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솜-"
"...? 어..? 김종인!"
"지금 끝난거야?"
"응. 기다렸어?"
"어. 같이 가려고."
"그럼 미리 문자라도 하지. 추운데, 많이 기다렸어?"
"아니, 별로. 가자."
"응."
내 이름은 윤다솜. '사랑'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보육원의 원장님 말씀으로는 나의 아빠라는 분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를 보육원에 맡길때 ,
꼭 다시 찾아온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이름은 '다솜'이라고 가르쳐주시고 떠나셨다고 한다.
'사랑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려무나.' 라는 말을 나에게 남긴채.
"어어- 김종인! 집에 가냐?"
"어."
"새끼, 말 좀 길게 해라. 맨날 단답이냐."
"가라."
"오냐- 잘 가라."
김종인 역시 나와 같은 보육원에, 내가 들어오기 불과 2주 전에 맡겨졌다고 한다.
종인이의 아빠는 종인이의 엄마보다 10살이 더 많았고,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 삼는 아빠 때문에 보육원에 맡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종인이의 엄마가 밤중에 종인이를 품에 안고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혹시나 종인이의 아빠가 찾으면 찾을 수 없도록 최대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왔다고 한다.
종인이를 맡기며 '상처 받지 않도록 많이 예뻐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종인이 엄마는 그날 밤 종인이의 아빠와 동반 자살을 했다고 한다.
1월 14일, 종인이가 보육원에 맡겨진 날. 그리고 1월 28일, 내가 보육원에 맡겨진 날.
우리 둘 다 보육원에 맡겨졌던 그 당시의 나이는 고작 4살.
보육원에서 또래 친구가 없어 혼자 구석에 박혀 도통 움직이지를 않았다던 종인이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먼저 다가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가 오빠라도 된 냥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에게 장난감을 양보하며, 항상 내 옆에 붙어있었다고 한다.
마음씨 좋은 원장님 덕분에 우리는 또래 아이들보다 부족한 거 없이, 아니 오히려 넉넉하다 싶을정도로 잘 자랐고
초등학교, 중학교 까지 나와 무사히 고등학교 진학까지 성공하게 되었다. 오늘이 우리 둘의 고등학교 입학식이다.
"니가.. 5반? 이라고 했나?"
"응. 5반. 너는 6반?"
"응. 같은 반이였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
"뭐, 그래도 바로 옆반이잖아."
"그러게. 그나마 다행이네. 담임은?"
"수학담당이래. 28살이라던가?"
"남자 선생?"
"어, 이름이.. 뭐라더라..? ... 아! 김준면?"
"아, 그 얼굴 하얀 선생?"
"응, 맞아. 얼굴 하얗고, 되게 순하게 생긴 사람."
"....... 그래? 여튼 잘됐네. 너 수학 잘하니까 이왕이면 담임이 수학담당이면 좋잖아."
"그런가.. 너는?"
"나는 영어 선생."
"너도 잘됐네! 너 영어 잘하잖아. 어때, 괜찮아?"
"뭐, 그저그래. 자기 아들이 이제 12살이라고 하던가.. 그러더라."
"그렇구나-"
나는 어려서부터 수학을 잘했고, 종인이는 어려서부터 영어를 잘했다. 그래서 항상 종인이의 수학은 내가, 내 영어는 종인이가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서로서로 가르쳐주다보니 둘 다 영어와 수학 실력 모두 월등하게 좋았다.
"다솜아"
"배 안고파?"
"어.. 니 말 들으니까 배 고프다."
"그럼 우리 뭐라도 좀 먹고 갈까?"
"원장님 기다리실텐데.."
"괜찮아, 간단하게 요기만 떼우고 가자. 떡볶이 어때?"
"떡볶이? 콜!"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어딜 가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존재가 되었다.
말수도 적고, 낯가림도 심한 탓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것 보다는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했다.
또 종인이가 항상 내 옆에 있어주는 탓에 다른 친구들과는 어울리고 싶지도, 어울릴 생각도 없다.
학교에서도 나는 좋은 성적탓에 선생님들에게는 알려졌지만, 교내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여태 초등학교, 중학교 9년 모두 종인이와 같은 반이 된 탓에 그럴 일도 거의 없었지만,
가끔 가다가 착한 아이들을 만나면 서로 인사 하고 이동 수업 시간에 같이 다니는 정도?
쉬는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수련회에도, 수학여행에도 항상 종인이는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반면 종인이는 어딜 가도 눈에 띄고 사랑 받는 존재가 되었다.
종인이 역시 말수도 적고, 낯가림도 심하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처음에는 항상 혼자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상하리만큼 종인이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달라붙곤 했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관계 없이.
키도 크고 잘생긴 외모에 무뚝뚝해서 매력이 더 넘쳐흐르는 탓인지 사람들은 종인이를 항상 자기 곁에 두고 싶어했다.
허나 종인이는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었다.
나와 있을때는 종인이가 말도 많고 다정한 탓에 몰랐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무뚝뚝함의 결정체라고 한다.
