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천국이자
지옥,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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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fore the start
Q. 첫 만남, 기억나요?
첫만남이요?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요. 18살 때 처음 봤겠죠.제가 걔를 처음으로 의식했던 순간은 기억나요. 그 전에도 많이 마주치긴 했을테지만 제가 기억을 못해요. 그 전에는 학교에서 눈을 뜨고 있었던 시간이 없어서.. (처음 제대로 본 순간은 언제에요?) 아, 전학오고 일주일정도 지났나. 제가 등교 시간이 훨씬 지나서 학교에 왔는데, 그 친구가 저를 계단에서 딱 보고는.. 너 왜 이제와? 하고 당돌하게 물었어요. 그때에요. 사실 그런거 우리 담임선생님도 안물어봤거든요. 나에 대해서 안궁금해하니까. 그걸 말한마디도 안섞어본 애가 그런걸 물어봐서..당황스럽고 또 의아했어요. 나에 대해 왜 궁금해하지? 싶어서.
*
첫만남이요~ 당연히 기억나죠. 걔가 고등학교 2학년 중반에 전학왔거든요. 서울 토박이들로 득실거리는 교실에 대구에서 올라와서 사투리를 쓰는 남자애가 임팩트 있을 수 밖에 없죠. 머리 쌔카만 애가, 묵묵히 자기소개로 내는 민윤기다, 하고 맨 뒷자리에 앉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압감도 있었고. 그 때도 걔는 자기만의 아우라가 있었어요. 다만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둡고 가시를 곤두세우고 있었던 느낌이었죠. 학교에 자주 늦어서 반장인 제가 주의관찰하던 인물이기도 하구요. 하하.
Q. 어쩌다가 친해졌어요?
당시 저는 회사에서 트레이닝 받느라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었어요. 게다가 제가 워낙 전학 간 학교 친구들이랑 안 친하기도 했고, 지각도 많이 하고. 공부도 안했죠. 학교도 제대로 안나가고. 그런데 여주가 또 그런애들 못참거든요. 거의 아싸이던 저를 많이 케어해줬죠. 아, 진짜 웃긴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진짜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 누구더라. 미적분이었나? 하여튼, 그 선생님 수업시간에 제가 숙제를 안해간거에요. 이미 전시간에 숙제를 안해서 너는 어차피 대학 안갈거라서 이렇게 막나가냐, 너같은 새끼는 성공 못한다. 이런 막말을 엄청 들었었는데도. 전 그냥 그런 말 들어도 상관 없어서- 싫은 말 한 번 듣고 말지, 했죠. 그런데 여주가 갑자기 자기가 숙제한 노트를 저한테 넘기더니 자기 숙제 안했다고, 손바닥을 맞으러 나가더라고요. 너무 어안이 벙벙해서 바보같이 말리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 날부터 여주한테 마음을 열었어요. 얘 나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는구나, 싶었어요. 그 전까지는 제가 엄청 경계했거든요. 그 친구가 절 많이 도와주고, 저도 그러다보니까 마음을 열었고...어느 순간 제가 걔한테 많이 의지하고있더라고요.
*
윤기가 워낙에 눈에 밟혔어요. 솔직히 말해서 신경이 많이 쓰였죠. 우리 학교 남자애들이랑 좀 달랐어요. 처음에 남자애들이 윤기한테 나쁜 걸 권유했는데, 윤기가 인상 딱 쓰고 자긴 그딴거 안한다고 욕하는데 솔직히 좀 신기했죠. 궁금해져서 제가 먼저 친한척을 많이했어요. 매일 학교에 늦고 수업시간에 자는 것도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몇 번 대화 해봤을 때, 재미로 학교를 빠지는 애는 아니라는게 느껴졌거든요. 그게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 길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걔랑 친구가 하고싶었어요. 잘해주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가까워지기위해 별짓 다했죠. 윤기도 처음에는 얘 뭐야? 하는 눈빛이다가 받아주더라구요, 저를.
