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지코] 내 연인의 이중생활
w.콩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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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하아, 아..아! 좀 살살 해주세요.."
"뭉친 곳을 확실히 풀어 주어야 합니다, 고객님."
"너무 아픈데요.."
"경락을 처음 받으셔서 그럴거예요. 다음번엔 좀 더 편안하실 겁니다. 골반이 틀어져있고 근육도 많이 뭉쳤네요. 최근에 허리 아랫쪽 근육을 많이 쓰셨나봐요."
"아, 그..런가요."
애인이 옷을 홀딱 벗고 타인에게 몸을 주물리는데 걱정도 안되나 보다, 그는. 그것도 아주 경악스럽게 악을 쓰며 만져지고 있는데 말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에서 '맥심'을 읽으며 대기 중인 그는 악에 바친 나의 괴성을 충분히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같이 호텔 스파로 들어서면서, 아니, 공중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듯 거의 그의 몸에 안겨 둥둥 떠내려오면서 그는 나를 케어 룸으로 들여보내놓으며 책장에서 맥심을 집어들었었다. 드르륵, 드르륵. 발 마사지를 하는데 왜 이런 소리가 나는지 이해하기가 도통 어렵다.
"저기, 발은 그만하면 된거 같은데..."
"아, 네. 그럼 지금 바로 저희 스파 북유럽라인 전용제품인 바이오오일 발라드리겠습니다."
"그것만 바르면 끝나나요."
"헤어케어와 페이셜케어가 남아있습니다."
"어.. 죄송한데 저 안할래요. 그냥 그 오일? 북유럽 뭐라 하는거, 방금 말한 그거만 발라주고 끝내주세요."
"표지훈씨께서 원데이 패키지로 예약하셨는데..."
"그만할래요."
"..알겠습니다."
오일의 향긋한 과일향이 잔향으로 남아 코끝을 맴돈다. 막판에 마사지사에게 성질을 조금 부리긴 했지만 막상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몸은 물론 정신까지 맑아진 느낌. 스파에 들어올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복도를 따라 몇걸음 걸어나오니 쇼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던 지훈씨가 고개를 든다.
"끝났어?"
"네."
"이렇게 일찍 끝날리가 없는데."
"내가 일찍 끝내달라 했어요."
"어디봐."
자기 옆자리를 툭툭 친다.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쪼르르 옆에 다가가 앉았다. 지훈씨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칼을 어루만지더니 자연스레 뺨과 목을 쓰다듬는다. 긴 손가락 사이로 머리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묘했다.
"머리를 안받았군."
"얼굴도. 사실은 얼굴도 안받았어요."
"얼굴도?"
"맥심은 잘 봤어요?"
"내가 그거 보는건 언제 봤나."
"다 봤죠 뭐. 예쁘고 쭉쭉빵빵한 언니들 많이 나왔어요?"
"몰라. 난 섹스테크닉 나오는 챕터만 읽어서. 애기 위해서 정독했거든."
"..."
슬며시 미소를 띄우며 내 볼을 살짝 꼬집는다.
"착각했네, 내가. 넌 피부관리 같은건 받을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경락도 안받아도 돼요."
"많이 아팠나?"
"죽을 뻔 했어요."
"다음번엔 덜 아플꺼야."
"다음번은 없어요."
"섹스한 다음날마다 데려 올껀데."
"피부 퉁퉁 부을 일 있어요? 이런것도 자주하면 피부 다 쳐질걸요."
"자주 할 예정인가?"
"..."
"애기 체력으론 안될텐데."
"하, 제 체력 알아요? 아직은 보이는게 다가 아니예요."
"남자 허리가 요만하면, 말 다한거 아닌가?"
오른손으로 허리를 덥썩 잡는다.
"우리애기,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잘 좀 먹여야겠다. 먹고싶은거 있어?"
"음... 막창."
"막..뭐?"
"막창이랑 곱창이랑 염통구운거에다가 돼지껍데기! 아 곰장어도 맛있는데. 갑자기 조개구이도 먹고싶네."
"술 마시고 싶어?"
"아..아니요! 저 술은 진짜 싫어하고 안주만 먹는 스타일이예요."
"어쨌든.. 내장 같은게 먹고싶단 말이지. 이런거 좋아할줄은 몰랐네. 여리여리하게 생겨서는 식성이 참.."
"날 무슨 가녀린 20대 아가씨로 보나봐."
"가녀린 10대 여학생으로 봐."
"변태."
