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미련한 사람이었다. 애써 모질게 대해도 언제나 밝게 웃어주던, 바보같은 사람이었다. 김성규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던 사람. 형은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과 같은 존재였다. 한낱 달맞이 꽃에 불과했던 내가 감히 탐낼 수 없는 고귀한 존재. 나는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하찮은 꽃 주제에 감히 별의 자리를, 태양의 자리를 탐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른 녀석들처럼 형의 뒷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것. 그것 뿐이었다.
1. 가을의 끝자락
조용했다. 사람이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은 침묵에 휩쌓여 그 고요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흔한 안부 인사따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형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도 벌써 5일째였다. 작곡가인 형은 앨범 작업을 할 때면 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사무실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형은 유명한 작곡가였고, 형의 전화기는 끊임없이 러브콜을 하는 회사들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나를 위해서 형은 그 수 많은 러브콜들을 거절했지만, 나는 오히려 형을 멍청하다며 핍박하기에 바빴다. 형의 시무룩해진 표정을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보면 오랜 기다림의 결과였다. 형의 빈자리를 이겨내지 못한 외로움의 결과. 기본 한 달이 넘는 형의 긴 공백기는 나를 외롭게 만들었고, 그 속에 빠져 허우적 대던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불같이 타오르던 나의 외사랑은, 함께 하던 그 순간부터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 현아. " 응. " - 밥은 먹었어? " 아니. " - 형이 밥은 꼭 챙겨먹으랬잖아. 그러다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 ...... " - 현아. 형 지금 갈까? " 아니. 일 해. 챙겨먹을게, 밥. " - 알았어. 꼭 밥 먹어. " ... 응. "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 해. 형은 여전했다.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그렇게 행동했다. 형이 아쉬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지만, 애써 지워내고 또 지워냈다. 머릿속에선 차마 뱉지 못했던 사랑해란 말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생각했다. 내가, 형을 아직 사랑할까? 답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아니. 나는 이제 더이상 형을 사랑하지 않는다.
2. 초겨울
가수가 꿈이었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나는 형을 만나보는게 소원이었고, 형에게 곡을 받는 게 꿈이었다. 연습생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꿈이라고 모두가 비웃을 때, 몇 년 동안의 연습생 시간에 내가 점점 지쳐갈 때. 나는 형을 만났다.
' 목소리가, 이쁘네. ' ' ...... ' ' 나랑 작업 한 번 해볼래? '
눈물이 났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형은 우는 나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겨우 진정이 되었을 때 즈음, 형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었다.
' 나랑, 작업 한 번 해보자. ' ' 아. ' ' 내일 사무실로 찾아갈게. '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 머리가 헝클어지는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형이 떠나고나서도 나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예기치 못하게,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이었다.
형과의 작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빛 한 번 보지 못한 내게 빛을 보여준 사람. 그런 형이 좋았다. 이런 마음을 들킬까봐 나는 항상 조마조마했다.
근 한 달간의 작업이 끝나고, 형과 자그마한 파티를 가졌다. 신기했다.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분위기에 취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짧은 입맞춤이었지만 굳어버린 형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무서웠다.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까지도 형은 미동조차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피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잘만 참아 왔으면서 왜. 하필 왜. 한참동안 고민했지만 답은 끝끝내 내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였다. 벌써 사 년이 지난, 오래전의 이야기였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 고통의 흔적들이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여전히 나는 두려웠고, 그래서 아팠다. 그리고 여전히 잠을 설쳤다. 이제껏 잘 참아왔으면서 왜. 하필 왜. 반복되는 생각이었지만 사 년전과는 달리 답을 바로 내릴 수 있었다.
사랑이, 다짐이 식어내리는 건 한순간이다.
3. 겨울 바람
[ 현아. 보고싶어. ]
응, 나도. 마음 하나 담기지 않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자였다. 눈물이 났다. 내가 이렇게 변해버렸다는 것이 슬펐다.
형의 문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매여졌다.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나는 울었다. 문자가 왔음을 알려주는 듯 휴대폰 액정이 번쩍 거렸다. 하얀 눈 사이로 작게 쏟아오른 새싹이었다.