Q. 언제부터 사귀었어요?
사귀자! 해서 사귄 건 스무살이었죠. 그런데 저는 이미 18살때부터 좋아하고 있었어요. 짝사랑을 2년 한 셈이죠. 어떻게 참았냐고요? 대단하다고요? 에- 아니에요. 그냥 뻔하잖아요. 너무 소중해서 내 연애감정으로 그 친구를 잃기는 싫었어요. 손도 잡아보고 고백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걔가 제 인생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런것도 모르고 그 친구는 저한테 왜 넌 여자친구 안사귀냐, 그런 소리도 많이 했고.. 그럴 때 마다 속터지긴 했지만. 그래도 고백은 여주가 먼저 해줬어요. 엄청 놀랐어요. 고백 어떻게 했냐고요? 걔가 진짜 골때리는게, 하하. 제가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노래가 차트인 해서 축하할 겸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애가 아무말도 안하고 술만 연거푸 마시는거에요. 여주가 술을 못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잘마시는 것도 절대 아니거든요. 왜이러지, 싶었는데. 그러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걔가 가방에서 무슨 박스를 꺼내면서 "야, 오늘 좋은 날이니까 내 소원좀 들어주라." 이러는거에요. 박스에는 무슨 꽃이 이만큼 들어있고, 빵터져서 소원이 뭐냐, 했는데 "2년 알았으면 됐으니까, 이제 연애나 하자." 이러더라고요. 자기가 꽃을 엄청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할 줄 알았나봐요. 새벽에 그 공원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웃기고 너무 기뻐서. 저, 그 꽃 아직도 갖고있어요.
*
스무살? 그 전까지는 진짜 돈독한 친구였죠. 볼 꼴 못볼 꼴 다봤어요. 저 대학 떨어지고 펑펑 울면서 전화했던 사람도 엄마가 아니라 윤기고.. 나 첫 엠티때 꽐라돼서 인사불성일 때 데리러와서 내 등 두드려준 것도 윤기고.. 진짜 그냥 친한 친구였어요. (윤기씨는 그 전부터 좋아했다고 하던데.) 맞아. 그랬다고 하는데 걔는 진짜 티 안냈어요. 그냥 절 포함한 모든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 처럼 굴었달까.. 아, 그리고 고백도 제가 먼저한건데.. 고백 어떻게했냐고요? 아, 창피해서 말 못해요..
Q. 상대방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아, 이런거 진짜 말하기 부끄러워요. 꼭 말해야돼요? (네.) 아- 그러니까, 여주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배울점도 많았고, 또 제가 힘들어서 죽고싶었을 때 저를 구원해준 사람이기도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고요. 고등학교 때 저를 깊숙이 알고도 함부로 동정하지 않았고, 섣불리 위로하기보다는 저를 그냥 안아주고 조용히 응원해줬어요. 기본적으로 굉장히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이라서 악의가 없고, 정도 많고. 그냥,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걔는. 그래서 애가 상처를 많이 받는게 좀 걱정이긴 한데.. 피디님도 보면 바로 아실거에요. 이래서 민윤기가 아직도 얘를 좋아하는구나.
*
윤기는 정말 매력많죠. 연애 상대로서가 아니라도, 그냥 사람으로서 정말 매력 넘치는 사람이에요. 자기 일에 있어서 최고가 되기 위해 항상 꾀부리지않고 열심히 노력하거든요. 지금은 엄청 잘나가는 프로듀서지만, 걔가 쌓아올린 그 모든 것 중에 쉽게 얻은 게 없어요. 일을 정말 사랑하는게 느껴져요. 전 여태까지 살면서 윤기만큼 열정적인 사람을 못봤어요. 그래서 항상 닮고싶다고 생각했어요. 또 정직하고, 무기력해보이지만 활기찰때는 엄청 활기차요. 안그럴거같지만 주변사람도 되게 잘챙겨요. 그리구..아! 윤기 엄청 귀여워요. 애교는 없지만, 문득문득 묻어나오는 귀여운 행동이 있어요.
