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나 밥 사줘여" 빚쟁이 누나 휴대전화가 계속 울린다. 누나 지금 촬영 중인데 "누나 지금 촬영 중이에요. 이따 다시 연락하세요" 기대했던 목소리가 아니였는지 내 목소리가 들리니까 애교넘치던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바뀐다 "아 그럼 왜 받으셨어요. 진짜" 뚝 하고 끊기는 전화 누구인지는 몰라도 되게 되바라졌네. 2. 상혁이랑 밥을 먹게 되었다. 그 때 지나가는 말로 밥 사준다고 했는데 먼저 전화를 해 왔다. 기특한 것 원식이가 찡찡대면서 되바라진 전화가 왔다고 하길래 통화목록을 확인해보니 상혁이었다. 대학생들이 많이 가는 무난한 레스토랑에 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나란히 마주 앉아있는데 상혁이가 전에는 안보이던 수줍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에 볼 때는 항상 단정하고 똑부러진 모습이었는데 상혁이가 자꾸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말싹하니까 귀여워 죽겠다. 내 동생 왜 안 한상혁...? "저기 누나...." 큰 결심했는지 상혁이가 내 눈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헐! 설마 상혁이도 내 매력에 빠졌나? 아... 난 재환이면 충분한데... 이러면 안되는데... "상혁아 누나는..." "누나! 저 홍빈이형 싸인 좀 받아다 주시면 안되요??!!" 하마터면 할머니 할아버지 평생 못 볼 뻔 했다. 3. 재환아 이 전단지 어디서 났어? 어... 그거 그냥 길거리에서 막 나눠주길래 받아왔는데... 아주 사람들이 법 의식이 없어요!! 법 의식이!! 이거 어?? 연예인 사진 이렇게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안배웠나!!! 이거 아주 고소미를 먹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빚쟁아ㅠㅠㅠㅠㅠㅠㄴㅠㅠㅠㅠㅠㅠㅠ진정해ㅠㅠㅠㅠㅠㅠㄴㅠㅠㅠㅠㅠㅠㅠㅠ 4. "누나누나!!" 홍빈이와 찍던 드라마가 성공리에 종영되고 차기작을 검토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원식이가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온다. "누가! 이것 좀 봐요! 제가 완전 쩌는 시나리오 받아가지고 왔어요. 헷" 원식이가 나에게 두툼한 시놉시스를 건넨다. 근데 제목이....? "이거 인터넷에서 히트쳐가지고 책으로 출판했는데 그것도 베스트셀러잖아요~ 그 뭐지 이재환 작가님인가? 아무튼 되게 유명하신 분이 표지랑 삽화도 다 하고 그래서 화제성 완전 쩔던데!! 아 그리고 그 화가분 사진 봤는데 되게 잘생겼더라구요 코도 되게 크고..." 아... 이 낯익은 상황은 뭐지... 5. 아... 저...저기 별빛 선배님... 드라마가 종영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한테 홍침도 날리고 나름 친하게 잘지냈던 홍빈이가 오랜만에 벌벌미를 장착하고 벌벌 떠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저기.... 음..? 이 낯익은 상황은 뭐지 설마 홍빈이도 날 좋아하나~?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재환이면 충분한데.. "홍빈아.. 나는..." "그 때 제 사인 받아간 남자 애 번호 좀 알려주세요!!!!" 하마터면 홍빈이랑 연 끊을 뻔 했어 6. 재환아 어어..... 재환아 재환이 두 눈이 TV화면에 콕 박혀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와 이제 내 말도 무시한다 이거지? 야!!!! 이재환!!!!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머뭇거리면서 화면에서 눈을 떼 나를 바라보는 이재환 아ㅠㄴㅠ 저 다음 장면에서 너 되게 예쁘게 나온단 말이야ㅠㄴㅠ(찡찡) 다시 돌려봐야겠다ㅠㄴㅠ 리모컨에서 되감기를 찾아 다시 돌려보는 재환이다. 7. 아 택운씨 제가 지금 고향에서 형이 와가지고 만나러 와서 지금 못 가는데ㅠㅠ 혹시 이리로 가져다 주실 수 있으세요?ㅠㅠ 초판본이 도착했으니 회사에 와서 받아가라는 내 말에 작가님을 대신해서 미팅에 참석해줬던 학연씨는 저렇게 대답했다. 여기 카페랬는데.... 그래도 그 동안 어마어마하게 바쁘고 가끔은 아파서 코빼기도 못 본 작가님 대신에 미팅에 와줘서 고생이 많았던 학연씨라 책을 몇 권 챙겨서 회사를 나왔다. 