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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미망록  

  

written by. 상중  

  

  

  

마지막으로 아이를 본 것은 떳떳한 만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일방적임 만남이었으며 아이는 기억하지도 못 할 절대 일상적인 방문이었다.  

  

어서오세요, 손님.  

  

문을 열자 들리는 어서 오라는 아이의 인사는 말뜻과는 대조적이게 축 쳐진 것이었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카운터 테이블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카운터에 뉘여져 있는 그 동그란 정수리를 보고 있노라니 한 없는 무기력함이 아이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경수야.  

......  

도경수.  

…으응?  

졸리면 침대에 가서 자. 책상에서 이러지 말고. 어?  

으음… 아니야, 백현아. 나 공부할 거야.  

책상에 엎드려서 자면 허리 나빠져. 침대에 가.  

아, 그럼 안 졸게. 됐지? 변백현은 정말 잔소리만 입에 달고 살아.  

도경수.  

경수라고 해.  

경수야.  

응.  

잔소리 듣기 싫어?  

당연하지. 너 때문에 귀에 딱지가 다 앉겠다고.  

그럼 뽀뽀해. 여기 입술에.  

아, 뭐야… 변태.  

  

시험기간이라며 앞머리는 거슬리다고 삔으로 고정시키고 펜이란 펜은 다 꺼내서 공부하는 티는 다 내던 아이는 제법 귀여웠다. 아이는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끙끙거리면서 책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고 쉬운 부분에서는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맞은 편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내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달리는 미팅 때 발표할 프레젠테이션을 완성시키는 중이었다. 아이를 힐끗 쳐다보는 것도 그만 두고 집중하고 있을 때 즈음 언제부턴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사라지고 조용히 쌕쌕거리는 소리만 들리길래 아이를 봤더니 엎드려 자고 있었다. 도톰하고 붉음 입술 사이로 들뜬 숨을 뱉으며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참지 못 하고 다가가서 도둑키스를 했다. 아이는 알아채지 못 했고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아이를 흔들며 깨웠다. 책상에 엎드려서 자면 허리에 안 좋아.  

  

경수야, 책상에 엎드려서 자면 허리에 안 좋아. 말 할 수 없었다. 겨우 헛기침으로 나를 달래고 쿵쾅대는 심장을 달래며 편의점 가장 구석의 음료수 진열대로 갔다. 진열대는 곳곳이 비어 있었고 유통기한이 넘은 것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맥주 두 캔을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가면서 모자를 더 푸욱 눌러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장 차림에 야구 모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 때 한낱 차림새에 신경을 쓸 만큼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했던 것 같다. 내가 카운터 바로 앞까지 왔음에도 아이는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차마 소리를 내어 인기척을 낼 용기는 없었다. 아이가 먼저 눈을 뜰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던 찰나였다.  

  

투욱.  

  

아아, 나의 경수야. 도경수, 경수야… 울고 있었어? 너, 울어? 아이의 눈에서 뺨을 따라 떨어진 눈물은 금방 손 등에 닿아 스며들었다. 나는 손을 뻗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왜 우냐고 다정하게 묻고 싶었다. 아이의 눈가에 키스를 퍼부으며 그 짠 맛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래선 안 된다. 나는 안 된다. 아이의 눈물에 울컥하는 와중에도 도리질을 치며 안 된다고 나 자신을 다그쳤다. 안 된다. 변백현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 나는 안 된다. 안 돼, 안 된다고…  

  

계산할게요. 주세요.  

  

아이는 곧 눈을 깜박이며 일어나 자칫 무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계속 제 앞에 있었던 것은 모르는 눈치였다. 고작 한 방울이 흘렀지만 코끝은 금새 빨개졌고 목소리에는 이끼가 묻어 있었다. 유난히 빨갛던 아이의 코 끝은… 아, 혹시 어쩌면 아이는 내가 오기 전부터 투욱 투욱 한 방울씩 느리게 떨어트리고 있었던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눈 앞에 아이를 보며 숨을 죽이면서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눈물을 한 방울씩 흘려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조용히 맥주캔을 건냈다. 아이가 바코드를 찍어내자 또 조용히 카드를 내밀었다.   

  

조심히 가세요.  

