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04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b/8/ab879b63e6ef3ccf7cf88e5e9fcbb2e5.png)
[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W. 아카시아
거세게 내리던 비가 잠시 멈췄다. 맑게 갠 하늘은 아니었지만, 비가 그친 것만으로도 다행이하 생각했다.
빗물이 닿아 끈적이는 팔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민석은 자신 앞에 놓여진 스파게티를 바라보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도는 레스토랑 안에 김이 나는 뜨거운 스파게티는 식어만 갔다. 루한은 민석의 맞은편에 앉아 열이 나는 스파게티를 크게 한 입 먹었다.
스파게티 싫어해요?
루한이 물었다. 민석은 고개를 두어 번 저으며 스파게티용 포크를 집었다.
입안에서 스파게티가 잘게 부서졌지만,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민석의 머리를 헤집었다. 끈적했던 몸이 마르면서 한결 가벼워졌다.
한참 빗속을 걷던 루한이 데려온 곳은 이탈리아 음식을 주로 판매하는 꽤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 안에 들어서니 낯익은 안면들이 몇몇 보였다. 윗사람들은 은밀한 거래를 하거나, 무게 있는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높은 가격에 민석이 주문하기를 망설이자, 루한이 익숙한 듯 스파게티 두 개를 시켰다. 이런 것을 사줄 능력이 있나?
마지막으로 루한을 만났을 때 먹었던 떡볶이가 떠올랐다. 그 당시 루한은 민석에게 빌린 돈으로 떡볶이를 사주었다.
무얼 하는 사람일까, 왜 힘들다는거지?
민석은 목 위로 올라오는 말들과 입 안에 있는 스파게티를 삼키며 불편한 식사를 했다.
루한은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드문드문 민석을 바라보았다. 새침하게 올라간 눈과 씹을 때마다 들썩거리는 살이 오른 볼이 귀엽게 느껴졌다.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 같다. 루한은 민석의 생각에 눈을 낮게 내리깔고 배시시 웃었다.
민석.
루한의 말에 스파게티를 뒤적거리던 민석이 고개를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식사 예절에 안 맞게 음식을 뒤적였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나 궁금해요?"
루한의 말에 목이 턱 막혀왔다. 더 먹었다간 스파게티가 역류할 것만 같은 기분에 민석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네, 사실 궁금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최소한의 문장이었다.
루한은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묵묵히 스파게티만 먹을 뿐이었다. 민석은 괜히 멋쩍어져 스파게티 안의 새우를 콕콕 찔렀다.
시원한 레스토랑 안에서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루한과 있으면 아무리 습한 여름이라도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한기가 돌았다. 기분 탓인가 보다.
사실 제일 궁금한 것은 루한과 크리스의 관계였다. 중소기업으로 위장되어 있는 크리스의 직업이었지만, 확실하게 그는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다.
꼭 이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는 높은 직위에 속해있는 사람 같았다. 몇 년간 변호사 일을 해오면서 이런 눈속임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가지를 추가하자면, 이런 큰 대기업에 소송을 거는 크리스의 조직도 작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인 만큼 뒷 배경도 크다.
민석은 루한을 바라보았다. 입을 오물거리며 스파게티를 먹는 루한은 조직과 멀어 보였다. 떡볶이를 먹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무언가를 먹을 때 루한은 평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루한만의 분위기, 크리스와 다른 루한만의 오묘한 분위기는 음식을 먹 을때 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드문드문 마주치는 루한의 눈빛을 보면 그 생각을 접게 하곤 한다.
짧은 눈맟춤이지만 깊은 눈매가 민석을 매혹시킨다. 민석을 억누르는 그의 분위기는 소름을 돋게 한다. 도무지 루한을 알 수가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민석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루한."
"네, 민석."
"루한은 어떤 사람이에요?"
"……"
"알고 싶어요."
루한은 먹는 것을 멈추었다. 루한의 깊은 눈과 수채화 붓으로 그려 놓은 것만 같은 턱선은 다시 한 번 민석을 놀라게 하였다.
생각나는 문장들을 말하긴 했지만, 두서가 명확하지 않고 엉망이었다. 내가 어지간히 궁금하긴 했나 보다.
루한은 테이블에 턱을 괴고 민석을 바라보았다. 이전 궁금하다는 질문에 대답을 안 해주어 삐죽 튀어나온 민석의 입과 뾰로퉁한 표정은 나이와 맞지 않게 귀여웠다.
루한은 민석을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민석, 나 궁금하구나?