체육시간에 다른 여자아이가 넘어져서 다치면 아무리 피가 많이 흐르더라도 쳐다보는둥 마는둥하며 내 옆에 서있는데
나는 종이에 손가락만 살짝 베여도 마치 자기가 베인것 마냥 인상을 찌푸리며 약을 발라주고 하루종일 신경을 써준다.
그런 종인이를 종인이의 친구들은 항상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아까 종인이에게 인사를 한 '김종현' 역시 그랬다고 한다.
종현이는 종인이와 중학교 친구로 종인이가 나 말고 유일하게 곁에 친구로 둔 녀석이다.
다들 종인이에게 말을 걸고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하지만 종인이는 항상 단답으로 일관해서 결국 제풀에 떨어지곤 했다.
허나 종현이는 종인이가 단답을 하던, 무시를 하던, 나와 얘기를 하던 계속해서 대쉬 아닌 대쉬를 하였고,
그런 종현이가 좋은 아이 같아 친하게 지내보라는 내 말에 종인이는 못이기는척 종현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느새 종인이와 종현이는 꽤나 잘 통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종인이 덕에 나 역시 종현이와 친분이 생겼고, 종인이가 잠시 없는 틈을 타 종현이는 나에게 물어왔다.
'너희 혹시 무슨 사이야?"
'뭐가?'
'혹시 너희 둘이 남매라거나?'
'아닌데'
'아니면 연인 사이라거나-?'
'아니.'
'야, 너도 김종인이랑 놀더니 물 들었냐?'
'뭐가?'
'단답! 말 길게 못해?'
'...?'
'아, 아니다! 너한테는 아니구나.'
'뭐가?'
'김종인 말이야, 김종인.'
'종인이가 뭐.'
'다른 애들한테는 항상 단답만 하잖아. 아무리 떠들어대도 응. 아니. 어. 그래. 몰라. 싫어. 단답만 하잖아.
근데 너한테는 먼저 말도 걸고, 말도 많이 하고.'
'...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
'다른 애들이 다 의아해하는거 알아? 물론 나도 그렇고.'
'뭘?'
'김종인이랑 윤다솜은 대체 어떤 관계길래 김종인이 저렇게 잘 해주는걸까?'
'......?'
'김종인이 그 누구한테도 웃어주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유일하게 윤다솜 너한테만 웃어주고'
'응.'
'김종인이 그 누구한테도 먼저 말 건적 없는데 너한테는 말 걸잖아. 그것도 길게.'
'그렇지..'
'고로!'
'고로?'
'김종인이랑 윤다솜은 연인 관계가 아닐까?'
'.... 뭐래..'
'아니면 김종인이 윤다솜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야.'
'아니 아니, 그렇잖아. 생각해봐, 유일하게 너한테만 잘해주잖아.'
'어릴때부터 가족처럼 지냈으니까, 그래서 그런거지.'
'글쎄, 내가 보기에는 김종인이 너ㄹ...'
'내가 뭐.'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뭔데, 얘한테 무슨 말했는데? 윤다솜, 얘가 해코지 했어?'
'아니, 니 욕하고 있었는데?'
'뭐?'
'다.. 다솜아?'
'응, 김종인 못생겼다고- 내가 욕 좀 하고 있었어.'
'피식-'
종인이의 끼어듦으로 인해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한채 끝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 종현이가 종인이가 웃는걸 보고 입모양으로 한 마디 하기는 했다.
'거봐! 너한테만 웃잖아!'
글쎄, 나는 잘 모르겠던데. 그냥 내가 친동생 같고, 가족 같고 그래서 그런가?
'
"야."
"......."
"야, 윤다솜."
"...어?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떡볶이 국물 다 묻었잖아."
"아... 그랬나?"
종인이의 목소리에 정신 차리고 보니, 입이고 턱이고 떡볶이 국물이 묻어 엉망이 되어있는 상태.
허둥지둥 휴지를 찾는 날 보고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한 번 웃더니
언제 휴지를 찾은 건지 너무나도 자연스레 내 입과 턱을 닦아준다.
그리고는
"칠칠아, 오빠 없으면 어떻게 살래?"
글쎄... 난 니가 내 옆에 없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데..
정말 니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 혈루화(血淚花) |
안녕하세요, 혈루화(血淚花) 입니다- 아이고, 분량 조절은 잘 됐는지 모르겠네요 ㅠㅠㅠㅠ 얼마나 써야하는지, 어디서 끊어야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 ㅠㅠㅠㅠ 1편은 종인이와 다솜이의 아가(?) 시절과 학창 시절을 다뤘습니다. 앞으로 몇편간 계속 학창 시절을 다룰 예정입니다. 과연 종인이와 다솜이는 무슨 관계일까요~? ㅎㅎㅎ (오타 지적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대신 둥글게 둥글게 부탁드려요 ㅠㅠㅠ 댓글은 사랑입니다♥ 똥글 포인트 아까우시니 댓글 적고 도로 받아가세요 ㅠㅠㅠ)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