  

나는 영수증을 받고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을 애써 옮기며 온갖 주의를 아이에게로 기울였다. 토독토독. 가장 처음으로 손가락으로 카운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예전부터 무언가를 떠올릴 때 자주 그러곤 했다. 다음으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또 한 방울을 흘려 보냈을 것이다. 의연하지 못 하는 아이의 태도에 또 한 번 울컥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있다가는 정말 그 자리에서 오열을 하며 보고 싶었노라 울부짖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황급히 마음을 추스리고 문을 열어 나왔다. 그 날 그렇게 아이는 내내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를 알아채지도, 알아보지도 못 했다. 나는 씁쓸했지만 잘 된 것이라고 그 날 새벽 내내 나를 위로했다. 거기서 경수가 날 알아봤으면 나를 잊는 것에 방해가 됐을 거야. 그래서는 안 되니까 못 알아본 경수가 착하네. 나 잘 한 거야.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다행이야.  

  

마지막으로 아이를 본 것은 떳떳한 만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일방적임 만남이었으며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곪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요양한 만남이었다. 경수가 아닌 이상 내게는 그 어떤 치료가 무의미하다. 지금은 옛 연인이 된 내 경수는 내게 아릿하게 저려오는 한 없는 아픔이지만 때로는 모든 아픔을 잊게 해주는 찬란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  

  

  

  

경수야. 나는 너의 귀여운 천진함에 끌려 네 예쁜 웃음을 보듬고 딱지도 앉지 않은 미성숙한 생채기들을 어루만지며 너를 만나왔어.  

  

어어? 선생님, 이 환자 분…  

  

나는 여태 경수 너처럼 투명한 아이를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난 너에게 아무 색도 입히지 않으려 소중히, 또 소중히 감쌌어.   

  

변백현 환자 분이 이상합니다!  

  

어떤 색이든 너를 물들이는 것이 보기 싫어 투명한 너를 품에 감싸고 있던 나는 정작 알아야 할 걸 몰랐어. 까맣게 타고 있던 나 자신을. 너와의 모든 것들이 너무 행복한 나머지 나를 돌보는 것을 잊고 말았던 거야.   

  

…이상한 것도 아닐세. 어차피 시한부 환자였지 않은가.  

  

하지만 네게 전혀 고할 수가 없었어. 내 아픔도 제 것처럼 여겼던 너이기에 너도 나를 따라 아플 것 같았으니까. 너는 너무 여린 아이였기 때문에 나를 평생 그리며 고독하게 살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경수야, 그건 너무 가혹한 거야. 너를 누군가에게 넘기기는 싫지만 외로운 너보다는 행복한 네가 더 좋으니 그 가혹한 짓은 하지 못 하도록 내가 악역을 자처했어. 모질게 말을 하고 너를 다시 보지 않겠다며 짜증을 냈어. 미안해, 경수야. 변백현이 너무 심했지? 정말 미안해. 네 가슴을 박박 찢어놓을 말이란 걸 알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그럼 잠자코 지켜만 보자구요?   

  

내 말이면 뭐든 듣던 너는 웬일인지 그 날, 그 말만큼은 거짓말이라고, 아니라고 그렇게 소리를 치며 내 가슴팍을 힘껏 때렸어. 큰 눈에 가득 차오르는 눈물이며 훌쩍이는 콧물까지 넌 끝까지 예뻤어. 엉엉 울어대며 나를 붙들고 내 말이 진심이냐며 끝 없이 확인하던 너. 아, 이제 생각해보니 넌 웃음이 맑아 투명한 게 아니라 눈물이 값져 투명한 아이인 것 같다.  

  

인턴, 어설프게 굴지 말고 호흡 멈추면 호흡기 떼고 응급실로 내려와.  

아… 예. 선생님.  

  

경수야. 나는 네가 있어, 너로 인해, 널 그리며, 행복하게 생을 마쳐. 부디 우리 다음 생에서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하자. 끼니 잘 챙겨서 아프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고. 마지막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연인아,  

  

  

  

…나는 잘 잊고 있지?  

  

  

  

fin.  

  

  

  

  

  

  

  

휴 T-T 진짜 몰입하면서 썼어요 댓글 한 줄이라도 주시면 전 정말 행복할 것 같고요...♡ 신알신 정말 은혜롭습니다...♡ 미망록의 백도들의 이별의 이유가 좀 진부해도 제 백도들의 감정은 최대한 색다르게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백현이) 단편이라서 자세하게 담아내지 못 한 인물 설정이나 상황에 대해 궁금한 것은 저에게 물어봐주세용 예를 들면…  

  

백도들은 동갑이야 뭐야 왜 한 명은 시험공부하고 한명은 미팅...??!?   

하하 귀여운 경수는 대딩 백현이는 직딩이지만 경수는 너무 귀엽기 때문에 백현이에게 존칭을 생략해요 왜냐면 귀엽기 때문이져 ^-^  

  

자급자족 하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ㅠ_____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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