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너무… prologue |
나는 1학년 7반 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교생 실습으로 나온 학교에서의 첫 수업은 바로 1학년 7반이였다. 떨리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펼쳐친 광경은 경수가 상상하던 상큼한 여학생이 아니라 비록 징그럽도록 건장한 남학생들이 저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는 장면이였지만, 그래도 처음 교탁 앞에 섰을 땐 그 날카로운 눈빛마저도 교육열에 불타올라 반짝이는 순수한 눈빛으로만 보였었다. 잘해보겠다고 어젯밤 잔뜩 준비해 온 프린터물을 교탁 위에 올려다놓고 하얀색 분필을 잡고 칠판에 이름의 한 획, 한 획을 그엇다. 그리고는 밝게 웃으며 뒤를 돌아 교탁에 손을 짚었다. 아, 안녕? 내 이름은 도경‥
선생님은 첫 경험이 언제에요?
한 남학생의 질문에 반 전체가 웃음을 쏟아내고 나는 말 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내가 화도 내지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쩔쩔 매자 경수가 샌님이라는 걸 눈치라도 챈 모양인지 남학생들은 수근덕거리기 시작하더니 짖궃은 질문들은 더해만 갔다.
선생님, 몇 번 자봤어요? 선생님, 키스 잘해요? 선생님, 밤에 힘도 제대로 못쓰실 것 같은데.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분명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경수의 반응에 신난 남학생들은 경수의 첫 등장에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잠시나마 조용했었던 것인지 몇 까부는 학생들만 돌아가며 경수에게 여전히 짖궃은 질문을 던져대고, 나머지는 서로 떠들기에 바빴다. 조, 조용히 해! 경수가 교탁을 손으로 탁, 탁! 내리치며 외치자 오히려 한 남학생이 일어나더니 자신의 책상을 똑같이 탁, 탁! 내리치며 조, 조용히 해! 하고 말을 더듬은 경수를 따라했다. 어쩐지. 학생주임선생님이 1학년 7반은 문제아반이라 힘들거라며 어깨를 토닥여주며 매를 건네준 이유가 이해가 됐다. 그 때는 아니에요, 저 잘할 수 있습니다! 하고 패기넘치게 주먹을 쥐어보이며 매를 마다했지만 지금은‥ 이리저리 날뛰는 짐승 무리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은 경수는 당황해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주는 매를 마다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입술을 꾸욱 깨물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의 경수를 바라보던 맨 뒤에 앉은 한 남학생이 나지막히 말했다.
「시끄러워.」
그 옆에 앉아있는 남학생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손가락으로 귀를 파내다 경수와 눈이 마주치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경수가 조용히 하랄 때는 씨알도 안 먹히던 짐승들이 갑자기 목소리를 확 낮추더니 조용해졌다. 경수는 당황스러움에 눈을 댕그랗게 뜨고 그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경수는 교탁에 붙여져있는 자리배치도를 힐끔, 힐끔 바라보며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 남학생의 이름을 확인했다. 김종인. 그 옆에는 박찬열. 아, 쟤네가 이 반의 그거구나. 그거? 경수가 조용해진 짐승들 덕에 그제야 얼굴을 살짝 피고서 프린터 물을 나눠주려했다. 그러자 찬열이 살며시 손을 들었다. 찬열과 종인의 호의인지는 몰라도 그 둘의 행동에 호감이 생긴 경수가 응, 찬열아. 왜 그러니? 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선생님. 종인이가 할 말 있다는데, 가까이 와보세요.」
찬열의 말에 경수는 어, 어? 하고 말을 더듬다가도 종인이 이리와보세요. 하고 단호하게 말하자 머리를 긁적이다 종인에게 다가갔다. 왠지 다가가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경수는 안떨어지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종인이 가까워져오자 찬열이 눈에 들어왔다. 찬열은 턱을 괴고 능글맞게 웃으며 경수를 바라보고있었다. 경수가 눈을 마주친 찬열을 바라보고 있자 종인이 선생님. 하고 저를 불렀다.
「눈 가늘게 떠보세요.」
이게 무슨 소리지. 싶으면서도 순순히 경수는 종인의 말에 따라 눈을 가늘게 떴다. 반 아이들은 모두 종인과 저를 쳐다보고 있는지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식은 땀이 흘렀다.
「입도 살짝 벌리고.」
이상하게도 종인의 말에 따라 몸이 절로 움직였다. 그 때, 갑자기 종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있을 때도 키가 커보이기는 했지만, 일어서니 경수보다 훨씬 큰 종인이였다. 경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종인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너무 야한데요.」
종인의 말을 끝으로 찬열이 방정맞게 웃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