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자가 추적 추적 비가 내리는날 밤, 여자와 단둘이 서있었다. 여자의 얼굴에는 비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얼굴을 닦아줄 수 없어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그리고 더 차갑게 말을 뱉었다.
“필요없으니까 강력반에서 나가.”
“......”
“나는 너같은 여자 안좋아해. 추천 넣어줄테니까 그냥 교통부 이런데로 가.”
“대단히 착각하시나본데요, 저 황형사님 때문에 강력반에 남아 있는거 아닙니다.”
여자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섰다. 여자가 돌아서자 남자의 표정은 무너져내렸고 깊은 한숨만큼 남자의 고민도 깊어져갔다.
***
“아이고, 우리 막둥이 힘들면 숙직실 가서 한시간만 눈붙이고 와.”
“아,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던건지 윤형사님이 어깨를 주물러주시는 손길에 눈이 떠졌다. 눈이 떠짐과 동시에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무도 모르게 얼른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지만 눈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꿈이야...
늘 황민현 형사님과 달달한 장면만을 보여주던 이제까지의 꿈과는 다르게 형사님과 멀어지는 장면이 보였다. 형사님이 나를 너무 싫어해서 미래마저 달라져버린걸까?
미래에 의존하지 않기로, 그래서 스트레스 받지말기로 그렇게나 다짐 해놓고도 매번 이 꿈이 보여주는 미래는 맞는다는걸 알아서 도대체 뭐가 맞는걸까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막내야, 황형사가 취조하는거 보러갈래? 꽤나 재밌을거야.”
“네!!”
막내야, 라는 호칭에 체력을 한계를 느껴가던 나와 성우가 동시에 네!하고 대답을 했다. 우리 둘다 직접 취조하는건 처음보는거니까. 설레는 마음에 오른편 자리에 앉은 성우를 한번 쳐다보면 성우 또한 설렘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성운 형사님을 따라 취조실 그 옆방의 문으로 들어가면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처럼 두꺼운 유리너머로 범인과 황형사님의 모습이 보였다. 보통 유리와는 다르게 유리 자체가 좀 어두컴컴한게 확실히 저 너머에서는 이곳이 보이지않을것 같았다. 하성운 형사님께서 “눈에서 빛이난다, 빛이나. 한창 신기할때지.” 하는 말과 함께 버튼을 누르자 저 너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스스로 자백하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그 무거운 분위기에 절로 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성우는 이제까지 보던 스윗함의 황민현 형사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카리스마가 장난아니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에게 까칠하게 대하시는것 과는 전혀 다른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저 너머 취조실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갑을 찬 손을 책상위에 올리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범인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서류를 정리하시던 형사님이 범인을 바라보셨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범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황형사님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한것 같았다.
“형사님, 저는 진짜 그냥 마약한 죄 밖에 없어요. 걔내가 무슨 조직인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저는 그냥 돈주고 마약이나 빨아볼까 하고 처음 만난겁니다. 재수 더럽게 바로 잡혀버려서 그렇죠...첫 거래에 이렇게 바로 걸린것도 가뜩이나 억울하구만.”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는 범인의 모습에 성우와 나의 입에서 동시에 우와-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긴, 나같아도 저 공간에서 황형사님이랑 단둘이, 황형사님의 저 눈빛을 받고 있으면 순순히 다 말해버릴것만 같았다. 존경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성우와 나와는 다르게, 하성운 형사님의 입에서는 하이톤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으유, 우리 애기들. 딱 봐도 거짓말이지 않나?”
“네?”
“저 새끼가 빠는 마약은 야바랑 엑스터시야. 보통 처음 마약하는 새끼들은 대마를 빨고 강해봤자 헤로인이나 코카인인데, 야바랑 엑스터시는 신종마약이거든. 한마디로 마약에 찌든 새끼들만 빠는 마약이라 이거야.”
“우와....”
촌스럽게 아까부터 성우와 계속 같은 감탄사와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역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시는 하성운 형사님의 뒤에서 무언가 후광이 비치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저런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하고 내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방금 그 말에서 몇가지 더 수정하지 않으면, 우리 자주 보겠네요.”
