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그리고, 타인
Ep 00 :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들었어
* 이름(성)의 특수성 때문에 치환 기능은 사용하지 않을게요*
![[방탄소년단/전정국] 너와 나 그리고, 타인 A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8/01/05/21/422a43813d514041071538de43a882fe.jpg)
언제였는지 날짜도 생생히 기억난다. 얇은 옷을 입기에는 아직 조금 춥지만 그렇다고 두꺼운 옷을 입기도 애매한 봄.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말이다. 나는 너를 마야 유치원에서 처음 보았고, 그런 너와 나는 정말로 친한 친구였다. 아, 정정하겠다. 너는 내게 정말 소중한 친구였다. 없어서는 안될, 그 어린 나이에 너는 깊숙한 존재였다. 나는 원래 거리가 있는 유치원을 다녔었다. 차량운행을 해 엄마도 불편하고 나도 불편했었는데,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집 앞에 유치원이 생겼다. 나는 일곱 살에 새 유치원을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 생긴 유치원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새 유치원일법 한데, 왜 나는 내 자신만 생각했었는지. 나는 혼자였다. 그런 내게 먼저 말을 건네주고, 꽃을 주고, 소풍 때는 같이 다녀야 할 짝을 정해야하는데, 너는 내게 먼저 다가와주었다. 내게 이렇게 잘해주었던 너를 미워할 수 없었다. 좋아했다. 어린 아이가 한 사랑치고는, 꽤 깊었다. 그런 너는, 기억을 잃어버렸고, 지금 내 옆에 없다.
" 어어, 학식 받으면 바로 나 보일거야. 거기로 와. "
김태형은 오늘따라 학식관에 사람이 많다며 먼저 자리를 잡아놓겠다고 내게 전화를 했다. 학식을 받으면 바로 보일 거라는 김태형 말에 학식관을 들어서자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나도 따라 손을 흔들지 않으면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인지 손을 계속 흔들어댔다. 사람들 눈에 띄기 싫어 어쩔 수 없이 아주 작게 손을 흔들었다. 인사하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인지 김태형은 또 헤실댔다. 학식을 받고 김태형이 있는 자리로 가 앉으려던 순간, 누군가와 부딪혔다. 세게는 아니고 그냥 아주 조금. 국물이 출렁거릴 정도로만 말이다. 얼핏 보니 남자의 코트에도 묻은 것 같지 않아 괜찮다고 말하고 지나가려고 고개를 든 순간, 식판을 떨어뜨렸다.
" …… "
" 괜찮으세요? "
챙- 하고 식판이 떨어지는 소리는 학식관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걸 누가 다 치우냐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김태형은 학식을 받는 나를 보고있었던 것인지 식판을 떨어뜨린게 나라는 것을 바로 알고 내게 달려왔다. 김태형은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 대신, 묵묵히 내가 떨어뜨린 식판을 치웠다. 그 남자는 김태형과 나를 보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고, 김태형이 괜찮다고 답하자, 자리를 떴다. 나는 얼음처럼 언 것 마냥 그자리에 그대로 서있을 수 밖에 없었고, 김태형은 식판을 다 치운 것인지 나의 손을 잡고 학식관을 나왔다.
전정국이었다.
" 안 물어봐? "
" 뭘? "
" 왜 식판 떨어뜨렸냐고. "
" 물어보면. "
" 말해줄건가. "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엄마들이 친해 자연스럽게 아기때 부터 친한 그런 여사친과 남사친을 흔히 볼 수 있다. 김태형과 내가 그런 사이냐고 묻는다면 난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절대 첫만남이 좋은 것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나쁜 편이다. 김태형과 나는 고등학교 반배치고사때 처음 보았다.─여기서 알 수 있듯, 김태형과 나는 남녀공학을 나왔다─ 김태형과 내가 같은 '김'씨라서 같은 교실을 쓴 것 부터가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시험을 다 보고, 감독 선생님께서 교과서를 가져와야된다며 상당히 무거울 것이니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 도서실을 갔다 오라고 하셨다. 김태형과 나는 짝이 되었고─이는 이름 순이 아닌 무작위였다─ 아무 말없이 어색하게 도서실에 도착해 교과서를 받아들었다. 가는 도중에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내가 발목을 접질러서 나와 교과서를 같이 잡고있는 김태형이 계단을 굴렀다. 보통 이 같으면 괜찮아? 난 괜찮아 걱정하지마 라는 반응이 나오거나, 소리를 지르며 엄살을 부려야하는데, 김태형은 '하, 씨발.' 이라는 상스러운 욕을 뱉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들어보니까 그 날 김태형은 몸살에 걸려 말이 예쁘게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학식관에서 있던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정국은 내게 분명 '존댓말'을 썼다. 그리고,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말이 진실이었나보다.
나에게 일곱이라는 숫자는 행복한 숫자이다. 그렇게 전정국과 함께한 유치원생 일 년이 지나가고, 전정국과 같은 학교를 배정받았다. 아마 집이 멀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일것이다. 학교 배정이 나오고, 이왕이면 하느님께 같은 반에다가 짝꿍이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불행히도, 같은 반은 되지 않았다. 당연히 짝꿍도 되지 못했다. 별 수 있나 싶어 나는 전정국에게 매일, 매 시간 마다 찾아갔다. 처음에는 나를 잘 받아주더니, 나중에는 나를 조금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어렸을 땐 느끼지 못했고,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다. 심지어 나를 모르는 반 친구들도 몇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게, 난 정말 반에 있지 않았다.
