심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함이다. 그래 그거다. 마음속으로 합리화하며 입을 열었다. 박지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박지훈 옆에서 에스 줄에 서 있던 이정아가 나를 쳐다본 것도 같았다.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박지훈에게서 뒤돌았다. 진행 상황을 보러 책상 앞으로 가려는데, 뒤에 박지훈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고마워. "
* * *
" 와, 진짜 빨리 받았네. 이걸 하루만에 받았어? "
" 죽는 줄 알았어요. 애들이 굼떠가지고. "
" 형, 우리 여주한테 맛있는 거라도 사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
태형 선배가 호들갑을 떨며 민현 선배를 불렀다. 대충 학과실 서랍을 정리하던 민현 선배가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소파에 앉아 곧 녹을 것처럼 늘어진 내 옆에 앉은 결경 선배가 짧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우리 과대 잘 뽑았나 봐. 근데 너 추천받아서 된 거라며? 누가 추천했어? "
" 모르겠어요. 누구였지. 박지훈 무리였던 것 같은데. "
" 박지훈 무리? 아, 웃겨. 걔네 무리도 지었어? "
" 음, 네. "
다들 박지훈 무리라고 부르는데, 결경 선배는 잘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추천받아서 된 것까지 아시는 거면 다 아시는 거라고 볼 수 있지, 뭐. 결경 선배가 옆에 한참을 깔깔대며 웃다가 입을 열었다.
" 아, 근데 신입생 환영회 때 박지훈이 여주 데려다 준다고 하지 않았어? "
" 아, 그거... "
내가 직접 본 일이 아니라 뭐라고 말은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순간 민현 선배가 정리하던 물품을 떨어트린다. 압정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다 소파에서 일어나 정리를 도우러 갔다. 허리를 숙여 압정을 줍는 선배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 있다. 무표정이어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인데.
" 황민현, 아니야? "
" 어, 맞아. "
" 또, 또 딱딱하게 대답한다. "
" 아니야, 그런 거. "
" 여주야, 박지훈이랑 뭐 있어? 물으면 곤란한 거 아니지? "
박지훈도 아마 그날은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술에 취해서 민현 선배에게 경솔한 짓을 저질렀던 것처럼, 박지훈도 술을 마시고 뭐든 두려울 게 없었겠지. 물론 그 상대가 나라는 게 문제지만.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잠시 머뭇거렸다. 굳이 이런 얘기를 지금 학교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진 않은데. 기승전박지훈도 한두 번이지, 고등학교 때면 충분하다.
" 아무것도 없어요. 걔가 그냥 술 마시고 실수했나 봐요. "
" 그치? 그렇지? 봐, 그렇다잖아. "
결경 선배의 말에 압정을 이제서야 다 주운 민현 선배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 손에 올려져 있던 압정을 박스에 다 내려놓고 나서야 민현 선배는 손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민현 선배가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 2 0 1 5, 春
박지훈은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괜히 박지훈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거절을 하긴 했지만,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건 역시 적성에 안 맞았다. 한 번 사는 인생 최고로 멋지게 살아야지.
우린 주말마다 도서관에 다녔고, 박지훈은 자기 공부를 하다가도 내가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곧장 대답해 주곤 했다. 따로 학원을 다니거나 인강을 듣는 것 같지도 않는데, 박지훈은 모르는 게 없었다. 사실 도서관을 다니는 건 공부하러 가는 거 반, 박지훈 얼굴 보러 가는 거 반이었다. 내 바로 맞은편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박지훈의 얼굴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 배 안 고파? "
" 조금. "
" 밥 먹으러 갈래? 앞에 떡볶이 팔아. "
" 헐, 좋아. "
박지훈은 자주 오는 곳인 듯 자연스럽게 나를 안내했다. 대학교 앞에 있는 음식점치고 꽤 허름한 가게였는데, 쇳소리는 내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박지훈은 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때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러 오는 곳이라고 했다. 가게 한 구석에서는 아주머니가 떡볶이 국물이 진득하게 붙어있는 앞치마를 매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사투하고 있었고, 또 한 구석에는 정수기가 놓여있었는데, '물은 셀프'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박지훈은 익숙하게 세트 1을 주문하고는 물을 가득 뜬 컵을 내게 내밀었다.