역시 실력이 있어 차출 된 형사님은 다른걸까, 이번에도 아무렇지않게 범인의 거짓말을 잡아내고 심리적인 압박을 하시는 황민현 형사님이 평소보다 더욱더 커보였다. 범인은 수갑을 찬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더니 결국 “아, 형사님. 사실은...”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범인은 어떠한 경로로 마약을 시작했고 그 조직과는 몇번정도 접촉했으며 자신이 만난 조직원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하면서도 중간 중간 황형사님의 눈빛에 잔뜩 눌려서는 “아,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런 눈빛으로 보지마세요.”하며 눈치를 봤다.
하성운 형사님은 “아쉽게도 벌써 끝-“ 이라고 이야기 하시며 버튼을 눌렀고 나와 성우의 사이에 오셔서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시고 다시 원래 사무실로 함께 돌아갔다.
“난 첫 취조 때 정확히 49시간 걸렸어. 도저히 입을 안여는거야, 그래서 욕도하고 화내도내고 부탁도 하고 별짓을 다했지. 너네도 그럴꺼야, 그러다가 어느순간 되면 황형사처럼 저렇게 눈빛으로 압도를 하지. 물론 그까지 가는게 쉽지않겠지만.”
하성운 형사님은 우리를 원래 사무실로 들어가 각자의 자리가 아닌 회의실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저희 회의합니까?”하고 여쭈어보면 “어짜피 황형사가 5분 뒤에 작전짜서 소집할거야.”라고 대답하셨고 말 그대로 5분 뒤에 황형사님이 “작전회의 하겠습니다-“하며 모두를 불렀다.
작전은 우리가 직접 조직에 마약구입을 신청한다. 이미 자신들이 꼬리를 밟혔음을 알기때문에 극도의 경계심이 놓아져있을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자백한 범인의 지인으로 위장해 대량의 마약구입신청을 하면 우리가 놓친 오른팔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저번 상황처럼 마약을 거래할 때 검거한다.
우리들의 얼굴은 알려졌을 가능성이 크기때문에 가장 덜 알려진 성우가 마약구입자로 위장을 하고, 나머지 잠입대기는 반장님과 윤형사님, 추격은 나와 하형사가 맏는다. 경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차량잠복 대신에 건물에 숨어 있다가 추격하는걸로한다. 숨어있다가 나오는 과정에서 작은 피라미들이 눈치채고 도망가겠지만 우리는 딱 대어만 낚는다. 거래시간은 최대한 빠르게, 거래 신청은 윤형사님이 맡아주십시오. 이상 질문있습니까?
“황형사님, 저는 역할이 뭡니까?”
“김여주는 이번 작전에서 빠집니다.”
“네?”
“범인따라 달리기를 합니까, 도망가는 범인 잡기를 합니까, 할 수 있는게 없는데 넣을 필요가 없죠.”
황민현 형사님의 말이 틀린게 아니라서 숙여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윤지성 형사님이 “야, 그래도..”하며 말려보았지만 황형사님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안돼. 김여주 넣어.”
“반장님, 저한테 작전권 주신다고 하시지않으셨습니까.”
“야, 임마. 우리의 모토는 뭐다?”
“...... 팀이 먼저다.”
“그래. 새끼야, 너는 뭐 첫 사건 때 부터 잘했냐? 아, 너는 잘했네. 그래도 이제 첫 출동인데 좀 예쁘게 봐줘라.”
“........”
“막내 눈빛 봐라, 범인 이고 뭐고 다 때려잡을 기센데.”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애로 남기 싫었다. 내 다리몽둥이가 부러지더라도 범인이 잡고 싶었고 내 열정이 이만큼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황민현 형사님, 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여주는 정찰조로 건물 위쪽에서 추격조가 언제들어가면 좋을지 무전해.”
“네!”
작전 회의 이후 윤지성 형사님은 정보원 출신이시던 기술을 살려 마약조직단과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조직들은 얼마 전 덜미를 잡힌 이후로 잔뜩 날이 서 있었고 더이상 새로운 거래를 받으려하지 않았다. 조직원의 컴퓨터를 해킹해 내일 거래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채팅에서도 은어를 사용하는 덕에 그 장소가 어디인지를 알아내기가 힘이들었다.
‘언덕위의 하얀 집 옆에 철물점. 2번 창고.’