[ 봄이다, 현아. ]
봄. 익숙하면서도 먼 이야기였다. 형은 벌써부터 봄을 맞이할 준비를 서서히 했지만, 나는 아니였다. 나는, 아직까지도.
한겨울에 살고 있었다.
4. 한겨울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열한 시가 넘었을 때 즈음, 형이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던 안개꽃 다발을 사들고 온 형은 그 어떤 날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등 뒤로 숨긴 케이크를 빤히 쳐다보자 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한 듯 웃었다.
" 무슨 일이야? 쓸데없이. "
형의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해도 방금전의 내 목소리는 아무런 감흥이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함. 그 자체였으니까. 형의 눈썹이 서운함에 잔뜩 휘어졌다.
" 그냥, 요새 니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 " 내가 무슨. " " ... 우현아. " " 가. 형 바쁘잖아.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등을 보였다. 우현아. 방금 전과는 다른 목소리였다. 남우현. 형이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서지 않았다. 눈에선 자꾸만 의미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 제발, 우현아. " " ...... " " 형 한 번만 봐줘. 우현아. 응? "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만 같았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형이 많이 화가 났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 곳은 침묵 뿐이었다. 형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 때면 나도 한 발 앞으로 갔다. 형은 끈질기게 쫓아왔다. 형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내겐 오히려 더 춥게 느껴졌다.
" 이제, " " ...... " " 이제 그만 돌아올 때도 됐잖아. 현아. "
어깨가 축축히 젖어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형은 울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토닥임의 위로조차 지금의 내겐 사치일 뿐이었다.
" ...형. " " ...응. " " 나는 아직 한겨울에 살고 있어. " " ...... " " 내게, 봄은 오지 않아. " " 우현아. 그만. 그만 말해. 제발. " " ...형. " " 제발, 부탁이야. " " 우리, 헤어질까? "
형이 무너져 내렸다. 케이크는 이미 바닥으로 추락해 볼품없이 망가져있었다. 조심스레 형을 품에서 떼어냈다. 힘없이 밀려나가는 형이 안쓰러웠다. 형은 여전히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 우리, 헤어지자. 형. "
주인을 잃은 안개꽃이 정처없이 허공을 멤돌있다. 꽉 막혀 있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봄은 겨울이 지나면 꼭 오게 되어있다는 것을.
겨울은, 반드시 지나간다.
5. 독감
지독한 열병에 걸렸다. 열병만큼이나 지독했던 우리의 사 년동안의 연애도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형에게 헤어짐을 고하던 그 날,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형과 함께 살던 그 집을 나와버렸다. 집에 오자마자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는 사진을 포함한 모든 물건들을 커다란 상자 속에 담아놓았다. 버리지는 못했다.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대신 그 상자는 내가 다시는 꺼내볼 수 없도록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꼭꼭 숨겨두었다. 그리고 꼬박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열이 오를 수록 정신은 더 또렷해지는 것만 같았다.
" 성규형. " " ...... " " 혀엉. "
형은 답이 없었다. 뜨여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떼어내고 주위를 둘러보면 익숙하지 않은 벽지가 눈에 보인다. 그러면 나는 그제서야 내가 우리의 따뜻한 집을 버리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습관처럼 거의 매 순간마다 형을 찾았다. 사 년은 길들여지기에는 그다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 의미도 담기지 않은 부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형이 오지 않으면 이유도 모를 쓸쓸함이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 감정들을 다 이해하기에 나는 아직 어렸다.
6. 늦깎이 추위
오랜만에 동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술을 마셨다고 했다. 의아했다. 평소 술이라면 입도 안대던 애가 술에 취해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놀라웠다.
" 뭐야. 왜 이렇게 술을 마셨어? " - 백수된 기념! " 무슨 소리야? 백수라니? 엔지니어 일은. " - 성규형, 작업실 닫는대.
숨이 턱 막혀왔다. 형이 이제 노래를 만들지 않겠대,우현아. 수화기 너머로 울음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송별회야. 마지막 회식 자린데, 사양할 수가 없더라.
" ... 왜 닫는데? " - 미국가. 성규형, 미국으로 가기로 했대.