루한은 여유롭게 테이블에 손가락을 두들기며 민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민석은 잠시 망설이는듯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궁금한데요?"
"크리스와 어떤 사이인지, 직업도 궁금하고…"
루한은 나른한 눈빛으로 꼰 다리를 까딱거리며 흔들었다. 이상한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민석을 떠보는듯한 루한의 눈빛은 먹잇감을 잡아놓고 있는 포식자 같았다.
크리스… 갑을 관계라 설명하면 되나요? 민석과 크리스 같은.
루한은 민석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자한자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며 루한은 부드러운 미성으로 말을 했다. 루한의 말은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갑을 관계라 하기엔 크리스와 비슷한 루한의 옷차림이 의구심을 들게 하였다.
크리스와 루한은 인사를 하지 않았다. 갑을 관계라 정의하기엔 이르다.
잘 모르겠어요, 크리스가 갑인가요?
그럼 내가 갑인가요?
루한이 낮게 대답했다.
루한은 민석에게 남은 스파게티를 먹으라는 식으로 눈짓했다. 루한의 그릇은 비워져 있었지만 민석의 그릇은 면발이 팅팅 불어 보기싫게 헤집어져 있었다.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영 식욕이 돌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루한도 크리스의 조직원이라는 결론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의뢰인인 크리스의 직업을 노출 시켜서는 안 된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민석은 좀 더 알고 싶은 거 같은데…"
"…네."
루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픽 웃었다. 결의에 찬 민석의 눈빛을 보니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이 나왔다.
탁, 탁,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루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크리스의 직원이에요. 민석이 원하는 대답이 이런 거죠?
루한의 대답에 민석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민석의 눈빛을 읽은 루한이 쿡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명명한 갑을 관계에요. 그렇다고 크리스를 위해 민석에게 접근하는 건 아니에요.
민석과 루한 사이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서늘하다고 생각한 레스토랑이지만 손에서는 땀이 났다. 스파게티는 보기 흉할 정도로 맛이 없게 변해있었다.
"그럼 왜 힘든 거에요?"
"그런 건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에어컨 바람 때문에 루한의 노란 머리가 살랑거렸다. 모든 의문들이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더이상 물어보는 것은 루한에게 실례다.
물어봐도 생각만 많아질 뿐 민석에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민석은 가방을 챙기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루한은 머리를 만지며 다리를 꼰 채 민석을 지켜보았다.
먼저 일어날게요, 루한.
루한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민석을 올려보았다. 루한의 손끝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탁, 탁, 탁, 테이블을 치던 루한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에 따라 민석의 동작도 멈췄다.
"난 민석한테 위로받고 싶어서 밥 먹자고 한 거에요."
루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위로? 나에게 무슨 위로를 받고 싶은 거지? 루한의 의도를 전혀 모르겠다.
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멍하니 루한을 바라보았다.
위로하는 방법은 많아요, 루한이 말했다. 손에 들려있던 담배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입으로 하는 가식적인 위로,
루한이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선물을 주는 위선적인 위로,
루한은 몸을 일으켜 민석에게 다가왔다. 손에 들린 담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몸으로 하는 색정적인 위로,
코가 닿을 거리였다. 루한은 민석의 턱을 들어 민석을 바라보았다. 마치 시선을 묶어두고 있는 것처럼.
검은 눈동자가 일렁이듯 흔들렸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루한이 비웃는듯한 조소를 흘렸다. 입술 위로 루한의 숨결이 느껴졌다.
민석은 얼굴이 달아오른 채 황급히 루한을 밀어냈다. 아직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루한, 도를 넘어선거 같네요."
달아오른 민석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듯 루한은 낮게 쿡쿡 웃었다.
루한이 뒷 세계 사람이란 걸 안 이상 만남을 지속할 이유는 없었다. 민석은 크리스의 변호사이다. 루한이 크리스의 조직원인 이상 만남이 건전하리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민석, 화난거에요?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며 웃는 루한의 말에 민석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걸 지금 말이라고 묻는 건가? 홧김에 소리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시선이 쏠리는 것을 바라진 않는다. 올라오는 화를 억누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나 민석한테 빌린 돈 몇 배로 갚는 거에요. 루한은 말을 하며 재털이에 담뱃재를 털었다.
레스토랑 내에 사람들이 루한을 쳐다보았지만, 그 누구도 무어라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돈은 제가 다시 돌려드릴게요."
민석은 단호하게 말하며 루한을 지나쳤다. 루한도 비릿하게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민석을 따라 나섰다.
