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05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f/f/9ff263808be745662f7e949a8d501077.jpg)
[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W. 아카시아
경수는 루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루한은 씻고나와 민석의 옷을 입고 젖은 머리를 만지며 침대에 앉았다.
루한의 옷을 세탁기에 넣고 온 민석이 루한에게 드라이기를 건냈다. 씻고나온 루한의 피부는 좀 더 햐얗고 생기가 돌았다.
루한은 민석의 방을 두리번 거리며 둘러보았다. 이럴꺼면 방 좀 치워둘껄,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방에서 민석 냄새나요. 제 방이니깐요. 좋은 냄새.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루한을 집으로 들인건 이성보다 감정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루한은 민석에게 드라이기를 건냈다. 민석이 의아한듯 드라이기를 바라보자 루한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민석이 말려줘요, 머리.
어이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민석은 이미 드라이기를 들고 있었다. 민석은 앉아있는 루한의 뒤에 서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말렸다.
만지면 바스라질것 같던 루한의 머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민석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때문에 손이 간질거렸다. 보슬보슬.
루한의 머리를 헤집을때 마다 루한의 달큰한 향이 드라이 바람을 타고 올라왔다. 같은 샴푸를 써도 사람 개인의 냄새는 있나보다.
루한은 민석에게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과 코끝을 간질거리는 민석의 냄새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루한."
"네, 민석."
"…왜 집에 안가고 서있어요."
루한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 채 몸을 돌려 민석과 마주 보았다. 루한은 표정없는 얼굴이 아닌 약간의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기분탓 인가보다.
그 모습을 보니 몸이 간질거렸다.
위로받고 싶다고 했잖아요.
루한은 조용히 웅얼거렸다. 루한은 한국인이 아니다. 웅얼거리는 발음이 많이 뭉개져 있었다. 희미하지만 루한은 웃고있었다.
루한의 얼굴을 보니 화가났던 감정들이 눈녹듯 사그러들었다.
"루한, 난 위로할줄 몰라요."
민석이 드라이기 전원을 껐다. 루한은 아무말 없이 민석을 바라보았다. 민석. 루한이 작게 읊조렸다. 민석은 듣지 못했다.
루한이 민석의 납작한 배에 얼굴을 기댔다. 민석이 잠시 움찔 했찌만 루한은 미동도 없었다. 얇은 셔츠 한겹 사이로 루한의 호흡이 느껴졌다.
풀릴것 같은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루한의 코가 닿은곳이 쿡쿡 져려왔다.
민석이 옆에 있어주는게 위로에요.
루한이 말을 할때마다 들썩 거리는 입술이 그대로 느껴졌다. 달샌 숨결 때문에 배가 뜨뜻해졌다. 민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허공에 머물러있던 민석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민석."
"……"
"미안해요."
민석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
자신의 방을 루한에게 내어준 민석이 찌부등한 몸을 일으키며 거실 소파에서 기지개를 켰다. 루한의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아 밤잠을 설친 것 같다.
시계는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경수인가? 민석은 눈을 비비며 자동적으로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는 간단한 아침 끼니를 채울수 있는 빵과 베이컨, 주스가 놓여져 있었고 식탁에 턱을 괸 채 다리를 꼬고있는 루한이 있었다.
경수가 염색을 했나? 민석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빵을 물었다. 경수는 금발이 아니다. 경수는 붉은빛이 도는 갈색이다. 앞에있는 노란 머리는 루한이다.
붕뜬 머리를 정리하던 민석이 켁켁 대며 먹던 빵을 내려놓았다. 루한이 놀라 눈을 크게뜨며 민석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괘, 괜찮아요. 루한!
민석이 말을 해도 루한은 여전히 걱정되는듯 민석을 바라보았다. 루한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민석은 급하게 퉁퉁 부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루한이 잘생겼다는건 진작 알았다만, 아침인데도 그의 얼굴은 붓지 않았다.
약간 부스스하게 머리만 뻗쳐있을뿐.
"경수는 어디갔어요?"
"같이 사는 친구가 경수에요?"
"네. 도경수에요."
