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 조금만 더 달리면 곧 화국(火國)이야."
민은 속삭이듯 들리는 낮은 음성에도 고개를 들지 않고 그저 오라비의 투박한 손만 내려다 보았다.
부사단장으로 지낸 오라비의 손엔 이곳저곳 굳은 살과 생채기가 가득했다.
대답이 없는 민을 조용히 내려다본 남준은 미세하게 떨리는 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호흡을 할 때면 추운 날씨를 못 이겨 하얀 숨 자국이 길게 흩어졌다. 아직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민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죽은 빛깔의 하늘을 말갛게 올려다보았다.
남매의 두 목숨이 넓은 하늘 아래에서 위태로울 때에도, 오직 달만이 무심하게 그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화국 (火國)
" 태자 저하께서 드셨습니다. "
상궁의 목소리가 창호지 너머로 닿기 전에 태형은 성급히 문을 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사치스럽고, 화려한 황제의 방. 그 중심에 고고하게 앉은 누이가 자신을 독기 서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련이지만 지금 태형의 눈엔 욕심에 물든 붉은 생쥐와 같았다.
굳게 닫혀있던 련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곧 날 서 있는 말들을 내뱉었다.
" 태자는 벌써 법도를 잊으신 겁니까? 아랫것들이 무어라 수근거릴지 두려울 정도군요. "
" 누이, 장차 큰 통일 화국을 이끄실 황제께서 겨우 아랫것들의 질 낮은 이야기를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
누이, 라는 호칭에 련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신이 화국 대황제에 오른 지 언 8년. 모두 자신을 보면 허리를 굽히고 예를 갖추기 바빴지만
동생이자 황태자인 태형은 여전히 자신을 누이라 부르며 끝까지 저를 황제로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을 련은 대단한 멸시와 조롱으로 여겼으며 자주 격노하곤 했다.
태형의 예상과 다르지 않게 련은 다시 매섭게 소리쳤다.
" 태자! 더 이상 황제를 능멸하는 언행을 보인다면 설령 태자라도 엄히 벌하겠습니다. "
분노하여 옅게 떠는 련을 보며 태형은 별안간 싱긋 웃으며 말했다.
" 모든 것은 지엄하신 화국의 황제의 뜻대로 하소서. "
오늘이 통일 전쟁의 첫 출정식이라 누이에게 힘이라도 보태고자 왔는데, 괜한 노여움을 산 것 같군요.
못난 동생의 얼굴이라도 봐서 그 화를 푸세요, 누이.
말을 끝낸 태형이 련의 앞에 섰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련의 이마에 그려진 홍점* 을 벅벅 닦아내었다.
잔인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분노와 수치심으로 할 말을 잃은 련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조여왔다.
태형은 손에 묻은 붉은 자국을 아무렇지 않게 옷에 닦아내며 부드럽게 귓가에 속삭였다.
* 홍점 ; 최하층을 제외한 화국의 여성들이 16세 이상이 되면 이마의 중앙에 그리는 점.
그 크기와 화려함으로 신분과 지위를 알 수 있다.
" 누가 그린 홍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홍점을 그려준 아랫것을 벌하십시오.
명색의 화국 여황제의 홍점인데 너무 초라해서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듭니다. "
알겠죠, 누이?
태형은 더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련의 처소를 느긋하게 벗어났다.
걱정이 돼서 들어 온 상궁이 붉어진 련의 이마를 보고 화들짝 놀라 닦을 천을 가져오기 전까지.
련은 뼈마디 하나하나에 감겨오는 모멸감과 분노에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
.
.
" 이곳이 이제부터 우리가 살 집이다. "
민은 남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참새들의 수다를 듣고 있었다.
짝을 지어 높은 곳에 앉아 저잣거리 인간들의 흉을 보고 있는 것이 만나면 타인의 잘못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여느 인간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직도 들려오는 소음 같은 수다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민은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작고 허름했다. 이곳저곳 쥐들이 파먹은 부분과 짙은 얼룩들.
하지만 민은 그 어느 때보다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피로해 보이는 민의 얼굴을 읽은 남준은 먹을 것을 좀 사 온다며 저잣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집은 아주 작았지만 남준과 민의 짐은 집보다 훨씬 적었기에 좁아서 고생하진 않을 것 같았다.
급히 도망쳐 온 자들의 짐이란 건 약간의 돈과 두 벌 정도 되는 옷 그리고 민의 텅 빈 새장.
민은 새장을 품에 안고 남준이 닫고 간 방문을 열었다. 한 해의 끝에 닿고 있으니 화국의 저잣거리는 연말 축제로 인한 붉은 등이 가득해 눈이 아팠다.
그녀는 한 번 심호흡하고 무언가 결심한 듯 붉은빛을 띈 인파 사이로 몸을 구겨 넣었다.
생명과 유흥의 색을 받아 야릇해진 얼굴을 띈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작은 체구를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
.
.
" 민이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오라비인 부사단장 남준도 함께. "
" 민, 그 아이를 잡아와. "
동시에,
또 다른 빛이 잃었던 방향을 찾아 화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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