손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파르르 떨려왔다. 동우가 들려주는 모든 말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 한 달 후래.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갑자기 집 안이 차갑게 식어버린 것만 같았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보일러를 넣어도 변하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났다.
' 난 살기 위해서 음악을 하는거야, 우현아. ' ' 살기 위해서? 형 부자 잖아. 음악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거 아니야? ' ' 음악 없이 사는 김성규는, 상상을 할 수가 없어. 껍데기야. 빈 껍데기. 음악은 형 영혼이야. ' ' 나는! ' ' 우리 현이도. '
형은, 영혼을 버렸다. 내가 형을 버려서, 형은 자신을 버렸다.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가슴 한 켠이 먹먹했다. 시리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이 다. 봄이 오려는 듯, 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7. 봄이 오다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형은 기다리던 봄이 오자마자 한국을 떠났다. 나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울었다. 그게, 우리의 진짜 마지막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고, 바쁜 생활에 치이다보니 어느 새 일 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동우는 형이 올 때까지 호원이의 작업실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나 꿈꾸었던 데뷔를 했다. 나의 첫 앨범은, 모두 형의 곡으로만 이루어졌다. 부탁이었다고 했다. 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우에게 했던 부탁.
' 성규형이 너보면서 썼던 노래들이래. ' ' ...... ' ' 형이 불러주고 싶었는데, 이제 못하니까. ' ' ...... ' ' 니가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
형의 노래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슬펐다. 형이 보고싶었다. 너무 안일한 생활에 빠져서 초심을 잃었던 내가 바보같았다.
[ 초심. 121208 ]
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였다. 형을 닮아서 따뜻하고, 포근한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12월 8일. 그 날은 우리가 헤어진 날이었다. 형은 항상 처음이었는데, 형의 마음은 변한게 없었는데. 나만. 나만 변했던거였다. 그제서야 알아차리고 말았다. 나는 아직 형을 사랑한다는 걸. 그래봤자, 모두 때늦은 후회였다.
8. 꽃이 피어나는 순간 타이틀 곡 활동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일주일의 달콤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활동할 때에는 휴식 좀 달라고 대표님을 보채기에 바빴는데, 막상 휴식이 주어지니 할 것도, 갈 곳도 없었다.
[ 남군~.~ 휴가 받았다며? 일주일? ] [ 응. 짱똥 지금 뭐해? ] [ 나 지금 곡 수정 작업중~ 남군 지금 집이야? ] [ 응. 집이야. 왜? ] [ 안 바쁘면 성규 형 작업실에서 내 노트 좀 가져다줘! 나는 급해서 못나가고~ 우리 작업실 열쇠 가진 사람이 남군밖에 없더라고~.~ 부탁 좀 할게! ]
한숨이 나왔다. 오랜만에 찾은 형의 작업실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다. 괜히 이런 부탁을 한 동우가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였나보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던 형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 장동우. 이 나쁜 새끼. "
괜히 왔다. 이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허겁지겁 짐을 챙겨 작업실을 나왔다. 그 곳에 더 있어봤자 더 고통스러워질 뿐이었다. 오늘따라, 형의 흔적들이 자꾸만 눈에 띄였다.
" 저기요. " " ...... " " 저기, 혹시 남우현씨 되세요? " " 그런데요? " " 방금 전에 어떤 남자 분이 부탁하고 가셔서요. 이 꽃 좀 전해달라고. "
남자가 건내 건 안개꽃이었다. 형과, 내가 좋아하던.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한 번도 방송에서 안개꽃을 좋아한다고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 봄은, 언제 올까? 우현아. ]
울었다. 그대로 주저앉아서 울고, 또 울었다. 진작 형에게 전해주지 못했던 말을 쉴 새 없이 계속 뱉어냈다.
" 형, 형. 봄은 왔어. 봄은, 벌써 왔어. "
봄은, 왔어. 이미 와 있었어. 나의 착각이었어. 우리는 항상 봄이었어.
어디선가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형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가 부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듯 했다.
숨이 멎는대도 나, 그대만 곁에 있음 난 행복해요. 사랑해요. 처음 그 날 처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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