아침에 급하게 나가던데… 말끝을 흐리며 루한이 민석에게 주스를 건냈다. 하얀 셔츠를 입은 루한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조직원 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루한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했다. 심오한 표정을 지은 채 빵을 먹는 민석은 꽤 소년같은 생김새였다. 루한이 픽 웃었다.
"경수가 하고 간거에요?"
"아니요. 민석이 안 일어나길래 제가 해봤어요."
"아…"
"맛이 없어요?"
민석이 빵을 씹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모습이 도토리를 가득 물고있는 다람쥐 같아 루한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꾹 참았다.
빈틈이 없을것만 같은 민석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다.
루한도 먹어요. 민석이 빵을 건네자 루한은 아니에요, 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빈 설거지 통을 보니 아무것도 먹지 않은거 같은데 루한은 배도 안고프나. 앙상하게 마른몸이 눈에 밟혀 빵이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 살이쪄 헬스장에 다니는 민석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루한은 말랐다. 민석은 자신의 배를 만져보다 먹던 빵을 내려 놓았다.
민석. 나른한 루한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거렸다.
"나 민석이 밥 해줘요."
"안돼요. 나 못해요."
나도 민석 해줬는데…, 하는 루한의 목소리에는 실망기가 어려있었다. 어린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듯한 루한의 말은 민석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민석은 정말 요리를 못한다. 매번 식사 당번은 경수였고, 민석은 잔반을 올려 놓거나 설거지를 하는게 전부였다.
민석의 친구는 가공 식품이고 민석의 어머니는 배달 음식이다. 이런 민석에게 밥을 해달라니, 민석도 적지않게 당황하였다.
노란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민석을 바라보는 루한은 평소의 모습은 온대간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였다.
근데 나 진짜 못해요.
자신없는 민석의 말을 들은 루한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다.
*
"민석."
"네?"
민석은 긴장되는듯 주먹을 꼭 쥐었다.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 속 재료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충 볶음밥을 만들긴 했으나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괜히 치즈에 손을 댔다가 후라이팬을 태워먹어 김치볶음밥이라 하기엔 조금 탄 밥을 루한에게 건냈다.
루한의 표정이 묘하게 굳은건 기분탓이 아니었다. 루한은 숟가락을 들어 검게 그을린 밥을 한 입, 두 입 퍼먹었다.
맛있는지 맛없는지 알 수 없었지만, 루한은 볶음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다음 들려올 루한의 대답은 뻔했다. 민석은 초초한듯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잘 먹었어요."
의외의 대답에 민석이 놀란듯 루한을 바라보았다. 루한이 마시던 물컵은 한방울도 남김없이 비워져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싫어하는 음식이 있으면 억지로 물과 함께 씹으며 꿀떡 넘겼다. 그러면 맛없는 음식도 한결 먹기 쉬워졌다. 민석이 짧게 하, 하며 탄식을 뱉었다.
루한, 억지로 안그래도 돼요. 루한이 민석을 바라보다 가볍게 웃었다.
역시 변호사는 못 속이는구나.
루한의 대답은 그럴사했지만, 내가 요리를 못하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민석은 밤에 널어 놓았던 루한의 옷을 만져 보았다.
밤에 널어놓은 옷이 벌써 마를리는 없었다. 민석은 축축한 루한의 옷을 만지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안 말랐어요?"
"안 말랐네요…"
"그럼 마를때까지 여기 있어도 되나요?"
마음대로 해요. 민석의 말에 루한이 배시시 웃었다. 평소 루한의 모습과 멀어보이는 처음 보는 미소였다. 민석은 괜히 멋쩍어져 뒷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1심 재판까지 남은 기간은 14일이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준비해도 빠듯하다. 민석은 먹은 그릇을 치운 뒤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루한도 몸을 일으켜 민석을 따라갔다. 화장실 문 앞에서 민석이 양치질 하고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루한이 손을 내밀었다.
민석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루한을 바라보자 루한은 자신의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쳤다. 아, 칫솔. 민석이 선반 위에 있는 새 칫솔을 꺼내 루한에게 건냈다.
루한은 그제야 화장실에 들어와 민석의 옆에서 양치질을 했다.
