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리미
"경수씨 여기 소품좀 빨리빨리!"
"여기 조명좀 갖다주세요!"
"도! 배우들 마실 커피 좀 사와!"
밤을 새워 진행되는 촬영때문에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나라는거. 현장에서의 궂은 일들은 거의 대부분 신입들이 하는 편이다. 표면상으로만 보면 내가 신입들 중에서도 거의 병아리 수준으로 신참이라 내가 맡아서 해야할 일 같지만, 누구보다도 억울할 사람은 로 나다. 분명히 해두자면 난 여기서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다가, 신입 스탭들중 한명도 아니다. 처음엔 혼자 편하게 앉아있는게 괜히 미안해서 심부름도 대신 해주고, 했었는데 글쎄. 그게 만만해 보였는지 이젠 아예 이름까지 불러대면서 시켜먹는다. 역시 착하게 살면 바보되는 세상이라더니. 옛 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 경험이나 쌓아보자, 하고 자원한 준면이형 조수는 식스팩의 꿈을 안고 등록한 헬스장에서 이쁜 누나들 보라고 바벨들고 설쳤었던 내 오랜 흑역사보다 훠어얼씬 힘들었다.
그래서 준면이형이 스턴트맨이라도 되냐고? 그럴리가. 김준면은 내 사촌 형이자, 작가다. 말 그대로 모태 소녀 감성을 타고난 형은 어릴때 부터 글쓰는 걸 좋아했다. 수많은 인터넷 소설과 팬픽들을 차례 차례 독파하더니 아예 본인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해 중딩때는 '금손 여신님' 이라고 불리우며 수많은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었다. 물론 다양한 이모티콘들과 오그라드는 대사들의 집합체였지만 형이 소설을 연재하던 사이트는 쥬니어 네이버였으니까 뭐, 말 다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나름 작가의 길을 밟아오던 김준면이 방송 작가가 된것은 희대의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막장 드라마나 쓸것 같더니만 그래도 제법 히트작을 많이 만들었다. 드라마 작가가 남자인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며 아줌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김준면은 브라운관의 센세이션으로 등극했다. 그렇게 꽃미남 작가 대열에 합류하여 다시 금손 여신, 아니 남신이 된 김준면은 시상식에선 다 훌륭하신 배우분들과 스태프들의 희생과 열정이 명작 만들어 낼수있었던 것 같다며 하하호호 순둥하게 얘기하곤 햇지만, 집에서는 자신이 창작계의 미다스라며 여기저기 자랑에 난리도 아니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코웃음을 치던 나는, 방학이 오자마자 바로 형을 찾아갔다. 처음엔 완강히 내 부탁을 거절하던 형은 내가 네이버에서 힘들게 뒤져 모조리 긁어모은 형의 습작들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거절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만 좀 드시지, 이게 몇잔째야."
"경수야, 너는 이 고뇌를 이해할수 없겠지만 니가 이 일을 해보렴.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세 시간째 컴퓨터나 하고 있으면서 무슨 개소리야! 형 때문에 커피값이 얼마나 드는줄 알어?"
"이게 다 시청률 50%를 위한 도경수의 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해. 내가 돈도 안받고 너 거둬줬으면 고마워해야지 그러기는 커녕. 어서 저리 가주지 않겠니? 쯧. 가서 바쁘신 스탭들이나 좀 도와드리렴."
여기저기 휘둘려 힘들어 하는 나를 보고도 아무 말 않고 빈둥대는 형때문에 약이 올랐다. 밖에선 내가 네 형이 아니라며 공사는 확실히 구별하자고 으름장을 놓질 않나. 물론, 귀담아 듣진 않았다. 또, 하루에도 몇번이나 커피 심부름을 시켜먹는 김준면 때문에 용돈이 장난아니게 깨진다. 거기다 입은 비싸서 별다방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 세륜준면, 어서 내 눈 앞에서 사라져 주세요. 저 할배 같은 빙구 웃음. 냉큼 저리 꺼져 주세요.
"형, 세훈이 형."
"왜?"
"촬영 왜 안해요? 준비 다 됐다면서요."
"아직 여배우 안왔어. 세 시간 지각이다 벌써. 지금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이래."
"헐, 패기 대박."
"스폰이 너무 막강해서 건드리지도 못해. 피곤해 죽겠다."
"아참 형, 김종인씨는 안와요?"
