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어린왕자와 여우
"제 이름은 김성규에요."
몇 살이에요? 스물 두 살이에요. 그럼 형이네요. 그러네요. 우현과 성규 사이에서는 형식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 둘을 지켜보는 우현의 누나는 초조한 듯 한 표정으로 우현과 성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성규 씨가 우현이를 잘 보살펴 줄 수 있을까. 우현의 누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밝은 척을 하는 우현이었지만, 그 속마음은 도통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였다. 그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당분간 못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놓고 내색은 안 해도 눈에 띄게 어두워진 우현을 지켜보는 것은 누나에게 또 다른 고역이었다. 시계를 힐끔 쳐다보던 누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유난히 소리에 민감한 우현이 고개를 번쩍 들어 누나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누나, 가?"
"어, 응."
"…연락해."
꼭. 꼭, 이라는 말에 강조를 한 우현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말로 가볼게. 누나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면서 힘없이 흘러나왔다. 우현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뚝 떨어뜨리고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고, 성규는 누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여보였다. 연락드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성규의 말이 끝난 후,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사라지고 조심스럽게 병실 문이 닫혔다. 우현과 성규가 남은 병실 안엔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성규 쪽이었다.
"누나를 잘 따른다고 들었어요."
"날 유일하게 챙겨주거든요."
"다른 가족들은?"
"형이 많이 아프거든요."
나는 몸이 아프지만, 형은 마음이 많이 아파요. 그러니까, 나보다 더 아파서 더 신경 써줘야 되거든요. 조곤조곤 말을 하는 우현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규는 갑자기 우현의 손을 덥석 잡고 만지작거렸다. 당황한 우현이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어쩔 줄 몰라 하자 성규는 손에 힘을 좀 더 주어 우현의 손을 세게 잡았다. 우현의 침대에 옮겨 앉는 성규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현에게로 바싹 붙어 앉은 성규가 느리지만 또박또박하게 말을 시작했다.
"너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어…."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돼서."
따뜻하지? 내 손. 성규가 배시시 웃으며 여전히 한 손은 우현의 손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우현의 머리칼을 살짝살짝 매만졌다. 이런 식으로 우현을 대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따뜻해. 우현은 한층 누그러진 얼굴로 성규의 얼굴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현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낸 성규는 침대 헤드에 기댄 우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소 비좁은지라 우현이 칭얼대었지만 기어코 자리를 차지한 성규는 다시 툭, 말을 던졌다.
"나, 뭐하는 사람이게?"
"학생이겠죠. 대학생."
"나 음악 전공해."
"우와, 멋있다. 무슨 악기 전공해요? 아니면 작곡?"
묻지도 않은 말을 자기 혼자 내던지는 성규였지만, 우현은 그것 나름대로 신선한 것 같아 일일이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성규의 손가락을 매만지던 우현은 손뼉을 짝, 치더니 한 층 높아진 톤으로 성규에게 말을 걸었다. 형, 피아노 치죠? 손가락이 딱 피아노 치는 사람인데. 자신이 맞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우현은 성규가 말을 할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대었다. 피아노 전공하는구나. 무슨 곡 제일 잘 쳐요? 나는 쇼팽 곡이 좋은데…. 성규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아이처럼 신이 난 우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쟤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아나.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현이 저렇게 감정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성규는 우현의 손을 다시 꼭 잡았다.
"어. 왜요?"
"피아노도 치긴 하는데, 본 전공은 아니야."
"악기 하는 건 맞아요?"
"내 악기는."
내 목소리.
네?
난 노래하는 사람이야.
* * *
성규는 항상 같은 시각에 병실에 왔고, 같은 시각에 병실을 떠났다.
보컬 전공을 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끈질기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라댔으나 성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사과 먹을래?', '책 읽어줄까?' 등이 전부였다. 삐칠 대로 삐친 우현은 침대에 누워 문 쪽을 등진 채 창문 쪽으로 몸을 틀고 누웠다. 성규가 들어오면 말도 안 할 심산이었다. 이건 뭐 밀당도 아니고. 우현은 괜히 허공에 발차기를 해대었다. 그러는 사이, 복도를 걸어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자 우현은 발차기를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시간, 이 맘 때쯤 들리는 발걸음 소리. 방금 전, 성규에게 말조차 걸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우현의 입은 헤벌쭉 벌어졌다. 발소리가 멈추고, 2초의 정적. 그리고, 병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사람의 인기척. 낯익은 로션 향. 우현의 손을 잡는 따스한 기운.
"뭐해? 등 돌리고. 빗소리 들어?"
"노랫소리를 못 들으니 빗소리를 들을 수밖에."
"삐졌어?"
"내가 왜?"
"아님 말고."