은어로 가득한 한줄의 채팅만이 유일한 단서였다. 언덕위의 하얀 집이 뜻하는 건물이 무엇일지 몰라 산쪽에 있는 흰색건물과 철물점이함께 있는, 특히 창고까지 있는 지역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질 않았다. 하성운 형사님의 머리를 이미 쥐어뜯을 때로 쥐어뜯어서 산발이 되어 있었고 윤지성 형사님은 책상에 엎드려 탁 붙을채로 힘없이 컴퓨터 화면만을 넘겨가며 이리저리 찾아헤메고 있었다. 그 의미 없는 행동이 몇시간 동안 반복 되었다.
***
수많은 판자집이 다닥 다닥 놓인, 폐허가 더 많은 재개발 구역. 그 수많은 집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간판이 떨어지기 직전인 가게가 하나 놓여있었다.
‘언덕위의 하얀 집’
그 간판에는 수없이 쌓인 먼지가 뒤덮고 있었고 그 먼지가 흩날리는 곳 옆, 그 마을에서 가장 큰 철물점이 있었다. 창고를 3개나 가진 그 철물점의 창고문은 굵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조금 전, 붉은 노을과 함께 반장님과 윤지성 형사님이 경계 가득한 움직임으로 한 창고에 몰래 들어갔다. 끼이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닫힌 문에는 2라는 커다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조금 만 더 옆으로 가면 굽이 굽이 낡은 도로에는 아스팔트가 여기저기 깨어져 있고 길가에는 잡초들이 무성했다. 이 곳에서 가장 새것인것 같은 도로 표지판에는 ‘52번 국도’라는 글자만 선명히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희미해지던 시야에서 예쁜 해바라기들이 얼룩진 담벼락과 스산한 분위기의 폐가. 그 집의 문 뒤에 숨어있는 한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막내들 힘들어죽으려하네. 하긴 첫 출근 이후에 집에를 못들어갔으니까.”
“우리 여주는 자는게 아니라 생각하는거야. 암암.”
누군가 놀래키기라도 한듯이 눈과 함께 몸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습관 처럼 옆에 보이는 아무 종이에 글자를 휘갈겼다. 52번 국도, 언덕위의 하얀집, 철물점, 2번 창고. 이 꿈이 맞다면 모든건 은어가 아니라 만날 장소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 종이를 들고 바로 윤형사님께 달려갔다.
“##윤형사님, 52번 국도 한번만 검색해주십시오.”
“뭐야, 진짜 생각하던 중이였어?”
윤지성 형사님은 못미더운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으시더니 탁탁 타자소리를 내며 검색을 시작하셨다.
“자, 여기. 이건 왜? 근데 너 진짜 생각하고 있었어?”
“여기, 한번 만 확대해 주십시오.”
산속 여러집이 다닥 다닥 모여있는 곳을 점점 확대해가면 꿈속에서의 모습과 점점 닮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확대를 하다보면 어느새 상표도 등록되어있지 않은, 간판 만 달린 작은 구멍가게의 언덕위의 하얀 집이라는 가게가 보였다. 그러자 윤지성 형사님은 “어?! 대박.” 하는 감탄사와 함께 자세를 고쳐 앉으셨다. 그리고 그 소리에 반응한 하성운 형사님과 황민현 형사님이 뒤쪽에 오셔서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쪽으로 조금 더 가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내 말을 따라가다보면 예상대로 철물점과 창고건물이 보였다. 2번건물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윤지성 형사님은 반장님께 바로 보고를 드리려 달려가셨고 하성운 형사님은 “대애박-“ 하시며 내게 하이파이브를 치셨다. 우리의 황민현 형사님은 여전히 모니터 화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계셨다.
“막내야. 너 이 산골에 저런게 있다는걸 어떻게 알았어?”
“아.......그,그... 옛날에 가봤어요. 하하..”
윤지성 형사님은 진짜 자는줄 알았는데 저걸 생각중이었구나...하시며 고개를 끄덕였고 생각을 마치신 황민현 형사님이 윤형사님께 다음작전을 지시하셨다. 다음 작전은 당연히 접선이었다. 윤형사님은 마약구입을 신청한 사람의 아이디를 해킹해 접선예정이던 오후 8시에서 오후 5시로 시간을 수정했다. 잠복하려면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모두가 긴급하게 움직여 접선장소로 출발했다.
처음 윤지성 형사님과 반장님이 계신곳, 추격조가 잠복중인 지역을 다 체크하고 마지막으로 그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옥상에 올라가 주변을 경계했다.
