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TA(traffic accident:교통사고) 있었다며."
"어. 지금 당장은 수술 어렵대서 일단 외과 ICU(Intensive Care Unit:집중치료실) 로 들어갔어."
"선생님. TA환자 3명 중에 응급환자 1명만 우선 3분 내로 도착한답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이렇게 TA가 많아?"
"그러게. 근데 왜 1명만?"
"한 명은 현장에서 익스파이어(expire:사망) 됐고 다른 한 명은 운전잔데 지금 정신을 못 차려서 나중에 경찰 분들이랑 따로 온답니다."
"설마 이 대낮에 음주운전이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미친."
"응급환자입니다!!!!"
구급대원들이 밀고 들어오는 베드를 확인하기도 전에 여주의 눈에 보인 건 엉엉 울면서 같이 들어오는 형섭이었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순간, 여주는 베드로 눈을 돌렸고 누워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주의 엄마였다.
"엄마...?"
"뭐?"
"엄마... 엄마가 왜..."
"환자상태는요!!!"
"현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의식 없는 상태였고 바이탈 매우 불안정합니다. 출혈량도 너무 많고요."
"하이브리드룸으로 옮길게요!!!! 이대휘, GS(general surgery:일반외과) 랑 NS(neurosurgery:신경외과) 빨리 응급 콜 해!!! OS(orthopedic surgery:정형외과)도!!!"
"네!!!!"
"김여주, 정신 차려!!!!"
손을 벌벌 떨며 눈물만 쏟아내던 여주는 지훈의 소리를 듣고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양라인 잡아서 셀라인 2리터 풀드랍 해주세요!!! C라인(central line:중심정맥관) 잡고 폴리(poly catheter:소변줄) 넣을 거 준비해주시고요!!!"
"BP(blood pressure:혈압) 계속 떨어집니다!!!"
"출혈부터 잡게 거즈랑 이비(EB:붕대) 많이 가져와!!! 외부 블리딩(bleeding:출혈) 이 이정도면 헤모페리(hemoperitoneum:복강 내 출혈) 도 적다고 장담 못해. 페스트(focused abdominal sonography in trauma:내부 출혈 확인 초음파 검사) 빨리 보자."
"준비됐습니다!!!"
"야, 김여주!!!! 진짜 정신 안 차릴래!!! 어머니 네가 살려야 할 거 아냐!!!"
계속 벌벌 떨던 손을 겨우 쥐어 잡으며 숨을 고르던 여주는 얼굴에 범벅이 된 눈물을 벅벅 닦아내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페스트 볼게요."
"최쌤, BP 어때요?"
"일단 70에 40 유지중입니다. 근데 펄스(pulse:맥박) 가 거의 없어요."
"비장 쪽 출혈이 많네. 마취과 연락해서 수술 방 빨리 잡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선..... CT부터 찍자. 윤쌤한테 푸시 좀 넣어줘."
"알겠으니까 동생부터 좀 챙겨라."
"아.... 어. 부탁할게."
"가요!!!"
지훈은 여주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베드를 밀고 CT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여주는 하이브리드룸을 나와 형섭을 찾았다.
"섭아."
이미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던 형섭은 여주의 목소리에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겨우 참던 눈물을 다시 쏟아내기 시작한 형섭은 제 앞으로 다가온 여주의 손을 급하게 찾아 꽉 잡았다.
"누나.... 어,엄마는?"
"검사받으러. 수술해야지."
"미안해.... 내가.... 내가 미안해....."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할 수 있겠어? 누나가 상황을 알아야해."
"오늘 엄마 오전퇴근이라 마중을 나갔는데... 편의점 앞에 사거리.... 횡단.... 횡단보도에서 초록불로 바뀌고 엄마가 건너오는데.... 차가 속도를 안... 줄이고 그냥 어.. 엄마를..."
"알겠어. 그 정도면 충분해."
"누나, 내가.... 내가...."
