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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나는 긴장감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탓에 컨디션이 크게 좋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숍에 들려 치장을 받아야만 했다. 황민현은 풀 메이크업에 헤어까지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내 모습을 보고 예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자기 지금 모습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거울도 안 보는 모양인지, 사람들에게 자꾸 이렇게 예쁜 신부 본 적 있냐며 솔직히 여주가 자기한테 너무 과분한 것 같다는 둥 온갖 오글거리는 말을 해대서 낯간지러운 거 참느라 죽을 뻔했다.
하루 종일 신부대기실에 앉아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느라 입가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데, 신부대기실로 회사 식구들이 들이닥쳤다. 그중에는 편집장님도 함께였다. 편집장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 웃음 덕분인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회사 식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이따 식장에서 보자며 신부대기실을 나서는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 주는데, 편집장님이 마지막으로 뒤따라 나가시다가 뒤를 돌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
"결혼 축하해요, 여주 씨. 오늘 진짜, 아름답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말을 마친 팀장님은 입꼬리를 당겨 웃어 보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신부대기실을 나갔다. 그 말 한 마디가, 내 마음 한켠을 아프게 짓누르던 죄책감을 없애준 걸 편집장님은 아실까. 그 어떤 축하보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내가 기다려왔던 축하였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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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 식이 시작되었다. 황민현은 연신 긴장된 얼굴로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기 바빴다. 나만 이렇게 긴장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나는 그 와중에도 황민현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의 환호소리, 힘차게 깔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황민현이 먼저 성큼성큼 입장을 했다.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서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장 후, 뒤로 돌아 들뜬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황민현을 보며 가만히 미소를 짓다가, 나는 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아빠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 언제 이렇게 많이 늙었지. 철없는 딸내미 이만큼 키우느라 정작 본인 몸은 제대로 챙기지도 못 했던 우리 아빠. 나는 평생 철없는 아빠 딸로 살 것 같았는데, 이렇게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새로운 길을 걷게 되네. 아빠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말없이 내 손을 꽉 쥐셨다. "오늘의 주인공, 아름다운 우리 신부님 입장하시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신부 입장!" 하는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나와 아빠는 며칠을 연습했던 대로 천천히 발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박수소리에 이상하게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황민현이 보이고, 나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그 얼굴이 보이고, 평생을 내 손을 잡고 걸어줄 것 같던 우리 아빠가 내 손을 황민현에게 쥐여준 순간 애써 참았던 눈물이 왈칵. 아빠는 가만히 우리 둘을 바라보시더니 황민현의 어깨를 두들겨주시며 "평생 이 손 놓지 말고 걸어가게, 내 평생소원은 그거 하나야."하고 말씀하시고 뒤돌아 자리로 돌아가셨다. 황민현은 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며 잡은 손을 더욱 꽉 쥐었다. 그런 황민현의 손을 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잡아 쥐었다. 우리의 사랑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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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그렇듯 우리는 주례를 듣고, 서약서를 낭독하고, 친구들의 축가를 듣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순조롭게 결혼식을 진행해나갔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땐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서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지만, 그 외에는 식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탓에 딱히 힘든 점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못 느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결혼식을 끝내고, 황민현과 나는 결혼식에 와 준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는 모든 식이 끝나고 나서야 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모든 식을 마치고 식장을 나서는 우리를, 몇몇 가까운 친구들과 식구들이 배웅해 주었다.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다.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은 돈 벌어놓은 거 어디에다 쓰냐며, 신혼여행으로 하와이정도는 가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제주도는 우리가 가장 함께 가고 싶었던 곳 중에 하나였고,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거 자체가 서로 힘든 신혼여행이 될 것 같아, 오랜 고민끝에 내린 결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제주도를 신혼여행지로 결정했다. 3 박 4 일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신혼여행을 앞두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결혼식이 끝난 이후로 긴장이 풀린 탓에, 황민현도 나도 공항으로 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뻐근하게 감겨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견뎌내고 있었고, 황민현은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하다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낮게 웃으며 한쪽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곤하지." 다정하게 물어오는 물음에도 나는 목소리조차 낼 힘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피곤하면 눈 좀 붙여, 공항 도착하면 깨워줄게."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내 손을 잡아 쥐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한껏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어느새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잠깐 눈을 붙인 덕분인지 조금은 피로가 풀린 상태였다. 황민현과 나는 공항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로 오랜만에 타보는 비행기였기 때문에, 피곤한 것도 금세 잊고 나는 연신 들뜬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황민현은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들고 온 카메라를 꺼내 연신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진짜 팔불출 같다. 그렇게 말하며 눈을 흘기는 내 모습에도, 황민현의 팔불출 짓은 멈출 줄 몰랐다. 나중에는 좁은 비행기 안에서 굳이 몸을 기울여 내 배에 귀를 가져다 대는 행동을 하는 황민현의 모습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내 손을 끌어다가 제 머리로 가져다 놓는 대형견 같은 행동에 참아왔던 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건 안 비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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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여덟시를 막 넘긴 시간이었다. 우리는 캄캄해진 하늘을 뒤로하고 곧장 호텔로 들어섰다. 티는 안 냈겠지만, 황민현도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식을 치르느라 피곤했을 터였다. 신혼여행지를 결정하면서 예약한 호텔은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다. 한눈에 바다가 보이는 뷰 하며, 깔끔한 성격의 황민현도 단번에 오케이를 했을 만큼 굉장히 깔끔하고 청결했다. 나는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널찍한 침대에 누워서 짐부터 한쪽으로 치워두는 황민현을 바라보다가, 내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두어 번 내리치자 황민현은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로 걸어왔다. 나는 옆에 누우라는 듯 눈을 부라렸지만, 깔끔한 성격의 황민현은 씻지 않은 몸으로 침대에 누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 오기 생기네.
