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안녕!”
“…….”
밝은 표정으로 인사한 것은 좋았지만, 제 옆에 앉으며 확 풍기는 내음새가 영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살내음과 섞인 희미한 담배 냄새에, 택운은 코를 막으며 살짝 눈을 흘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그저 해맑은 학연이 알아챌 리가 있나. 게다가 새학기인 오늘 처음 본 사인데.
“왜? 코 간지러워?”
“…….”
저걸 지금 말이라고…자기한테 무슨 냄새가 나는지 모르나?
담배 냄새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택운은 지금 제 옆에 멋대로 앉은 학연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저질스런 만화를 그리는 오타쿠가 나았을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걔는 담배 냄새는 안 나니까.
냄새만 안 나면 담배 피는 줄도 모를 것 같은 까만 피부조차도 급작스럽게 맘에 안 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야, 차학연! 끝나고 PC방 콜?”
“씨발, 당연한 걸 물어. 야자 째!”
게다가 저 자연스러운 욕까지. 호감을 얻을 곳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 같았다.
새학기 첫 날부터 야간 자율이나 빼고 또 담배 입에 떡하니 물고는 욕을 지껄이며 키보드나 두들겨대겠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던 택운은, 학연의 시선이 다시 자신을 향하자마자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한심하긴 한데, 어쨌든 쌩양아치한테 대놓고 혀를 찰 만한 패기가 아쉽게도 택운에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키에 갑빠가 아깝다던 원식의 말이 생각났지만 뭐 어째.
싸움이라곤 해본적도 없고, 운동은 어렸을 때 한 축구부가 다인데.
그리고 저런 냄새나는 양아치랑 말 한마디라도 섞고 싶지 않았고.
“난 차학연이야, 잘 부탁해!”
“응.”
난 절대 말을 섞은게 아니야. 상대가 단지 잘 지내자고 해서 대답을 한 것 뿐이라고. 절대 계속 대답 안 하면 저 양아치가 빡칠까봐 좀 쫄아서 그런게 아니야.
쿵덕대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며, 택운은 속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아버리긴 했지만.
“나랑 말하기 싫나…?”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지, 이름도 말해주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려버리는 것도 모자라 귀까지 막아버리는 택운에게 학연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다.
키도 나보다 크고 어깨도 한 번 부딪히면 사망할 것 같이 생겼는데 목소리 엄청 미성이다. 목소리 더 들어보고 싶은데 지금 이름 물어봐봤자 말 안 해주겠지?
괜히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를 보내는 척, 켜지도 않은 까만 액정에 손가락을 따닥거리며 힐끔 택운의 왼쪽 가슴팍을 살폈다.
‘정택운’ 이라 적힌 명찰에, 나중에 또 말걸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 학연은 곧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 * * * *
“운아.”
“…….”
“택운아-”
“왜.”
“라이터 있어?”
진짜 죽이고 싶다.
차마 학연의 볼에 꽂지는 못하고 부들부들 주먹만 떨던 택운이 한숨을 쉬며 애써 손에 힘을 풀고 얼굴을 부볐다.
라이터 그딴게 나한테 있겠냐고. 이 까만 새끼는 얼굴 본지 오늘로 겨우 이틀짼데 십 년은 본 것처럼 진짜 귀찮고 짜증나게만 하네.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는 택운의 팔에, 눈치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학연이 매달렸다.
“나 한 번만. 담배 땡긴단 말야.”
‘어쩌라고.’ 하고 톡 쏘아주고 싶었지만,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팔을 털어내는 것에 그쳤다.
“없어, 그런거.”
“넌 담배 안 펴?”
“얘가 제일 싫어하는게 담밴데?”
그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이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학연에게, 빌려갔던 세계사 교과서를 대충 택운의 책상에 던져놓으며 원식이 대신 대답했다.
담배 질문도 그렇고 촐싹거리는 폼새가 딱 봐도 정택운이 귀찮아할 케이스네. 말도 많아 보이고.
