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바람이 되어
w.제나
01. 검은 바다
우현은 새하얀 방에 갇혀 있었다.
창문 하나 없이 천장이며 바닥이며 온통 새하얀 방. 주먹을 쥐고 끈질기게 방문을 두드려대던 우현은 이내 팔을 축 늘어뜨리고 바닥에 앉아 작은 몸을 점점 더 작게 웅크렸다. 엄마. 누나. 형. 우렁찼던 목소리는 점점 개미 목소리만큼 작아져 들리지도 않았다. 우현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쿡쿡 눌러보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걸까?
초점을 잃은 우현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그 때, 천장에서 검은 잉크 한 방울이 톡, 하고 떨어졌다. 흠칫 놀란 우현은 등을 꼿꼿하게 세워 앉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얗기만 했던 천장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검은 색은 이제 벽을 타고 슬그머니 뱀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여전히 천장에선 검은 잉크가 느리게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도 점점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독하리만큼 감정이 없어 보이는 검은 색이 싫었다. 우현은 뒷걸음질을 쳤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구석에 내몰린 우현은 무심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고는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가락 끝이 까맣게 물들고 있었다. 우현은 비명을 내질렀다.
새하얗기만 했던 방이 새까맣게 물들어버렸다. 자신도 까맣게 물들어버렸다.
이곳은 별이 빛나던 검은 밤하늘 아래, 파도가 일렁이던 검은 바다. 그 곳이었다.
몸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눈을 떠도, 감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부한 검은 세상만이 우현을 반겼다. 우현은 도리질을 했다. 검은 무언가가 우현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팔다리를 붙잡고, 목을 죄고 있었다. 꺽꺽대는 숨소리가 목구멍을 통해 흘러나왔다. 아무도 오지 않아. 그 때처럼. 귓가에 속삭이는 무언가의 목소리가 싫었다. 그건 모두 거짓말이야. 우현은 발버둥을 치며 자신을 압박하던 존재를 풀어냈다. 이 어둠 속의 어딘가에서, 희미한 빛을 보았다. 이곳을 벗어날 수 있어. 우현은 검은 공간 속을 내달렸다. 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이…."
있었다. 우현은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낯익은 풍경, 그 속에 하얀 소년이 있었다.
운동장 흙바닥에 선 우현은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았다. 늘 그 소년의 자리인 가운데 그네. 오늘도 소년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소년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더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 돼. 우현은 숨을 헉헉대며 뛰기 시작했다. 어느덧 소년은 울고 있었다. 우현은 손을 뻗으며 간절하게 외쳤다. 혼자 있지 마, 혼자 울지 마. 우현의 외침이 닿기라도 한 것인지, 소년이 우현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무어라 말을 하고 있는데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 않았다. 소년에게 조금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힘이 빠졌다. 우현은 정신없이 뛰던 다리를 천천히 멈추었다. 사방 속에 깔린 고요. 소년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려고 할 무렵, 우현의 시야는 다시 검은 바다에 가려지고 말았다.
* * *
형의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실 손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떨렸다. 이 모든 것은 제 탓이었다. 붕대로 꽁꽁 감아놓은 우현을 차마 쳐다볼 수도 없어 두 눈동자는 바닥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을 동생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은 셈이었다. 꽉 깨문 잇새에서 자신을 탓하는 신음소리가 울음소리와 섞여 흘러나왔다. 엄마는 팔짱을 끼고 넋 나간 표정으로 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서 있었다. 병실 안의 무거운 기운을 애써 무시하며, 누나는 우현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손을 다치면 안 된다며 무거운 것 하나 못 들게 하던 고운 손이었다. 그 작은 손이 하얗고 까만 건반 위를 날아다닐 때면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손놀림을 구경하곤 했었다.
우리 우현 이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에요.
앞을 못 보는 피아니스트?
우현과 닮은 누나의 눈꼬리에서 더운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 * *
"우현 씨. 오늘은 좀 어때요?"
"항상 같죠, 뭐."
오늘도 깜깜해요. 날씨 안 좋은 밤하늘처럼. 이렇게 얘기하면 되나요? 우현이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한 손에 차트를 들고 볼펜으로 글씨를 끼적이던 호원은 그런 우현을 마주하자 못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감정이 얼굴에 확확 드러나는 호원은 지금 자신의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저 환자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 다행이라 여겼다. 눈이 안 보이는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한 우현은 사람들의 감정 변화를 목소리 등을 통해 더 빨리 알아채곤 했다. 자신이 기쁜 날엔 같이 기뻐해주고, 우울한 날이면 같이 우울해 주기까지 하는 우현을 잘 아는 호원은 우현 앞에선 항상 감정을 절제하려 노력했다. 기쁘고 좋은 일만 전하자. 그것이 우현을 대하는 호원의 신조였다. 호원은 우현의 턱을 잡고 눈 쪽에 작은 불빛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오늘도 우현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우현을 처음 만난 것은 호원이 갓 전문의가 되었던 3년 전이었다. 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간 병실은 난장판이었다. 링거 병은 깨진 채로 병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탁자 위에 놓았던 꽃병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열일곱의 우현이 손에 유리 파편을 들고 창가 쪽에 위태롭게 기대어 있었다. 파편을 그러쥔 손은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호원은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더 이상 환자가 제 몸을 해치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호원이 우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유리를 밟아 사락거리는 발소리를 들은 우현은 들고 있던 파편을 냅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내던졌다. 꺄악! 오들오들 떨고 있던 신입 간호사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우현은 멍한 표정으로 호원을 바라보았다. 호원은 눈이 보이지 않는 이 환자가, 자신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무심결에 들었다. 이내 도리질을 하며 생각을 털어낸 호원이 피에 절은 우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일단 치료부터 합시다, 남우현 씨. 그리고 우현은 거짓말처럼 호원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었던 것이다.
