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0/1/a01c20b75e3822c0f94ea215a5867d5b.jpg)
1950년 6월 25일. 그날은 유난히도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날이었던 것 같다.
집 근처 공터에서 매일 형과 놀았던 나였지만 이런 날씨에 기분이 좋아져 더욱 들뜬 마음으로 놀았다.
나만 기분 좋은 게 아니었던 건지 근처에는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그 옆에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어른들이 미소 지으며 자신들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놀다보니 시간도 제법 지나간 것인지 눈부시게 우리를 비춰주던 태양도 지기 시작했다.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도 배가 고파오고 지쳐오는 것 인지 어느새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세계의 갇혀 이야기를 하던 엄마에게 달려가
집에 가자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칭얼거림에 해가 지는 것을 느낀 엄마들은 놀라서 이야기를 멈추고
그렇게 하고도 할 말이 남았던 것인지 다음에 또 애기하자는 말을 남기고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유유히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들이 저 멀리 점이 될 때까지 멍하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의아해하던 형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들 집으로 돌아간 것을 알아채고 나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나의 시선은 이미 한 곳으로 고정된 채였다. 이상함을 느낀 형은 그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것인지 온 세상의 모든 걱정은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 세훈아….저 사람들이 부러워?"
아마도 형은 몇 년 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무리들 사이에 있던 부모님이 광복군을 제압하러 나온 일본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후로 혼자가 되버린 내가 걱정되서 그럴 것 이다. 이제는 형이 있어서 괜찮은데..
“ .아닌데? 나 저 사람들 본 적 없어, 해지는 게 아름답기에 쳐다본 것뿐이지.”
형은 의심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얼른 집으로 가자고 보챘다.
그런 나의 행동에 못 말리겠다는 듯이 살짝 웃음지은 형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 그래! 우리 세훈이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오늘은 형이 너 먹고 싶은 거 다해줄게 말만해!”
“ 에이. 돈도 없으면서 무슨. 무리하지 마 ”
“ 어라? 이게 형을 무시해? 형 능력 있는 거 알아 몰라 ”
“ 아 몰라!! "
"어쭈? 쪼그만 게 얼른 대답 안 해? “
“ 에이씨. 속은 좁아가지고! 그래 형 능력 있다! 됐어?! "
그렇게 한참을 티격태격하며 가다가 시장에 도착했고, 형은 나에게 얼른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며 재촉했다.
한참을 고민한 뒤에야 고깃국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그것만 먹어도 되겠냐며 또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묻는 형에게 괜찮으니 얼른 사서 집에 가자고 했다.
형은 나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고기를 구입한 뒤에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맛있게 해줄 테니 기대하라는 말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형의 정성이 가득 담긴 고깃국을 먹고 나서 노곤해진 몸 탓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했으나 형의 얼른 씻으라는 잔소리와 함께 등을 한 대 맞은 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다 씻어갈 즈음 등 좀 밀어달라며 들어온 형에게 왜 다 씻으니까 오냐며 중얼거렸지만 나의 불만을 들은 형에게 조용히 하라며 입을 맞고는 열심히 형의 등을 밀어주었다.
다 씻고 방으로 들어와 이불위에 형과 나란히 누웠다. 사실은 형도 피곤했던 것인지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금방 잠에 들었다.
나도 그런 형을 쳐다보다가 무거워진 눈꺼풀을 견디지 못하고 잠에 들고 말았다. 잠에 든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고요했던 새벽소리를 깨고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 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많이 피곤했던 것 인지 형은 곤히 잠들어있었고 괜히 내가 예민했던 것 인가싶어서 다시 누워 잠을 청하려던 찰나에 아까 들렸던 폭발음이 연속으로 울려 퍼졌다.
심각성을 느낀 나머지 얼른 불을 켰고 형도 놀라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창문을 열었고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다수의 집들은 불에 타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놀란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은 저 멀리 이곳으로 돌진해오는 수많은 군차들이었다.
내 옆에서 같이 바깥상황을 살펴보던 형은 옷 몇 벌과 먹을 것을 보자기에 싸더니 얼른 이곳을 벗어나자며 내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밖에 나와 보니 상황은 안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더욱 심각했다.
불길이 거세져 연기로 자욱했고 저 멀리 보이던 군차들은 이미 근처까지 당도한 것 같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침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도망치기 바빴다. 나와 형도 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한참을 뛰었을까 어느새 사람들은 이미 곳곳으로 흩어진 뒤였고, 적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곳이었는데. 한순간에 변해버린 모습에 원망스럽고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이게 무슨 일이냐며 눈물을 흘렸다.
형은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미안하다며 나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다 미안한 것일까. 이렇게 주저앉아 신세한탄 하다가는 곧 적들이 돌진해 올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흘렸던 눈물을 닦고 형은 잘못한 거 없다고 얼른가자고 손을 잡으며 다시 도망쳤다.
그렇게 한참을 도망쳤을까.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고 울창한 나무가 가득한 숲이 보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도망친 탓에 지쳐있던 우리는 허기를 채우고 휴식도 취할 겸 그 숲으로 들어가 숨어있을 만한 곳을 찾아 끼니를 때웠다.
그러고는 잠이 몰려와 서로의 어깨에 의지한 채로 잠에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서 아침이 찾아왔다. 차디찬 공기와 불편함 잠자리 때문인지 찌뿌듯한 몸에 인상을 쓰며 기지개를 펴고 곤히 자고 있던 형을 깨웠다.
형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고 자는 새에 흘렸던 침을 닦고 일어났다.