거울로 보이는 루한의 모습은 살아있는 인형 같았다. 나와 확연히 다른 외모다. 자신의 부은 얼굴은 어제 먹었던 팅팅 불은 스파게티 같았다. 창피하다.
민석은 서둘러 가글까지 꼼꼼히 한 뒤 루한보다 먼저 나왔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바라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겨우 직원들의 소소한 의견을 안 들어줘서 이런 큰 기업에 소송을 거나?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당연히 승소하는건 대기업이다.
크리스는 무슨 의도로 이런 무모한 소송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날 바닥으로 떨어트릴려고 그러나.
루한도 아직 믿음이 가질 않았다. 내가 두 사람에게 미움 살 일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루한과 크리스는 만난적이 없었다. 민석은 괜한 생각이라며 서류에 집중 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러간지 잘 모르겠다. 시계를 바라보니 네시간 정도 흐른 것 같다. 일어나려고 하니 다리가 살짝 저려왔다.
민석은 다리를 두어 번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료를 준비 하면서 루한이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민석은 앗차, 하는 생각에 서둘러 거실로 나왔다. 루한은 소파에서 다리를 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을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민석, 끝난거에요? 루한이 책을 덮으며 물었다. 아… 잠시 쉴려고요. 민석은 루한과 거리를 둔 채 소파에 앉았다.
"리버 보이?"
"아, 민석 방에 있길래요. 읽으면 안되나요?"
"아니요. 읽어도 돼요."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경수가 생일 선물이라며 책을 선물 했었다.
딱히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한 번 읽고 말았었는데, 루한은 이미 반 장을 넘게 읽고 있었다.
재미 있어요?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안 나네.
민석의 말에 루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볼만해요, 루한이 말했다.
"우산 빌려드릴까요? 옷은 다 마른거 같은데."
"민석, 나 어디로 갈까요."
"집으로 가요…"
루한이 민석을 보며 푸흣, 웃었다.
나 집이 없어요.
루한이 작게 읊조렸다. 민석은 대답 할 수 없었다. 루한의 눈을 보면 입이 열리지 않았다. 루한은 다시 책을 펼쳤다.
'어딘가에서 흘러왔던 그 강물은 결국 다시 흘러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법이니깐.' 책에 보이는 구절이었다. 루한은 한참동안 그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가볼게요, 민석."
나닌 이 나이 먹고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감정과 이성을 조절 못하고 이러다니, 가끔 그 선택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설때가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려 해도 이미 늦었다. 돌아오는 것은 후회 뿐이다.
"힘들면 좀 더 있어도 되요. 위로 받고 싶다면서요."
민석의 말에 루한이 놀란듯 민석을 바라 보았다. 이번엔 기분탓이 아니었다. 루한은 웃고 있었다. 툭, 툭, 창밖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빗소리는 점점 거세게 들려왔다.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다. 후회하는 것도 다 내 몫이다. 루한의 얼굴을 보니 머릿속이 공허해졌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타고 루한의 달큰한 향기가 코끝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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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제 올릴려고 했는데 갑자기 몸살이 와서 하루종일 병원에 있었어요ㅠㅠㅠㅠㅠ
다음편이라도 빨리 올려야지ㅠㅠㅠ모두 감기 조심하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리버보이도 하두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안나네.. 나레기냔....
민석=나. 가공식품 내친구. 배달음식 나의 어머니.ㅎㅎㅎㅎㅎㅎㅎ 찬열이가 안나와서 슬프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루한 찾기같은 사이코스러운것도 써보고 싶다....ㅋㅋㅋㅋㅋ
댓글 달아주신 첸첸님♡ 빠오즈님♡ 녹턴님♡ 눈사람님♡ 새송이님♡ 블루베리님♡
으갸갹님♡ 호빵님♡ 후니님♡ 멜로디님♡ 핑구님♡ 루휘혈님♡ 루한?님♡ㅋㅋㅋ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들 모두다 감사드려요!!! 어제는 루민데이여서 행복ㅠㅠㅠㅠㅠㅠㅠ물론 오늘 몰아서 봤지만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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