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Complex
04
1
"...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
언짢아하는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민윤기와 그걸 싸그리 무시해버리며 자기 손목에 차인 시계를 확인하는 전정국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
짜증. 불편. 아무생각 없음.
우리 세사람의 제각기 다른 공기로 채워진 정류장에는 싸한 공기가 맴돌았다.
좀 참아. 하루정돈 같이 등교하는 것도 괜찮잖아.
민윤기만 듣게끔 속삭이니 두부같은 흰 얼굴에 주름이 진다. 괜찮긴 누가 괜찮대. 대놓고 큰 소리를 내는 민윤기때문에 황급히 뒤돌아 전정국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게 자기한테 한 말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손으로 자기 손바닥 크기도 안되는 폰을 붙잡고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머리를 못 말리고 나온건지 젖어있는 앞머리를 시작으로 내려가면서 놈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저 땡글땡글 토끼같은 눈이랑 오똑한 코, 뭘 바르기라도 한건지 윤기나는 입술... 헐.
문득 다시 생각나버렸다.
전정국과 장소희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다가 도망치듯 달아나버린 내가.
아- 죽었네.
아쉬워하는 말투로 혼잣말을 하던 전정국이 내 시선을 느낀건지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려 나를 마주본다.
다급하게 다시 정면을 돌아보는 나에게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말이라도 하듯 집요한 시선이 따라왔다.
남녀가 야밤에 둘이 골목길에서 키스를 했다.
남자는 여자를 밀치며 화를 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날 좋아한다?
이게 뭔 로맨스같지도 않은 개같은 삼류 로맨스 스토리야.
전정국 얼굴만 봐도 어젯밤 일이 계속 생각나서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있으려했더니 정신차리고 나니까 버스 안이더라.
휘청거릴 틈조차 없이 빽빽한 등교 버스에서 우리 세 사람은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우리'라는 말도 낯설만큼 지금 숨막혀 죽을 것 같다.
학교 앞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자 우리학교와 남고 애들이 우르르 쏟아지듯 하차했다.
거기에 포함된 민윤기는 네이비색 책가방을 달랑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쌩-하니 가버렸다.
"아오, 하여튼 성격하고는..."
"둘이 맨날 같이 등교해?"
"응? 아, 어."
주머니에 두 손을 꽂고 당차게 걸어가는 민윤기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더니 어느새 내 옆으로 바짝 붙은 전정국이 물었다.
입술을 삐죽이며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자며 턱으로 앞을 가르킨다.
"저기...조금만... 떨어져서 걸어줄래..?"
등굣길이다. 시간은 7시 55분. 지각종 치기 5분전.
그 말인 즉슨, 애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장소와 시간이라는거다.
머뭇거리며 겨우 말했더니 푸흐흐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싫은데?' 하고 개구지게 웃는 녀석.
그래... 맘대로 해라. 난 마치 네 옆을 지나치는 행인1 역할마냥 가마니처럼 있을테니.
"나 너랑 같은 동 사는 거 몰랐지?"
"아..너 우리동네 살아?"
"그럼 내가 너랑 같이 등교하자고 아침댓바람부터 옆동네까지 찾아간 거겠어?"
아무리 네가 좋아도 그렇게까진 못해-
능청스러운 말투에 괜히 민망해져 목을 긁적거렸다.
같은 동네 사는구나... 난 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지?
뭐 우리동네 사는 애가 전정국밖에 없는건 아니긴 하다만.
"난 매일 아침마다 너 봤는데."
"날?"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전정국이 '넌 나 한번도 본 적 없지?' 하고 다 알고있다는 듯 묻는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쓱해하는 얼굴로.
"맨날 그러고 다니니까 볼 수가 있나."
"..."
"또또. 고개 좀 들고 다녀라. 다친다."
습관적으로 땅바닥만 보고 걷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더니 그대로 천천히 들어올린다.
당장 눈앞에 우리학교 교문을 지키고 서있는 선도부 무리가 보였고 다급히 내 두 볼을 붙잡고 있는 전정국의 손을 내리려했다.
내 의중을 알아차린건지 알아서 손을 놓더니만 이번엔 꽤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장난아니고 진짜야. 너 걷는거 볼 때마다 다칠까봐 조마조마해.