“해장국 먹고싶다, 오버.”
“묵은지 추가, 오버.”
“반장님, 이 새끼들 잡으면 솔직히 회식 한번 해야되지않습니까?”
“반장님 눈빛이 그 시키들 잡기전에 우리를 먼저 잡을것 같으니 집중한다, 오버.”
옥상이라 해봤자 3층밖에 되지 않는 건물 옥상에 엎드려 밑을 바라보았다. 윤형사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조용해진 무전이었는데 이번에는 무전이 아닌 사람의 형태가 눈앞에 보였다. 옆 창고에 대기하던 성우가 스멀 스멀 밖으로 나와서는 갑자기 근본을 알 수 없는 춤을 췄다.
“옹성우 뭐합니까? 오버.”
“왜왜, 옹성우 뭐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춤을 춥니다.”
“김여주가 제대로 보이는지 확인하려고 내가 시켰다.”
“그럼 좀더 작으신 하성운 형사님이 춰도 보이는지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어쭈, 김여주. 아까 한건 했다 이거지?”
긴장되는 작전앞에서 이렇게 화기애애 해도 되는지 한참을 혼자 웃다가 갑자기 큰 도로에서 커브를 꺾어 이 마을로 들어오는 차가 저멀리 보여 급히 무전을 날렸다.
“지금 마을로 차 한대 들어왔습니다!”
“다들 위치로.”
순식간에 진지해진 분위기에 손에서 땀이나는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남자들은 4명이었는데 그 중 한명은 그때 만났던 조직의 오른팔이었다.
“그 놈들입니다. 오른팔도 있습니다. 지금 3번창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장난스런 말대신에 오케이를 신호화한 탁탁 소리가 두번씩 들렸다.
“한명은 차에 남고, 한명은 창고 앞, 한명은 그냥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오른팔 창고로 들어갑니다.”
조직의 오른팔을 맏고 있는 놈은 천천히 문을 열고 2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내 신호에 맞추어 잠복해있던 성우, 황민현 형사님, 하성운 형사님이 창고를 향해 달려오셨다. 그 과정에서 밖을 지키던 두명이 차로 도망가버렸지만 애초에 우리의 목적은 그 피라미들이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쓰지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도망가며 지른 소리에 창고안에서도 큰 소리가 일어났다.
오른팔이 창고문을 열고 도망나왔을땐, 다른 조직원들은 이미 차를 타고 도망가버린 상태였고 문앞에는 ㅗ형태의 갈림길을 모두 막아서 있었다. 잠시 방황하던 그는 짧게 욕을 내뱉는듯 보였고 이윽고 길이 아닌 낮은 담장의 담벼락을 향해 달려갔고 순식간에 그 담장을 넘어버렸다.
“폐가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제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더 이상 내 눈앞에는 범인의 모습이 보이지않았고 그 골목안으로 따라들어가버린 형사님들의 모습도 보이지않았다. 아씨, 더이상 이곳에서의 시야파악도 도움이 되지않아 빠르게 일어나 밑을 향했다.
밑으로 내려오면 골목골목 빽빽히 들어차버린 폐가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조직원의 이름을 부르는 형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놓칠수는 없는데 이 폐가를 다 뒤지기엔 우리의 수가 너무 부족했다.
이번엔 진짜 잡고 싶었는데, 인정받고 싶었단 말이야. 그 순간, 꿈에서 보였던 얼룩진 담벼락이 머리속에 번개처럼 탁! 하고 떠올랐다. 그리고 더이상 생각할것도 없이 나도 그 폐가들 사이로 달려들어갔다.
“김여주, 어디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윤지성 형사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에겐 해바라기가 그려진 담벼락을 찾는일이 더 급선무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때면 내 시야의 저 깊은 골목 끝에 해바라기가 얼룩진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휘어버린 철로된 대문과 그 앞에 하얀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까지 일치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귓가를 자극하는 끼이익-소리와 함께 철문을 열었다.
철문을 조금 열자마자 바로 뒤를 확인했고 예상대로 꿈에서 본, 방금전 폐가로 사라진 그 조직원이 보였다. 그는 거친숨을 몰아쉬면서도 내가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는듯 했고 이윽고 나에게 주먹이 날아왔다.