퇴원을 한 후에 우현은 가끔씩 자신을 찾아왔다.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호원의 볼을 만지며 죄송하다며 풀 죽은 모습을 보일 때면, 호원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며 우현의 등을 토닥였다. 간호사들에게 우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워들은 후, 이 아이를 더 감싸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원과 친해진 이후에는 툭툭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약 10년 전, 불꽃놀이를 하다가 화약이 눈에 튀어 눈이 멀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쩜 이렇게 운이 없을 수 있나 싶었다. 붕대를 칭칭 감은 손을 보고는 왜 그러냐고 묻자 희미하게 미소 짓던 우현의 얼굴은 가슴 한편에 깊이 새겨져 도저히 지워지질 않았다.
우현의 손은 아직도….
"선생님."
"어어."
"다른 병실, 안 가보셔도 돼요?"
"아, 시간이…."
"한가할 때 놀러오세요!"
생각에 푹 빠진 호원을 깨운 건 우현의 밝은 목소리였다. 호원은 왼손에 찬 시계를 슬쩍 쳐다보고 하얀 가운을 매만졌다. 다시 올게. 호원이 병실 문을 살며시 닫고 나가자, 방 안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우현은 푹신한 베게에 머리를 푹 박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 걸까."
우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고, 우현은 반사적으로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나 같이 조심스러운 누군가의 몸짓이 느껴지자 우현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향수 냄새.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 보조의자가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우현의 머리칼에 차가운 손이 와 닿았다.
"미안, 우현아. 너무 오래 못 왔지."
"누나."
"좋은 소식, 안 좋은 소식이 있어. 뭐 먼저 들을래?"
그냥 안 좋은 소식은 말 안하면 안 돼? 우현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안 돼. 누나의 짤막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럼 안 좋은 것부터 말해줘.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깐 우현에게, 누나는 한참을 뜸을 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지금 귀도 안 들리나…. 하지만 틱틱대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누나가 말이 없음이 분명했다. 우현은 서툴게 한 손을 뻗어 허공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누나의 볼에 손을 갖다 대었다.
"왜 말이 없어."
"누나, 출장이 있어서 당분간 못 와."
아. 우현이 낮은 탄식을 내뱉음과 동시에 스르르 팔이 툭 떨어졌다. 테이블에 팔을 쿵 하고 박았지만 우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어떡해, 많이 아프지. 우현의 누나는 허둥거리며 우현의 팔을 조심히 살폈다. 하지만 우현은 막무가내로 팔을 확 빼버렸고, 누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얼굴에 내리꽂힌 누나의 시선을 느낀 우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좋은 소식은 뭔데, 그럼.
"나 대신 꾸준히 와 줄 사람이 있어."
"누나 아니면 필요 없어. 그냥 가. 혼자 있고 싶어."
"그러지 말고, 우현아. 응?"
한참동안 우현과 누나는 실랑이를 해댔고, 결국은 누나가 이겼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우현아. 누나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다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우현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 두 눈이 멀어버린 이후로 형은 우현의 가까이에 올 생각도 못했다. 자신을 탓하면서 하루하루 망가져 갔다. 아버지는 눈이 멀어버린 우현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병신이 되어버린 자식은 필요 없다 했다. 엄마는 미쳐가는 형과,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잡기 위해 발버둥을 쳐대느라 우현에게 신경을 쓸 틈 따위는 없었다. 위태로운 가족들 사이에서, 우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누나였다. 건반을 잡아내지 못해 자기 스스로 손을 망가뜨리는 우현을 울면서 뜯어말리던 것이 제 누나였다. 잔병치레가 많아 병원에 자주 입원하는 우현이었지만,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하루이던, 한 달이던, 누나는 항상 자신을 찾아오곤 했다. 그런 누나가 이제 못 온다고 한다. 누나가 누구를 데려오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공허함을 메꿀 수 있는 사람일리가 없었다.
"우현아."
들어가도 돼? 누나의 조심스러운 노크소리와 말소리가 들렸고, 우현은 응. 이라며 크게 소리쳤다. 하이힐 소리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발소리만 들어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꼭 주먹 쥔 우현의 손 위로,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깍지를 끼었다.
"안녕하세요, 남우현 씨."
우현은 두 눈을 깜빡였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마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같았기에. 우현은 어쩌면, 어쩌면 이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들이 기다린 것에 비하면 내용이 짧네요
(오열)
갑자기 날씨가 또 추워졌네요 오늘..아니 새벽 두시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출근할 때 바람에 싸대기 맞는줄 알았어여
옷 두툼히 입고 다니세요 그대들 감기 걸려요
암호닉목록`~´♡
귱 몽림 규닝 유자차 환 리니 써니텐 군만두 에비 롱롱 제시 무럭자라 에몽 복자 치쯔 밀크 규꼬리 쫄란규 동우야내가 감성 여우 제이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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