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지금 방탄소년단 무대 들어갑니다.”
앞에 서 있던 스태프의 말에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아 추워죽겠는데 우리오빠들은 언제 나와. 야, 방탄소년단이 누구야? 몰라, 나도. 아 시발, 빨리 끝났으면. 우리 오빠들은 왜 마지막이고 난리야. 좋겠다. 방탄조끼 팬들은, 일찍 보고 집 가면 되잖아. 야, 방탄조끼 아니고 방탄소년단. 아, 무튼.
여주는 차가워진 손을 호호 불며 무대에 올라서고 있는 ‘방탄 소년단’을 바라봤다. 한 손엔 그 당시 한창 잘나가던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을 든 체였다. 여주가 처음 방탄소년단을 본 감상은 그저 그랬다. 그냥, 아무런 호응조차 없는 무대에서, 그저 순서 채우기 용으로 올라선 무대에서 참 열심히들 한다. 뭐가 저렇게 행복하다고. 라는 정도.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보는 사람은 그 많은 관객 중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 순간, 주황머리와 눈이 마주쳤던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팬이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그냥 자신을 바라봐주던 여주가 고마웠던 건지 무대의 분위기와 다르게 아주 활짝 웃어 보이는 그 네모난 입매가 참 예쁘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냥, 그 정도였다.
“저기, 울어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텅 빈 공연장에서 무릎에 고개를 묻은 체 울고 있던 주황머리를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여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도 주황머리는 묵묵부답이었다. 여주는 주황머리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 방,탄 소년단 멤버들은 어쩌고 여기서 울고 계세요.”
간신히 기억해낸 그룹명을 더듬더듬 읊자 주황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네가 우리 그룹을 어떻게 알아. 딱 그 표정이었다. 꽉 잡아, 널 덮치기 전에, 여주가 웅얼웅얼 아까 잠시 들었던 곡의 후렴파트를 읊조렸다. 주황머리가 여주와 눈을 맞췄다. 참 잘생겼다. 잠시 주황머리와 눈을 멍하니 맞추고 있던 여주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울지 마세요. 웃는 게 예뻐요.”
신인이라는 느낌이 강해서인지 연예인과 일대일로 대화를 한다는 설렘은 없었다. 그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정말 주황머리는 우는 것보다 웃는 게 예뻤다. 훨씬.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낸 여주가 주황머리에게 휴지를 건넸다. 우리 오빠들을 보다 벅차서 흘릴 눈물을 대비해 쟁여둔 휴지였다. 이 휴지 쓰던 거 아니거든요, 새 거예요…. 조금 지저분해진 휴지에 여주가 구차하게 중얼거렸다. 읏차, 여주가 일어서며 주황머리의 뒷통수를 토닥였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뒷통수도 참 예뻤다. 이런 애들이 연예인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돌아선 여주의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여주는 그날 구오빠들로부터 탈덕했다.
[김태형] MYWAY
여주는 방탄소년단에게 입대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방탄소년단의 팬이 됐단 말이다. 정확히는 주황머…. 뷔를 조금 더 아끼는 방탄소년단의 팬. 그리고 지금 현 장소는 방탄소년단의 컴백 후 첫 팬 사인회였다.
“네. 지금 방탄소년단분들 들어오십니다.”
“오빠! 정국오빠! 지민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옆에 앉은 이 여자는 왜 정국이한테는 오빠라고 부르면서 지민이한텐 반말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있을 뿐이었다. 존나 나이가 어떻게 되는거지. 여주는 한 포털사이트에 오른 뷔 열애설을 클릭하며 의미 없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태형이가 이런 질 떨어지는 애를 사귈 리 없다. 그게 여주가 태형의 3번째 열애설을 보며 한 생각이었다.
“야, 김태형 오늘도 없어.”
“태형오빠 아프다던데?”
“미친, 다 개소리지. 백퍼 애인 만나러 갔어. 걔 도대체 언제 탈퇴한대?”
“저기요.”
여주의 손가락 움직임이 멈췄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핸드폰 잠금을 건 여주가 고개를 들었다. 시발,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여주의 난데없는 욕설에 여자가 당황했다.
“태형이 탈퇴 안 할거구요. 태형이 지금 목감기 걸려서 팬 사인회 안온거예요. 공지 못봤어요? 말 그딴 식으로 하시면서 팬 사인회엔 왜 앉아계시는지 모르겠네요. 뷔도 방탄소년단인데요.”
여주는 태형 한정 미친개였다. 그리고 여주는 태형을 철썩같이 믿었다. 태형은 진짜 목감기다. 내 새끼, 아파 죽는데 옆에 이 년들은 이딴 말이나 하고 있었다. 세상이 불만스러웠다. 빡친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태형이 없다고 집에 갈 생각은 없었다. 정국이가 새로운 색으로 염색한 모습을 봐야했다. 여주는 그저 손을 씻고 싶을 뿐이었다.