"누나 말 잘 들어. 네 잘못 아니야. 우리 병원 선생님들 정말 실력 좋으신 분들만 계셔. 엄마 수술 받으면 살 수 있어. 누나 말 믿지?"
여전히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형섭이었다. 더 있다간 형섭이마저 탈수로 쓰러질 것만 같아서 여주는 간호사에게 형섭이를 부탁하고 다시 하이브리드룸으로 발을 옮겼다. 마침 CT촬영을 마친 지훈이 베드를 밀고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응급 콜을 받은 다니엘과 종현, 우진이 급하게 들어왔다.
"CT 결과 좀 보자."
"여기 있습니다."
"비장이 나간 거 같은데... 적출해야 될 것 같아. 너넨 어때."
"경추골절이라 신경 손상 마비 가능성 있습니다. 저흰 응급수술 해야 합니다."
"우리도 출혈이 심해서 급한데...."
"......2시간 안에 마무리 하겠습니다."
"2시간...."
"저희 쪽도 응급입니다. 로워 렉(lower leg open fracture:무릎아래 다리의 개방성 골절) 에 펠빅본(pelvic bone:골반 뼈) 도 오픈이라 신경외과 수술하다 BP 오르고 출혈 심해지면 앰퓨테이션(amputation:절단) 까지 생각해야 돼요."
"그래도 신경외과랑 컴바인(combine operation:합동 수술) 은 안 돼."
"선배."
"최악의 경우는 면해야 돼. 너네 동시에 수술 들어갔다간 어머니 못 버티셔."
".....강선생님이 먼저 해주세요."
".......수술방 준비됐어?"
"저...."
"왜."
"종현쌤하고 다니엘쌤 8번방 수술 들어가셔야 한다고..."
"뭐?"
"먼저 들어왔던 TA환잔데 VIP라서 두 분이 수술 하셔야 한답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내가 본 적도 없는 환잔데 무슨 수술을 하라는 거야. VIP는 또 뭔데."
"원장님 지시사항이라고...."
잇새로 작게 욕을 내뱉은 종현은 핸드폰을 들고 급히 하이브리드룸을 나섰고 지훈도 제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다른 선생님들 수술 스케줄 확인하겠습니다.' 하며 뛰쳐나갔다. 남아있던 다니엘과 우진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괜찮으니까 가보세요."
"돌겠네, 진짜..."
"원장님한테 밉보이지 말고요. 밉보이는 건 저 하나로 족해요."
"이건 도대체 무슨 신종 갑질이냐..."
"종현쌤 꼭 데리고 가세요. 여기 못 오게..."
"박선생. 일단은 OS 부터 수술 시작해요. 내가 진짜 초능력을 써서라도 그쪽 끝나기 전에 넘어갈 테니까."
"네. 수술 방 준비됐나요?"
"그게..."
"또 왜요."
"우진쌤도 8번방에 민교수님 수술 어시 들어가셔야 한다고..."
"....그것도 원장지시래요?"
"네...."
"시발. 이런 개 같은 경우는 또 처음이네."
"우선 수술실로 올립시다. 여기서 시간 낭비하다가 과다출혈 나겠어요. 어차피 나랑 컴바인은 힘드니까 내가 먼저 어머니 맡고 체인지 하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수술실 어디에요?"
"3번방 황민현선생님 준비하고 계십니다."
"어머니 수술실로 올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주야. 나 좀 봐봐."
"....선생님... 우리 엄마 꼭...."
"살릴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릴 테니까 믿어줘. 수술 끝나고 나오면 웃어주기다?"
다니엘은 눈물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제 말에 대답해준다고 고개를 힘껏 끄덕이는 여주를 잠시 지켜보다 우진과 함께 수술준비를 위해 하이브리드룸을 나섰고 여주 역시 수술실 앞으로 가기위해 나왔는데 간호사가 급히 불러 가보니 형섭을 결국 탈수로 쓰러져 침대에 누워있었다. 여주는 형섭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다가 간호사에게 잘 좀 부탁한다, 일러두곤 수술실 앞으로 다시 발을 옮겼다. 수술실 앞에 겨우 앉아 넋이 나간 여주에게 지훈이 물을 내민다.