김성규는 두 번 이상 물어보는 법이 없다. 우현은 입을 삐죽였고, 성규는 우현의 표정변화를 시시각각으로 지켜보며 소리 죽여 웃느라 입 주변이 씰룩씰룩 거렸다. 노래를 부르는 일은 익숙했지만, 왠지 우현의 앞은 어색했다. 눈이 안 보이니까 다른 감각이 유난히 발달한 우현에게는 미세한 단점도 크게 들릴 것만 같아서.
"형. 비 많이 와요?"
"아니."
빗소리가 정말로 노랫소리 같아. 박자 맞추는 것 같지 않아요? 우현의 말에 성규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시인이네, 시인.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성규가 침대에서 우현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발을 딛고 선 우현은 어정쩡한 자세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옆에 성규의 몸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성규는 우현의 허리를 꼭 붙들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뭐해요?"
"따라와 봐."
됐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성규가 멈춰 섰고, 우현은 불안한 표정으로 두 눈을 깜박였다. 성규는 창문을 활짝 열고 낑낑거리며 방충망을 걷어내었다.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리는 빗소리에 우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창가에요, 지금?"
"손 줘 봐. 손."
우현이 손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우현의 손을 낚아 챈 성규가 창문 밖으로 우현의 손을 쭉 뻗게 했다. 우현의 손에 차가운 빗방울이 톡, 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 피부에 와 닿는 차가운 느낌. 성규는 자신도 손을 뻗어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아이스크림 먹을래?"
"무슨 맛인데?"
"먹어보면 알지."
"아, 차가워!"
우현의 입에 거칠게 한 숟가락을 쏙, 밀어 넣은 성규의 기습에 우현은 화들짝 놀라 몸을 튕겨냈다. 성규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고, 우현은 당했다는 생각에 애꿎은 제 머리만 쥐어뜯었다. 얄미울 정도로 미친 듯이 웃어대던 성규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제게서 등을 돌린 우현의 옆에 앉아 다시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떠 우현의 입가에 갖다 대었다.
"안 먹어!"
"맛있어. 나 혼자 다 못 먹어. 빨리 먹어. 녹아."
아-. 우현은 입을 살짝 벌리고 성규가 넣어준 아이스크림을 오물거렸다. 달다. 김성규의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저번에는 상큼한 맛들로 도배를 해오더니 오늘 사 온 것은 온통 초콜릿 아이스크림뿐이었다. 이게 새로 나온 맛이래. 그러니까 많이 먹어봐. 호두 뭐라더라. 생긴 건 좀 바닐라 색인데. 성규는 우현이 접하는 모든 것에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여기가 튀어나왔고, 재질은 유리 재질이고, 색은 빨간색이야, 같은. 깜깜한 우현의 머릿속에 작은 불빛을 내는 것만 같았다. 김성규란 사람은.
아이스크림 통이 바닥을 보일 때쯤, 병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성규가 들고 있던 숟가락에 얼굴을 맞아 아이스크림을 닦아내던 우현 대신 성규가 문 쪽을 향해 외쳤다. 이내 문이 살짝 열리고, 열린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은 하얀 가운을 입은 호원이었다. 다른 환자들을 모두 둘러본 다음 가장 마지막으로 우현의 병실에 방문하는 호원인지라 성규를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호원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손엔 차트를 들고 침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마치 그 공간이 무척이나 길기라도 한 듯이. 호원은 성규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우현이 형?"
"아뇨. 누나한테 부탁을 받아서 당분간 보살펴 주기로 했어요."
"아아."
"김성규라고 합니다."
누나 대신 오는구나. 나이는 어떻게 돼요? 스물두 살이요. 우현이보다 형이네. 얼굴 되게 하얗네요. 우현이 옆에 있으니까 우현이는 완전 탄빵같네. 호원의 혼잣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우현이 발끈하며 몸을 파닥거렸다. 나도 하얬거든요! 반박하는 우현에게 호원은 비웃음을 날리며 맞받아쳤다. 그래, 십 년 전에? 우현은 몸을 홱 돌리고 앉아 궁시렁거렸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그런 우현의 모습에 성규와 호원은 서로를 마주보고 풋,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웃지마요!"
"가만히 있어."
호원은 좀 전과 다르게 목소리를 낮게 깔고 우현의 턱을 잡았다. 호원은 작은 손전등을 우현의 눈언저리에 비춰대었지만 우현의 눈동자는 전혀 미동조차 없었다. 호원이 우현의 턱을 놓고 손전등을 가운 주머니에 찔러 넣을 동안에도, 우현의 눈은 그저 깜박이기만 할 뿐 초점도 없이 시선은 허공에 머물러 있기만 했다. 성규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에 침을 꼴깍 삼켰다. 눈이 안 보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희소식이 있어. 우현아."
"뭔데요?"
"대기 순번이 많이 올라갔어. 짧으면 한 달, 길면 여섯 달."
"네?"
"각막 이식. 수술해야지. 계속 깜깜한 데 있을래? 불 좀 켜야지, 이제."