미안하지만 나도 두번의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내가 두드려맞는한이 있더라도, 내 몸이 다치더라도 이놈을 꼭 잡는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제법 날렵한 나의 운동신경으로 겨우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그를 잡으려 손을 뻗으면 나의 손을 날카롭게 쳐내는 그였다.
“찾았습니다! 입구에서 직진하면 가장 끝에 있는 골목, 해바라기 담장이 있는 곳입니다.”
“뭐야, 김여주 너 혼자야? 위험해,임마!”
이 긴박한 상황에서 내가 있는곳 하나도 말하기가 힘들었는데 위험하는 말에 대꾸해줄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쳐내면 다시 달려들고, 도망가려하면 잡고를 반복하다 조직원은 온힘을 싫어 나를 벽에 밀쳤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벽에 밀쳐지는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놈을 덮쳤다. 앞뒤도 재지않고 달려들었기 때문일까 그가 나에게 밀리며 넘어진곳은 항아리들이 가득한 장독대였다. 여러개의 항아리들이 와장창-소리를 내며 깨졌다.
“야, 김여주!!!!! 무슨일이야!!!!!”
무전을 통해 형사님들의 소리가 들려져왔지만 마찬가지로 답할시간이 없었고 장독대위에 쓰러진 놈위에 올라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갑을 한팔에 먼저 채웠다.
차가운 금속이 손에 닿았음을 느꼈을까, 그의 반항은 더욱 거셌고 결국 나는 버티지못하고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틈에 그는 다시 일어났고 한팔에 수갑을 찬 채로 집밖으로 나가려했다. 절대, 절대 보낼 수 없었다. 땅에 쓸려서일까 얼굴에서 따가움과 이질적인 느껴졌지만 다시 한번 도망가는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오랫동안 싸움에 몸담아서 일까 아무래도 내가 제압한다는건 역부족이었고 이번에 그는 제법 나를 쉽게 밀쳐냈다. 이번에는 팔로 먼저 떨어져서 였을까 팔꿈치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동시에 나의 신음소리와 그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장독대에 넘어지면서 깨진 항아리에 허벅지를 찔렸는지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 부상은 나에게 기회이기에 다시 땅을 짚고 일어나려했다. 하지만 내 행동 보다 빠르게 그의 발이 나의 배를 향해 날아왔다.
그 어떤 고통보다 강한 고통이 배에서 느껴졌다. 그 뒤로도 그는 두 세번 정도 나를 향한 발길질을 계속했고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나의 신음소리에 형사님의 강한 욕들이 이어졌다. 배를 맞아서 일까 숨도 쉬어지질 않았고 온 몸이 자동으로 움츠러들었다. 신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배를 감싸고 있으면 그는 한쪽 다리를 절뚝 거리며 다시 문을 향해 몸을 돌려 걸어나가려했다.
내가 맞아 죽기전에 아무나 여기에 도착하겠지. 나름 형사 짬밥좀 먹었다고 간이 배밖으로 나온건지, 그만큼 간절한건지 절뚝거리는 그를 향해 나도 사력을 당해 기어갔다. 마당의 모래에 손이 쓸렸지만 게이치않고 기어가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시발, 놓으라고!!!!”
열이 찰때로 차오른 그 였다. 질질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내가 놓아주지 않자 발로 나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꼴에 멋이라도 부리고 싶었던건지 신고온 구두의 딱딱한 구두굽이 나의 어깨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그렇게 우리는 때리고, 다리를 놓치고, 다시 붙잡고를 반복했고 어느새인가 집에서 벗어나 골목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뿌연 시야사이로 누군지 모를 형사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 놈도 형사님으 본건지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도 그의 다리를 붙잡고 놓치않았다. 여전히 끌려가고 밟혔지만 점점 다가오는 형사님을 기다리며 이를 악 물고 버텼다.
그리고 그 조직원의 거친 욕이 들리면서 형사님의 그 놈의 손목에 완벽하게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몇명의 형사님의 더 달려왔다. 그제서야 꽉 안고있던 그놈의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질질 끌려온 그대로 골목에 쓰러져 거친숨을 몰아뱉었다. 입안 가득 모래와 피가 골고루 느껴졌다.
“김여주, 괜찮아?!”
누군가 내 고개를 조심히 돌려 얼굴을 확인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몇번 눈을 깜박이면, 처음 보는 분노+걱정이 함께 섞인 표정의 황민현 형사님이 보였다.