"누워, 민현아."
"여주야, 씻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누우면 어떡해."
"뭐, 어때. 누우라니까. 엄청 푹신해."
"여기 호텔 식사 맛있다는데, 너 오늘 제대로 먹지도 못 했잖아."
"안 누울 거야?"
"애기 배고프겠네."
"말 돌리지 말고 누워, 자기야."
"... 어?"
"누우라고, 자기야."
황민현은 유난히 자기라는 호칭에 약했다. 나는 그런 황민현을 너무도 잘 알아서, 황민현과 연애를 하는 동안 종종 황민현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을 때, 자기라는 호칭을 사용하고는 했다. 그럴 때면 우리 숙맥 황민현 선생은, 익숙해지지도 않는지 매번 자기라는 호칭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내가 원하는 대로 질질 끌려오고는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더러운 몸으로 침대에 누워서는 안 된다는 신념과, 침대에 누워 저를 올려다보는 내 모습을 번갈아보며 한숨을 내쉬다, 결국 내 옆에 슬쩍 드러눕는 쪽을 택했다. 나는 어느새 조금은 무거워진 몸을 낑낑대며 황민현 쪽으로 틀었다.
그럼 황민현은 낮게 웃으며, 그런 내 어깨를 잡고 수월하게 몸을 돌릴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슬쩍 보탤 뿐이었다. 나와 황민현은 침대 끄트머리에 불편하게 누워 서로를 마주 봤다. 모든 게 다 꿈같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널 짝사랑하던 열일곱 그때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아. 이 모든 게 다 꿈이라면, 그럼 나는 어떡하지. 내게로 꽂히는 올곧은 시선,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함께 바라봤다. 그러자 부드럽게 접히는 눈. 황민현은 손을 뻗어 내 한쪽 얼굴을 부드럽게 그러쥐고는 이마와 눈두덩이, 그리고 뺨에 연신 입을 맞췄다. 나는 가만히 그 입맞춤을 받아내다 웃음을 터뜨렸다. 황민현은 행동을 멈추고 왜 웃는냐는 듯 순진한 눈동자를 하고는 나를 바라본다.
"아니, 그냥... 생각해 보니까, 신기하잖아."
"뭐가?"
"그냥, 뭐...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이런 식으로 엮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응."
"우리가 이렇게, 부부라는 이름으로 엮였다는 게."
"아."
"더 이상 나 혼자 네 뒷모습만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
"그리고 이 지독한 짝사랑의 결말이."
"응."
"내가 바라던 해피엔딩이라는 게... 그냥 다 신기해서."
황민현은 더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내 뒤통수를 끌어다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아직도 현실과 꿈, 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연신 귓가에 속삭인다. 사랑해, 여주야. 사랑해. 내가 용기가 부족해서 그동안 제대로 말 못 했었어,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황민현은 김여주 너 하나만 사랑한다고. 너랑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면 지옥불에도 뛰어들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속삭이는 황민현의 목소리를 천천히 눈을 감았다. 피곤이 몰려왔다. 민현은, 그런 여주가 잠에 들도록 그냥 내버려뒀다. 하지만, 여주가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제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한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여주에게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지에 대해 알려 줘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널 사랑하는 그 모든 시간이 찬란하게 빛났었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널 만나게 된 그 모든 순간을 후회한 적 없었다고. 우리가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오기까지 그 모든 과정들이 내게는 선물 같다고. 그리고 민현은 둘의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에, 아이에게 둘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모두 얘기해 줄 생각이었다. 네 엄마가 사랑 앞에서 얼마나 무모하고 용감했었는지. 겁 많고, 용기 없는 아빠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네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서.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순간 속에는 사랑이라는 녀석이 있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