"오늘 촬영 없어서 내일 온데. 너 김종인 왜 이렇게 기다려, 촬영 할때마다 물어보네, 좋아해?"
"어휴, 무슨 시꺼먼 남자갖고. 저도 소녀시대 좋아하거든요!"
"그놈이 워낙 별나서 그렇지. 걘 마성이야. 게이들도 김종인 존나 좋아하는거 너 몰라?"
" 진짜요? 어딜 봐서? 완전 마초 타입인데."
"너 크리스알지? 중국 모델. 걔도 저번에 김종인이랑 화보 찍은 이후로 엄청 쫒아다녔데. 물론 김종인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
"헐, 헐, 헐. 크리스 완전 인기 많잖아요. 근데 김종인이랑 크리스면. 누, 누가 깔리는데요? "
"응?"
"그 있잖아요, 게이…"
"넌 쬐끄만게 되게 밝힌다? 당연히 크리스겠지."
"제가 뭘요! 근데 크리스가요…? 크리스도 마초타입인데, 키도 크고. 떡대도 장난아닌데."
"키만 크지, 여성스러움의 결정체라더라. 아는 사진작가님한테 들었음. 쉬는시간마다 대기실에서 뜨개질한데. 흔들의자도 챙겨온다는 소문. 곧 있으면 벽난로까지 뽑아올 기세."
맙소사……순식간에 알게된 너무 많은 충격적인 소식들에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꼭 이렇게 몸을 키우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내 방에 덕지 덕지 붙여놓은 수 많은 크리스의 포스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근데 김종인이 마성이라는 말은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조수로 자원한 이유에 김종인도 없지는 않으니까. 김종인은 요즘 연예계를 독식하다시피 인기를 끌고 있다. 시대가 주목하는 21세기의 떠오르는 신예 배우이자 모델, 거의 모든 여자들의 이상형으로 꼽히고, 많은 여배우들의 함께 작업하고 싶은 남 배우로 자주 거론되곤 했었다. 차가워 보이지만 은근한 매력이 있는 옴므파탈 분위기,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네이티브 수준의 유창한 영어실력,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학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이 되었던 김종인은 몇년 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해 자원 입대를 함으로써 완전한 까방권, 그러니까 까임 방지권을 획득했었다. 한 마디로, 유딩들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사랑받는 김종인은, 캐스팅하기 존-나 힘든 초특급 대세라는 거다. 그 와중에 정말 믿을수없는 아이러니는, 이런 김종인이 준면이 형과 친분이 있다는거다. 대학 동기. 같은 연극 동아리 출신이라나. 나름 친한 사이였는지 형은 김종인을 손쉽게 캐스팅했다. 물론 실세 김종인의 첫 드라마 출연은 일주일동안 연예뉴스를 도배할 정도로 논란을 끌었지만. 아무튼 나는, 이런 김종인이 무척 궁금했다는 거다. 좋아한다는 건 아니고, 난 게이가 아니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예인에 관심이 가는게 당연한거다. 나도 그런 사람들중에 하나인거고. 그러니까, 내가 김종인을 남자로서, 뭐 이상한 마음이 있다는건 절대 절대 아니다!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고 국민 여동생으로 요즘 한창 사랑을 받고있는 여배우가 카메라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걸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못자서 빨갛게 익은 여드름을 꾹 눌렀다. 한가하니까 또 심심해진다. 소품창고나 가볼까.
그때가 언제였더라. 촬영이 시작된지 사흘째였던것 같다. 한마디로 준면이형의 조수로 들어왔기 때문에 인맥도 없었던데다가 조연출인 세훈이 형 말고는 끼워주지도 않는터라 나 혼자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 오히려 일을 하느라 바빴을때가 더 나았을 정도니까. 준면이 형은 나와 같이 있어주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또 그럴 만큼 형은 여유롭지 않았다. 거기에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종인은 초반부엔 아역배우들 분량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잠깐씩만 들렀다 가곤했다. 그것도 내가 김준배 커피 심부름 갔을때만. 그래서 대본리딩 이후론 거의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는 여기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외로움을 달래고자 아무도 없는 소품창고로 들어왔을때, 알게된 사람이 찬열이 형이다. 스턴트맨인 형은 쌩 초면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쯤, 처음 대학에 들어가 아무것도 모를때, 매일같이 벌이는 술자리에 친구들이 떡이졌을때 즈음 술을 전혀 하지 않은 나는 술판이 펼쳐진 한 선배네 집에서 안주로 구운 오징어를 물어뜯으며 티비를 봤었다. 일종의 다큐멘터리였는데 지루하긴 했어도 그 집엔 공중파 밖에 나오지 않는터라 그거라도 꾹 참고 봤었다. 생각보다 흥미로웠던 다큐멘터리는 보이지않는 극한직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스턴트맨. 그때 찬열이 형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데, ' 뒤에서 누군가를 빛내주는 직업도 좋다고 생각해요.' '제 일을 사랑해요.' 따위의 형식적인 인터뷰 속에서도 형은 빛이났다. 배우라고 했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잘생긴 외모와 프로포션이 인상에 남았는지. 나는 지금까지 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형 저 왔어요!"