"알겠어... 나, 나 먼저 들어가볼게. 잘가."
보는 눈들이 많은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에 손 흔들 여유도 없었다.
들어가. 귀에 속삭이듯 말하는 전정국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와, 이거 민윤기가 봤으면 표정 볼 만 했겠다.
아 그러고보니 까먹고 있었다. 민윤기.
2
"밥 안 먹었냐?"
1000원짜리 초코바를 매점 앞에 배치된 피크닉테이블에 올려놓고선 박지민과 마주보고 앉았다.
다들 축군가 뭔가 보러간다고 남고로 떠난 마당에 나 혼자 남아있자니 나보다 더 외롭게 홀로 컵라면을 먹고있더라.
"오늘 존나 맛없음. 추어탕 극혐."
네가 초딩이냐? 편식이나 하고 앉았게.
한심하다는 내 눈길에 후루룩하고 면을 흡입하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 맛없는걸 어떡하라고오!
초코바 포장지를 뜯어 한 입 베어물었더니 달콤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근데 진짜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축구경기가 그렇게 재밌단 말이야?
식객 영화를 방불케하는 우리학교 여학생들이 점심시간에 매점을 스킵할 정도라니.
"넌 정국이 보러 안 가?"
"? 걜 왜 보러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 난데 오히려 박지민이 갸우뚱한다.
너 혹시 몰라? 정국이 축구분거?
꽤 심각한 박지민의 얼굴에 죄라도 지은 것 마냥 눈치를 봐야했다.
응...축구부였구나.
"와- 관심 좀 가져라. 아무리 걔 혼자 하는 일방적 사랑이라지만.
전정국 존나 서운하겠다."
국물을 한 모금 드링킹하더니 매점 앞 시계탑의 시계를 확인하는 박지민.
아직 조금 남았다며 가 보라고 내 팔목을 붙잡고 흔드는 박지민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가서 뭐해, 운동장 뛰어다니느라 바쁠텐데.
"야. 넌 진짜 몰라도 너무 몰라."
"뭘 또."
"넌 너에 대한 전정국의 마음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 같은데,"
그 새끼는 네가 오면 골키퍼가 없는 골대 앞에서 공을 몰다가도 너 쳐다본다고 그 골드찬스를 놓칠 놈이야.
나름 멋지게 표현했다고 생각한건지 말을 마치고 내심 뿌듯해하는 박지민.
뭔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할것이지.
공부도 못하는놈이 말은 지독하게도 꼬아서 말하네.
"오죽했으면 걔가 너때문에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겠냐. 나랑 사이도 서먹했었는데."
"...진짜? 왜?"
아니 뭐 막 싸운건 아닌데...아무튼.
나무젓가락으로 라면국물을 휘휘 젓던 박지민이 입술을 옴짝달싹였다.
저건 무언가 말을 시작하기 전 약간 망설이는 액션이다.
"민윤기 그 일 있고나서, 나도 축구부 애들이랑 자연스럽게 멀어지더라. 내가 민윤기랑 다니니까."
...민윤기?
예상치못한 인물의 등장에 아마 내 동공이 두배는 확장됐을거다.
아니, 걔 이름이 왜 나와. 지금 박지민이랑 전정국 얘기하던거 아니였어?
"그 일...이라니?"
"왜- 민윤기 1학년 때 어떤놈이랑 치고박고 싸웠잖냐. 그 자식이 하필 또 축구부였던거지."
뭐, 엄밀히 말하면 싸웠다기보단 한 놈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거지만.
여전히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누가? 민윤기가?' 하고 물었더니 '당연히 축구부 그놈이지. 민윤기 성격에 맞고만 앉았겠냐.' 하는 박지민.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낄낄거리는 박지민의 머리통을 한 대 치고 싶었다. 빨리 더 상세하게 말해보라며.
심각한 내 표정을 그제서야 읽은건지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뭐야... 너, 민윤기가 말 안 해줬어?
충격받은 얼굴로 그렇다고 했더니 제 입을 스스로 틀어막는 박지민.
오늘도 깨닫는다. 박지민 입 존나 싸. 절대 비밀 같은 거 얘한테 말 안해야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싸웠다고? 아니아니, 때렸다고? 민윤기가 사람을?