"마셔. 너까지 쓰러지지 말고."
"고마워. 덕분에 큰 고비 넘겼다."
"걱정하지 마. 어머니 수술 잘 끝날 거야."
"응..... 걱정 안 할게..."
건네준 물을 가만히 만지고만 있는걸 보고 지훈이 직접 뚜껑을 열어서 다시 건네주자 여주는 그제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옆에 앉는 지훈의 어깨에 여주는 머리를 기댔다.
"....어깨 좀 빌릴게."
여주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주가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지훈에게도 물론 여주는 강한 사람이고.
'18살의 천재소녀, 수능만점 받고 한성대학교 의과대학 수석 입학' 이라는 타이틀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을 때도, 쓰러질 때까지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면서 대학생활 6년 동안 단 한번도 1등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을 때도, 우진과 이별했을 때도, 까라면 까야하는 인턴시절부터 지금 4년차가 될 때 까지 그저 실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들의 시기와 질투를 온 몸으로 느끼며 별것도 아닌 일에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뒤지게 까일 때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아니, 힘든 티도 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시는 아무도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을 때도, 엄마 혼자 버는 돈으로 동생이랑 둘 다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패스했다고 했을 때도, 지금은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교수자리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를 할 때도 씩씩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
수술이 시작되고 3시간쯤 흘렀을까. 굳게 닫혀있던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여주야..."
"어? 수술이 벌써 끝났어요?"
"아니..."
"뭐야, 왜그래...."
".....어머니...."
".........."
"....사망... 하셨어."
".....네?"
"포지션 체인지가 너무 딜레이 되면서 쇼크가 오셨어...."
"왜.... 왜 딜레이가 돼요?"
"VIP쪽 수술방에 원장님이 개입을 좀 하신모양이야. 강선생님이랑 김선생님이 바로 체인지가 안돼서 우리 먼저 수술 시작했는데 BP가 갑자기 오르는 바람에 출혈도 심해지고 그러면서..."
"....또 원장님...."
"어떻게든 쇼크는 막으려고 수혈 때려 넣고 다 했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너무 미안해..."
".....엄마 보러 갈래요....."
".....들어가자."
여주는 믿을 수가 없는 사실에 멍한 상태로 제 어깨를 붙잡아주는 지훈에게 의지해 겨우 발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수술방 앞에 도착한 여주에게 가장 먼저 보인 건 제가 온지도 모르고 애꿎은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는 다니엘이었다. 그 옆엔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주저앉아있는 종현이 있었고 벌써 이야기를 들었는지 뛰어 들어오는 성우의 모습도 보였다. 제 옆에 서서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는 지훈까지. 여주는 저보다 더 슬퍼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고 애써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엄마 내 뒷바라지하느라 고생 엄청 했는데... 다시는 아빠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보내지 않으려고 의사가 된 건데 나는 또 아무것도 못했어요...."
"여주야..."
"그래도 내 대신 노력해줘서 고마워요. 이 말 꼭 해주고 싶어서."
"그냥 울어, 제발. 억지로 참지 말고 좀...."
"마지막인데 우는 얼굴로 보내주면 안되잖아. 나 엄마랑 인사 할게."
여주는 씩씩하게 말은 끝냈지만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한참이나 망설이다 이내 문을 열어 잠들어있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너무 아프다가 가네?"
"미안해... 내가 너무 고생만 시켰지... 얼른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주려고 집에도 잘 안 갔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괜히 그랬다... 그치?"
"내가 의사된다고 안했으면 엄마가 덜 힘들었을까? 우리 세 식구....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씩씩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 끝까지 이를 악물고 참아내던 여주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벌써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