은은하게 커피 향기가 나는 카페 문을 열자 구석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쪽을 지그시 바라보자 신나서 이야기를 하던 학연씨가 내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벌떡 일어나서 나를 부른다. 어어??!! 택운씨닭!!!@,@ 택운씨 진짜 왔네요!!@.@!! 오모오모 너무 고마워요!!! 학연씨는 내 손에 있는 책을 빼가서 앞에 앉아 있던 두 사람에게 촤르륵 펼쳐 보였다. 이것 봐라!! 이거 우리 빚쟁이가 쓴거다!!! 완전 짱이지?!@.@ 지금 누구라고 하셨어요? 빚쟁이라는 이름이 들려 학연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빚쟁이는 재환이가 매일매일 입에 달고 다니던 이름인데... ㅇ슢ㅇ! 아니에요!! 잘못 들으신거에요!! 아아!! 소개가 늦었네!! 여기는 제 동생 성재고 여기는 우리 형 인국이에요@.@ 누가봐도 거짓말하는 티가 나게 손사레까지 쳐가면서 부정을 하던 학연씨는 화제를 돌리려 앞에 앉은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 셋이 너무 닮았어.... 근데 학연씨가 제일 까매... 8. 재환아~ 요리 해주는 건 좋은데~ 토마토는 그만 먹으면 안돼?ㅠ_ㅠ 재환이는 가끔 기분이 좋으면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해주는데 항상 메뉴는 고정이다 파스타. 그것도 토마토 소스를 얹은 어...음.... 안돼ㅠㅠㅠㄴㅠㅠㅠㅠ 나 이거 말고 라면 밖에 못 끓여 크림 소스도 있다고 말해주려고 한건데 언젠가 꼭 같이 장을 보러 가야겠다고 다짐하는 빚쟁이다 9. 똑 또독 똑!!! 같이 눈사람 만들래~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저리가. 재환아 그래...안녕....ㅠㄴㅠ 장난으로 안된다고 하니까 침울해져서 재환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두꺼운 외투를 챙겨입고 얼른 문을 열었더니 어깨가 처진 재환이가 자기 집 문을 열려고 하는게 보인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10. 하루는 재환이네 집에서 잠 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재환이 품 안에 있는게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계속 안겨있었어 그러다가 아침을 제대로 못 챙겨먹는 재환이가 생각이 나서 살짝 나와서 아침밥을 해주려고 주방으로 왔어.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가 불러주셔서 같이 먹던 아침밥이 생각이나서 잠깐 집으로 가서 쌀도 가져오고 반찬도 이것 저것 가져오고 국도 끓이니까 집 안 전체에 고소한 냄새가 나 보글보글 소리도 나고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면서 재환이네 집안 곳곳을 구경하면서 그동안 재환이가 그렸던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같은 방에 들어갔어 큼직큼직한 캔버스가 눕혀져 있기도 하고 세워져있기도 하고 이젤에 그리다 만 그림도 놓여져 있고. 항상 그림을 그리는 재환이만 봤지 완성된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없어서 신기해하면서 캔버스들을 뒤적이면서 봤어. 드로잉노트도 보고 그러다가 남색 표지 가운데에 노란 별 하나가 딱 박힌 노트가 보여서 살짝 열어보는데 굉장히 오래된 노트인가봐 앞장은 조금 갈색으로 변해있었어 첫 장을 넘기는데 내 얼굴이 나왔어. 정확히는 재환이가 그린 내 얼굴이 나왔어. 한 장 한장 넘길수록 내 얼굴들이 점점 더 선명해져. 첫장에 있던 내 얼굴은 데뷔하던 작품에서의 모습인 것 같아. 그림 속의 내가 성장할수록 재환이의 마음도 성장한 것 같아. 페이지 아래에 적혀있는 재환이의 글귀가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거든 나와는 다르게 행복해보인다 행복해보이는 연기도 좋아보인다 나도 행복이라는 걸 그려보고 싶은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이 사람이 행복이다 . . . . 행복이 내 앞으로 온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였어. 마지막 페이지에도 어김없이 너빚쟁의 얼굴이 그려져있었어 어젯밤 모습 그대로. 사랑해♡ㄴ♡ 마지막 문구를 보자마자 뒤에서 누가 안아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마주보면서 환하게 웃어 그리고 입을 맞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