학연을 위아래로 쭉 스캔하며 원식이 고개를 저었다.
원식이 그러거나 말거나. 설마해서 교과서를 펼쳤더니 종이를 온통 까맣게 채우고 있는 낙서에, 택운이 제 책상에 걸터앉은 원식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악!”
“누가 낙서하래.”
그렇다고 핵주먹으로 때려도 됨? 닥치고 네가 다 지워라.
세계사 책을 원식에게 집어던지며 욕을 하는 택운을, 학연은 신기하다는 듯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하네. 나한텐 대답도 제대로 안 해주면서.
심통난 학연이 한 행동은, 원식을 따라 낙서하기였다. 비록 원식처럼 샤프가 아니라 네임펜으로 책상에 낙서한거지만.
‘운아♡’ 하고 책상에 또박또박 적힌 글자에, 당황하여 저를 쳐다보는 택운을 마주보고 학연은 다음에 나올 그의 행동을 기대했다.
욕을 할까? 아님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내리치면서 네가 지우라고 잔소리할까? 둘 다 안 좋은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학연은 택운이 원식 대하듯이 저를 대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학연의 바람은 모른채로, 택운은 그에게 욕도 하지 않았으며 때리지도 않았다.
그저 놀라서 벌려졌던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다시 원식에게 돌렸을 뿐이다.
그 행동에, 낙서만 박박 지우던 원식이 괜히 당황하고 학연은 자기가 무시당했단 것에 충격과 분노를 동반한 어이없는 감정에 헛웃음을 지었다.
“왜 나 무시해?”
“뭐가.”
택운은 자신은 저대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남의 책상에 수성도 아니고 유성 네임펜으로 낙서를 하더니 왜 무시하냐고 화난 얼굴로 물어오다니.
그럼 친하지도 않고 담배 냄새 폴폴 나는 양아치한테 김원식한테 했던 것처럼 허벅지에 주먹이라도 내리꽂으리?
아님 ‘이 씨발새끼야, 낙서하지마.’ 라고 욕이라도 해? 그렇다고 잘했다고 칭찬할 일도 아니고.
단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화를 내면 나보고 어쩌라고.
“…….”
“…….”
“…….”
일순간 세 명이 조용해졌다.
제대로 대답도 안 했는데 왜 욕하면서 안 때리지? 책상 발로 걷어차고 안 나가나?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학연을 보며 원식과 택운이 한 생각이었다. 당연히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쉬는 시간 10분이 이렇게 길었던가? 오늘따라 울리지 않는 수업종에 택운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 말을 할까나.
“…넌 나랑 안 친하잖아.”
“어떻게 하면 친해지는데?”
아, 오글거려.
꽤 진지하게 이어지는 대화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원식이 벌떡 일어나 교실을 뛰쳐나갔다.
더 듣고 있으면 오글거리는 내 손발을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원식이 자리를 비우고, 학연은 자리로 돌아가기는 커녕 의자를 끌어 택운에게 가까이 붙었다.
빤히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탓에 택운이 뒤로 쭉 몸을 내빼긴 했지만.
“담배 냄새 나서 그래?”
딱히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택운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얘는 왜 자꾸 나한테 관심을 갖고 그래. 귀찮은데.
“그럼 내가 담배 끊으면 욕도 하고 때려줄거야?”
“…….”
뭐 질문이 저래?
장난치는가 싶었는데 단호한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제 손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할거냐고 되묻는 학연을 보며 결국 택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 피고 딱 봐도 불량스런 애들이랑 몰려다녀서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얘는 뭔가 좀…좋은 말로 하면 걔네랑 다르고, 솔직히 말하면 이상한 놈인 것 같다.
진짜 더 솔직히 말하면 웬 미친놈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지가 그렇게 좋아죽는 담배 끊으면서 김원식 취급 당하려 하겠어.
기다리라고, 곧 담배 끊겠다며 방방 뛰는 학연을 보며 택운은 속으로 한껏 비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