내가 아는 민윤기는 성격은 좀 지랄맞긴 해도 함부로 사람 때리고 그럴 애는 아닌데.
사건의 원인을 묻자 그건 자기도 모른단다. 민윤기가 죽어도 입을 안 열었다고 뚱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 때 생각났다. 오늘 아침 내 옆에 서있는 전정국을 보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던 민윤기.
박지민한테 사실 오늘 셋이서 등교했다고 털어놓으니 적잖게 놀란듯하다.
"이야- 전정국이 너 진짜 좋아하나보다. 걔네 둘도 그렇게 사이 좋은건 아닐텐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니."
"지금 그게 중요하냐?"
"뭐, 전정국이랑 민윤기는 딱히 접점이랄게 없긴 하지. 근데 소문에 의하면 그 때 이후로 축구부 애들은 다 민윤기 싫어해서, 전정국도 딱히 좋은 감정이진 않을걸?"
시발 어쩐지 그래... 별로 안 친해서 그렇다기엔 분위기가 너무 딱딱했어.
아무것도 모르고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내가 얼마나 병신같아 보였을까, 아오.
다 먹은 초코바 포장지를 구기며 쪽팔림을 표출했다.
자기가 이 말 한거 민윤기한텐 무조건 비밀이라며 자기 검지를 입술에 대는 박지민.
지는 전정국한테 내 개인정보 팔아놓고... 주제넘치게 바라는것도 많다, 지민아.
다 먹은 용기를 치우러 간 박지민때문에 홀로 매점 앞에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때 두 어깨위로 손길이 느껴지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불쑥 나타나는 누군가의 얼굴.
전정국은 진짜 매번 봐도 적응 안 된다. 저 잘생긴 얼굴.
"여기서 뭐해, 혼자."
"아..그... 박지민 기다려."
미친, 기다리긴 뭘 기다려. 걍 존나 할 짓 없어서 이러고 있던건데 말이 그렇게 나와버렸다.
전정국은 '박지민? 걘 왜.' 하며 심기불편한 속마음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어쩌다보니 여기서 만났다고 대충 둘러댔다.
경기가 끝났는지 매점엔 아까보다는 사람이 좀 몰린 듯 했다.
그리고 그 틈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박지민이 보였다.
그래, 너라도 있는게 낫겠지. 네 존재가 이렇게 반가울때가 있다니.
어, 전정국 왔네? 이겼냐?
초롱초롱한 눈을 한 박지민의 말에 대한 대답대신 전정국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매점 테이블 위로 음료수 캔 하나를 올려놓았다.
마셔.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이겨서 받은거야. 너 마셔."
"응? 아니야... 경기는 네가 했는데 내가 왜,"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받아줘.
음료수를 내 손에 쥐어주면서 맞닿은 전정국의 손은 따뜻했다.
'여태 껌 하나 나한테 쥐어준 적 없으면서...'하고 툴툴거리는 박지민이 전정국을 아니꼽게 쳐다봤다.
"여기."
"응?"
자기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길래 영문을 모른 채 눈만 깜빡거리고 있자 전정국은 자신의 엄지로 내 입술을 한 번 쓸었다.
초코가루가 묻었는지 그걸 닦아내주려고 했나보다.
우웩.
토하는 시늉을 하며 테이블을 두 손으로 붙잡고 허리를 숙이는 박지민.
그럴만도 하다... 나도 민윤기가 자기 여자친구한테 이러는거 상상하면, 아 소름끼쳐.
"아 시발 전정국 존나 토나와."
박지민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며 자기 학교로 가는 통로로 쏙 들어가버렸다.
혼잣말이라고 한 말이겠지만 난 똑똑히 들었다. '이제야 가네.' 하는 전정국의 목소리를.
"오늘은 집에 누구랑 가?"
"아, 오늘은 윤기랑 가야할 것 같아."
꽤 단호한 내 한마디에 전정국은 살짝 멈칫하다 '그래, 그럼.' 하고 옅은 미소를 띤다.
물어본다고 곧이곧대로 말해줄 놈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쇠- 하고 있는 것 보단 나을 것 같다.
3
"야."
"왜."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냐?"
드라마에서 바람핀 애인한테나 할 소리를 내가 민윤기한테 하고있으니 역시나, '얘 왜이래' 하는 눈으로 날 보는 민윤기.
