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야! "
등굣길의 정적 속에서 어울리지 않게 튀어나온 소음이다. 분명 머리에 똥만 찬 아이들이 마이를 줄였다거나 바지를 줄였다거나 치마를 줄였다거나 혹은 되도 않는 분칠이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고 와서 일 것이다. 도대체 저런 애들은 왜 그렇게 튀고 싶어 안달이 난건지. 아니, 요즘은 저렇지 않은 애들이 오히려 더 튈지도. 명수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차댔다. 담장에 피어난 꽃이 여전엔 그를 향해 활짝 피어나 마치 교문을 지나는 그를 추앙하는듯 했지만, 지금은 혹독한 칼바람에 누렇게 질려버린 잔디처럼 볼품없이 시들어 앙상히 꽃받침만 남은채 고개를 숙이고는 그를 외면한다. 그는 시들어버린 꽃의 추한 꼬락서니가 자기자신같이 느껴져 괜히 기분이 나쁘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지겹고 싫기만 하다.
" 아 진짜.. 너 거기 스라고! "
그래 나도 한 때는 자신이 대국의 임금인양 떵떵거리며 걸어다니는 아이들같이 선도부에 걸리고 학생부로 불려가도 오히려 자랑인듯이 굴던 때가 있었다.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나는 참 한심했고 생각이 없었지만, 어쩌면 내 인생의 황금기는 그 때가 될 지도 모른다. 지금은 예전에 같이 다니던, 영원히 함께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아이들과 복도에서 스쳐지나갈 때마다 눈 조차 마주치지않는 나와 그 아이들 사이의 관계가 불편해 마치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을 느끼고, 예전에 내가 무시했던 숱하게 많은 아이들이 이제는 나를 무시한단걸 느낄 때마다 끔찍하게도 큼직한 나무들이 가득한 숲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낀다. 게다가 요즘은 내가 게이인지 고민이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차라리 생각없이 살고 싶을 지경이야.
" 야! 미쳤냐? 몇번을 불렀는데! 무시하냐?! "
선도부가 명수의 어깨를 잡아채 학교건물로 들어서는 그의 몸을 홱하고 돌렸다. 명수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잡아챈 선도부의 이름표를 확인했다.
'이성열' 그는 시선을 옮겨 성열의 눈을 쳐다보고선 입을 열었다.
" 뭐가 "
" 야, 너 마이 어디갔냐?! "
" 집에 "
" ㅇ,왜 마이를 안 입냐?!존나 추워 뒤지겠구만, 니가 무슨 무쇠팔 무쇠다리 마징가냐?!미친.. ㄴ,너 2학년 김명수 복장불량 벌점 2점이야! "
" 지랄마 병신아. 이제 봄이거든. 내가 마이를 입든말든 뭔 상관인데. 교칙에 마이 입지 말란 말은 없어. "
" 그렇게 입으면 춘추복이야! 봄에 왜 춘추복을 입냐, 병신아 춘추복의 추는 가을 추잖아. 춘추복은 가을에 입는거야! "
" 미친새끼, 그럼 춘추복의 춘은 뭔데? "
" 몰라 씨발 입춘 할때 춘이겠지. "
" 그 입춘 할때 춘이 봄 춘이다, 병신아. "
명수는 상기된 성열의 얼굴을 보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춘추복'의 '춘'자도 모르는 그의 일자무식(一字無識)한 태세가 명수에겐 코믹하기 짝이 없었고 성열의 그런 모습은 명수의 엉킨 실타래같은 고민들을 잠시 잊게 해주는 듯했다.
" ㅇ,아.. 어쨋든 벌점이야 아직 춥잖아! "
" 아 그만하라ㄱ.. "
" 야! 됐고, ㅃ,빨리 그냥 가! "
" 이 미친새끼가 진ㅉ.. "
" 지각으로 또 벌점 받고 싶냐?! "
" 아오 개새끼. "
-
교실뒷문손잡이가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사냥하러 다니는 암사자의 발톱처럼 사납게 느껴진다. 그 이성열인가 하는 놈때문에 늦어서 아침조회는 이미 시작했고 지금 들어가면 조용한 교실에서 갑자기 들린 문소리에 나에게 쏠릴 아이들의 숱하고 무표정한 시선들이 싫다.
명수가 그냥 기다렸다 들어가야지 하고 쭈구려 앉으려는데 어제 그에게 수줍게 고백을 해왔던 전유진이 그에게 손짓하며 소곤히 그를 불렀다.
" 김명수! "
명수는 전유진의 미소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교실로 들어갔다. 문 주위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문소리를 듣고선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는 그 의미없는 시선들이 자신을 향한 총구인양 느껴져 쏜살같이 자리에 앉았다. 이른 아침 밝아지는 태양 빛에 달은 기억 속의 들꽃처럼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그는 지금의 시간들도 그렇게 기억 속의 시간이 되고 점점 잊혀질까,하고선 생각하지만 그에겐 태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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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할때는 몰랐었는데 집에 가려고 교문 밖을 나서니 한겨울의 한기가 느껴져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벌써 삼월인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지경이네.마이라도 입고 올껄.
명수는 팔짱을 끼고 시선은 발코에 두고선 개미걸음을 걸었다. 느린 소도 성낼 적이 있다고 그는 칼바람이 휘잉 하고 그의 볼을 할퀼 때마다 인상을 찌뿌리며 욕지거리를 한마디씩 뱉어댔다. 십분쯤 걸었을까 하굣길의 아이들은 명수보다 빠른 걸음으로 가버려 저 멀리에서야 면봉만하게 보인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나으니 명수는 차라리 집에 빨리가는게 낫다고 생각하고 느린걸음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집에 가는 길이 국토횡단처럼 느껴진다.
" 으억! "
" 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