" 떡볶이 좋아해? "
" 완전. 껌뻑 죽어. 나 초등학생 땐 떡볶이 잘 만드는 사람이랑 결혼하는 게 꿈이었어. "
" 되게 소박했네. "
" 그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지. 지금은 결혼은 생각해 본 적 없고, 씨씨는 해 보고 싶다. "
" 씨씨? "
" 캠퍼스 커플. 그거 내 로망이야. 대학생 되면 이것도 되게 소박한 것처럼 보이겠지? "
내 말에 박지훈은 소리 없이 웃었다. 사실은 그냥 씨씨 말고 박지훈과 하는 씨씨가 꿈인데.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가슴 속으로 깊이 눌러담았다.
" 너 좋아하는 애는 꼭 너랑 같은 대학 가야겠다. "
" 어? "
" 너랑 씨씨 해야 하잖아. "
" 음... "
" 아니야? "
" 나 좋아하는 애도 없겠지만, 나는 그런 거 있어. "
따뜻한 떡볶이가 나왔다. 박지훈은 내 다음 말을 기다린다는 듯 포크로 떡볶이 한 덩이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도 여전히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지훈과 똑같은 모양새로 떡볶이 한 덩이를 집어넣었다. 입 속에서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 나 좋아해 주는 사람보단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더 좋더라. "
" 아. "
" 우리 엄마가 여자는 자기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나야 행복하다고 하던데,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
박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이번에는 순대를 집어 먹었다. 박지훈을 따라 순대를 집었다.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는 나와는 다르게, 박지훈은 쌈장에 찍어 먹더라. 신기하다. 박지훈 입으로 들어가는 쌈장이 잔뜩 묻은 순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웃었다. 야무지게 꼭꼭 씹어먹는 모습이 도토리를 입에 가득 넣은 다람쥐 같다.
박지훈은 먹는 데 집중하느라 바빴다. 열심히 움직이는 박지훈의 입을 보기도 하고, 그러다 눈을 보기도 하고. 아무 때나 봐도 박지훈 눈은 참 예뻤다. 눈의 그 굴곡이 예쁜데, 눈 아래로 촘촘하게 나 있는 속눈썹도 너무 예쁘다. 그렇게 좋아하는 떡볶이를 마다하고 턱을 괸 채 박지훈 찬양만 머릿속으로 잔뜩 하는 중에, 박지훈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는다.
" 왜 안 먹고 자꾸 나 봐. "
" ... 너 눈이 진짜 예쁜 것 같아. "
" 진짜? "
" 완전. 남자가 이렇게 예쁜 건 반칙 아니야? 세상 여자들 다 울리겠어. "
" 너도 울 거야? "
" 어? "
" 세상 여자들 다 울리겠다며. "
" 아니, 뭐... "
순간 박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조금 전보다 더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는 박지훈의 모습에 테이블에 바싹 대던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얼굴 빨개질 것 같으니까 진정하자.
" 아, 아무튼 그냥 되게 예뻐. 보고 또 봐도 계속 보고 싶은 눈이야. "
" 진짜? "
" 진짜. 완전. "
" 그럼 내일도 볼래? "
박지훈은 훅 치고 들어오는 습성이 있다. 매일 박지훈의 주변에서 박지훈의 행태를 관찰하는 내게, 이건 박지훈의 습성이 확실하다. 턱을 괴고 눈을 예쁘게 뜨면서 그렇게 물으면 답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얼굴이 시뻘게졌을 게 분명하다.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힘겹게 가리며 박지훈과 눈을 마주쳤다. 부담스러운데 피하고 싶지 않은 그런 묘한 분위기. 살짝 불편한 분위기에 눈썹을 찡그렸던 것 같다. 박지훈은 눈을 접어 예쁘게 웃는다. 그리고는.
" 나랑 내일 영화 보자. "
" ... 어? "
그렇게 말했다.
# *_*
신알신 해 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쪽지가 오는데 받을 때마다 너무, 너무, 너무 행복해요!
심지어 오늘은 2편이 초록글에 올랐더라구요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항상 제 글에 대해 코멘트 달아주시는 분들, 또 피드백 해 주시는 분들 완전, 완전, 완전 사랑합니다!
혹시 부족한 점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 혹은 그 이외에 원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꼭, 꼭, 꼭 말씀해 주세요!
사실 제 경험을 토대로, 거기에 픽션을 80 정도 가미해서 쓰는 글이지만, 이런 글이라도 봐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항상 행복을 느낍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 암호닉 |
여름동화 미녀 뜐뜐 529 헛개수매앤 허니콤보 프라임저장 게으른개미 윱 밍밍 ♥ 포뇽이 빵야 경화수월 블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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