각자 다른 방에서 인터뷰를 하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네요.
스물여덟, 이십대 후반의 두 남녀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누구보다 즐거워보입니다.
인터뷰어의 과거를 묻는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솟아오르는 광대와 휘어지는 눈을 주체할 수 없어보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할 때 더욱 신나보이기도 하네요.
Q. 그렇게 좋았는데, 왜 헤어지셨어요?
하지만 인터뷰가 끝이 날 즈음 나온 질문에 민윤기씨도, 김여주씨도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민윤기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김여주씨는 애꿎은 손톱을 뜯으며 인터뷰어의 질문을 피해가려고 애씁니다.
아, 이런 질문이 나올줄은 몰랐네요.
*
하하.. 사필귀정이라고 하잖아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게 당연하죠.
Q. 원인을 규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헤어짐의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민윤기씨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습니다. 과거를 답습하는 듯 잠시 눈을 감고 침묵하더니, 이내 눈을 뜨고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갑니다.
음- 뭐. 제가 연인으로서 여주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일하느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매일 기다리게만하고.. 호의를 권리로 착각한다고들 하잖아요. 그런 실수를 저질러 버린거죠, 제가.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을, 그 친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바보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많이 실망시켰어요. 소중한 사람은 더 소중하게 대해야하는데, 여주는 저를 전적으로 이해해줄거라는 착각을 해버렸어요. 그런데, 헤어지고 그 친구가 사라지니까 제 주변이 텅 비었더라구요. 저는 열아홉살 이후로 그 친구 없이 살아본 적이 없고, 제가 노래를 만들 때 옆에는 항상 걔가 있었고, 저보다 제 건강에 더 신경을 많이 써줬고, 내 가족보다 나를 더 믿어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살기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바보죠, 뭐. 지금은 어떻냐구요? 지금도 다를바없어요. 반쪽이 텅 빈 기분이죠 뭐.
*
당시에는 윤기가 너무 미웠어요. 윤기는 일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뒷전인 기분이 들었어요. 기념일을 까먹기도 하고, 연락을 안받기고 하고 그랬죠.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제가 못난 탓이더라구요- 윤기는 어느 순간 너무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는데, 제가 그 친구를 이해하고 또 함께하기에는 너무 작은 사람이였어요. 그런 저를 제가 못참은게 아닐까, 싶어요. 돌아보면 윤기가 저를 정말 많이 챙겨줬거든요. 저는 대학교에 가고 윤기는 프로듀싱을 하느라 회사에 들어갔어요. 제가 이것저것 윤기한테 걱정도 많이 끼쳤고, 일하는데 많이 방해도 됐을거에요, 그런데 윤기는 싫은 티 한 번 안내고 저를 배려해줬어요. 그건 기억 못하고, 고작 몇 년 좀 바빴다고 너무 힘들어했어요. 윤기 나쁜애 아니에요! 그리구, 윤기가 제 생일보다 저희 엄마 생일을 더 잘챙겼어요. 진짜 착한애에요.
인터뷰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향하네요.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민윤기씨는 인터뷰 장소를 나가더니 차에 올라타 한참을 출발하지 않네요. 자세히 들어다보니 핸들에 고개를 묻고 있습니다. 어깨가 작게 들썩이는 걸 보니 울고있는 듯 합니다.
또 다른 약속이 있다던 김여주씨도 길거리에 멈춰서 눈물을 훔치고 있네요. 입술을 꽉 깨물은게, 피가 날 것도 같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눈이 내리는데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서럽게 만든걸까요.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그런데, 이들은 왜 서로를 지독히도 그리워하면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고, 또 다시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나의 천국이자 증오 민윤기 프롤로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천국이자 증오 민윤기 01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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