"먹으러가자."
"지금 몇시예요?"
"지금.. 6시."
"아직 그런데 문 안열었을텐데."
"그럼 근처에 영화보러 갔다 갈까?"
"그러면 시간 맞을것 같네요. 그렇게 해요. 근데.. 나 가게 안 가봐도 되려나?"
"내가 알바생들 풀어놨잖아."
"그래도 왠지 내가 가있어야할 기분이라서 그래요."
"성실하고 믿음직한 애들로 보내놨으니까 너는 걱정하지마. 나랑 있을땐 아무 걱정도 하지마. 그게 내가 네 옆에 있는 이유니까."
"알았어요. 고마워요."
"그래, 가자 영화보러."
볼을 살짝 꼬집는다. 나는 그와 맞잡은 오른손을 풀어 새로이 깍지를 꼈다.
***
| 9.5 표지훈 |
'신세계' 시발. 이런 내용일지 몰랐다. * '영화인들의 재평가! 관객들의 찬사! 한국 느와르의 名作 <신세계> 절찬 재개봉!' "지훈씨 저거 어때요? 재개봉작이라는데." "신세계?" "인기가 많으니까 재개봉을 하는거겠죠?" "무슨 내용인데." "몰라요. '세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신세계', 포스터엔 이렇게 적혀있네요. "그럴까.. 애기 딴건 보고싶은거 없고?" "이게 시간이 제일 빠르니까 이거 봐요 그냥. 딴건 딱히 볼만한 것도 없네요."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고, 첫장면을 보자마자 나는 비로소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알게 되었다. 심장이 시큰하고 손에서 땀이 났다. *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상영관 밖으로 나와 내 손을 잡은 애기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빈 콜라를 버렸다. 영화 내용이 충격적이었나, 아니면 인상이 깊었던 건가.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는걸까.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영화는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내가 꽤나 좋아하는 헐리우드 영화 <대부>에서 모티브를 많이 따온 것 같긴 했지만, 거대 범죄조직에서의 권력의 이동, 또 윤리를 상실한 경찰의 개입. 흑과 백이 진정한 흑과 백이 아닌 설정.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감독이 누군진 몰라도 이쪽 세계에 관심이 많은듯 작품 완성도가 높았다. 다만영화의 내용이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꼭 닮아 있어서 마치 내 옆의 연인에게 나의 추악한 치부를 보여주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칼부림 장면 중이었나, 영화 상영중에 살짝 그를 흘겨봤을때 그의 표정이 참 진지해서 더. 그래서 더 짜증스러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가 이따위 영화를 만들었는지 저주했다. "영화볼때 주먹쥐고 있었어요?" "어,응? 왜?"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있어요. 지훈씨." "그래? 이거 버릇이야. 버릇.." "고쳐요. 손바닥 다 까지겠다." "알았어. 고칠게. 애기가 걱정 해주니까 기분 좋네." "지훈씨는 형제 있어요? 없다고 했었나?" "나?" 형이 두명있다. 의형제가. 이 망할 영화는 왜 하필 그런 설정을 해놨는지, 이걸 대답해야 말아야하나. "없어. 외동이야." 일반인들이 '의형제' 라는걸 삼는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나나 이자성같은 인간들이나 의형제가 있지. "나랑 같네. 아, 영화 재밌었어요. 좀 잔인했는데.. 나랑 다른 세계 이야기니까 되게 신기하기도 하고. 대규모 조직폭력배라 해야하나? 한국에 실제로 저런 조직이 있을까싶고... 저렇게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게. 저런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게 무섭네요. 여운도 진하게 남고. 지훈씨는 어땠어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 눈을 바라보니 숨이 턱 막힌다. 마치 고동색의 깊은 두 눈이 나를 책망하는 것 같다. 긴장한 티가 나지 않게 숨을 내쉬는건 힘들었다. '사실을 말해요 지훈씨. 빨리 날 실망시켜. 당신의 그 화려한 거짓말들로 날 상처주라고.' 본의아니게 취조당하는 기분이다. 긴장할 이유가 없다. 저건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관련이 없다. 관련이 없어. 이 상황을 빨리 무마해야 한다. "......