"경수 안녕, 형 파스 좀 붙여 줘."
"어휴, 오늘도 떨어지는거 했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래."
"다행이네요, 얼마나 걱정된다구요."
"뭐가 걱정이야, 안전장치 다 해서 하나도 안 위험해."
"에, 거짓말."
"진짠데."
"형."
"응?"
"멋있어요."
"…………………"
진짜로, 찬열이 형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언제 다칠지도 모르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계속 이 일을 하는 형이 멋져 보였다. 들어보니까 배우로 캐스팅도 많이 됐다고 하던데, 학력도 빠지지 않고. 극한에 계속 도전하는 모험이 좋다며 스스로 스턴트맨이 된 형은 혼자인 나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 줬다. 이런 형이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너도."
"네?'
"경수 너도."
"무슨 소리에요."
"멋있다고."
"……………"
"얘들아 나 왔어!!!!!!!!!!!!!!!!!!!!!!!!!!!"
왠지 모르게 버터스멜이 나는 찬열의 형의 진중한 말에 어색해져서 머뭇거리고 있을때 백현이가 침묵을 깨고 창고 문을 확 열어 재꼈다. 정말 얘는 종 잡을수가 없다. 처음엔 짐짝만한 옷 가방을 낑낑대며 김종인 뒤만 조용히 따라다니길래 괜히 나같고 안쓰러워서 몇번 말도 걸어보고 그랬었는데 좀 친해지기 시작하니까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저 놈의 주둥아리 때문에 미치겠다. 근데 나보다 더 안쓰러운건 찬열이 형. 내가 하도 잔소리를 해대서 그나마 내 앞에선 좀 덜한 편이지만 워낙 조용하고 싫은 내색도 잘 못하는 형 앞에선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다. 말로도 사람을 고문할수 있다니. 불쌍한 찬열이형.
"변비 하이."
"백현이 왔어?"
"도경수! 너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변비를 변비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짜증나. 근데 경수야, 좋은소식! 김종인 잘하면 오늘 오후에 올수도 있어."
"엉? 진짜?"
"응응! 거의 확실해, 아까 매니저 형한테 전화 받았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커피 사러 나가지 말고."
"대박. 아무데도 안가고 기다려야지. 아싸, 드디어 보는구나."
"그렇게 좋아? 김종인이?"
"아, 좋은건 아닌데요, 그냥 뭐. 잘생겼으니까 눈도 호강하고 그런거죠 뭐."
"잘생긴 사람은 네 주변에도 많잖아."
"맞아, 예를들면 초미남 변백현이라든가."
"그 입 다물라, 넌 절대 아님."
"이응, 너도."
"기억 시옷."
아 존나 행복해. 온갖 오버액션을 하면서 백현이와 하이 파이브를 연달아 계속 쳐댔다. 옆에서 궁금한 표정으로 그렇게 좋냐며 물어오는 찬열이 형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서 아무말이나 둘러대고 고개를 으쓱했다. 나도 내가 왜 김종인을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건지 모르겠다. 좋아하는건 아닌데…그냥 관심이 가요. 궁금해요.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요. 이건 개그도 아니고 뭣도 아닌것이여...하
춤신춤왕 찬열이가 왜 스턴트맨이냐고 물으신다면 할말이 없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선 날쌔고 겁나 운동잘하는 그런 완벽남으로 생각해주세용..
처음엔 샤이니로 구상했던 팬픽이었는데 엑소로 바꾸니까 어색한것 같기도 하네요ㅠㅠ 샤이니였다면 누가 누구였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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