레스토랑을 나오니 더운 습기가 민석을 반겨주었다. 잠시 멈춰있던 비는 다시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껴있었다.
하, 민석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산을 펼 때, 우산이 없는 루한 생각에 멈칫하긴 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빗속을 걸어갔다.
찰박, 찰박 빗속을 걷는 소리만 들렸다. 바싹 말라있던 노란 금빛의 머리는 푹 젖어들어 갔다.
한 남자가 빗속을 걷는 소리 뒤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른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왜. 속으로 수백 번 원망을 했지만 루한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엄마, 저 형은 왜 우산이 없어?"
우비를 입은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물에젖은 손 때문에 자꾸 미끄러져 도어락이 열리지 않았다.
세 번째 도어락 버튼을 누를 때쯤 경수가 문을 열어주었다. 루한은 아직 뒤에 있는 것인지 경수의 시선은 뒤에 고정되어 있었다.
"밥 먹었어?"
"먹고 들어오는 거야."
경수는 루한에 대해 딱히 묻지 않았다. 민석은 경수의 이런 점이 좋았다. 더이상 깊게 묻지 않는.
민석은 물기 어린 머리를 털어내며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을 맞을 때마다 비를 맞고 있는 루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을 보고 있으면 몸이 굳는 것처럼 뻣뻣해졌다. 생각하기도 싫다.
화장실 거울은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막혀있는 화장실에 가득 찬 더운 습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밖이나, 안이나 다를 것은 없었다.
민석은 머리를 털며 경수에게 다가갔다. 노트북을 보고 있던 경수의 팔에 물이 닿자 경수가 인상을 쓰며 민석을 올려보았다.
차갑지?
민석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경수는 가끔 민석이 이해되지 않을때가 있다. 일만 하고 완벽함을 추구할 것만 같지만, 알고보면 장난기도 많고 귀여운 구석도 있다.
경수는 픽 웃었다.
창문 밖에는 어렴풋이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루한은 아직도 밖에 있는 것 같다. 민석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맥주가 먹고 싶다.
"도갱, 맥주 있어?"
"없을걸.
민석은 입을 삐죽 내밀며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억지로 먹은 스파게티 때문에 속이 안 좋았다. 민석은 가방을 열어 크리스의 재판 서류를 꺼냈다.
이대로라면 이번 재판은 크리스가 패소한다. 크리스가 승소할 확률은 없다. 이런 무모한 게임을 크리스는 왜 하는 걸까.
앞으로의 재판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
새로 맡은 재판이야? 경수가 물었다.
응, 이길 확률도 없어. 김민석 백수 되겠네. 민석이 눈을 흘기며 경수를 노려보았다.
경수는 기지개를 켜며 민석의 머리를 눌렀다. 경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윗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는 민석이 이런 큰 재판에서 패소한다면, 신임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 바닥이 그렇다. 민석을 원하는 사람들도 분명 줄어들 것이다.
김준면?
민석의 서류를 바라보던 경수가 작게 읊조렸다.
응, 상대편 검사.
민석은 경수가 들고 있던 서류를 받아들어 가방에 넣었다. 김준면, 이 바닥에서 유명한 검사다.
직접적으로 민석과 재판장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익히 들려오는 소문에 그는 실력 있는 검사였다. 상대가 김준면 검사인만큼 승소 확률은 더더욱 적었다.
민석은 꺼질듯한 한숨을 쉬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한 하늘과 거센 빗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였다.
참 이상하다. 나는 사람에게 냉정하다고 생각한다.
민석은 현관문을 열었다. 어두운 밤이지만 노란 머리는 눈에 확 들어왔다.
"왜 서 있어요. 더운데."
푹 젖어버린 머리 때문에 루한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루한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천천히 민석에게 다가왔다.
방금 씻고 나왔지만, 훅 풍기는 루한의 냄새떄문에 금세 씻고싶어졌다. 무거운 습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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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새벽에 올린다~~졸렵다~~~나는 지금 스파게티를 먹고있다~~ 살찐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 달아주신 몽쉘님♡ 새송이님♡ 눈사람님♡ 후니님♡ 핑구님♡ 으갸갹님♡ 빠오즈님♡ 호빵님♡
첸첸님♡ 녹턴님♡ 지안님♡ 백오십님♡ 댓글 달아주신 독자분들도 너무 감사해요ㅠㅠㅠㅠㅠㅠ 망태기가....
댓글에 과찬이 많으세요ㅠㅠㅠㅠ저는 그런 칭찬을 받을만한 글이 아니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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