일 학년은 그렇게 보내고, 이 학년이라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그때도 빌었다. 아, 이 학년때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너무 과한 욕심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같은 반만 되어달라고 빌었다. 진심이 닿았던 것인지, 전정국과 같은 반이 되었다. 3월 1일 밤에는 설레어서 잠을 설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학년 여름 방학이 선언되던 날, 집에 가자 엄마한테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마야 유치원에서 일곱 살 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을 그룹으로 하여 바다에 놀러가는 것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뻐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전정국에게 전화를 해 너도 갈거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나는 바로 엄마와 수영복을 사러 마트로 갔던 기억이 난다. 바다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설레는 마음에 그 장면들은 잊어버린 것일까. 아무튼 정말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튜브도 없이 바닷가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 전에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물에 빠졌다. 바다로 뛰어든 어느 순간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나는 '살려주세요'만 연신 외쳐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선생님이 아닌 전정국이 내게로 왔다. 그 뒤로, 나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확신한다. 나를 구한 것은 전정국이라는 것을.
나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것을 안 이유는, 내가 눈을 떴을 때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눈을 뜨자마자 전정국을 찾았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어른들이 저들끼리 전정국이 무슨 병원에 갔다고 했는데, 그때 또 쓰러져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틀 뒤 쯤 퇴원을 하고, 학교로 등교했다. 하지만, 전정국은 없었다. 내가 선생님께 여쭤보려고 할 때, 선생님께서는 '정국이는 아파서 아직 병원에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일 주일이 채 안 됐을 때, 선생님께서 갑자기 전정국이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네?'라고 물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너무 시끄럽게 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다.
초등학교는 그냥 그렇게 보냈다. 정말 장난이 아니라, 어영부영 한 것도 없이 보냈다. 무슨 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공부에는 감흥이 없던 지라 학교가 싫었었는데, 그곳에 전정국도 없으니 초등학생에게 이런 말은 조금 웃기지만 사는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고등학교 같은 반에 초등학교를 나와 같이 나온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가 갑자기 내게 '전정국 알아?'라고 물었다. 잠시 묵혀두었던 생각 주머니가 막힘없이 차올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전정국, 기억 상실증 걸렸대. 그 말을 듣고 나는 쓰러졌다.
" 아, 왜이렇게 머리가 어지럽지. "
" 너 약 안 챙겨먹었지. "
" 아. "
" 아는 무슨 아야. 넌 꼭 내가 챙겨줘야 먹더라. "
초등학교 이 학년 때, 바다에 빠진 이후로 물 공포증만 생긴 것이 아니라, 조금 신경쓰이는 일이 있거나 충격적인 것을 들으면, 머리를 망치로 두드린 것처럼 아프면서 쓰러지는 증세를 앓았다. 아마 고등학교 1학년때도 그래서 쓰러진 것일거다. 엄마는 이런 내가 걱정돼 면역력을 보충한다는 이유로 어렸을 때 부터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주었다. 중학생때는 거르는 일이 종종 있곤 했는데, 고등학생 때 부터는 김태형이 옆에서 챙겨주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꼬박꼬박 잘 챙겨먹었다.─챙겨먹을 수 밖에 없었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약이 지독하게 맛 없거든─
" 너 오후 강의 없지? "
" 응. 오전으로 다 땡겨놔서. 넌? "
" 나 교양. 곧 시작이라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다. "
" 어어, 빨리 가. "
학식관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김태형과 벤치에 잠깐 앉아있었을까 꽤 시간이 지났나보다. 김태형은 수업이 있다며 내게 먹다 남은 비틀즈를 손을 쥐어주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봄이라 꽤 쌀쌀해 벤치에 계속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있어도 할 수 없지.
" 이제 일어났다. "
" 뭐야,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 "
" 한 삼십 분 전? "
" ㅅ, 사, 삼십 분? "
다행히 내가 도착했을 때, 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생각했는데, 그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걸 어떻게 기억 못하냐고들 하는데, 정말 기억이 안난다. 한참 수없는 고민을 했을까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더니, 웃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 왜 안 깨웠어. 깨우지는. "
" 자는게 예뻐서. "
" …… "
" 아, 장난이야. 장난.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고. "
내가 과방에서 김태형을 기다린 이유는 한 가지다. 집에 같이 가기 위해서. 김태형과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그것도, 같은 동. 고등학생 때 김태형과 친해지고,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쭉 같이 다닌다. 집에 같이 가지 않으면 하루를 끝맺는게 되게 허전하다고 해야할까. 성인이 되고 술을 마시면서 김태형에게 이 얘기를 했었는데, 김태형은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지며 자기도 그런다며 하이파이를 하자고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었던 기억이 있다.
잠도 깼으니 이제 집에 가자는 김태형에 가방을 챙기려고 주섬주섬했는데, 이미 가방이 매어져 있었다. 과방에 와서 가방을 벗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정신이 없다, 내가. 나는 김태형의 팔 소매를 잡고─내 버릇이다─ 과방을 나왔다. 쭉 걸어가다가 코너를 돌자, 전정국이 보였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김태형의 손을 잡고 안 보이는 곳으로 피하려고 했던 생각을 멈추었다. 내가 왜 숨어야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리고 이내, 그냥 전정국을 피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정국아! "
" 어, 빨리 왔네. "
" 응. 보고싶어서 뛰어왔지. "
" 아무리 보고싶어도 뛰어오지마. 다쳐. "
너는 정말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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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