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날씨가 꽤나 쌀쌀해졌다. 비가 나은지 눈이 나은지 모르겠다. 현관을 나서며 우산을 챙겨들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한층 무거워진것이 보인다. 저만치서 내게 손을 흔드는 인영이 가까워진다. "찬열아!" "형 일찍나왔네요. 근데 우산 안가지고 나왔어요? 왠일이래." 평소 매사에 꼼꼼하던 사람이라 더욱 의아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검정 장우산이 누런 종이박스를 덮고있다. 민석의 것이다. 박스 안에서는 작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겉면에는 꽤나 악필로 '길러주세요' 라고 써있다. "데려가게요? 형 고양이 무서워하지 않아요? 어렸을때 고양이한테 습격당했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날도 많이 추워졌는데 쟤 비맞으면 진짜 죽을것같아서. 아직 새끼인데 불쌍하잖아." 한참을 안절부절 못하며 고양이 곁을 떠나지 못하더니 급기야 근처 편의점에서 팩우유를 사들고온다. "형, 동물한테는 사람이 먹는거 그냥 막주면 안돼요. 그리고 그거 찬거잖아요." "어어.. 그런가? 그럼 이거 데워올까?" 허둥지둥 다시 편의점으로 달려가려는 민석을 붙잡아 말렸다. "그냥 형 마셔요. 이녀석은 제가 데려갈게요." "너 사는데 애완동물 기를 수 있어?" "네, 시끄럽지만 않으면 크게 터치 안해요. 안그래도 혼자 독립해서 사느라 적적하기도 했었고 잘됐네요." "다행이다..." 걱정으로 찌푸렸던 얼굴을 풀며 안도한다. 여전히 고양이가 무서운지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말은 또 잘 건다. "얌마, 너 진짜 다행이다. 저 형이 너 데려간대. 쟤가 저래뵈도 책임감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야." "그렇게 말하면 알아듣기는 한대요?" "야, 너는 칭찬을 해줘도..." 그런 민석이 귀여워 괜히 한마디 보태자 금세 뾰로통해졌다. 입술을 오므리고 볼에 바람을 넣는다. 그런 모습조차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고개를 숙여 내민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고양이같다. 본인이 이렇게도 고양이를 닮았는데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 것이 미스테리다. 우산을 내려놓고 고양이가 든 박스를 들어올렸다. 미야옹- 하는 울음소리가 더 가깝게 들린다. "우산은 형이 들어줄래요? 보다시피 손이 없어서." 민석은 어이없다는듯 픽 웃으며 우산을 주워들었다. 제 우산을 챙기는 것 또한 잊지않았다. "근데 얘 데려가려면 영화는 나중에 봐야겠다. 오랜만에 보는건데 좀 아쉽네." "아쉬워요?" "너 이사하고 처음 만나는거잖아. 당연히 아쉽지. 이래봬도 애인인데..." 부끄러운지 마지막 말이 구멍으로 기어들어간다. 한손으로 박스를 받치고 남은 한손을 민석의 허리에 둘렀다. "그럼 우리집 가요. 이래봬도 애인인데 한번도 집에 못와봤다는게 말이 되나?" "그래도 돼?" 반색하며 대답하는 민석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형." "응?" "라면 먹고 갈래요? 우리집 오늘 비었는데." 민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와 이 늑대같은 놈." "늑대니까 형 잡아먹어버릴거야." 한참을 킥킥대던 민석이 답했다. 덤덤한 척 하지만 귀가 발갛다. "맛있게 끓여라. 맛없으면 집에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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