여주가 일어서자 이내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이건 뭐, 거의 여주 들으라고 말하는 수준의 볼륨이었다.
“쟤 김태형 팬이잖아요. 존나 유명한데. 김태형한테 미친 애라고 건들이지 말라고.”
“아직 김태형 팬이 있긴 하네요.”
“시발, 김태형 걔 팬들 얼굴 쳐다보지도 않아서 자기 기억도 못 해줄텐데 뭐가 좋다고 맨날 따라 다니냐.”
여주는 뒤에서 들리는 수근거림을 무시한 체 복도로 나와 화장실을 찾았다. 이제 저런 수근거림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화장실도 잘 안보였다. 존나 넓었다. 김태형도 없는데 화장실도 안보인다. 여주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 멈춰 섰을 때였다.
“야, 어디야.”
여주는 태형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구분 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태형의 목소리는 한 번 들은 사람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특색이 깊었다. 이 목소리는 김태형이다. 여주가 고개를 들었다.
“오빠, 나 여기!”
여주 전방 50미터 가량 여주를 등진 태형이 보였다. 여주는 태형의 뒷통수만으로도 태형을 구분할 수 있었다. 사실 데뷔 초 때부터 방탄소년단이 대한민국 원 탑 아이돌이 될 때까지 좋아한 팬으로서 그건 모를 수 없는 뒷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주는 믿고 싶지 않았다. 태형이 여주의 뒤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전화통화를 끊고 여주 쪽으로 뒤 돌았다. 태형이 도는 순간 여주의 옆으로 누군가가 스쳐갔다. 오늘 뷔와 열애설이 뜬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이름이, 로하였나. 그랬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여주가 태형을 따라다닌 지 3년 만에 태형과 처음 눈이 마주친 날이었다.
데뷔 초부터 팬은 없었지만 항상 웃으며 무대를 채웠던 태형은 데뷔한 지 1년 쯤 지나자 태도 논란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방탄소년단이 첫 1위를 한 시기였다.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선 이제 넘어 설 수 없는 아이돌그룹이라는 칭호를 달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리고 태형이 더 이상 팬들과 눈을 맞추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주는 태형을 믿었다. 왜냐하면, 여주의 기억 속에 태형은 아직까지 팬 사인회를 밥 먹듯 빠지고 팬을 무시하는 모습이 아닌, 무대 뒤에서 혼자 숨죽여 울고 있던 그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장면은 여주에게 큰 충격이었다. 진짜, 쟤랑 사겨? 여주의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기도 전에 태형의 팔을 잡은 로하가 힐끗 여주를 돌아봤다.
“태형오빠, 가자.”
“야, 김태형.”
여주와 여자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그 넓은 복도에는 개미새끼 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빠, 쟤 알아?”
“너 진짜 사귀니?”
또 동시에 목소리가 울렸다. 여주와 로하는 참 쓸데없이 타이밍이 잘 맞았다. 태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여주를 응시했다. 무언가 걸린다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여주는 잠깐 기대했다. 혹시 3년 전 일을 기억하고 있진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오빠, 그냥 가….”
“야, 알로하 너 좀 닥쳐봐.”
여주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지금 여주가 쳐다보고 있는 거라곤 태형의 팔을 감싸 쥔 로하의 손뿐이었다. 여주의 말에 태형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알로하가 웃긴 모양이었다. 로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너 진짜 사귀냐고 물….”
“너, 내 팬이야?”
3년이다. 방탄소년단의 뷔 꽁무니만 따라다닌 게 3년이었다. 이제 여주는 태형이 잘 때 입고자는 잠옷의 갯 수, 하다 못해 면도기의 브랜드까지 알고 있었다. 태형의 질문에 여주의 말문이 막혔다. 여주가 말을 하지 못하고 태형을 쳐다보며 넋을 놓자 로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건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여주는 이제 로하 따위 보이지 않았다. 태형의 입술만을 볼 뿐이었다. 3년이었다.
“내 팬이면,”
태형이 웃는 모습이 좋아 주변에서 아이돌에 미친년이라고 욕을 하는 것도 가뿐히 무시하며 태형을 따라 다닌 게 자그마치 3년이었다.
“곱게 입 닥치고 꺼지세요.”
같잖은 희망을 잡고 끌고 왔던 3년이 태형의 한 마디에 부숴졌다.
하지만, 그 순간 조용히 복도를 울리는 태형의 목소리는 여전히 끔찍하게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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