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하하하"
난데없이 차학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숙소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멤버들이 방 문을 열고 거실에 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차학연?
도전적으로 나갈 말을 눌러 삼키고 차학연을 노려보려니 학연이 전혀 웃지 않았다는 듯 웃음을 멈추고 멤버들을 돌아봤다. 재환이는 내 옆으로 다가와 옷을 추슬러주었다. 넥타이에 묶였던 손을 만지작거리다 학연이를 바라보니 학연이 잠시 숨을 멈추고 말을 뱉었다.
"정택운한테 다 말했어.이제 그만해도 돼."
"아,뭐에요 진짜 학연이 형."
"네에.아 어색하다 진짜"
"그동안 얼마나 미안했는지 알아요??"
멤버들이 굳었던 얼굴을 풀고서 어깨를 으쓱이다가 이내 내게 다가와서 날 일으켜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는건 나와 재환이 뿐인지 멍하니 눈만 끔뻑였다.
"미안해요 형"
"진짜진짜 미안해요. 형 제맘 알죠?"
"형 이번에는 제가 모카 사줄게요."
멤버들이 한마디씩 하고서 내 눈치를 쓱 보더니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무슨 상황인지,이게 현실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하다가 이게 몇달만에 들어보는 건지 모를 멤버들의 다정한 말이었기에 아까도 참아내었던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순 없어도 그 지옥같던 나날이 끝났다는 것만을 깨달았다. 그거면 됐다. 아직 차학연과는 풀 얘기가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저.
"어, 택운이 형 울어요??"
"아 형 울지마요!!"
"아 학연이 형 때문이잖아요!진짜 왜 왕따같은걸 시키라고 해선-"
당황한 동생들이 어색하게 날 토닥였다. 조금은 그 손길에 진정하고서 얼굴을 가리고 차학연을 잡아 방으로 들어왔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말 좀 해봐 차학연!!"
거의 처음으로 학연이에게 소리쳐본 것 같다. 그만큼 너무나 이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꿈인걸까? 정말 꿈인걸까?그렇다면 깨서는 다시 그 지옥같은 나날이 이어지는 걸까?
그렇다면 깨지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내 앞의 차학연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맞아. 꿈이야. 어서 일어나야지 택운아?" 차학연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환히 웃으며 말했다.
뭐? 정말로 꿈이라고? 진짜가 아니야? 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학연이 여전히 그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 기억안나는 구나, 너 왕따당해서 화장실에서 울다가 미끄러졌잖아? 그리고 머리 쿵-정말 기억 안나나봐?"
아,아아 정말,이게 꿈?
학연의 모습이 일그러져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부터가 꿈이었던 걸까. 재환이 그 말을 꺼낼때? 니가 모든 걸 말하던 때?
머리가 아팠다. 아까부터 한 쪽이 계속해서 아팠던 것은 이쪽이 부딪혀서 인걸까? 내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주르륵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어느 새 내 주변은 어두컴컴해져있었다. 학연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형, 이리와요. 여기선 왕따 같은거 안당하고 지낼 수 있어요."
"제가 모카 사준다고 했잖아요"
"꿈에서 깨지말아요. 여기서 지내요"
"운아? 이리와 거기서 뭐해?"
가까운듯, 바로 귀에 들리다가 다시 멀어지고, 어쩌면 바로 뒤에 있는 것만 같은 멤버들의 목소리가 울렸다.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니 어두운 공간에 아늑해 보이는 숙소의 풍경이 문 하나를 두고서 펼쳐져있었다.
학연이,원식이 홍빈이 상혁이까지 거기서서 손짓하고 있었다. 가고싶다. 꿈에서 깨고 싶지않았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저 사이에서 웃고 싶었다. 비틀,몸을 일으켜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래 깨고 싶지 않다. 여기선 왕따..같은건 당하지 않겠지.
"정말 형이 원하는 게 그거에요?"
멤버들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재환의 목소리가 그 반대 쪽에서 들렸다. 이재환? 몸을 돌려 바라보니 재환이 하얀 문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있었다.
"그렇게 현실도피만 할거에요? 형 걱정하는 사람들은 생각도 안나요?"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대체,난 어떻게 해야해?
"일어나요. 맞서야죠. 형이 그랬잖아요. 팬들에게 자랑스러운 가수가 된다면서요. 걱정안끼칠거라면서요"
하지만,난.
"당장 안일어나요?"
재환이 버럭 소리를 질렀고 어느 새 나는 문 바로 앞에 서있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재환이 마저 사라졌다. 더이상 뒤에선 멤버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래,일어나면. 일단 멤버들먼저 한대 때려야겠다. 왜 그랬는지.
문고리를 돌려 밀었다. 문이 조금씩 열리고. 세상이 환해졌다.
-
"아,?"
눈을 떳다. 병원이었다. 혹시했지만 정말 꿈이었다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다시 시작인가? 괜찮아 한대 때려주지 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조금 아리긴 해도 별 이상은 없는 것같다.
드르륵-
"몸엔 이상이 없는데 환자가 일어날 의지를..정택운씨?"
"택운아!!!"
깨자마자 듣는 첫 목소리가 차학연이라니. 우습네.
뭐. 하는 눈으로 차학연을 바라보니 그새 많이 홀쭉해진 학연이가 울듯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왔다. 다가와서도 머뭇 거리며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학연이를 보며 웃음이 피식 터졌다. 가까이 와봐. 손짓으로 가까이 부르니 학연이가 머뭇거리다가 한걸음 거리까지 다가왔다.
"..미안해.이 말밖엔,윽?" 학연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주먹을 날려 배에 꽂았다. 연예인이니까 얼굴은 곤란하지.
"으윽,"
쿠당-
"환자분은 지금 안정을 취해야..!!"
문제는 차학연을 때리면서 나도 같이 넘어간거겠지만. 여튼 차학연의 위로 안전히 안착해서 의사선생님의 말을 경청하다 얼떨떨한 표정인 차학연을 한번 내려다봤다.
"운이라고 불러.멍청아"
학연이 환하게 웃었다. 그래봤자 울듯 찡그린 표정이라 더 이상했지만 뭐, 반성한거 같아서 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