우리는 덜컹거리는 버스안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없겠냐? 원래 최측근일수록 숨기는 게 더 많은 법이야- 난 엄마한테도 아직,"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너 1학년 때 누구랑 싸웠어?
열심히 제 할 말을 하다가 이어지는 내 말에 잘만 움직이던 입술을 꾹 다문다.
우리를 둘러싸던 공기의 온도가 순식간에 변했다.
"그건 갑자기 왜 물어."
민윤기는 어떻게 알았냐는 뻔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더 이상 안 묻길 바라는건지 기분나쁜 티를 아주 팍팍 내더라.
너 사람 때리고 그럴 애 아니지 않냐며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물어도 꼼짝도 안 한다.
그러고보니 한 번 있었긴했다. 무슨 영문인지 반성문을 제출해야한다고, 초딩도 아니고 무슨 이 나이에 반성문이냐고 투덜대던 민윤기. 그 때 내가 물어봤을 때도 아무말도 않더니, 이제야 뭔가 표면으로 드러나네.
"뭔 상관이야, 그게 너랑."
"나랑 상관없기는 한데,"
"쓸데없는 생각말고 넌 전정국이나 신경써."
얜 또 왜 느닷없이 전정국 얘기를 꺼내는건지.
모르겠다는 내 표정에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는 민윤기.
너 쟤 계속 저렇게 냅둘거야? 네 뒤만 졸졸 쫓아다니게 할 거야?
"희망고문 하지 말고 끊으려면 빨리 끊어."
"..."
"너 걔 안 좋아하잖아."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문이 열리고 민윤기는 혼자 일어났다.
오늘도 역시, 민윤기는 짜증난다.
내 정곡을 팍팍 찌르는 놈의 말은 항상 따끔거리기만 하다.
4
그렇게 매정하게 혼자 가버린 민윤기를 보내고 쓸쓸하게 집으로 와서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있었다.
전정국이 나한테 전화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닌데. 늘 문자나 카톡을 폭탄으로 투척했지, 전화는 잘 하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줘야하나, 가만히 있어야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곧바로 다시 핸드폰 불빛이 번쩍거렸다.
끊을거면 빨리 끊으라는 민윤기의 충고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내 선택은,
"와, 대박. 받았다."
그 충고를 무시했다.
"너 내 전화 처음 받는거잖아."
"아...그랬었나? 미안."
미안하라고 한 말 아니라며 미안해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상당히 흥분돼있다.
내가 자기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은지 계속 '대박, 대박' 거리는 전정국.
"집이야?"
"응. 방금 도착했어."
저녁에 전화로 듣는 전정국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달달했다.
어쩌다보니 정식 연애도, 썸도 아닌 웃기는 사이가 된 우리 둘이다.
어색함속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번 주말에 뭐해? 약속있어?
이게 본론인듯하다. 약속... 없긴한데.
"나 이번주에 시합있어. 중일고 축구부 애들이랑."
"아아, 축구부."
근데 정국아 너... 고삼 아니니?
목까지 끌어오르는 말을 삼키고 하하 웃으며 꼭 이기라고 응원아닌 응원을 했다.
"너도 올래? 나 보러."
'축구하는 거 보러','나 축구하는 거 보러' 도 아닌 '나 보러.'.
내가 오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길래 차마 싫다는 말은 못 했다.
사실 축구 같은 거 룰도 잘 모르고 스포츠 쪽으로는 아예 문외한이다.
"싫으면 안 와도 되는데 그냥, 너 오면 진짜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거절하냐고.
저 달콤한 목소리와 말투로 저런 말을 하는건 협박이나 다름없잖아.
"알겠어, 갈게. 몇 시에 하는데?"
'진짜? 진짜지?' 하고 여러번을 되묻던 전정국이 장소랑 시간을 알려주며 끝에는 '아싸'하고 기쁨을 표현했다.
거기에 나도 모르게 따라웃게 되더라.
그리고 동시에 스쳐가는 민윤기의 날카로운 한마디와 싸늘한 눈빛.
'희망고문 하지 말고 끊으려면 빨리 끊어. 너 걔 안 좋아하잖아.'
만약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게 되면, 민윤기의 그 충고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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