호원이 씩 웃었고, 우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무슨 소리에요, 지금?"
"너 눈 수술 한다고."
"저 다른 데 아파서 입원한 거 아니었어요?"
"아닌데."
"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호원은 눈썹을 찡긋거렸다. 하지만 우현의 표정은 놀리는 것이 아닌, 정말로 순수하게 '몰랐다'는 표정이라서 더 혼란스러웠다. 가족들이 아무 말도 안 해준 건가?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고 해도 어쩜…. 호원은 딱딱하게 굳어있던 우현의 아버지의 얼굴을 생각하며 도리질을 했다. 하긴, 제 자식이라고 인정하기도 싫어하던데. 호원은 눈동자만 살짝 돌려 성규를 쳐다보았다. 멘붕 상태에 빠진 우현과는 다르게, 성규는 그래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호원은 성규의 옆에 다가가 성규의 어깨를 툭툭 치고,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댔다. 쉿. 성규는 고개를 끄덕였고, 호원은 소리가 나지 않게 입모양으로 뻐끔뻐끔 말을 했다.
성규 씨는 알았어요?
네. 누나한테 들었어요.
근데 쟨 왜 몰라?
성규는 어깨를 으쓱댔다. 저도 몰라요. 그 때, 호원의 호출기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고, 호원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규는 피식 웃으며 우현을 자신에게 맡기라며 호원의 등을 떠밀었다.
"우현아, 내일 올게!"
"어, 어…. 네."
우현은 자신의 콧잔등을 살살 매만졌다. 크흥. 코를 훌쩍이기도 했다. 성규는 창가에 기대어 섰다. 몰랐는데, 우현의 눈꼬리에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성규는 우현의 앞에 서서 휴지로 우현의 눈가를 꾹꾹 눌러주었다.
"남우현. 울어?"
"으흥. 안 울거든요."
"넌 뭐 하고 싶어?"
앞 뒤 다 잘라먹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내던지는 성규를, 우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눈 보이면. 제일 먼저 뭐 하고 싶어?"
"어…."
제일 먼저 거울 봐야죠. 나 키가 많이 컸다고 하는데, 난 도통 모르겠어서…. 누나랑 형이랑, 어, 엄마랑 아빠도 봐야 되고. 그리고 이 선생님한테 인사도 해야 되고. 형이 얼마나 하얗기에 이 쌤이 나보고 탄빵이라고 했는지, 재봐야 겠어요.
완전 애야 애. 우현의 마지막 말에 성규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우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10년 전에 보고 못 봤는데."
"친구?"
"걔는 내가 갑자기 사라진 줄 알 텐데. 나이도 잘 몰라요. 그냥…."
"걜 찾을 방도는 있어?"
"아직 거기 살고 있지 않을까. 눈 뜨면 제일 먼저 거기로 가고 싶어요. 사실."
"그 정도로 소중해?"
"응…. 걔가 나한테 편지도 줬었는데 아직 못 읽었거든요."
"내가 읽어줄게!"
"됐어요!"
우현이 손사래를 쳐대자, 성규는 그런 법이 어딨냐며 칭얼대었다. 하지만 우현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눈 뜨면, 내가 제일 먼저 볼 거예요. 만약 수술이 실패해서 눈이 안 보이면, 그때 형이 읽어줘요. 알았죠.
"실패할 생각을 왜 해."
"예전엔 수술 못한다고 했었단 말이에요. 손상이 너무 심해서."
"잘 될 거야."
뭐든지. 나만 믿어. 성규는 새끼손가락을 우현의 새끼손가락에 걸고, 엄지손가락을 마주 대었다. 우현이 킥킥 웃으며 침대 위로 벌러덩 쓰러졌다. 다시 볼 수 있을까. 너를.
1편 업뎃이 15일이네요. 그리고 오늘은 열두시가 지났으니 27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연재주기 죄송합니다.....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요..제가 새벽에 날벼락을 맞ㅇr서....자세한 일은 말씀 못드뤼지만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일이 있어가지고 늦게 온 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1월에..액땜이 참으로 많네요 뭐 풀리는 일이 없어요....
울고 싶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건 제가 웃는게 웃는게 아닙니다 정말롴ㅋㅋㅋㅋㅋ하.....
글고 댓글에 사적인 얘기를 쓰셔도 되고 저랑 씐나게 놀아도 됨ㅋㅋㅋㅋ너무 글에 대한 내용만 써야 되는거 아닌가 하고 겁먹지 말아요
저 프리한 사람이에요
그럼 안녕~~~~~~~~~~
내사랑^~^
귱 몽림 규닝 유자차 환 리니 써니텐 군만두 에비 롱롱 제시 무럭자라 에몽 복자 치쯔 밀크 규꼬리 쫄란규 동우야내가 감성 여우 제이 이랴 케헹 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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