“헤, 잡았...어요”
헤-하는 바보같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을 하다가 입술에 따끔거리는 느낌이 느껴져 표정을 찌푸리면 “아이,씨” 하며 조심스럽게 나를 일으키는 황형사님 이셨다. 황형사님의 뒤로 성우와 윤형사님이 경악어린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셨고 그렇게 나는 이제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
얼굴에 가득한 모래를 물로 씻어내면 볼에 떡하니 잡힌 상처가 따끔따끔거렸다. 샤워실의 거울에 비친 몸은 온몸이 피멍 투성이였고, 그 만큼 쑤셔왔다. 하지만 아픈 몸보다는 뻥 뚫려버린 마음이 더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일하다가 다친다는건 정말 기분 더러운 일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뿌듯했다.
어느정도 말려진 머리를 가볍게 털어내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갑자기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건넸다. 아무말 하지않고 박수를 쳐줄 뿐이었는데 그 뿐인데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참아내는게 맞았다.
“어, 이 연고 비싼건데 누가 가져가주신겁니까?”
“우린 몰라. 나도 아니고 하성운도 아니고 성우도 아니고, 반장님은 아직 사무실로 안들어오셨고.”
윤지성 형사님의 말에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황민현 형사님이 이걸?
“어...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웃으며 연고를 손에 발라 내 볼을 더듬었다. 이곳에 거울을 들고다니면 그 또한 나 여자에요-하는것만 같아서 거울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더듬더듬 거리고 있으면,
“따라와, 발라줄게.”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맞으면서도 그걸 안놓고 있어?”
“제가 보기는 이래도 맷집은 완전 강합니다.”
“우리 모토가 범죄보단 사람인데, 너 나중에 반장님한테 혼난다.”
“그래도 황형사님이 이렇게 챙겨주시는데, 얼마든지 혼나겠습니다.”
확실히 이전보다 따뜻해진 황민현 형사님의 태도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너무 솔직한 말들이 튀어나왔고 손에 약을 짜시던 황형사님이 고개를 푹 숙이셨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여셨다.
“사실, 여자가 싫었어. 특히 여자 경찰은 강력반에 오면 드라마같은걸 보고 혹해서, 멋있어보여서 들어오는게 대부분이고 그래서 현장에도 안나가려하고 늘 대충, 몸사리는 경우가 다반사였어.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선입견이 생겼나봐. 그래서 김여주 네가 싫었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조곤 조곤 말을 이어나가시는 황민현 형사님이셨다.
“덕분에 많이 놀랬어. 남자여도 이렇게 몸을 던지는 경우는 잘 없거든. 그래서 내가 너무 했구나싶기도하고 그런 선입견을 가진거에 반성도 했어. 미안하다 김여주.”
“아닙니다. 제가 그걸 깨트린거라고 생각하니까... 저 지금 너무 감동적입니다!”
“으이구, 그렇다고 그렇게 맞고 있으면 어떡하냐?”
숨길 수 없는 마음에 무슨말이라도 웃으며 대답했더니, 황형사님은 웃으시며 나의 이마에 콩-하고 꿀밤을 놓으셨다.
“보자, 일로와봐.”
그리고 한손은 나의 얼굴을 고정시키고 한손은 조심 조심 얼굴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셨다.
“여자얼굴에 이게 뭐야.”
옹성우가 말했던 스윗함이라는게 이런걸까, 속상하다는듯 울상을 짓는 표정까지도 너무 잘생겼다.
“강력반에서만 얻을 수 있는 훈장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말이나 못하면.”
전과는 다르게 황형사님은 웃으며 나의 머리를 헝클이셨다. 그리고 마저 약을 다 발라주셨다. 약을 바르면서도 조금씩 호-하고 입으로 불어넣는 바람에 황형사님의 스윗함이 날아들어왔다.
처음으로 가까이 보는 얼굴, 호-하고 내민 입술이 오늘 따라 더 멋있어 보였다.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지금, 그냥 그 달달함에 녹아내리고만 싶었다.
아무래도 나의 강력반 생활은 이제부터가 시작인것 같다.
그리고 회색 글씨는 꿈이니까 잘 참고해서 읽어주세요 ㅎㅎ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신 독쨔님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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