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이 제대를 했다.
2년 전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던 여름, 어색한 짧은 머리를 하고 훈련소에 들어가던 모습이
아직 아른거리는데 벌써 제대를 한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변백현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예전부터 막역한 사이라
나와 변백현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만나곤 했었는데,
한 살 차이가 나는 변백현은 외동딸인 내게 기꺼이 오빠가 되어주었고,
나는 변백현의 여동생이 되었다.
사실 말만 남매같은 사이지 그냥 친구라고 해도 어색할 것이 없을 정도로 우린 친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제 2의 신혼여행을 떠난 나의 부모님과 그의 부모님 덕에 제대를 하는 변백현을 혼자 데리러 왔다.
"000!"
나를 보자마자 뭐가 그리 웃긴지 손을 방방 흔들며 웃어댔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손을 흔들자 달려와 나를 세게 껴안고는 장난치듯 등을 두드렸다.
"나 제대했다!"
"알고 데리러 왔잖아. 머리 긴 거 봐. 군인 맞아?"
"원래 제대할 때 되면 다 이런거야."
"너 부모님이랑 우리 부모님 제 2의 신혼여행 떠나셨어."
"아 진짜 너무한다. 하나 뿐인 아들 제대날인데!"
"휴가를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 나같아도 무감각하겠네요. 배 안 고파? 이것 좀 놓지. 숨막혀."
"완전, 니가 쏘는거지? 오빠 거지다."
인심썼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자신의 품에서 나를 놓아준 변백현은
늘 그래왔던 것 처럼 나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어댔고, 내가 반응이 없자 이제는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나의 심기를 건들었다.
키가 더 작아진 것 같다느니, 접은 무릎을 피면 키가 몇 센치냐느니
본인이 할 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를 놀리는게 그렇게 좋단다.
이젠 익숙해진 놀림에 아무 대구도 하지 않자 흥미가 떨어졌는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다가 아! 하며 말의 화제를 돌렸다.
"너 남친은 어쩌고 주말에 여길 왔냐?"
"선배가 오늘 데이트 다른 날로 바꿔서 온거야. 안 그랬으면 안 왔지."
"야, 넌 오빠가 어? 제대를 하는데 어? 남친이랑 데이트가 중요해?!"
입술까지 꽉 깨물고 저 혼자 씩씩대는 모습이 웃겨 인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젓으며 어깨를 으쓱하니
'어우 이걸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하면서 내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해댔다.
시덥잖은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내 차가 주차된 곳에 도착했고, 차키를 건내주자 자연스레 변백현이 받아들고 운전대를 잡은 체
자신이 좋아하는 단골 집으로 향했다. 음식점에 거의 다 도착해서 골목으로 들어갈 때 쯤 변백현이 갑자기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
"너 남친이랑 몇 년 됐지?"
"3년. 왜이렇게 우리 연애에 관심이 많으세요? 너 나 좋아하는거 티내지 말랬잖아. 정말."
"돌았냐. 넌 한 트럭으로 줘도 절대 안 받아."
씨- 하며 팔을 뻗어 팔뚝을 세게 꼬집자 아프다고 내 손을 엄청 세게 때려가며 큰 소리를 엄살을 피웠다.
"아 기집애가 힘만 쎄서 진짜. 무튼 야 3년이나 됐는데 지겹지도 않냐? 헤어져 헤어져"
"뭔 거지같은 소리야. 우리 한창 불타오르거든?"
"아이고, 아직 애기같은게 무슨. 니 남친이 불쌍해서 그러지 남자 같은 놈이랑 연애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어."
말을 해도 꼭 엄청 못됐게 한다 정말.
갈비뼈를 뽑아 실로폰으로 만들어 뚱땅뚱땅 쳐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참고 음식점에 들어와 수저를 놓는데
가방 속에서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냐고 묻는 백현에게
'그 불쌍한 남친이다. 조용히 해!'
하고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세요?"
-어 00아. 오빠는 만났어?