그런 형에게 더럽게 침 흘리고 자냐며 핀잔을 줬고 형은 형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다면서 나에게 꿀밤을 먹였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면서 분위기는 누그러워져 평소의 형과 나로 돌아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간밤에 비가 내렸던 것인지 물기를 가득 머금은 나무들은 우리의 상황을 대신해 주는 것처럼 뚝뚝 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질척해진 땅에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이곳도 안전하지 않아 얼른 다른 곳으로 가자며 이동하려던 찰나에 어제의 악몽이 떠오르게 하는 폭발음이 가까이 들려왔다.
형과 나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고 적들의 소름끼치는 환호소리와 이곳을 불태울 폭탄과 총들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얼른 이곳을 벗어났어야 하는 건데. 더욱 가까워지는 발소리 때문에 덜덜 떠는 나에게 형은 정신 차리라며 소리치고는 내손을 잡고 숨어있던 곳으로 다시 들어갔다.
우리가 있는 곳까지 진입해온 적들은 사람들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수색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더욱더 숨을 죽였다.
만약 발각된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하나 살아난 다해도 형과 나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놈들이 우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앞으로 직진하려하자 긴장이 풀린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고, 고요했던 주위에 나의 소리는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소리가 되었다.
“ 어디서 인기척이 들리는데요?”
“ 뭐? 절대 살려두어선 안 돼. 명령이다! 이곳을 다시 샅샅이 뒤져!”
다 내 탓이다. 그들이 이곳을 완전히 떠나기 전까지는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대장의 말로 보이는 그의 말 한마디에 그를 따라다니던 놈들은 더욱 신중하게 한곳도 빠트리지 않고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의 우리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제발 이곳에 오지마라. 제발. 하늘은 우리가 아닌 그들을 도울 작정인지 눈치 빠른 놈에게 우리의 위치를 들키고 말았다.
“ 이 노무 쥐새끼 여기 있었구먼. 형님! 여기 한 놈 찾았습니다! “
한 놈. 우리 앞에 있는 이놈은 나를 지키려 앞에서 나를 막아주던 형만 발견한 모양이었다. 형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나를 더 깊숙이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었다.
“ 형. 지금 뭐하는 거야?”
“ 쉿…….조용히 있어 저놈이 나밖에 발견 못한 거 같으니까 너는 거기 꼭 숨어있어 ”
“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형만 저놈들한테 갈 생각을 해! 죽어도 같이 죽어! 절대 안 숨을 거야! 형이랑 같이 갈 거라고!”
“ 이 바보야! 지금 그런 생각할 때야? 그리고 누가 죽으러간다고 했어? 절대 안 죽어. 형 강한 거 알잖아. 응? 거기 꼭 숨어있어. 그리고 형이랑 저놈들이 이곳을 떠나면 넌 얼른 도망쳐. 그리고 집으로 뛰어가…….놈들은 그곳을 떠났으니까 안전할거야, 형도 곧 집으로 갈게, 집에 가서 형이랑 네가 좋아하는 고깃국먹자. 알았지?”
그렇게 형은 놈들에게 끌려갔고 나는 그런 형을 보며 눈물이 앞을 가려 형과 놈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숨죽여 울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니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나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원망스럽고 우리를 두고 먼저 떠나버린 부모님과 놈들에게 끌려간 형.
이제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외롭고 적막했다. 멍하니 한참을 생각하다 끌려가기 전 집으로 돌아가라는 형의 말이 생각나 정신을 차렸다.
나를 지키고 대신 모든 걸 감수한 형인데 그런 형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지금 이러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물밑 듯이 몰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한바탕 전쟁이 끝난 곳답게 곳곳에 널린 사람들의 시체들과 그 옆에서 배고프고 이 상황이 두려운 건지 떠나가라 경기를 일으키며 우는 아이들. 집들은 무너지거나 불에 탄지 오래고 맡기 싫은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있었다.
점차 집으로 가까워지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얼른 이 소름끼치는 거리를 벗어나고자 뛰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확인하는 순간 토기가 몰려왔다.
항상 우리를 아들처럼 보살펴주시던 앞집 아줌마였다.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고 잠에든 모습은 누가 봐도 눈시울을 간질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슬퍼하고 싶지 않아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서둘러 움직였다. 한참을 걸었을까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리가 서둘러 나와 어질러진 방안이 그대로였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형만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더욱더 형이 보고 싶었다.
형이 언제 올지 모르니 어지러워졌던 방을 치우고 집으로 꼭 돌아올 테니 같이 먹자던 고깃국도 끓였다. 바쁘게 움직일 때는 아무생각도 안 들었는데 할 일을 끝내니 밀려오는 형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울고도 흘릴 눈물이 남았나 보다. 형이 너무 보고 싶었다.
어느새 어두컴컴해진 밤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잠을 청하려 누웠다. 형은 언제 올까. 살아 는 있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며 뒤척이다 뒤늦게 잠에 들었다.
잠시 후 아침을 알리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없이 처음 맞는 아침이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어제 끓여놓은 고깃국을 데우고 형의 밥과 나의 밥을 펐다.
밥마저 혼자 먹으면 이 외로움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말할 사람이 없어 형과 헤어진 이후로 입에서 단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주인 없는 그릇과 수저를 보며 고깃국 한 숱을 뜨다가 그만 밀려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보니 어느새 해는 지고 있었고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이 힘이 없어져 간단히 상을 치우고 누우려던 찰나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소리에 예민해진 탓에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문이 열렸고 문밖에 있던 사람과 마주한 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울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별을 닮은, 세상의 단 하나의 빛처럼 밝게 빛나는 인영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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