재밌더라." "끝?" "재밌었어.. 너랑 봐서 더." "아 또 부끄러운 소리해. 남들 들어요." "손도 잡고 다니는데 왜." "그럼... 이제 막창곱창?" "차 가지러 가자."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 만원이 된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품에 안듯 내 앞에 세워 타고, 뒤에 서서 한 손으로 현기증이 나려는 머리를 짚었다. 힘든 상황은 무마했다. 이번에 내게 다가온 문제는 내가 그것들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거다. 지호가 좋아하는 것들. 당연히 파는 곳도 모른다. 도대체가 공감대 형성이 이렇게 힘들수가 있나.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조마조마하다. 내 작은 행동 하나에, 내 말 한마디에 훌쩍 실망하고는 나를 떠나가 버릴까봐. 정말 미칠 것 같다. "애기가 자주 가는 곳 있어?" "자주 가는 곳? 딱히 없어요.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는 편이라서." "그럼 아무데나 들어가야 하나?" "그렇게 해요. 어차피 난 지훈씨랑 먹으면 뭘 먹든 좋으니까." "귀엽게." "빨리 가요." "타." 차문을 열어주고 나도 차에 올라탔다. 처음엔 문 열어주는 것도 부끄러워 하더니 이젠 사뿐히 올라타 나를 기다린다. 이쁘다. 은연중에 지호는 "애기"라는 애칭도 받아들이고 있다. "어디쪽으로 갈꺼예요? ㅇㅇ동? ㅁㅁ동?" "ㅇㅇ동이 여기서 가깝지? 그쪽이 술집도 많고. 너가 좋아하는 그런거 파는데도 많을꺼아냐." "막창 먹어 본적 없구나?" "..그래." "한번도? 한번두요?" "없어." "어떻게 막창을 먹어 본적이 없을 수가 있어요? 하긴.. 부잣집 도련님이라 그런가." "외식 자체를 자주 하질 않았어. 주변 친구도 별로 없었고. 뭐... 만나면 술이나 마셨지." "오늘 한번 먹어봐요, 나랑." "그래야지. 좋네, 애기 덕분에 막창도 먹어보고." "꼭 도련님 데리고 다니는 것 같다." "편하겠네. 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망아지같은 애기데리고 다니는거 같아서 항상 노심초사한데." "도련님이 배신만 안하면 어디로 안튈꺼니까 걱정마요." * "저 집 어때요?" "사람이 너무 많지 않나." "잘 모르는 동네에선 사람 많은 집이 맛있는 집이예요. 가요, 빨리." "자리 없어보이는데. 정신도 없어보여." 내 팔짱을 끼고 확 끌어당긴다. 어차피 애기가 원하는 바 모든걸 들어주게 되어있다. 먼저 내 팔짱을 낀게 내심 기분이 좋아 마지못해 가는척 뒤따라가며 흐믓하게 그의 뒷통수를 바라봤다. "어서오세요. 지금 사람이 많아서 조금 기다리셔야 하는데.." "얼마나 기다려야되요?" "1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지훈씨 어떻게 할래요?" 귀여운 뒷통수를 보여주다 홱 나를 돌아본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다시 새파랗게 어린 종업원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쪽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고기 굽는 냄새가 자욱하고 담배 굽는 냄새가 진하게 나는 시끌벅적한 식당, 그 문가에 앉아 술 취한 인간들과 '대기'를 한 5분 정도 했을까. "이사님! 아니 이런델 어떻게..." 분명 뒤쪽에서 내게 어떤 인간이 인사를 해왔지만 그게 누군지 아주 잘 알기에 뒤로 돌아보기가 싫어졌다. 애기가 그 인간을 한번 보고는 나를 바라본다. "지훈씨보고 하는거 아니예..." "지금 우리 이사님을 대기 시킨거냐? 누가 그랬어! 당장 나와!!! 죄송합니다 이사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감히 이사님을.. 씨발새끼들아 거기 앉아서 뭐해! 빨리 인사드려!" 좌중이 우르르 일어서는 소리가 나고, 식당 안으로 우렁찬 인사소리가 울린다.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절대로 뒤로 돌아보지 않을꺼다. 절대로. 식당 공기 중에는 고기 타는 소리만 남았다. "지훈씨...?" "어, 왜그래." "지훈씨 아는 사람들이예요?" "...누구." "뒤에...저기, 고개를 안드는데...다들." 뒤로 돌아 본 풍경은 가관이었다. |
***
| 작가 |
대역죄인 왔사옵니다. 설날을, 졸업을 핑계로 참 늦게왔어요. 짧고 늦고 재미없고. 이게 뭐죠? 대신 이번주 한편 더 올릴게요. 그리고 이중생활...ㅠㅠ 다 끝나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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