변백현이 나의 연애 초 부터 누누히 불쌍하다고 해 온 나의 3년 된 남자친구인 찬열 선배였다.
내가 선배라고 부르는 것을 선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대학시절 선후배 사이로 만나 연애를 시작해서 선배라는 호칭이 너무도 익숙했다.
여하튼, 내가 엄청난 길치라 길을 잃을까 걱정하는 선배에게 백현을 만나면 전화를 주겠다고 말했는데
내가 전화가 없으니 혹시 길이라도 잃었을까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아, 응 만났어. 미안해 전화하는 걸 깜빡했어."
-걱정했잖아. 밥은?
"지금 먹으려구. 선배는? 또 점심 안 먹고 일하는 거 아니지?"
-나는 먹었어요. 오빠랑 이야기 많이 하고, 저녁에 볼 수 있어?
"나야 괜찮지. 선배는, 괜찮아? 오늘은 야근 안 해?"
-오늘은 일찍 들어가려고. 아...보고싶다.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고백에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빨개진 체 멍하게 핸드폰만 잡고 있었다.
이젠 적응이 될 법도 한데, 가끔씩 이런 갑작스런 고백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또 연애 초로 돌아간 듯이 설레였다.
말 없이 작게 소리를 내고 웃자 며칠 밤을 새 꽉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던 선배도 옅게 웃는 듯 했다.
"나도. 퇴근 시간 맞춰 내가 집으로 갈게. 좀 이따 봐."
-응. 전화해
웃음이 담긴 선배의 목소리에 입이 귀에 걸릴 듯이 웃으며 전화를 끊자
눈 앞에 백현이 똥 씹은 표정을 하곤 굉장히 불량스럽게 밥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아씨. 놀래라! 뭘 그렇게 봐. 연애하는 사람 처음 보세요?"
"너 같이 이중적이고 오글거리는 애는 처음 본다. 어우 토나와."
"아이고- 너 연애할 때 봅시다. 아 맞다. 너 짝사랑하는 애 있다며! 어떻게 돼가고 있어? 잘 돼가고 있어?"
"...야 군인이 무슨. 밥이나 먹어."
"너 설마...부끄럼 타는 거야 지금? 징그럽게?! 대박. 그 여자 누구야 진짜. 니가 이러는 거 처음본다 처음 봐.
어구 우리 백현이 그렇게 좋아요?"
"이게 오빠한테 맨날 말 까냐. 돼지 밥이나 먹어라."
답지 않게 귀까지 빨개져선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너무 생소해 깔깔대면서 계속 놀리니
숟가락으로 머리를 칠 기세로 쳐다보길래 혼자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밥을 먹는 척을 했다.
나름 반반한 얼굴로 학창시절부터 군대 휴가 나와서까지 명성을 떨치던 변백현이었는데
한 번도 대쉬하는 여자들의 고백을 받아주는 것을 보지도 못했고 그러했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
그러니 변백현이 누구에게 고백을 했다는 소리는 더더욱 들릴 리가 없었다.
그가 하는 고백이라곤 나에게 부탁한 것을 내가 대가 없이 들어줬을 때나 지가 필요한 걸 사줬을 때 농담으로 하는
'000, 너 오빠랑 결혼할래!!?'
가 다였다.
그리고 딱히 여자들한테 관심도 없어 보였던게
맨날 축구나 하러 다녔지 친구들이 소개해주는 여자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고
무슨 무슨 데이마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고백은 다 차버리고
가득히 쌓이는 선물은 지가 돼지라고 놀려대는 내게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 때문에 나는 다수의 여학생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지만
단 거 덕후라 눈 앞에 보이는 초콜릿과 사탕이 더 소중해
딱히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 날만 백현을 굉장히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
안녕하세요 르앙느 입니다.
빙의글도 처음 써보지만 인티에 쓰는 것도 처음이라 두근두근 하네요
사실 이런 말 쓰는 것도 부끄러워서 그냥 두서없이 글만 써놓으려고 했는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써봅니다 (수줍)
부족하고 부끄러운 글이지만
많은 분들께서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이 많이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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